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2-43장


[42장]

1. 모든 군대의 장관과 온 백성이 다 찾아 왔으니 예레미야 생애 최고의 날인가?

    좋은 시절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다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뒤에 찾아온 바람둥이 남편을 맞는 아내와 같다. 차라리 이런 영광은 보지 않는 것이 나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맞아들인 남편이 혹시 또 바람이 나면?

2. 예레미야를 찾아와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이들의 태도에 어디에 문제가 있는가?

    당신의 하나님(3, 5):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생각하고 온갖 은혜를 다 베풀었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자신들이 섬기던 우상의 하나로 여기고 있는 셈이다. 그러다가 드디어 정신을 차렸는가(6)? 말뿐이다(20).

3. 예레미야가 보는 하나님과 백성들이 보는 하나님이 어떻게 다른가?

    백성들은 자신들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예레미야는 백성들의 하나님이라고 한다(4).

4. 마음만 먹으면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아이가 공부를 하지 않아서 낙제 수준의 성적을 받아오는 것을 보면 참 답답하다. 이스라엘이 제법 바른 말도 하네! 뭐라고?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고 좋지 아니함을 물론하고 청종하려 함이라(6). 하나 더 추가한다면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도 옳은 말이다. 진작에 이런 자세로 하나님을 섬겼더라면 그 엄청난 재난을 당하지 않았을 것인데... 이것이 진심이어야 하는데 진심이 아니다(20). 이들은 이미 자신들의 답을 가지고 있다(41:17). 이것을 포기할 마음도 없이 이런 말을 하고 있으니 가증스럽다.

5. 애당초 순종할 마음이 없으면서 하는 말이라면 하지 않았어야 하는 말이 있다면?

    여호와는 우리 중에 진실무망한 증인이 되시옵소서(5): 이래 놓고 순종하지 않으면? 이왕에 믿지 않으니 무슨 말인들 못하겠는가!

6. 이 백성들은 바벨론의 보복이 두려워 애굽으로 가려고 나섰다가 예레미야를 찾아와서 이런 요청을 했다. 하나님께서 십일 후에 응답하셨다. 이 열흘동안 백성들은 무엇을 했을까?

    안절부절 했겠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겠는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상태에서 가정이 깨어지고, 한 개인이 허물어져 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7.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모든 백성들 다 불러내어(8) 그들의 말을 한번 더 확인하는(9) 이유는 무엇일까?

    제발 순종하라는 것: 순종하지 않았다가 징계를 받을 때 딴 소리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순종하지 않을 때 책임이 모두에게 있음을 분명하게 하려는 의도이다.

8.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겠다고 맹세한 이 백성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가?

    (지금이라도) 이 땅에 (여전히) 거하라(10): 이것은 아브람을 불러내서 이 곳으로 데려올 때부터 하나님께서 이루려하시는 일이다. 애굽에서 번성해도 이 곳으로 불러왔고, 이들을 포로로 잡아가도 다시 데려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마음이 이러하니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지금이라도 이 땅에 거하라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탕자가 그런 모습으로라도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복이다.

9. 이스라엘을 선택하고 사랑하신 하나님의 아픔을 어디에 비교하면 좋을까?

    건물을 세웠다가 허는 경우나 식물을 심었다가 뽑는 것(10): 집을 짓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분은 자기가 살 집을 한번 지어본 다음에 ‘다시는 집을 짓지 않겠다’고 하더라. 그런데 온갖 공을 다 들여 지었다가 허물어야 한다면? 일년 농사한 것을 갈아엎는 농부의 심정도 마찬가지다. 아브람 때부터 지금까지 공들여 가꾸어온 이스라엘을 포로로 끌려가도록 해버린 하나님의 마음은 이것보다 훨씬 더 아플 것이다. 그러니까 용서할 건덕지가 조금만 있어도 뜻을 돌이키려고 하신다(10).

10.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그대로 머무른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벨론 왕을 두려워 말고 하나님을 믿으며, 애굽을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뜻이다. 바벨론의 침공을 당하기 전에 예레미야가 외치던 말씀과 다르지 않다. 12절의 ‘본향으로 돌려보내게 하리라’는 말씀은 애굽으로 가려고 떠나온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평안하게 거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11. 이스라엘에게 애굽 땅은 전쟁도 없고, 기근도 없는 땅으로 여겨질 수 있다. 애굽의 보호 아래 들어가면 실제로 그럴까?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가나안 땅은 사방이 적으로 둘러 싸여 있다. 이쪽 저쪽 눈치를 다 봐야 한다. 바벨론에 당하기도 하고, 애굽에 당하기도 하고. 영적인 눈으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이런 적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미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애굽으로 가는 것은 절대로 해결책이 아니다. 칼과 기근만 아니라 염병까지 따라갈 것이다(16). 아브람도 그렇게 생각하고 애굽으로 갔다가 더 큰 어려움을 당하기도 했다. 나오미도! 성도여, 세상이 주는 위로와 평안에 속지 말라.

