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3장


1. 시위대란 근위대, 요즈음 식으로 말하면 대통령 경호부대이다. 부대 내에 감금되었다는 말인데 일종의 금고, 혹은 연금 상태에 있었던 모양이다. 성 밖에는 바벨론 군대가 성을 에워싸고 있는데 선지자가 왜 시위대 뜰에 갇혔지?

    32:3-5: 바벨론 왕의 손에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 왕을 바벨론으로 끌고 갈 것이라고 예언하였기 때문이다. 이건 엄청난 반역인데 왜 죽이지 않고 감금해두기만 했을까? 네 말대로 되는가 보자는 심사겠지!

2. 1절의 ‘아직, 다시’라는 표현은 무슨 내용과 관련이 있는가? 언제 또 있었는데?

    32장과 연결되어 있다는 뜻: 32장에서 갇혔는데 아직 갇혀 있다는 말이고, 32장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받았는데 또 다시 받았다는 말이다.

3.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름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의 이름이 특별하게 길게 나열된 것은 그만큼 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무슨 의도로 하나님을 가리켜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2)라고 하는 걸까?

    한다면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일을 행하는’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창세기 1장에서 ‘만들다’라는 뜻으로 쓰인 단어고(창 1:7, 11, 12, 16, 25, 26, 31) ‘짓다’라는 단어도 같은 의미로 천지 창조때 사용된 단어다(창 2:7, 8, 19). 그래서 어떤 역본은 이 이름을 ‘창조주 여호와’라고 번역하기도 했다. 여호와란 이름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는 의미이다(출 3:14). 그래서 종합하면 한번 말씀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고만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4. 부르짖으면 보여주려고 하는 크고 비밀한 일은 무엇일까? 이스라엘의 멸망(4-5)? 그건 이미 여러번 말했으므로 비밀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회복(6-26)? 그것도 이미 여러 번 말했던 것 같은데?

    회복의 메시지 가운데 숨어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것이 어떻게 본문에 나타나 있는가? (아래 질문을 참고할 것)

5. 적군을 막기 위해서 왕궁을 헐다니?

    깨어진 돌을 무기 대용으로 쓰려고 그랬겠지: 데모하는 사람들이 던질 돌이 없자 보도블럭을 깨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도 소용없는 것은 이스라엘의 모든 악을 인하여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워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5). 하나님께서 고개를 돌려버리면 백약이 무효다!

6. 도대체 징계를 하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회복을 말하는 것인가?

    짧은 징계(4-5) 후에 회복(6-26) 시키겠다는 말이다: 현재는 어쩔 수 없이 패배를 당할 수밖에 없지만 그 후에 회복될 것이다. 회복에 대한 본문이 훨씬 길다. 조만간 함락될 상황에서 그래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어쩌면 최후의 회개를 촉구하는 지도 모른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선지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놓지 않는다. 이것이 성경 말씀의 큰 특징 중의 하나이다.

7.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때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

    풍부함(6): 처음과 같이, 대적들이 두려워 떨만큼 풍성한 복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손이 크신 분이시다. 상상 이상의 복(메사야를 통한 인류의 회복)이 주어진다(15-18).

8. 이스라엘은 벌써 망해버렸는데 돌아오게 한다고? 처음이란(7, 11) 언제?

    국가로서 이스라엘은 형체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당연히 돌아올 일도 없다. 이스라엘과 유다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 계속되는 회복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메시야를 통한 구원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처음’이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서 가나안 땅에 심은 것을 가리킨다. 유다의 귀환이 제 2의출애굽이라고 한다면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백성을 불러낸 것은 제 3의 출애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9. 이스라엘과 유다를 온전히 회복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죄를 사하는 것(죄악에서 정하게 하는 것): 이스라엘이 끔찍한 징계를 받게 된 근본 원인은 죄이다. 이제 회복시키실 때에는 죄를 용서하는 수밖에 없다. 치료하고 돌아오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죄함이 전제된 행동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첫 단계는 회개이다. 거기에 필요한 제물을 하나님께서 마련하셨다. 엄청나게 감사한 일이다. 이 감격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출발점인 것도 기억해야 한다. 탄생일 뿐이다. 자라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10. 세계열방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 복을 받는 것을 보고 왜 두려워하며 떨게 될까?

    이스라엘의 복이 자신에게 화가 되는 사람들의 얘기다. 요셉이 총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보디발의 아내 꼴 아닐까? 예루살렘의 회복이 단순한 이스라엘만의 얘기가 아니라 세계적인 축복과 심판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에는 복에 참여하든지 심판에 참여하든지 양자택일 해야 한다.

11. 예루살렘의 현재 모습은 적군에게 포위되어 간신히 버티고 있다. 조금 후면 어떻게 될까? 그 후에는 어떻게 될까? 그리고 먼 훗날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시면 어떻게 될까?

    5 → 10a → 10b(7-9): 시체로 가득함(5) → 사람이 없음(10a =10) → 사람이 와글와글함(10b=11, 7-9): 우리나라 시골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슬픈 일이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노는 소리는 평화와 번영의 소리이다. 이스라엘 땅에는 어떤 소리가 들리는가? 소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소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이다. 10-11절을 가르기가 좀 어렵나?

1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때 목자의 거할 곳도 있을 것이란다. 목자의 거할 곳이 그렇게 중요한가?

