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5-47장


[45장]

1. 바룩이 예레미야의 말을 기록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 또 새로 기록하는가?

    36장과 동일한 내용이다.

2. 3절에서 바룩이 한 말은 무엇인가?

    ‘슬프다 여호와께서... 평안치 못하다’

3. 바룩의 고통과 슬픔이 무엇일까? 참고로, 그의 조부(32:12) 마아세야(마세야)는 요시야 시대에 예루살렘 부윤(요즈음 표현으로 서울특별시장)이었고(대하 34:8), 그의 동생 스라야는 시종장(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51:59).

    자신도 예레미야를 따르지 않았더라면 한 자리(5절의 ‘대사’) 했을 수도 있는데 그것을 포기하고 선지자를 따랐더니 고난만 당했다. 세속적인 욕망을 버렸다고 해도 회의와 좌절감을 느꼈을 수 있다.

4. 하나님은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심은 것을 뽑기도 하신다. 이 말이 바룩에게 어떻게 위로가 되었을까?

    주권이 하나님에게 있다. 네가 욕심내고 노력한다고 네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재앙을 내릴 때에 세속적인 복 대신에 ‘생명’을 주겠다는 것이다.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생명을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이다. 간신히 생명을 부지하는 것이 아니라 전리품을 얻음 같이 기쁨과 승리를 맛보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권자가 되신다고 믿는 사람은 환경이 아무리 절박하고 어렵더라도 이겨나갈 수 있다.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나이다(시 31:15). 요셉처럼 감옥에 아무리 오래 갇혀 있어도, 다윗처럼 아무리 오랫동안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쫓겨다녀도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5. 바룩에 대한 이야기가 애굽에서도 우상숭배를 멈추지 않은 유대인들의 이야기와 무슨 상관이 있길래 여기에다 이렇게 기록했을까?

    버려지는 유대인들의 이야기와 대조를 이룬다. 시간상으로도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지만 징계 속에서도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46장]

[역사적 배경] 주전 609-605년에 세계대전이 있었다. 앗수르와 바벨론이 하란에서 대전을 치를 때 애굽왕 바로 느고가 앗수르를 돕기 위해서 가는 길을 요시야 왕이 므깃도에서 막다가 전사하고 말았다. 히스기야 이후 유대는 반앗수르, 친바벨론 정책을 펴고 있었기 때문이다. 3개월 후 느고가 돌아오는 길에 괘씸죄로 유대를 침공하여 여호아하스를 폐위하고 엘리아김을 왕위에 올리고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고쳤다. 계속된 전투에서 여호야김 4년(BC 605)에 바로 느고는 바벨론 군대에 대패하고 수리아와 팔레스틴 지역을 포기한다(갈그미스 전투). 유다는 바벨론의 속국이 되었다. 유다가 멸망하기 20년 전의 일이다.

1.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왜 열국에 대해서(46-51장) 말씀하실까?

    이스라엘 만의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2. 나가서 싸우라(3-4)고 하면서 패할 것이라(5-6)고 말씀하시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말씀하시는 주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3-4절은 인용된 말이다. 모두가 짧고 날카로운 명령어들이다. 누구의 말일까? 군대 장교들의 말이다. 준비하라! 큰 방패와 작은 방패! 나가라! 싸우라!... 군대를 지휘할 때 쓰는 용어들은 길면 안된다. 가령, 앞에 총! 나를 따르라! 이런 식이다. 반면에 이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은 긴 서술형이다.

3. 도망갈 때는 뒤로 돌아보아야 하나? 보지 말아야 하나?

    돌아봐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상황이 워낙 다급하면 돌아볼 겨를도 없다.

4. 발이 빠른 자도 도망하지 못하면 누가 도망칠 수 있는가?

    아무도 도망치지 못한다: 거의 전멸 상태가 될 것이라는 말이다.

5. 애굽의 군대가 패배하는 장소는?

    유브라데 강가(6, 10): 이스라엘의 북쪽, 즉 유브라데 강의 상류이다. 하란 근처다.

6. 애굽 군대가 뭐라고 큰 소리를 치다가 이렇게 당하는가?

    ‘우리 군대는 나일의 창일함, 강물의 흉용함 같지 않으냐? 강물처럼 휩쓸어버릴 것이다’(8-9).

7. 애굽은 자신들의 군대가 나일의 창일함, 강물의 흉용함 같다는 것은 알았다. 몰랐던 것은 무엇일까?

    그들의 대적이 누구인지 몰랐다. 하나님께서 보수하시는 것인 줄은 몰랐다(10): 나일강이 넘쳐서 성읍과 거민을 삼키는 일은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자신들이 겪던 일이다. 이와같이 원수들을 짓밟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상대를 몰랐다는 것이 비극의 원인이다.

8. 다음 빈 곳에 적절한 단어는 무엇일까? 그런데 왜 하나님은 칼이라고 하는가(10)?
(    )이(가) 배부르게 삼키며 그들의 피를 가득히 마시리니.