12. 하나님께서 무슨 노와 분이 이렇게 많으신가?

    이스라엘을 선택하고 사랑을 쏟은지 1000년이 훨씬 넘었다. 그 사랑을 배반했으니 그렇지. 그 동안 쏟은 정성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보라.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사사들, 왕들. 그래서 온갖 재앙을 예루살렘에 다 쏟았는데 겨우 살아남은 너희가 또 하나님을 화나게 하면?

13. 예레미야는 간곡한 말로 당부를 하면서도 이 백성들의 요구가 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자세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안다(20-22). 이것이 선지자의 아픔이다. 듣지도 않을 것이면서 묻기는 왜 묻나?

    혹시나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시지 않을까 해서: 자신들의 뜻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어야하는데 이들에게는 분명히 자신의 뜻이 더 견고하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뜻대로 해달라고 강요하는 셈이다. 이래서는 비극적인 결말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뜻이 여지없이 깨어지는 자는 정말 복 받을 자이다.

    설교: 말은 번지르르 한데... (렘 42:1-6)
    진작에 그러지 꼭 다 털어먹고 나서 (돌아온 탕자, 늙고 병들어 돌아온 남편 - 김경순 ‘우리 동기네!') 그래 놓고 또 말 안 듣네!
    설교: 애굽이 주는 평화: (렘 42:10-17)

[43장]

14. 듣지도 않을 거라면 묻기는 왜 물었을까?

    자기들의 의도와 일치하면 하나님의 뜻이고, 다르면 아니다: 어차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생각이 없으니 그럴 수 밖에!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여기밖에 없을까?

15.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연히 어거지를 부리게 된다. 이들이 무엇이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는 하는가?

    바룩이 예레미야을 꼬드겨서 그렇게 말했단다: 조수가 더 유능하게 보였던 모양이지? 그렇다면 처음부터 바룩에게 찾아가지 뭣하러 예레미야에게 와서 묻나? 남의 말에 귀기울이는 훈련이 전혀 되어 있지 않으면 말도 안되는 소리를 태연하게 내뱉을 수 있다.

16. 자기 고집에 빠진 사람들은 여러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예레미야도 자원해서 애굽으로 갔을 리가 없다. 본의 아니게 애굽으로 가야했던 사람들 중에 안타까운 사람들이 누구인가?

    바벨론 군대를 피해서 고향을 등졌다가 돌아온 사람들(5):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이렇게 애굽으로 억지로 끌려가느니 유다 땅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 더 나았겠다.

17.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면 되지, 큰 돌들을 가져다가 포장이 잘 된 곳에 감추는 엉뚱한 짓은 왜 하나?

    그것도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백성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기 위한 사전 작업이다. 바로 이곳에 바벨론 왕이 와서 천막을 칠 것이란다. 하나님의 말씀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 이런 이상한 짓을 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어쩌면 말씀을 전하는 자가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그냥 선포하거나 던지는 것이 아니라 효과적으로 잘 전하기 위해서 연구하고 노력해야한다는 메시지 아닌가!

18. 다바네스는 라암셋 남동쪽으로 13km 떨어진 애굽의 국경도시다. 이 곳에 있는 바로의 집 어귀에 누가 오리라고 하는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바벨론 왕을 피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하나님은 여기까지 바벨론 왕을 불러오겠단다. 지독하신 분! 그렇게까지 독을 품을 수 밖에 없도록 한 이스라엘이 사실은 더 지독하다.

19. 애굽 신들의 집에 누가 불을 놓는가?

    표면상으로는 느부갓네살(12, 13), 실제로는 하나님(12): 하나님의 허락없이 될 수 없는 일이다. 이 경우에는 허락의 문제가 아니라 말 안 듣는 백성들을 징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을 도구로 쓰시는 셈이다. 후일 역사를 보면 유다가 망한지 20년도 채 안되어 느부갓네살이 애굽을 두 번 침공한다. 그러나 정복해서 영토를 넓히려는 의도보다는 팔레스틴에 대한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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