예레미야 51장


1. 바벨론을 치러 오는 나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그럴까?

    아니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바벨론은 치겠지만 배후에서 그렇게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1-2, 11, 29): 바벨론을 멸망시키는 자나, 키질하는 자(=2절의 타국인) 모두 하나님의 의도를 전혀 알지도, 의식하지도 못하고 바벨론을 치겠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2. 키질을 하면 그 땅이 비게 되나?

    바벨론이, 알곡을 싹 거두어 가버린 타작마당처럼 될 것이라는 말이다: 알곡이 다 사라진 쭉정이는 결국 불에 타고 만다.

3. 3절의 ‘활을 당기는 자를 향하며 갑주를 갖추고 선 자를 향하여 쏘는 자는 그 활을 당길 것이라’는 말은 아무리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아래 영역본을 보면 뜻이 분명하다. 그런 면에서 개역성경이 번역을 잘 한 것이다. 왜냐고? 원문 자체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으니까!
[NKJV] Against her let the archer bend his bow, And lift himself up against her in his armor.
[NIV]Let not the archer string his bow, nor let him put on his armor.
번역마다 이렇게 차이가 나면 어떻게 본문을 이해해야 하나?

    문맥을 따라서 이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3절 뒷부분을 보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진멸하라’는 뜻이다. 시간적인 여유를 주지도 말고 공격하라는 뜻으로 이해한다면 NKJV보다 NIV가 무난해 보인다.

4. 바벨론도 죄가 많지만 이스라엘도 죄가 많다. 그런데 결과가 어떻게 다른가? 왜?

    바벨론은 멸망하겠지만 이스라엘은 완전하게 버림을 받지는 않는다(5):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이기 때문이다. 원인이 하나님에게 있지 이스라엘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행위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 바베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참으로 위로가 되는 말씀이다.

5. 바벨론은 온 세상을 취하게 하는 금잔이다. 금잔에 담긴 달콤한 포도주 때문에 온 세상이 미쳤다. 그러면 전혀 희망이 없는가?

    그런 바벨론도 여호와의 수중에 있다(7): 희망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는 것이다. 바벨론으로 온 세상이 미친다고 해도 그 뒤에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성도는 그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미친 세상과 함께 힙쓸려 가지 않는다.

6. 바벨론의 파멸로 인하여 우는 자는 누구인가? 바벨론을 치료하기 위하여 유향을 구하려고 하는 자도 누구일까? 치료하려다가 안되니 차라리 돌아가는 자는 또 누구인가?

    아마도 바벨론의 용병으로 온 자들: 바벨론이 융성함으로 이익을 얻는 자들일 것이다. 계시록의 표현을 빌리면 ‘바벨론과 함께 음행하던 땅의 왕들, 무역을 하던 상고들, 선원들’이다(계 18:9, 11, 15, 17-18).

7. 바벨론의 파멸을 기뻐하는 자도 있는가?

    시온으로 돌아오는 자: 여호와께서 우리 의를 드러내셨다고? 의는 무슨 의? 바벨론과 비교해서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자신들의 의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셨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의이다. 그래서 선포하는 것이 ‘하나님 여호와의 일’이다. 정신 차렸네!

8. 바벨론이 한창 강성하던 시절에 바벨론을 멸망시킬 나라의 이름까지 예언하고 있다. 바벨론이 정말 메대에 망하였는가?

    바사에 망했다: 전장에서 설명한 역사적 배경을 참고해야 한다. 바벨론이 바사에 점령되긴 했지만 실제로는 메대에 망한 것과 마찬가지다. 메대는 바벨론과 연합하여 앗수를 무너뜨렸지만 곧 바벨론과 결별하고 바벨론을 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맥없이 바사에 넘어가고 말았고 메대의 군사와 작전을 그대로 인수한 바사가 바벨론을 점령한다. 지휘부만 바사지 실제로는 메대의 군사력에 바벨론이 무너졌다. 그래서 성경에는 메대 바사가 함께 언급되기도 한다(단 5:28, 6:8, 12, 15, 에 1:3, 14, 18, 19, 10:2). 놀라운 예언이다.

9. 여호와께서 보수(報讐)하시는데 ‘기를 세우고 튼튼히 지키며 파숫군을 세우며 복병을 베풀어 방비하라’고 하시는 이유가 뭔가?

    용감하게 순종하는 자를 통해서 위대한 일을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다: ‘방비하라’는 말 때문에 좀 헷갈리지만, 바벨론을 공격하는 군사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하시니 우리는 아무 것도(예컨대 절망, 자해) 하지 말아야할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특수한 경우이다.

