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2장


1. 시드기야 10년이라면 어떤 때인지 왕하 25:1-7을 보라.

    유다가 완전히 멸망 당하기 1년 전으로, 느부갓네살에게 포위되어 있는 상태이다(시드기야 9년부터 11년까지). 선지자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갇혀 있었다. 갇히게 된 구체적인 과정은 37-38장에 있다.

2.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갇힌 이유는 무엇인가?

    바벨론 왕의 손에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 왕을 바벨론으로 끌고 갈 것이라고 예언하였기 때문이다. 이건 엄청난 반역인데 왜 죽이지 않고 감금해두기만 했을까? 네 말대로 되는가 보자는 심사겠지!

3. ‘입이 입을 대하여 말하고’라는 말은 그 다음의 ‘눈이 서로 볼 것이며’라는 말과 그 앞의 ‘갈대아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와 같은 뜻이다. 그러면 이 입은 누구의 입일까?

    느부갓네살의 입과 시드기야의 입이다. 나중에 시드기야는 몰래 도망쳤지만 잡혀서 느부갓네살 앞에 끌려오게 된다. 그 사실에 대한 예언이다.

4. 시드기야가 나의 권고할 때까지 거기 있으리라(=until I visit him. NKJV)? 돌아온다는 의미가 깔린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돌아오지 못하는데(52:11)?

    권고하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파카드’는 ‘방문하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방문하는 것은 ‘돌보다’는 뜻도 되고 ‘멸하다’는 뜻도 된다. 이 경우에는 후자의 의미이다.

5. 1절에서 예레미야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은 무엇인가?

    7절: 땅을 사라는 것이다.

6. 예레미야가 왕의 미움을 받아서 시위대 뜰에 갇혀 있는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런 그에게 땅을 사라고? 사촌인 하나멜이 이상한 사람인가, 같은 말씀을 주신 하나님이 이상하신가? 곧 죽을 사람에게 땅을 사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상하지 않은가?

    하나멜은 땅을 팔아야하는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예레미야가 죽지 않는다’는 보증인 셈이다. 실제로는 장차 이런 일이 이 땅에 있을 것에 대한 예시이다(44). 장차 사람들이 왕성하게 땅을 사고 파는 일이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다시 융성할 것이라는 암시이다. 은 17세겔이면 그리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요셉이 은 20에 팔린 것과 비교), 갇혀 있는 주제에 땅을 사고 매매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많은 사람에게 흥미거리였을 것이다. 회복의 메시지가 함께 소문이 나야 하는데(15).

7. 땅을 산 매매증서를 토기에 담아 많은 날 동안 보존케 하라는 것은 무엇을 암시하는 말인가?

    일단은 나라가 망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 후에 회복되리라는 것이다. 나라가 완전히 망해서 다시는 땅을 되찾을 수가 없다면 땅을 산 매매증서를 보관할 이유가 없다.

8. 땅을 샀으면 한 턱을 내야지 왜 슬퍼하나(16-17)?

    땅을 사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가 땅이 회복되리라는 것이지만 그 이전에 수도가 함락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23-25). 예레미야는 메시지의 의미를 정확하게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셔도 깨달을 능력이 있어야 한다. 베드로처럼 환상을 세 번이나 보고도 무슨 뜻인지 뒤늦게야 깨닫는 사람도 있고(행 11:15-17),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행 28:26).

9. 아비의 죄악을 그 후 자손의 품에 갚으시오니(18)?

    이 부분은 출 20:5-6, 신 5:9-10과 원어상으로 같은 내용이다. 이 구절을 근거로 성경에 연좌제가 있다는 것은 오해다. 이 구절은 그런 의미라기보다는 부모들의 죄가 지닌 영향력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부모의 약물 복용이나 알콜 중독, 잘못된 성생활로 인한 기형아의 탄생이나 그 외의 나쁜 영향력은 보통 3, 4대까지 영향을 준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은혜는 풍성하게, 벌은 아주 조금 흉내만 내려는 것’이다. 가령, ‘이번 시험 잘 치면 상으로 10만원짜리 MP3를 사주고, 못 치면 벌금으로 400원 내라’고 했더니 ‘아버지는 어떻게 아들한테 벌금을 다 받으려고 해요?’ 한다면 참으로 답답한 아들이다. 벌금이 목적이 아니라 공부 잘 하라는 말이고 상을 많이 주겠다는 뜻이다. 10만원짜리만 쳐다보면 되지 400원을 뭣하러 기억하나? 죄는 3, 4대까지 갚고 은혜는 1,000대까지 베푼다는 말씀은 어쩔 수 없이 벌을 준다 해도 벌하기보다는 은혜를 더 베풀기를 원하신다는 뜻이다.

    예레미야도 비슷하게 오해했던 모양이다. 현재 겪는 고초의 책임이 상당부분 조상들에게 있다는 인식을 가졌던 모양이다.

10. 예레미야가 아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전능하시므로 보응하시는 분(19): 영악한 머슴이라면 무능하지만 부지런한 주인의 눈은 피할 수 있다. 능력은 있지만 게으른 주인도 적당히 피해갈 수 있지만 능력도 있고 부지런한 주인을 피해서 몰래 엉뚱한 짓을 하는 것은 어렵다.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능력도 있고 부지런하신(=행위대로 보응하시는) 분이라서 이제는 벌을 피할 수 없다.

