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4장


1. 애굽으로 도망간 유대인들은 믹돌(애굽의 북부, 출애굽시 지나온 곳, 출 14:2), 다바네스(라암셋 남동쪽으로 13km 떨어진 애굽의 국경도시), 놉(당시 애굽의 수도, 멤피스), 바드로스(애굽의 상류 지방)에 살았다. 한 군데 모여서 산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흩어져서 살았던 모양이다. 이렇게 흩어져 사는 이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었을까?

    예레미야가 그만큼 더 고생을 했겠지: 교회당이 사라지고 교인들이 뿔뿔히 흩어져버린 상태에서 이들을 찾아다니면 돌보는 목사 같다.

2. 예레미야를 억지로라도 잡아간 것이 무슨 유익이 있는가?

    그나마 다행이네! 예레미야마저 없었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지도 않았을 것 아니냐? 미워도 목사 곁에, 싫어도 교회 근처에, 믿는 자 곁에 있으라.

3. 애굽으로 가지 말라고 해도 끝내 애굽으로 가버린 자식들에게 하나님은 할 말이 있으신가? 그냥 버려버리지!

    아직도 정신차리지 못하느냐? 유다에 내린 모든 재앙을 보지 않았느냐(2-6)? 그래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내린 재앙인줄 모르겠느냐? 끝내 돌이키지 않으면 철저하게 심판하시지만 그 전에는 끈질기게 돌아서라고 권면, 책망, 매질 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성품이다.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 차마 버리지 못하시는 하나님이시다.

4. 유대인들의 어리석음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 나아가서 분향한 것’이다(3). 이것은 하나님의 노를 격발케 하는 일이다. 오늘 우리 주변에는 이런 예가 없을까?

    우리가 신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실체가 없는 것들이다. 도대체 그 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지도 못한 채 신이라고 부르며 섬기는 모양새를 갖춘다. 철학자들이 한평생 고민하고 연구하고 내린 결론이 ‘신은 존재한다’, 이 한 마디를 하기 위해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하지 않는가? 이런 실력으로 어떻게 신을 알 수 있는가 말이다.

5.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불러내셔서 데리고 온 땅이 예루살렘이고 유다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불러내어 특별히 골라서 준 땅이다. 그 곳을 황무하게 만들어버린 하나님이시라면(2, 6) 이들이 도망간 애굽은 어떻게 될까?

    이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은 뻔하다(12).

6. 예루살렘과 유다가 황무지가 된 이유가 무엇인가? 백성들은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우상을 숭배한 탓(3-5):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린 탓이다. 그러나 백성들의 생각은 하늘 여신을 숭배하기를 그만 둔 탓이다(17c-18).

7. 하나님께서 부지런히 선지자를 보냈음(4)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과 유다가 황무지가 된 것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교육을 제대로 못 시킨 탓 아닐까?

    선지자 교육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그 말을 들어야 하는 백성들에게 문제가 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애쓰셔도 인간들이 거부하면 방법이 없다. 하나님은 사람을 상대로 하실 때 사람의 인격적 선택을 무시하지 않으신다. 사람을 만드실 때 그런 고귀한 존재로 만드셨기 때문이다. ‘선지자를 보내지 말고 직접 말씀하시지?’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다.

8. 조상들의 얘기(2-6)를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애굽으로 피난한 자들이 똑 같은 짓을 아직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8). 이전 일을 기억해서(10) 돌이켜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9. 7-8절은 과거 얘긴가 앞으로 일어날 얘기인가?

    미래: 유다가 저렇게 황폐화된 것을 보고도 돌이키지 않고 계속 그러다가(9-10) 씨마저 말려버릴 셈이냐? 자기 영혼을 해한다는 것은 자해행위인데 유대인들의 행위가 바로 자해행위라는 것이다.

10. 하나님께서 얼굴을 숨기시는 것은 재앙을 뜻한다(신 31:17). 그런데 얼굴을 유대인들에게로 향하면 어떻게 되나(렘 21:10)?

    얼굴을 숨기시는 것이 소극적인 징계(포기, 유기)라면 얼굴을 향하는 것은 적극적인 징계를 뜻한다. 더 무서운 징계가 임한다는 말이다(27절의 ‘경성’). 정신 차리고 심판하시겠단다.

11. 유대인들은 칼과 기근, 즉 바벨론의 침공을 피해서 애굽으로 왔다. 그런데 하나님은 칼과 기근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신다(12-13). 바벨론 군대가 여기까지 온다는 말인가?

    그렇다(렘 43:10-13): 이렇게까지 말을 안 듣는 유대인들도 지독하지만 도망가버린 자들을 끝까지 추적해서 징계를 하시는 하나님도 정말 지독하다. 최후 심판도 그러할 것이다. 죽은 자를 살려내서 영벌에 던질 것이다.