10.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에 바벨론이 무너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이 성전을 허물었기 때문이다(11절의 ‘성전의 보수’).

11. 물가에 거하여 재물이 많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비옥한 땅이 재산이라면 바벨론 사람들에게는 풍부한 물이 재산의 밑바탕이다. 운하, 풍부한 농업용수를 바탕으로 많은 부를 축적한 것을 말한다. 그래서 바벨론을 물 위에 앉은 것으로 묘사하기도 한다(계 17:1).

12. 황충(메뚜기)이 가득하다는 것은 번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황충의 무리가 습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바벨론에 사람이 가득할 것이라는 것은 무슨 뜻이며 그들이 높이는 소리는 무슨 뜻일까?

    적군이 메뚜기 떼처럼 몰려올 것이고, 그들이 높이는 소리는 승리자의 웃고 떠드는 소리이다.

13. 사람들이 우준하고 무식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무능한 우상을 섬기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고 그것들을 섬기다니... 반면에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온 세상이 우상을 섬길 때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이런 분이심을 어떻게 알았을까?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라는 즣은 증거이기도 하다.

14. 야곱에게 가장 중요한 재산은 무엇인가?

    만군의 여호와(19): 하나님을 가리켜 야곱의 분깃이라고 한다. 분깃이란 자신에게 돌아오는 몫(유산)을 말한다.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은 정말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필요충분조건이다.

15.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철퇴, 곧 하나님의 병기(20), 멸망의 산(25)이란 누구인가?

    온 세상을 멸하는데 사용되었다가 다시 하나님에게 멸망당하는 것은 바벨론이다(24).

16. 산이 불에 타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는가?

    돌을 깨내어 건축 재료를 쓸 수도 있다(26):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면 그런 용도로도 쓰일 수 없도록 철저하게 파괴될 것이라는 말이다. 아예 산을 뒤엎어버리신다는 말인가?

17. 하나님의 심판날이 되면 드디어 열국이 바벨론을 치러 온다. 구체적으로 누가 쳐들어 오는가?

    아라랏과 민니와 아스그나스 나라(27), 메대인의 왕들과 그 방백들과 그 모든 두령과 그 관할하는 모든 땅(28): 앞의 세 나라는 메대의 속국이다. 후일, 결국은 메대가 바사의 지휘하에 바벨론을 침공하게 된다. 바사의 고레스가 메대를 병합하는 과정은 대단히 흥미로운 이야기다. 그들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배후에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예레미야 시대에 이렇게 구체적으로 예언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18. ‘때가 이른 타작마당’의 ‘때’는 추수 때가 아니다. 바로 이어 ‘미구에 추수 때가 이르리라’고 하기 때문이다(33). 추수 때가 되기 직전, 타작마당의 때는 무엇을 하는 때일까?

    추수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타작마당을 밟아 둔단다. NIV는 아예 ‘밟히는 때’(the time it is trampled)라고 번역했다. 땅을 다지느라고 꼭꼭 밟듯이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꼭꼭 밟으시겠단다. 추수 때의 타작마당이란 두들겨 패는 의미가 들어있지만 여기서는 밟는다는 의미가 주개념이다.

19. 34-35절의 ‘나’는 ‘우리’로 바꿔 읽어야 한다(케레). 누구의 말인가? 어떤 성격의 말인가?

    바벨론에게 처참하게 당한 이스라엘(35)의 송사(36)이다. 이스라엘의 고발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그대로 갚아주실 것이다.

20. 바벨론을 심판하시는 데에 웬 바다가 등장할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큰 호수나 강을 종종 바다라고 표현하곤 했다(갈릴리 바다, 사해 바다, 사 19:5, 63:11): 바다를 의미하는 ‘얌’이란 단어는 큰 강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마도 유프라테스 강을 가리켜 바다라고 했을 것이다. 강이라고 할만한 강이 거의 없는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그럴만도 하다. 그래서 이사야는 강가에 위치한 바벨론은 ‘해변광야’라고 불렀다.

21. 바벨론은 벨사살 왕이 연회를 즐기다가 하룻밤 사이에 망하고 말았다(단 5:30-31). 이것을 예레미야는 어떻게 예언하고 있는가?

    사자같이 소리하며 어린 사자 같이 부르짖으며 열정이 일어날 때에 연회를 베풀고 취하여 기뻐하다가 영영히 잠들어 깨지 못하게 될 것이다(렘 51:38-39). 바벨론이 한창 때에 순식간에 망해버릴 것을 잘 표현하고 있다.

