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50장


1. 앞에 언급한 여러나라들의 패망을 예언하는 것은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그러나 바벨론이 황폐화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왜 그럴까?

    바베론이 당시의 최강국이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들은 대체로 바벨론에 점령 당한다. 말하자면 바벨론은 열국을 심판하는 도구인 셈이다. 그 바벨론마저 수치를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2. ‘기를 세우라’는 것이 무슨 뜻일까?

    앞, 뒤에 있는 ‘광고하라, 공포하라, 숨김이 없이 공포하라’와 같은 뜻이다: 그러니까 단순한 신호용 깃발을 넘어서 의사전달이 가능한 깃발이다. 같은 뜻을 지닌 말을 표현만 바꾸면서 반복하는 히브리 수사법이다.

3. 위의 질문에 대한 답변과 같은 원리로 생각해보면 벨(바벨론, 벨사살, 벨드사살의 ‘벨’)과 므로닥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신상 혹은 우상: 벨, 마르둑, 므로닥은 다 같은 바벨론의 주신(主神)을 가리키는 말이다. 신들이 부수러진다는 것은 나라가 망한다는 뜻이다.

4. 북방에서 오는 나라(3, 9)? 메대는 북동쪽이지만 바사는 동남쪽인데?

    역사적으로 본다면 바벨론은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에 무너진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북방’은 심판의 대행자를 가리키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이 유다에 대한 심판자로 등장할 때 ‘북방에서’ 온다는 표현을 사용했다(1:14, 4:6... ).

5. 이스라엘과 유다가 언제 돌아오는가?

    바벨론이 멸망할 때(4): 이것도 비유적인 교훈을 포함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돌아온다는 것이 그렇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침공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모든 자기 백성을 불러 모으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냥 몸만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5) 돌아올 것이다.

6. 바벨론이 길잃은 양떼와 같은 이스라엘을 잡아 먹고 무슨 소리를 하는가?

    우리는 무죄하다: 그들이 이렇게 당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버린 죄로 하나님께 벌을 받는 것이다(7).

7. 떼에 앞서 가는 수염소? 염소는 떼지어 다니는 짐승이 아니라 제멋대로 위험한 곳을 휘젓고 돌아다니는데?

    여기서 ‘떼’는 염소떼가 아니라 양떼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양떼 앞에 가는 수염소다! 바벨론이 심판을 당할 것이니 함께 떼지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여차하면 혼자서라도 앞장서서 나오라는 것이다. 심판이 임박했으니 계획을 짜고 준비할 겨를도 없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급히 도망쳐 나오던 롯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8. 예레미야가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할 이 즈음의 최대 강국은 바벨론이다. 후에 바벨론이 침공하여 결국은 유다가 망하고 만다. 한창 강대국으로 성장하며 주변의 모든 나라를 정복하던 바벨론이 큰 연합군에 이렇게 쉽게 무너질 것을 예레미야가 어떻게 알았을까?

    예레미야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다: 실제로 바벨론은 혜성같이 나타나서 혜성같이 사라져버렸다(BC 625-539). 아무도, 심지어 자신들조차(단 5:30의 벨사살) 상상을 못했던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메대를 병합한 바사가 하루밤 사이에 바벨론을 점령해버렸다. 바사가 바벨론을 점령한 것은 재미있는 역사지만 그 배후에는 자기 백성을 돌아보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음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성도만 알 수 있다.

9. ‘화살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리라’는 것을 현대적인 표현으로 바꾸면?

    쏘기만 하면 명중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전쟁통에는 수백발의 총을 쏘아도 맞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징벌하시면 한 방에 한 명씩이다. 이런 능력있는 사람을 가리켜 숙련된 사람이라고 해야 하는데 개역성경은 ‘연숙’이라고 한다(9).

10. 갈대아를 침략하여 약탈하는 자마다 만족스럽게 약탈을 할 것이다(10). 갈대아가 여호와께 무슨 죄를 지었길래 그러시는가?

    하나님의 산업(=땅)을 노략하고는 즐거워하며 기뻐하며 곡식을 가는 송아지(? 원어상으로는 ‘푸른 풀밭을 뛰어다니는 송아지’란 뜻!) 같이 뛰며 힘센 말 같이 울었기 때문이다(11).

11. 갈대아가(바벨론이) 죄를 지었는데 왜 어미가 수치를 당하는가? 본인이 당해야지!

    어미의 수치란 ‘자식이 없는 것’을 가리킨다(13 거민이 없는 온전한 황무지): 모든 백성이 사라질 것이라는 은유적 표현이다.

