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4장


1. 예루살렘을 치는 느부갓네살의 군대는 연합군인가?

    연합군이란 대등한 나라들끼리의 연합일 때 사용하는 말이다. 여기서는 느부갓네살에게 점령된 나라에서 차출되거나, 파견된 군대란 의미이다. 이런 군대를 무엇이라고 부르지? 직할대(종주국)와 외인부대(봉신국)?

2. 이전에 이 성읍이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울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다(21:4-7, 32:3-5)). 이전과 비교하면 여기서 달라진 점은?

    불태워질 것이라는 점: 완전히 폐허로 만들어버린다는 뜻이다.

3. 적군이 쳐들어 왔을 때 임한 하나님의 계시라면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내용이어야 말이 되는 것 아닐까? 실제로 시드기야는 사로잡혀 눈 앞에서 자식들이 죽임을 당하고 눈이 뽑힌 채로 바벨론으로 끌려갔다(왕하 25:7). 여기서 선지자가 전한 말과 내용이 같은가?

    칼에 죽지 않고 백성들의 애도 속에 평안히 죽을 것이라는 말씀과 부분적으로 일치하기는 하지만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아마도 ‘지금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이라는 단서가 붙은 계시라고 본다.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끝까지 항복하지 않았다가 이런 변을 당한 것이다.

4. 시드기야의 입장에서는 느부갓네살의 눈을 보고 싶지 않다. 입을 마주 대하여 말하고 싶지도 않다. 반면에 느부갓네살은 꼭 봐야겠다는 것이다. 느부갓네살은 왜 군대를 다 끌고 와서는 싫다는 짓을 강요하는가?

    시드기야가 충성맹세를 어겼기 때문이다. 시드기야는 바벨론에 충성하기로 서약하고 왕이 되었다(대하 36:10). 예레미야의 끈질긴 권유에도 불구하고 9년 만에 시드기야가 바벨론을 배신해버렸다(대하 36:13). 애굽을 믿고 일을 벌였지만(겔 17:15), 시드기야 9년 10월 10일에 포위되었고(왕하 25:1, 렘 39:1, 52:4, 겔 24:1-2), 끝까지 버티다가 11년 4월 9일에 시드기야는 성을 빠져나와 도망하였다(왕하 25:2-3, 렘 39:2, 52:5-7)가 사로잡혔고, 5월 7일(BC 586. 8. 14)에 성이 무너졌고, 성전은 불탔다(왕하 25:8-10).

5. 느부갓네살의 이번 침공은 세 번째이다. 그러니 유다에 성읍다운 성읍은 남아 있지 않다. 겨우 남아 있는 성읍이라곤?

    라기스, 아세가, 예루살렘 뿐이다: 이렇게 허약한 상태에서 왜 배신을 하나? 항복하라는 하나님의 말씀도 안 듣고? 사실은 애굽을 의지하다가 이런 변을 당한 것이다. [히스기야 때 산헤립의 라기스 함락 전투는 유명하다. 산헤립이 거대한 벽화로 남겼기 때문이다.]

6. 왕이 모든 백성과 언약하고 자유를 선언한 것은 모든 동족 노비를 풀어주기로 언약한 것이다. 전쟁통에 왜 이런 일을 했을까?

    난국을 맞이하여 일치된 힘을 모으기 위함 아닐까? 동족을 노비로 삼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려고 했거나 아니면 노비에서 해방시켜 적극적으로 전투에 참여케 한다거나.

7. 노비를 풀어주었다가 왜 또 다시 잡아들이는가(11)?

    다급하니까 왕의 언약에 참가하여 언약을 맺었다. 쪼갠 송아지 사이로 지나갔다. 그러다가 일단 바벨론 군대가 잠정적으로 철수하자(22) 마음이 변하였다가 하나님의 책망을 듣는 것이다. 언약을 어긴 일이 한번 두 번이라야지(11:10, 22:9, 31:32)!

8. 하나님께서 유대인들로 하여금 동족을 종으로 삼지 말라(출 21:2-6, 신 15:12-18)고 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하나님께서 종되었던 집에서 구해다 놓았는데 너희가 또 종으로 삼는다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허사로 만드는 고약한 짓이다.

9. 단순하게 노비를 해방한 것이 아니라 ‘내 이름으로 일컫는 집에서’ 그렇게 하겠다고 언약을 세우고 이웃에게 자유를 선언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정당하게 행한 일이었다(15). 민족적인 회개 운동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아니함만 못한 일이 되고 말았다. 왜?

    금방 태도를 돌변하여 다시 노비를 잡아들이는 것은 사람을 괴롭게 하는 행위이기 전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맺은 언약을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이다.

10. 형제와 이웃에게 자유를 선언하고도 실행치 않은 벌로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자유를 선언’한다?(17)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 이게 어떤 자유인가?

    칼과 염병과 기근에 붙이는 자유: 다른 말로 하면 세계 열방에 흩어질 자유: 기차가 철로를 벗어날 수 있는 자유, 붕어가 어항에서 뛰쳐나갈 자유와 같은 것이다. 모든 보호막을 제거해 줄테니 마음껏 놀아보라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이것은 자유가 아니다. 버리는 것이다.

11. 쪼갠 송아지 사이로 지나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언약을 어기면 이 송아지처럼 쪼개져도 좋다는 맹세이다.

12.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3년 동안 포위 공격을 했다. 시드기야 9년 10월 10일에 포위되었고(왕하 25:1, 렘 39:1, 52:4, 겔 24:1-2), 끝까지 버티다가 11년 5월 7일(BC 586. 왕하 25:8)에 성이 무너졌다. 철수했다는 말은 없던데?

    아마 잠시 포위를 풀었던 모양이다: (렘 37:5)바로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오매 예루살렘을 에워쌌던 갈대아인이 그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떠났더라. 드디어 이겼다? 그래서 마음이 달라졌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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