12. 지금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는 어떻게해야 하는가?

    유다 땅으로 도망쳐라(14, 28): 바벨론 군대를 두려서해서 도망쳐버린 유다 땅으로 다시 도피하는 자는 살겠지만 끝내 애굽에 머무는 자는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집 나간 탕자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어도 한 가지 남은 일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유대 땅으로 가야 산다. 어떤 절망 가운데 빠졌을지라도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13.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은 반응(16-18)은 어떠한가?

    듣지 않겠다: 왜냐하면 저들이 이런 재앙을 당한 것이 하늘여신 섬기기를 그만 두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치겠네! 정말 지독하다. 이 모양이 돼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다니? 몰라서 그렇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14.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복을 주시면서 염려하는 것은 자기 능력으로 이 복을 얻었다고 자만하는 것이다(신 8:17-18). 잘 먹고 잘 살 때 부디 하나님을 잊지 말라고 신신 당부하셨다(신 6:10-13). 그런데 이 배은망덕한 유대인들은 한 술 더 떠서 뭐라고 하는가?

    하늘 여신이 준 것이란다(17c): 우리가 받는 복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지 이런 우상이 준 것인지 쉽게 분별하는 방법이 없나? 재앙도 그렇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신에게 제사지내는 것을 그만 둔 탓인지? 팔자, 운수, 저주, 조상신, ..., 하나님, 이 중에 누구를 섬길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15. 여자들을 특별히 언급된(15, 19, 24) 이유는 무엇일까? 여자들이 하늘 여신을 섬기는 것을 남편들이 알았다고 굳이 주장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상 숭배에 앞장 선 것은 여자들이었다. 책망을 듣게되자 ‘남편의 동의 없이 그럴 수 있었겠느냐?’ 면서 책임을 남자들에게 떠넘기는 말이다. 여자에게 약한 것이 남자인 걸 어쩌나?

16. 한 가지 현상(유다의 황폐)을 두고 예레미야의 생각(하나님의 징벌)과 유대인들의 생각(하늘 여신을 제대로 숭배하지 않은 탓)이 다르다. 이걸 어떡하지?

    선택의 문제: 한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한다. 우리는 전도라는 방법을 통해서 불신자들의 선택을 도울 수 있을 뿐이다. 하늘 여신(황후)은 앗수르나 바벨론 사람들이 섬기던 여신 이쉬타르라고 한다. 가나안 사람들은 아스다롯이라고 불렀다. 전쟁과 사랑의 신으로 다산과 풍요를 준다고 믿어졌다. 이 여신의 후예가 ‘자유의 여신’이란다.

    므낫세 왕이 앗수르에 영합하기 위한 정책에서 이 여신 숭배가 도입된 것인 듯하고, 요시야의 종교개혁 때에 불식되었으나(왕하 23장), 요시야가 바로 느고에 의해 죽임을 당한 후에 유다가 애굽과 바벨론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자 유다인들은 자신들의 이런 고생이 하늘 여신을 제대로 섬기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한 것이다(17-18). 하나님을 버린 탓인데...

    그러니까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던 때, 곧 식물이 풍부하던 때(17)는 므낫세 왕 때이고 그 제사를 폐한 때(18)는 요시아 왕 때인 모양이다. 총 칼로 정권을 잡거나 말았거나 살기 좋았던 때는 전두환 대통령시절이었단다. 그게 그렇게 된 것이 전 대통령 탓이 아닌데... 유다가 망할 수밖에 없는 최악의 왕이 므낫세인데(왕하 24:3-4) 백성들은 오히려 그 때가 살기 좋았다고 회상하고 있으니...

17. 선지자가 어떻게 하늘 여신에게 제사를 지내라고 말할 수 있는가(25)?

    죽어보라는 말이다: 역설이다. 학교 그만 두라는 아버지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학교를 그만 두면 맞아 죽는다. 이 정도면 예레미야도 사역을 끝낼 때가 되었다. 최후통첩까지 한 셈이다.

18. 애굽 온 땅에 거하는 유다 사람들의 입에서 다시는 ‘내 이름을 일컬어서 주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하는 자가 없을 것이란 말이 무슨 뜻인가?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27절의 ‘멸절’). 하나님을 아는 자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란 말이다.

19. 모든 사람이 멸절 당한 뒤에 하나님의 말씀이 옳은지 자기들의 말이 옳은지 알면 뭐하나?

    그러니 지금이라도 돌아서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증거를 보여주신다. 이 악다받은 유대인들 때문에 애굽의 바로(호브라)가 당하게 된다. 실제로 이 왕은 반란을 일으킨 무리에게 처형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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