    양떼가 많아질 것이라는 의미이다: 좋은 항구를 만들어두지 않으면 배가 들어오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고기를 잡아도 좋은 항구가 가까이 있어야 어업이 활성화 된다. 목자의 거처가 있다는 것은 많은 목자들이 몰려든다는 말이고, 따라서 짐승의 떼가 풍부해질 것이란 말이다. 계수하는 자가 헤아려 보고 양이 없음을 알게 되면 찾아 나서게 된다. 목자의 거할 곳이 많다는 것은 평화와 번영의 상징이다.

13. 이제 백성이 회복되고(10=11), 짐승들도 회복된다(12-13). 그러면 더 회복되어야 할 것이 남아 있는가?

    왕과 제사장의 회복(14-18): 다른 나라의 얘기라면 왕의 회복만 얘기할텐데 이스라엘에게는 제사장의 회복도 필수적이다. 유능한 왕이 없으면 백성들이 안녕을 보장할 수 없다. 제사장이 없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대로 성립되지 않는다. 이 두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메시야를 통한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14. 다윗의 집안이 망하지 않았나(↔17)? 실제 역사에서 왕권은 에돔으로(헤롯) 넘어갔는데?

    메시야의 탄생을 말하는 것이다. 의로운 가지란 정의로운 왕을 가리킨다. 영원히 끊어지지 않을 이스라엘의 왕은 메시야를 가리킨다.

15. 의로운 가지는 정의로운 통치자에 대한 비유이다. 통치자가 지녀야 할 가장 소중한 덕목은?

    공평과 정의: 통치자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다. 메시야가 통치하는 하나님의 나라도 예외가 아니다(사 9:7).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도 이것이다(사 5:7).

16. 하나님께서 이름을 바꿔주신 경우가 많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야곱을 이스라엘로! 역할에 적절한 이름이나 기념할만한 이름으로 바꾸어주셨다. ‘평화의 기초(터)’라고 불리던 예루살렘이 어떻게 불릴거라고?

    여호와 우리의 의(16, 여호와 찌드케누): 23:6절에서 이 명칭은 메시야에게 주어졌던 이름이다. 여기서는 예루살렘의 새 이름이다. 우리를 의롭게 하실 이는 여호와시다라는 고백이다. 그 때에는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이 여호와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알게 될 것이다.

17. 이스라엘 집 위(位)에 앉을 사람이 다윗에게 영영히 끊어지지 않을 것이란 하나님의 언약은 확실하다(21). 어느 정도로?

    낮과 밤이 쉬지 않을만큼(25, 창 8:22), 천지의 규례가 변함없을만큼(25): 우리 식으로 말하면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하는 셈이다(31:35-37 참조). 역으로 생각해서 낮과 밤의 질서가 파괴되는 것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파괴되는 셈이다. 노아 홍수 시절에 주야로 비가 쏟아지던 때를 생각해보라. 밤낮의 구분이 없던 시절이다. 그 후에 다시는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것은 밤낮의 구분이 없는 자체가 바로 심판과 저주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8. 하나님께서 다윗과 레위인 제사장에게 무슨 언약을 언제 맺으셨는가?(21)

    다윗과 맺은 언약은 삼하 7:8-16, 레위인 제사장과는 민 25:10-13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공통점은 후손이 그 역할을 대대로 이어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왕과 제사장의 역할이 온전하게, 영원히 완성되는 것에 대한 언약으로 이해한다.

19. 다윗의 후손과 레위인을 번성케 하시는 이유는?

    왕이 든든해야 국가가 든든하게 서고, 레위인이 든든해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하다: 짐이 국가라고 했던가? 그런 측면이 없지 않다. 오늘날도 목사가 제대로 역할을 잘 해야 성도들의 신앙이 바르게 세워지기가 쉽다. 왕같은 제사장들이 많이 번성하는 것은 하나님의 소망이기도 하다.

20. 다음 구절(26)만 따로 떼어 읽으면 무슨 문제가 발생할까?
[내가 야곱과 내 종 다윗의 자손을 버려서 다시는 다윗의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다스릴 자를 택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 포로된 자로 돌아오게 하고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렘 33:26)]

    이렇게 읽으면 하나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를 뿐 아니라 앞뒤가 맞지도 않는다. 앞 문장은 조건을 말하는 25절에 붙여야 하고, 뒷 부분은 차라리 다른 절로 떼어내야 한다. 누가 이 따위로 절을 나누었나?

21. 오래 전에 사마리아는 함락되었고(BC 722), 10년 쯤 전에 유다도 많은 사람이 포로로 잡혀갔다(BC 597). 이제 예루살렘은 함락되기 직전이다. 바벨론 군대에 의해서 포위된지 2년 째이다. 이럴 때 유대인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했지 25-26절을 근거로 생각해보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다: 그 후에 포로로 끌려가서도 그런 생각을 가졌던 모양이다. 이런 유대인들의 생각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이 사 49:114-15, 50:1, 51:13에 잘 나타나 있다.

22. 본장도 32장과 마찬가지로 회복에 대한 내용이다. 33장과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

    회복 이전과 이후: 32장에서는 회복 이전에 심판이 있을 것이란 점이 강조되었다. 33장에서는 회복된 이후의 풍요로운 삶과 그 삶이 영원할 것에 강조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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