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5장


1. 24장은 고니야(여호야긴)가 잡혀간 때의 일이었다. 그러면 여호야김 4년(느부갓네살 원년)은 언제인가?

    7년 전: 여호야김 11년에 느부갓네살의 침공을 받았을 때 백성들이 여호야김을 폐하고 아들 여호야긴을 왕으로 삼았다. 석달 만에 여호야긴이 포로로 잡혀 갔다(바벨론의 2차 침공). 본문이 역사적으로 먼저 일어난 일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바벨론의 1차 침공 때이다(9). 이 해(BC 605)에 유명한 갈그미스 전투에서(유브라데스강의 상류지점) 느부갓네살은 애굽에 승리하여 팔레스틴까지 세력을 뻗치게 되었다. 이 때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갔다.

2. 요시야 13년부터 오늘까지 23년이다. 오늘이 여호야김 4년이다. 그러면 요시야는 몇 년 간 통치했다는 말인가? 중간에 여호아하스가 있었지만 통치기간은 3달 뿐이다.

    31년간: 예레미야는 요시야 13년부터(BC 627) 시드기야의 제 11년 말까지(BC 586, 유다가 멸망하던 해) 사역했다. 대강 40년간이다. 요시야 왕이 종교개혁을 시작한 것은 즉위 12년째이므로(대하 34:3) 종교 개혁이 막 시작되던 때이다.

3. 예레미야가 23년간, 다른 많은 선지자들이 부지런히(=아침 일찍 일어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결과는 어떠한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4). 그러니 끔찍한 징계 소식을 들을 수밖에!

4. 선지자들이 도대체 무슨 말씀을 어떻게 전했기에 백성들이 들을 생각도 않았을까? 백성들이 악한 길과 악행에서 돌이키면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행하신다고 하셨는가?

    여호와께서 백성들의 땅에 거하신다(5): 하나님께서 함께 거하시는 것이 가장 크고도 근원적인 복이다. 순종하지 않으면 떠나시겠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떠나시면 모든 것을 다 잃는 셈이다. 철없는 아이들이 아버지가 자기들과 함께 계시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르고 그저 사다 주는 과자나 선물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가 빈 손으로 들어오시는 아버지를 싫어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아니 선물을 사다줘도 싫어하는 꼴 아닐까?

5.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우상숭배이다. 우상을 가리켜 ‘너희 손으로 만든 것’이라고 하시면서(6, 7), 분노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내 손으로 만든 것이니: 이스라엘은 비유컨대 하나님께서 친히 진흙으로 만드신 것이다. 아담만 만드신 것이 아니라 조상들을 부르시고, 약속을 하시고 지금까지 인도하신 것이 친히 만드신 것과 같은 애정을 쏟으신 일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가진 백성인데 이 백성이 엉뚱하게 제 손으로 만든 것을 섬기다니...

6.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종인데 도무지 말을 듣지 않으니 누가 종 노릇을 하는가?

    느부갓네살(9): 아들이 말을 안 들으면 종이 아들 노릇을 하는 법이다. 옛날에 그렇게 해서 주인의 가업을 물려받아 성공적인 경영자가 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은 언약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단순한 징계의 도구로만 사용되었을 뿐이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런 인간(단 1:1-3)에게 하나님의 종이란 위대한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은 이스라엘의 범죄 때문이다. 그러나 끝내 못난 아들을 다시 불러들이신다.

7.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은 이스라엘인데 징계는 누가 받는가?

    이스라엘과 사방 모든 나라들(9): 사방의 다른 나라들은 억울하다. 이스라엘을 징계하려고 바벨론을 불러들이는 과정에서 애매하게 고생한 것 아닌가? 요나가 탄 배의 승객들처럼 그럴 수도 있지만 이스라엘이 그렇게 범죄하도록 도운 나쁜 친구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왕자의 친구들은 주의해야 한다. 자신이 잘못하지 않아도 큰 화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8. 영영한 황무지가 되리라(9)고 하는 이 땅이 본래는 어떤 땅이었는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가장 좋은 땅을 골라 주셨는데(겔 20:6)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하여 황무지가 되어버렸다.

9. 선지자가 전한 말씀의 요지는 ‘하나님을 버린 값으로 이스라엘은 70년간 바벨론을 섬길 것이다’라는 것이다. 왜 하필이면 70년 일까? 레 26:34-35, 43(25:3-5)을 참고하여 생각해보자. 사사시대에 이런 비슷한 징계를 많이 받았는데 최장 예속의 경우라도 40년을 넘지는 않았다.

    그들이 안식년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연수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말하자면 안식년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세월이 490년이었다는 말이다(이스라엘의 전체 왕정시대와 비슷함). 다음 구절도 마찬가지다,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대하 36:21).

10. 70년간 바벨론을 섬기리라는 것은 끔찍한 선고이면서 동시에 위로가 담긴 표현이다. 어떤 점에서 위로의 말이 되는가?

    나라가 완전히 망해버리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회복을 전제로 한 말이기 때문이다: 70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지만 다니엘이 깨달은 70년은(단 9:2) 자신이 포로로 잡혀가던 느부갓네살의 1차 침공 때(BC 605)부터 고레스의 칙령으로 귀환하던 때(BC 537)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외에도 성전이 파괴되고(BC 586) 다시 재건되는 해(BC 516)로 보거나, 느부갓네살의 통치가 시작된 해(BC 605)부터 바벨론이 점령 당하는 때(BC 539)로 보기도 한다(12).