22. 심판날 바벨론은 비유컨대 포효하는 사자의 신세에서 어떻게 변하는가(40)?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 수양, 수염소(40): 우리나라 사람들이 개를 식용으로 잡는다고 서양 사람들이 야단인데 도살장으로 가는 소는 어떻고? 소가 불쌍해서 쇠고기를 못먹는 사람은 없을까? 정말 기막히는 비유다. 포효하던 사자가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이 되다니! 또 다른 비유는 해일이나 쓰나미가 휩쓸어버리듯이 바벨론이 황폐화 될 것이다(42).

23. 세삭(25:26)은 바벨론을 일종의 암호처럼 나타낸 말이란다(물론 다른 주장도 있다). 바벨론의 히브리 표기법을 히브리 알파벳의 역순으로 대치시킨 이름(예컨대 bbl→ssk)이란다. 성경에는 딱 두 군데밖에 나오지 않으니 그럴 것 같기도 한데, 아니라고 한다면 어떻게 본문을 보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까?

    바벨론의 멸망을 언급하는 장문의 글 속에 새삼스럽게 바벨론을 암호화할 이유가 없다. 누가 보아도 바벨론을 가리키는 말인 것을 알 수 있다면 비밀스런 표현이라는 주장이 어색하다.

24. 성읍들이 황폐하여 마른 땅, 사막이 되고 거민이 없어질 것이라(43)는 표현은 어디서 많이 보았더라?

    유다와 예루살렘의 파멸을 말할 때 이와 흡사한 표현이 사용되었다(렘 6:8, 9:11, 22:6, 34:22, 44:22). 바벨론이 그렇게 행하였다가 이제는 자신도 그와 같은 보복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25. ‘벨’은 바벨론의 주신 ‘말둑’의 별칭이다. 벨을 어떻게 벌하시는가?

    삼킨 것을 뱉어내게 하신다: 뭘 먹었길래? 34절, 즉 유다를 삼킨 것을 가리킨다. 결국 벨은 징벌하고 유다는 회복시키겠다는 것이다. 열방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다. 바벨론이 징계를 당하는 이유가 결국은 유다를 삼켰기 때문이다(44, 36, 24).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을 가리켜 나의 종이라고 할 때(25:9, 27:6, 8, 51:20)는 언제고?

26.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심판하실 때 하나님의 백성은 무엇을 해야 하나?

    거기서 나와야지: 바벨론에 심판이 임한 줄 모르고 하나님의 백성이 거기서 머뭇거리면 안된다. 소돔 고모라에서 롯이 빠져 나오듯 나와야한다. 산문(産門)에서 머뭇거리고 있어서는 안된다(호 13:13). 세상 유혹에 빠져 심판이 임하는 줄도 모르고 있는 백성에 대한 경고이다.

27. 풍설, 관원끼리 서로 치는 것(내란)은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전조증상이다. 이런 불안한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이스라엘은 무엇을 생각해야 하나?

    바벨론을 멸망시키는 하나님의 역사: 바벨론의 멸망이 곧 이스라엘의 회복을 뜻하는 것임을 아는 사람에게는 바벨론 내부의 혼란이 그렇게 걱정스럽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를 생각하며 예루살렘을 마음에 두라(50).

28.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치시는 이유 중에는 이스라엘의 치욕을 갚아주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이스라엘이 가장 치욕스럽게 느낀 일이 무엇일까?

    이방인이 여호와의 집 성소에 들어간 일(51): 대제사장도 일년에 단 한 차례밖에 들어갈 수 없었던 곳에 이방인이 들어가다니? 이 치욕을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56). 그래서 바벨론의 신들을 특별히 징계하실 것이다(52). 그러면 성을 아무리 높여도 소용이 없다(53).

29. 바벨론이 기고만장하여 떠드는 소리(55)를 어떻게 잠재우시는가?

    더 큰 소리로: 많은 물의 요동함같이 요란한 소리는 홍수가 밀려올 때 나는 소리나 거센 파도가 들이 닥치는 소리다! 55절의 ‘대적’도 원문에는 ‘파도’이다.

30.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으로 갔다는 것은 속국의 예를 차리는 셈이다. 그런 일로 가는 인편에 바벨론이 멸망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낸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누구에게 이런 글을 보내어 읽어 들리게 했을까?

    아마도 유대인 포로들: 이미 1, 2차에 걸쳐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동족들을 위로하기 위한 의도이었을 것이다.

31. 다 읽은 책을 돌에 매어 강물에 던지다니?

    시청각 교육이다: 그 책이 물에 완전히 잠겨버리듯이 바벨론이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들려주는 것과 동시에 보여주는 것은 교육적인 효과가 훨씬 크다.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