12. 바벨론이 ‘열방의 말째와 광야와 마른 땅과 사막이 될 것이며 여호와의 진노로 인하여 거민이 없는 온전한 황무지가 될 것’이라고 하셨는데 정말 바벨론이 그렇게 되는가?

    페르시아 헬라 제국 이후 바벨론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버렸다. 거의 2000년이 지나서 그 영화를 일으켜보려고 꿈꾸던 사람이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었다. 허망하게 무너져버렸지만... 전설적인 얘기로만 남았다. 바벨론의 공중정원!

13. 바벨론이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활을 쏘는 자는 화살을 아끼지 말고 쏘란다. 왜 아낄 필요가 없는가?

    쏘기는 사람이 쏘아도 맞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 화살이 헛되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9).

14. 심판 때가 되면 바벨론에서 없어질 것은 무엇인가?

    보장, 성벽, 파종하는 자, 추수 때에 낫을 잡은 자(이상은 바벨론이 다른 나라를 침공할 때 행한 그대로 보응받는 것이다), 사람들(이방사람들)(15-16), 청년, 군사(30-31): 모든 것이 다 사라질 것이다(3, 32).

15. 바벨론을 치는 칼을 두려워하여 동족에게로 돌아가며 고향으로 도망하는 자들(16b)은 누구인가?

    포로로 잡혀 왔거나 용병으로 왔거나 여하튼 이방인으로서 바벨론에 와 있던 자들이다. 바벨론은 다민족 국가이다. 위기의 때가 되면 뿔뿔이 민족별로 흩어지고 해체되어 버린다.

16. 이스라엘은 흩어진 양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

    사자들(앗수르, 바벨론)이 따라 와서 잡아 먹고 뼈를 꺾었지만(17) 다시 목장으로 돌아와서 만족할 것이다(19): 반면에 이 양떼를 잡아먹은 사자들을 하나님께서 벌하실 것이다(앗수르는 이미 벌을 받았다).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말이다.

17. 길 잃은 양떼에게 갈멜과 바산은 어떤 곳인가?

    거지가 된 탕자에게 아버지의 집과 같은 곳이다: 갈멜과 바산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비옥한 목초지다. 에브라임과 길르앗산은 가장 울창한 산림지대이다.

18. 한 때는 죄가 많아서 심판을 피할 수 없던 이스라엘과 유다가 어떻게 죄가 하나도 없는가(20)?

    하나님께서 남긴 자를 사할 것이기 때문(20):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겠다는 표현이다. 우리의 회개나 믿음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19. 므라다임과 브곳이 어디일까? 어느 나라 땅일까?

    바벨론: 계속해서 바벨론에 대한 징계를 말씀하시고 있는 중이다.

20. 한 때 바벨론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행자가 되어 온 세상을 점령하기도 했다. 그래서 얻은 별명은 무엇인가?

    온 세계의 방망이(23): 그런데 자신이 방망이 인줄 모르고 방망이 잡은 자에게 대어들었다가 부러지고 말았다. ‘방망이야 정신 차려라! 잡은 자가 있다.’ 자기가 아무리 쇠몽둥이일지라도 자기 스스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1. 여호와께서 병고(무기고)를 열고 분노의 병기를 꺼내서 어떻게 하시는가?

    갈대아인의 땅을 쳐야지(25): 먼데 있는 자들이 와서 바벨론을 치고 그 곳간을 열고 그것을 쌓아 무더기 같게 하며 그를 진멸하고 남기지 않는다. 그 황소(바벨론의 용사들)를 다 도수장으로 내려가게 할 것이다(26-27). 현상은 그럴지라도 실제로 무기를 꺼내들고 휘두르는 이는 여호와시다는 말이다.

22. 바벨론 땅에서 도피한 자들이 어디서 무엇이라고 외치는가(28)?

    시온에서(유다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벨론의 원수를 갚으셨다. 성전을 헐어버린 것에 대한 원수를 갚으셨다’: 바벨론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유다백성들이 도망쳐 돌아와서 기쁜 소식을 전할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해 마라톤 평원을 가로질러 달려가듯이 감격스런 모습을 전하게 될 것이라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23. 바벨론이 죄가 많겠지만 요약하면 한 마디로 무슨 죄인가?

    교만(31): 바벨론의 모든 죄의 원인이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바벨론에게도 이러하거늘 하나님의 자녀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잘 나간다 싶을 때 주의해야한다(참고 삿 7:2).

[33절부터]

24. 바벨론에게 학대를 받는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에게 무슨 희망이 있는가(33-34)?

