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0장


1.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왜 책에 기록하라고 하셨을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일이 때가 되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 기대하고 확인하라는 것: 한번 외친 것으로 끝날 일이라면 기록할 이유가 없다. 후대에 전해져야 할 이유가 있다. 성경이 오늘 우리에게 전해진 것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이루어진 일이다.

2. 언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돌아오게 하실까?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 비록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런 징계를 받았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돌이키실 것이다. 명확하게 때를 말씀하시지 않는 것은 미래는 하나님께 속한 영역임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믿음이다. 때나 시기는 하나님께 맡기고... 어차피 구원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의해 성취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3. ‘잡혀 갈 것이다. 항복해라. 항복하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고 말씀하시더니(27-29장) 이제는 ‘포로에서 돌아올 것이다’고 하신다. 3절은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겠다는 선언이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한 비유를 세 가지만 찾아보자(6-17).

    해산의 고통에서(6-7), 짐승이 멍에와 줄에서 벗어나듯이(8), 질병에서(12-17): 더 자세하게 본다면, 변호해줄 자가 없는 송사에서(13절), 사랑하던 자가 모두 변심해버린 데에서(14) 구원하겠다는 의미도 들어 있다고 하겠다.

    떨리는 소리?

4. 해산하는 남자가 있냐고 물어보란다. 왜 그런 질문을 하라고 할까?

    모든 남자들이 다 해산의 고통을 겪는 것처럼 허리를 움켜쥐고 울부짖기 때문이다(6). 비할 데 없이 큰 환란의 날이란다.

5.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멍에을 꺾고 줄을 끊으면 이방인이 다시는 부리지 못한다. 그러면 해방인가?

    은근슬쩍 여호와 하나님의 멍에를 매라는 뜻이다. 원래 그래야 했다. 하나님의 멍에를 벗어버리고 우상을 섬긴 것이 결국은 이방인의 멍에를 매게된 원인이다. 반면에 하나님의 멍에는 쉽고, 가볍다(마 11:29-30).

6. 너희 왕 다윗을 섬기리라고? 다윗은 죽은 지 오래인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다시 일으켜 세울 다윗왕이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겔 34:23-24, 호 3:5). 유대인들은 1차적으로 정치적 왕을 기대했겠지만 하나님은 더 멀리 더 큰 왕을 내다보고 말씀하셨다.

7. ‘두려워말라, 놀라지 말라, 구원하리라, 태평하리라’고 하시면서도 징책할 것이란다. 고칠 수 없는 병을 주고, 또 고치리라고 하신다. 왜 이렇게 병주고 약주나?

    끊임없는 이스라엘의 배신(14-15)과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배신 때문에 병을 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사랑 때문에 버려둘 수 없다. 그래서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묻어나는 것이다. 미워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자식을 둔 아버지는 그럴 수밖에 없다.

8. 이스라엘의 처지는 변호사도 없고, 약도 없고, 애인도 없다(13-14). 쫓겨난 자, 찾는 자가 없는 시온이라고 불린다(17). 희망이 절벽인 이런 난국을 타개할 유일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도움을 기다리는 것: 이런 비극적인 상황이 초래된 원인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다. 해결도 하나님께 구하는 것 뿐이다. 아무런 희망도 소망도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도무지 치료할 수 없는 상처를 치유하시는 분이시다!

9.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열방이나 이스라엘을 치는 자도 하나님께서 시키신 것 아닌가? 그래놓고 그 책임을 묻다니(16)?

    이방 압제자들의 악함을 하나님께서 이용하셨을 뿐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징계하실 때 징계의 도구로 사용되지 말라. 불행이다. 사랑(혹은 징계)의 대상이 된 것을 오히려 기뻐할 일이다.

10. 예루살렘의 중건, 즉 나라가 회복된다는 것은 무엇이 회복된다는 말인가(18-21)?

    영토(18, 성읍, 궁궐), 백성(19-20, 번성, 영화롭게), 왕(21): 이 세 가지가 나라를 구성하는 기본 요건이다. 나라가 제대로 회복될 것임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이스라엘이 신정국가임을 감안하여 하나를 더 추가한다면 ‘언약’의 회복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22). 성읍이 세워질 곳은 ‘자기 산’이다. 실제로는 파괴되어 흙더미가 된 곳이다. 원어상의 의미도 그렇다. 그래서 ‘폐허의 언덕’, ‘옛 성터’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11. 하나님께서 나라를 회복시키실 때 등장하는 왕의 특징은 무엇인가?

    본족(같은 민족)에서 난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간다: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자는 제사장이다. 즉 제사장의 역할까지 감당하는 왕이 날 것이라는 말이다.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태어나서 하나님께 가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왕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기억한다면 이 본문이 은근히 메시야 시대를 겨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진정한 평화는 메시야로 말미암는다. 이 땅의 왕은 어떤 선한 왕이라도 온전한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

12. 이스라엘에게 통치자가 따로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 통치자가 곧 하나님의 대리인이라면 가능한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백성은 곧 하나님의 백성이다. 누가 왕이 되었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란 사실을 잊지 않는 왕이 탄생할 것이다.

13. 이렇게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는 원인을 이스라엘에게서 찾는다면?

    아무 것도 없다: 이 본문에서는 아무런 노력도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의 구원이 우리에게 아무런 공로가 없는 것과 같다. 원인을 하나님에게서 찾아야 답이 나온다. 우리의 노력으로 부흥을 불러 일으키려는 시도는 위험할 수도 있다.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것이 필수다.

14. 여호와의 노가 폭풍과 회리바람처럼 몰아치면 어떻게 하지(23)?

    걱정할 필요가 없다: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한다. 이스라엘이 징계의 대상이 아니라 회복의 대상이 된 이상 하나님의 노는 염려할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을 반드시 회복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주어진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은 반드시 이룬다는 보증으로 주신 말씀에 겁낼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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