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4장


1. 유다가 멸망을 당할 즈음에 바벨론은 3차에 걸쳐 유다를 침공했다. 그 때마다 유다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많은 사람이 포로로 잡혀갔다. 여고냐가 포로로 잡혀간 것은 몇차 침공 때의 일인지 짐작해보자(왕하 24:1-2, 10-12, 25:1-2).

    2차(BC 597): 잡혀간 백성이 있고 남은 백성이 있다는 것은 3차(마지막)는 아니란 뜻이다. 1차는 여호야김(BC 605), 2차는 여호야긴, 3차는 시드기야(BC 586) 때이다. 2차 침공으로 사실상 이스라엘은 망한 것이나 다름없다. 느부갓네살이 세운 왕 시드기야는 허수아비일 뿐이다. 예수님의 족보상으로도 유다의 마지막 왕은 시드기야가 아니라 여호야긴이다.

2. 유다 왕들의 목록에 ‘여고냐’는 없던데?

    여호야긴의 다른 이름이다(대상 3:16, 마 1:11)). 고니야라고도 불렸다(렘 37:1).

3. 방백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제외하면 무엇이 남는가(왕하 24:14-15)?

    빈천한 자: 우리 식으로 말하면 눈이 똑바로 박힌 자들은 다 잡아 갔다는 말이다. 잡아 가도 별 소용이 없는 사람과 내버려두어도 반항할 힘도, 능력도 없는 자들만 남겨 두었다.

4. 무화과 두 광주리가 하필이면 여호와의 전 앞에 놓였을까?

    아마도 하나님께 드리려고 가져온 것에 대한 상징일 것: 하나님께 드리려고 가져왔는데 하나는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실만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혀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없는 것이더란 말이다.

5. 예레미야가 본 두 무화과 광주리는 각각 무엇을 상징하는가?

    생명과 사망: 좋은 무화과는 갈대아인의 땅으로 포로되어 간 자들(5)로서 결국은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요, 악한(=썩은) 무화과는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와 애굽 땅에 거하는 자(8)로서 끝내 하나님을 저버리고 망할 것이다.

6. 잘 익은 무화과는 누가 그렇게 했고(5-7), 악한 무화과는 누가 그렇게 했는가(8-10)?

    하나님께서: 다윗의 뿌리에서 의로운 싹이 나게 하려면, 여인의 후손을 이 땅에 보내시려면 이스라엘의 대가 끊어질 수 없다. 누구를 통해서 이 일을 이루실 것인지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을 통해서 이 일을 계속 하시겠다는 선언이다. 이들이 이 땅에 남아 있던 자나 애굽에 거하는 자보다 더 나은 이유가 무엇인지는 그 다음의 일이다.

    부차적인 이유를 살펴본다면,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끝까지 저항한 사람들은 애국자나 민족주의자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정면도전하는 사람들이었다.

7.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보시고 아름다운 무화과와 같다고 하실까?

    여호와를 여호와인줄 아는 자(7), 혹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는 자: 이들이 이런 마음을 품는 것조차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다.

8. 수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으니 잡혀가지 않은 사람들과 애굽으로 탈출한 사람들(8)은 자신들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반면에 예레미야는 이들에게 무엇이라고 하는가?

    잡혀가지 않은 사람들의 생각: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났다(겔 11:15).
    예레미야의 말: 너희는 진짜 버림받은 것이다.
    자신들이 왜 이런 고난을 당하는지 분명하게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포로로 잡혀가지 않은 것이 결코 복이 아니다.

9.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지 않은 사람들과 애굽으로 탈출한 사람들(8)이 무슨 잘못이 있길래 이런 끔찍한 말씀을 하시는가?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은 죄: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하는 메시지(27:12, 38:17)를 거부한 탓이다. 이 땅에 남은 자들도 결국에는 바벨론에 대항하다가 시드기야와 함께 망하고 만다. 항복하라면 항복할 일이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이 결코 우리를 망하게 하지 않는다’고 고집을 피우는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순순히 받아들여서 복을 받은 다윗과 비교해보자.

10. 예레미야가 이 환상을 본 때는 수 많은 유대인들이 포로로 잡혀간 다음이다. 이 환상이 유대인들에게 어떤 느낌을 주었을까?

    포로로 간 자들에게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회복의 말씀이 되었을 것이다. 이 땅에 남아서 예레미야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예레미야를 핍박하던 무리에게는 심판의 말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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