    야수(맹수): 짐승들이 다른 짐승을 잡아 먹듯이 애굽이 칼에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비유이다.

9. 애굽 군대의 죽음을 또 어디에 비유하는가?

    희생제사를 위해서 짐승을 잡는 것(10): 애굽 군대의 죽음을 두 가지 비유를 동원해서 설명한다. 야수가 다른 짐승을 잡아 먹는 것처럼(위 질문), 희생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짐승을 잡는 것처럼!

10. 애굽은 의학이 무척 발달한 곳이었고 그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길르앗(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차지한 요단 동편 지역)으로 올라가서 유향을 취하라’는 말과 ‘많은 의약을 쓸지라도 무효하여 낫지 못하리라’는 말로 조롱하는 것이다. 약사에게 ‘암만 먹어도 낫지 않더라’고 하는 것은 자칫 큰 모욕이 될 수 있다. 그러면 ‘길르앗’ 앞에 한 두 마디만 삽입해서 비슷하게 조롱의 말이 되도록 해보자. 이 유향도 여기서는 약의 일종(진통제)으로 쓰이는 것이다.

    능력이 있거든, 혹은 그래봤자 소용없는 짓이지만: 결과적으로 애굽이 이 전투에서 패함으로 수리아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다 잃어버렸다. 다시는 이 지역을 넘보지 못하게 되었다. 길르앗을 치러갈 능력도 없고, 약도 효력이 없고, 용사들마저 무력하게 엎어져 버렸다.

11. 바벨론 왕이 애굽을 친다고? 어느 정도?

    온 땅, 모든 장사(壯士): 애굽이 이렇게 당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몰아내신 연고이다. 그러니 이스라엘아 애굽도 의지하지 말고 바벨론도 믿지 말고 하나님만 믿으라!

12. 믹돌과 놉과 다바네스가 ‘굳게 서서 예비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다른 나라가 다 점령 당했으니 이제 네 차례이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빨리 애굽에 전하라는 말이다. 이 세 지명은 애굽의 북부지역으로 외적이 맨 먼저 침공할 지역이다.

13. 15절의 ‘장사’(아비르)를 어떤 역본에서는 ‘황소 신 아피스’ 혹은 ‘황소같은 자’라고 번역하였다. 황소를 숭배의 대상으로 여기던 놉을 염두에 둔 말일 것이다. 출애굽시에 금 송아지를 만든 것도 이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아무튼 장사들이든, 황소 신 아피스든 누가 이들을 쓰러뜨리는가?

    여호와(15): 느부갓네살이 애굽을 침공하지만 실제로 느부갓네살을 움직이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 말은 들은 느부갓네살이 웃지 않을까? 그러나 어쩌랴 사실이 그런 걸! 옛날에 바로가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출 9:16) 듣지 않다가 된통 당한 적이 있다. 자신의 능력 때문에 온 세상을 점령한 줄로 알고 교만하게 굴다가 바벨론은 결국 단명으로 사라지고 만다(사 13-14).

14. ‘우리 민족에게로, 우리 고토로 돌아가자’는 말은 누구의 말일까?

    아마도 용병: 남의 나라에 돈받고 팔려온 사람들이 돈을 포기하고 돌아가야 할 상황이라면 나라가 완전히 거덜났다고 봐야지!

15. 17절을 어떤 역본에서는 ‘기회를 잃은 떠벌이’라고 번역하였다. 바로가 무슨 기회를 잃었다는 말인가? 시대 배경을 잘 살펴보자.

    앗수르가 쇠퇴하고 바벨론이 다시 부상하던 시절에 잘 하면 시리아 지역을 탈환할 절호의 기회였는데 다 잃어버리고 본토마저 바벨론에 유린 당하게 되었음을 조롱하는 말이다.

16. 다볼 산은 평지에 돌출된 산이고 갈멜 산은 바다로 내리꽂히다시피 하는 산이다. 이 산들을 바벨론 왕에 비유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돌출된 산에서 평지나 바다를 향해서 내리달리면 막힘이 없다. 바락이 시스라와 싸울 때 이런 방식을 사용했다(삿 4:14). 바벨론 왕이 거침없이 애굽으로 침공해올 것이란 의미이다. 주변이 평지이므로 높이 솟은 모습이 당당해 보인다. 다볼 산은 승리의 상징, 갈멜 산은 우상의 박멸(왕상 18:19-40)로 유명하기도 하다. 이런 복합적인 의미가 담겼을 것이다.

17. 행리(行李 = 行裝, 행장)란 ‘준비된 기구’ 즉 대체로 가볍고 귀중한 물건들이다. 포로의 행리를 준비하라는 의미가 무엇인가?

    포로로 잡혀갈 준비를 하라는 말이다. 놉(멤피스: 수도)이 황무할 것이기 때문이다. 수도가 황무하고 불에 타서 사람이 없다는 것은 완전히 점령당했다는 말이다.