    만군의 여호와가 그들의 구속자이심(34): ‘구속자’의 원어상 의미는 ‘친지를 살해한 자를 대신해서 보복해주는 사람’ 혹은 ‘친지의 잃어버린 재산을 회복시켜줄 의무가 있는 사람’이다(룻기의 ‘기업 무를 자’). 유다가 바벨론에 학대를 당했지만 보복할 힘이 없을 때 유다를 대신하여 그 원한을 갚아줄 구속자가 하나님이시다. 더구나 그들의 구속자는 강하니 이스라엘과 유다 자손의 원을 펴서 그 땅에 평안함을 주고 바벨론 거민으로 불안케 할 것이다.

25. 만군의 여호와께서 칼을 휘두르면 다음의 것들은 어떻게 되나? 그리고 최종 결론은?

    지도자 → (어리석게 될 것), 용사 → (부녀 같이 될 것=싸울 능력이 없음을 의미함), 보물 → (노략될 것), 물이 많은 땅 → (가뭄)
    최종 결론: 사람이 없게 됨(39, 40).

26. 지혜로운 자나 자긍하는 자들이 하나님께서 휘두르는 칼에 맞으면 어떻게 될까?

    어리석게 된다(36): 여기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칼이 임한다’는 표현이 비유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다는 뜻이다. 38절도 어떤 번역은 ‘칼이 물 위에 임하여 그것을 말리우리니’라고 한다. 칼이나 가뭄이 원어상으로는 철자(자음)가 같다.

27. 바벨론이 아무리 강성해도 명이 길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조각한 신상과 우상을 섬겼기 때문(38).

28.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면 용맹스럽던 바벨론도 ‘딸’이다. 반면에 그를 치러 오는 북방민족은 어떠한가?

    말탄 무사(42): 활과 창을 가졌고 잔인하다. 목소리는 파도가 흉용함 같다. 이런 자에게 딸이 잡히면?...... 그것이 바벨론의 형편이다. 49:19의 에돔과 같은 처지이다.

29. 다른 나라의 멸망에 대한 예언은 몰라도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예언은 바벨론의 침공을 받아 고통스러워하던, 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하나님께서 무슨 뜻으로 바벨론의 멸망을 이렇게 자세하게(50:1-51:64), 강조해서 말씀하셨을까?

    하나님은 절대로 바벨론의 하나님이 아니다. 그런데도 바벨론을 들어서 유대인들을 징계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결국에는 바벨론을 징계하고 유다백성들은 회복시키실 것이다(50:4-5, 17-20, 33-34, 51:15-19, 45-53). 포로로 잡혀갔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자는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의 회복의 때를 기다리며 살아야 한다.

역사적 배경: 바벨론이 강성하던 시절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나라는 메디아였다. 메디아는 2대에 걸쳐 군비를 정비하여 바벨론을 칠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남쪽의 작은 나라 바사왕 고레스에게 함께 바벨론을 치자고 제의했다. 고레스는 사전에 바벨론으로부터 정치적인 협상을 하고 있던 차라 메디아의 요청을 거부했다. 메디아 왕 아스티아게스가 분노하여 바사를 정복하도록 군대를 보냈는데 군대를 이끌고 간 하르파거스 장군이 변심하여 고레스에게 투항해 버렸다. 메대 왕이 직접 출정하였지만 또 장군들이 반란을 일으켜 왕을 체포하고 고레스에게 투항해버렸다. 고레스는 가만히 앉아서 거대한 나라를 통째로 얻고 메대의 군사와 작전대로 바벨론으로 진격한다. 도중의 작은 성들은 싸우지도 않고 항복해버렸다. 바벨론은 워낙 강한 성이었기에 메대, 바사의 군대가 포위를 해도 신경도 쓰지 않고 잔치를 즐기고 있었다. 마침 나보니두스 왕이 돌아와서 신년 축제를 벌이고 있던 때였다. 밤중에 고레스가 유브라데 강의 둑을 터뜨리고 물길을 돌리자 바벨론 성의 가운데로 흐르는 운하의 하상이 무릎에 찰 정도로 낮아져서 고레스의 군사는 운하를 따라서 무혈점령에 성공하였다. 고레스는 바벨론의 관리들을 그대로 앉히고, 유화정책을 폈으며 자신의 군대가 정복민들을 학대하지 못하게 했다. 정복한 민족들의 고유한 문화를 존중하였고, 바벨론 포로민들이 원거주지로 돌아가도록 허용하였다. 이런 일에 대하여 이사야가 정확하게 예언을 하고 있다(44-4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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