11. 바벨론이 하나님의 종이 되어 유다를 멸망시키고, 포로로 잡아 갔는데 이들이 나중에 그 값을 치른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가룟 유다가 징벌을 받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바벨론의 융성함도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자의적으로 행한 무수한 죄를 묻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강성하던 바벨론도 페르시아(바사)의 고레스에게 허무하게 무너진 이후 다시는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지 못한다. 자신들이 지배하던 나라에 오히려 지배를 받고 만다(14). 오랜 세월 후에 석유가 각광을 받게되자, 후세인이 바벨론의 영광을 꿈꾸었으나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12. 예레미야는 바쁘다. 말 안듣는 자기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도 듣지 않는 판에 또 무슨 임무를 받았는가?

    주변 모든 나라들에게 진노의 잔을 마시게 해야 하니까! 이걸 마시면 비틀거리고 미친단다. 비유는 술을 마시는 것이지만 실제는 전쟁이다(16). 민족들 간에 벌어지는 전쟁도 하나님의 분노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13. 잘 알지 못하는 나라들이지만 몇 개의 그룹으로 정리하면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1) 이스라엘(18), 2) 애굽 지역(19-20a), 3) 팔레스틴 지역(20b-21, 우스와 블레셋), 4) 두로와 시돈의 세력권(22), 5) 아라비아와 광야지역(23-24), 6) 페르시아 지역(25-26)이다. 이 모든 지역을 비틀거리게 만든 장본인이 누구인가? 징계의 대상에서 빠진 나라를 찾아보자.

    바벨론이다: 이 메시지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1차 침공을 받게될 당시에 온 세상을 점령하던 바벨론을 가리킨다. 최후에 심판받을 세삭은 바로 바벨론을 가리킨다. 세삭은 바벨론을 일종의 암호처럼 나타낸 말이다. 바벨론의 히브리 표기법을 히브리 알파벳의 역순으로 대치시킨 이름(예컨대 bbl→ssk)이다.

14. 대만은 부정부패가 거의 없단다.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부정에 연루된 며느리의 목을 치는 통치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 아들의 목을 베는 임금이라면 누구 목을 치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자기 이름으로 일컫는 성에 재앙을 내리시는 분이시다(29). 그러면 어디엔들 재앙을 내리지 못하겠는가!

15. 이 심판의 특징은 소리에 있다. 큰 소리로 부르시는 것, 외침, 요란한 소리가 어떻게 심판이 되나(30-31)?

    심판은 칼(전쟁으)로 한다(31b, 29, 33). 하나님은 높은 곳에서 마치 지휘관처럼 쉴새없이 명령을 내리신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사자가 부르짖는 모습, 천둥 속에서, 폭풍 속에서 말씀하시는 모습, 법정에서 다투는 모습, 포도를 밟는 모습 등이다.

    예레미야가 이 메시지를 전하던 바로 그 시대에 바벨론은 온 세상을 잔인하게 점령했다. 그런 다음 오래 가지 못하고 바벨론도 무너진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을 누가 알겠는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16. 포도를 밟는 자들이 무엇이라고 외칠까? 그게 어떻게 심판의 의미가 되는가?

    “(밟을 포도를) 빨리 가져오라” 더 빨리 더 많은 양을 포도주 틀에 넣고 열심히 밟듯이 악인을 심판하신다.

17. 하나님의 심판으로 ‘재앙, 대풍, 살육, 흩어짐, 황폐함’ 등의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그런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표현이 무엇일까?

    살륙이 너무 심해서 장사지내줄 사람이 없다는 점(33). 염습이란 ‘염’이란 말이다. 시체를 수습하는 것을 말한다.

18. 양떼의 인도자에게 가장 고통스런 것은?

    양떼의 흩어짐(=적막함) 아닐까(34, 37)? 흩어져 없어지면 목자가 뭘 하지? 장사하는 사람에게 하루 종일 손님이 들이닥치는 것보다 손님이 전혀 없는 것이 더 피곤하단다. 양떼가다 사라진 적막한 목장에서 목동이 얼마나 피곤할까!

19.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 어쩌면 더 큰 심판을 받아야할 자들은 지도자들 아니겠는가? 32-33은 일반적인 모습이라면 34-38은 지도자들에 대한 심판을 말하는 것이다. 지도자들을 어디에 비유하고 있는가?

    양떼의 인도자, 목자, 귀한 그릇: 한 때 좋은 시절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애곡하라’, ‘재에 굴라’고 하신다. 깨어질 것이며, 도망할 수 없을 것이다.

20. ‘그가 사자 같이 그 소혈에서 나오셨도다’라는 말의 ‘나오셨도다’는 말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창 2:24)’의 ‘떠나다’와 ‘요셉이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리고(창 39:12)’의 ‘버리고’와도 같은 말이다. 그렇다면 세상에 이런 재앙이 내리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말하는 셈인가?

    하나님께서 떠나셨기(버리셨기) 때문이다. 마치 사자가 굴을 버리고 떠난 것처럼 하나님께서 떠나셨다는 말이다.

    염습(殮襲): 죽은 사람의 몸을 씻긴 뒤에 옷을 입히고 염포로 묶는 것(=염)
    소혈(巢穴) = 소굴(巢窟): 좋지 못한 짓을 하는 사람들의 활동 근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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