11. 예레미야의 탄식 속에서 언급한 하나님께서 하신 일과 그 백성 이스라엘이 한 일을 비교해보자.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이지만(20-22), 이스라엘이 한 일은 이런 하나님을 배신하는 것이었다(23).

12. 어쩌면 예레미야도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다. 25절을 근거로 설명해보자.

    ‘밭을 사라고 하시더니 이럴 수 있습니까?’ 하는 느낌이 조금 난다: 유다가 징계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인정하면서도 ‘나라를 빼앗기고 사람들이 다 죽는다면 뭣 때문에 밭을 사며 증인을 세우라 하셨나이까?’ 하는 당혹스러움이 묻어나는 말이다.

13. 모든 육체의 하나님(27)이란 모슨 사람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유다를 바벨론에 붙이면서 이런 표현을 쓰는 의도가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어서 유다를 바벨론에 내어주는 것이 아니다. 바로 다음에 ‘네게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와 같은 의미이다. 바벨론 사람들이 와서 저렇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손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14.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바벨론 왕에게 내어주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상 숭배: 이것이 다른 모든 죄악의 출발점이다. 이 성이 건설된 날부터 지금까지(31) 모든 백성들이(32) 그랬다. 부지런히 가르쳤어도 그랬다(33). 그럼에도 지금까지 인내하셨지만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다는 선언이다.

15. 다음 구절에 해당하는 왕은 누구일까?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 자기들의 가증한 물건들을 세워서 그 집을 더럽게 하며’ 성전에 다른 신들을 위한 제단을 설치한 왕도 있고 아예 우상을 세운 왕도 있는데?

    아하스(왕하 16:11-14)와 므낫세: 아하스가 한번 그런 짓을 하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성전에서 우상을 섬긴 것은 므낫세였다(왕하 21:4-7). 우상을 섬기던 다른 왕들도 하나님의 전에서 우상을 위해 제사를 드리지는 않았다.

16.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바알의 산당을 건축하였으며 자기들의 자녀를 몰렉의 불에 지나가게 하는 일(35)의 시발점은 어느 왕이었을까?

    솔로몬(왕상 11:1-8): 제발 잘 먹고 잘 살 때에 하나님을 저버리는 짓을 하지 말자(참고 신 32:15).

17. 이스라엘의 배신 행위에 대해서 길게 서술하였지만 핵심은 그게 아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려는 핵심은 무엇인가?

    이스라엘의 회복(37-44): 돌아오게 해서 하나님만 경외하게 하겠다. 나도 그들을 떠나지 않고, 그들도 나를 떠나지 않으리라.

18.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38)이라는 말씀도 여기서 처음 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앞으로 이 말씀을 또 하시겠다는 것은 언약을 다시 세우겠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런 말씀을 제일 처음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하셨을까?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을 때(출 19:4-6): 공식적으로는 그러하지만 개인적인 언약까지 포함한다면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 최초라고 할 수도 있다(창 17:7-8).

19. 한 마음과 한 도를 주시겠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한 마음과 한 도에 머물러야 한다. 도대체 누가 이런 하나님의 백성일까? 교회라고 하려니 교회는 한 마음이 아니던데?

    사도신경에 ‘거룩한 공회(교회)를 믿사오며’라는 부분이 이것이다. 교회는 하나다. 수많은 파가 있고 지교회가 있더라도 교회는 하나다. 한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정점으로 하는 각각의 지체가 있어서 달라 보일지라도 하나다. 같은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교회는 하나다.

20. 다시는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게 하겠다고 하신다(40). 이 말씀도 여기서 처음이 아니다. 전에도 그런 말씀을 하셨지만 결국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렸다. 이전과 다른 무슨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신다면 다시 또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출애굽 때의 무수한 이적도, 가나안 전쟁과 사사시대의 수많은 구원도 결국은 소용이 없었는데?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40): 형식과 외형에 치중하던 종교에서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셈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요구를 이루시고 그저 믿기만 하면 되는, 행동으로 행하는 것과 비교해본다면 참으로 쉬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을 염두에 두고 계신다.

21. 재앙을 내린 것 같이 복을 내리리라? 재앙이 어떻게 내렸는데?

    철저하게: 모양은 반대이지만 양상은 같다. 즉 범죄하면 반드시 뽑힐 것이라는 말씀이 그대로 응한 것처럼 이들을 다시 심으리라는 약속도 동일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점이 동일하다. 바울의 회심처럼 열심은 변하지 않고 목표만 바뀌듯이.

22. 이스라엘의 지형은 대체로 산지, 평지, 남방으로 구분한다(수 12:8). 여기서도 대체로 비슷하지만 유독 베냐민 땅이 등장하는 이유는 뭘까? 예루살렘이나 유다 땅은 중심지니까 그렇다치고.

    회복될 땅의 상징으로 예레미야가 산 땅이 베냐민 땅이다(7). 예레미야의 고향이기도 하다(1:1).

23. 밭을 은으로 사고 증서를 기록하여 인봉하고 증인을 세우는 일이 뭐 그리 큰 일이라고?

    땅을 팔려고 내놓아도 살 사람이 없다면? 아무리 땅이 많아도 거지다. 매매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은 경제활동이 왕성하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이다. 예레미야가 땅을 산 것이 바로 훗날 이런 일이 일어날 것에 대한 예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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