18. 아름다운 암송아지 애굽에 멸망이 이르렀다. 어떤 역본에는 ‘멸망’ 대신 ‘쇠파리 떼’라고 번역하였다. 원어상으로 같은 의미이다. 돌보아 주는 이도 없는 살찐 암송아지에게 쇠파리 떼가 달려드는 모습이 바로 바벨론에 당하는 애굽의 모습이다. 그들을 돌보아주던 용병들은 무슨 일을 하는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외양간의 송아지는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다. 급하면 도망가는 일이나 할까!

19. 바벨론 군대를 벌목하는 자나 황충에 비유하는 것은 계수 할 수 없이 빽빽한 삼림도 깨끗이 베듯이 애굽을 멸망시킨다는 의미가 선명하다. 반면 애굽을 뱀에 비유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뱀은 숨어다니지만 소리를 크게 내지는 않는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숨어다닐 수밖에 없는 애굽의 처지를 빗댄 것이다. 25절의 ‘노’는 상애굽의 수도 테베(더베)를 가리키는 말이다. 아몬은 테베의 지방신이다. 신들과 왕들과 그들을 섬기는 자를 하나님께서 다 벌하시겠다고 하신다.

20. 바벨론이 애굽을 벌목하듯이 하더라도 사람이 여전히 살 것이라(26)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애굽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는다. 하물며 이스라엘이 완전히 망하겠느냐?: 애굽을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징계만 하시겠다는 뜻이다. 바벨론이 강성해지고 애굽이 쇠퇴하는 시점에서 이렇게 명확하게 장래사를 말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애굽의 구원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애굽의 장래도 이러하거든 하물며 내 백성인 이스라엘을 어떻게 깨끗이 망하게 하겠느냐?

21. 당시 국제 정세를 감안한다면 이스라엘, 애굽, 바벨론 이 세 나라 중에서 누가 끝까지 존속될 가능성이 높을까?

    바벨론, 애굽, 이스라엘 순이다: 현실적으로는 이스라엘이 끝까지 존속할 가능성이 제일 적을 뿐만 아니라 확률도 현저히 낮다. 제대로 힘을 떨쳐본 적도 거의 없는 약소국으로 강대국 사이에서 눈치나 겨우 봐야 할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편에서 보면 결코 망하지 않을 나라는 이스라엘이다. ‘아주 멸하지 아니 하리라’고 하셨다.

[47장]

1. 바로가 언제 가사를 쳤는지는 역사적으로 분명하지 않다. 아마도 바로 느고가 앗수르를 돕기 위해서 올라 가면서 요아스를 전사시킨 그 어간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누가 블레셋을 친다는 말인가?

    북방이면 바벨론이다. 그러니까 바로(남쪽 나라의 왕)가 가사를 친 것은 맛배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2. 블레셋을 치는 적의 모습을 어디에 비유하는가?

    땅을 덮는 시내: 넘쳐 흐르는 홍수: 불이 지나간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물이다.

3. 창일하는 시내가 무엇을 비유하는가?

    적군의 침입(3): 굽치는 소리와 달리는 병거의 바퀴 소리가 무서워 아버지가 손이 풀려 자식을 도울 수 없을 정도니 얼마나 무서울 것인가?

4. 적의 침입이 어느 정도로 강력한가?

    굽치는 소리와 병거 달리는 소리만 듣고도 자식을 돌볼 힘이 없다. 도와줄 자도 전혀 없다(동맹국가들마저 망해버렸음을 의미), 본거지(고향, 갑돌섬)까지 파괴되어버렸다. 갑돌이란 지명도 분명하지는 않으나 대체로 크레타 섬을 포함한 주변지역을 가리키는 모양이다. 블레셋인들이 여기서 가나안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5. 삭발이나, 스스로 몸을 베는 것은 극도의 슬픔을 나타내기도 하고 우상을 섬길 때 하는 짓이기도 하다. 언제까지 그런 짓을 할 거냐고 묻는 의도가 무엇인가?

    끝이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6. ‘그들에게 남아있는 평지’(5)는 역본들마다 번역이 다르다. 재미삼아 비교해보라.

    ‘골짜기에 남은 자들(KJV)’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70인역의 영향을 받은 역본들 중에는 ‘아낙의 자손들’이라고 번역하기도 했다.

7. 선지자는 쉬지 않는 여호와의 칼에게 묻는다. 언제까지 쉬지 않겠느냐고? 정말 쉬라고 하는 말일까?

    결코 쉴 수 없다는 대답을 유도하는 질문이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시작하셨으니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을 이런 표현방식을 이용해서 선포한 것이다.

8. 블레셋에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추가한다면 블레셋이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고 괴롭혔기 때문이다. 자기 자식을 징계하면서 자식을 괴롭힌 옆집 아이도 혼을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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