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2장


1. ‘다윗의 위에 앉을 왕들과 신하들과 백성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집 문으로 들어오게 되리라’는 것(5)이 무슨 뜻인지 대조적인 표현을 찾아보자.

    이 집이 황무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이 성에 왕도, 신하도, 백성도 사라질 것이라는 경고다.

2. 전장에서 선지자는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에게 메시지를 전했는데 여기서 유다 왕은 누구일까?

    여전히 시드기야: 집이 황무하리라(5)는 말은 왕위가 끊어지리라는 말이다. 광야와 거민이 없는 성으로 만드는 것(6)이나 여호와께서 이같이 행함(8)도 유다의 파멸을 염두에 둔 말이다. 왕이 끊어지리라는 경고는 형식적이긴 해도 마지막 왕 시드기야를 향한 예언으로 적합하다(실제로 마지막 왕은 여호야긴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3.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네 위가 영원하리라’고 약속하신 이유는 하나님을 위한 집(성전)을 짓겠다는 다윗의 소원에 대한 응답이었다(삼하 7장, 대상 17장). 그런데 여기서는 다윗의 위가 영원하려면 지켜야 할 것(3)이 왜 다른가?

    여호와 경외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공평과 정의를 행하는 것,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는 것,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않는 것, 무죄한 피를 흘리지 않는 것이 단순히 왕의 의무이거나 도리를 넘어서 하나님 경외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외면상으로는 다소 다른 모습일지라도 내면상의 이유는 동일하게 하나님 경외이다.

4. 길르앗과 레바논 꼭대기는 무엇과 대조적인가?

    광야와 거민이 없는 성: 레바논은 울창한 숲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왕의 궁전은 레바논의 나무로 지었다(왕상 7:2). 7절의 ‘아름다운 백향목’과 같은 의미이다. 길르앗은 기름지고 생산량이 많은 지역이었다.

5. 백향목을 찍어 불에 던지는 도구가 무엇인가? 왜 그런가?

    병기(7): 백향목으로 지은 성전과 궁궐을 찍어버린다는 뜻이다. 적군의 손으로 파멸될 것이란 말이다(시 74:5-11 참고).

6. 유다의 처절한 파멸의 원인에 대해서 훗날 이방인들도 알게 될 터인데(9) 정작 그 일이 닥치기 전에 유대인들은 왜 알지 못하는가?

    아무리 얘기해도 들어야 말이지! 동일한 말씀을 신 29:24-26에 이미 말씀하셨어도 도대체 들어야 말이지. 듣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말을 해도 들리지도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면 이방인들이 먼저 안다.

7. 10-12절에는 ‘잡혀간 자’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복수형태가 아닌 점에 주목해서 누구를 가리켜 하는 말씀인지 난외주에 언급된 왕하 23:30과 대상 3:15을 찾아보자.

    여호아하스(=살룸): 요시야의 넷째 아들이다. 므깃도에서 전사한 요시야(10절의 죽은 자)를 대신하여 왜 국민들이 넷째 아들을 왕으로 삼았을까? 석달 만에 애굽왕 느고가 침입하여 여호아하스를 잡아가고 그의 형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운다(왕하 23:31-35). 10여년 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침입하여 셋째인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운다. 아마도 신하들이 친애굽파와 친바벨론파로 나뉘어 세력을 다투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여호아하스는 친바벨론파, 여호야김은 친애굽파?

    왕하 23:30) 신복들이 그 시체를 병거에 싣고 므깃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그 묘실에 장사하니 국민이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데려다가 저에게 기름을 붓고 그 부친을 대신하여 왕을 삼았더라.

    대상 3:15) 요시야의 아들들은 맏아들 요하난과 둘째 여호야김과 세째 시드기야와 네째 살룸이요

8. 요시야가 전사한 후의 유다의 왕들은 여호아하스(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긴(여호야김의 아들), 시드기야(요시야의 아들)의 순이다. 시드기야 왕의 시대에 여호아하스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과거 회상인 셈이다. 슬픈 지난날을 왜 언급하는가?

    시드기야더러 정신차리라는 말이다: 여호아하스가 어떤 짓을 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시드기야는 알고 있었다. 그가 애굽으로 사로잡혀 가서 유배지에서 죽은 최초의 유다 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짓을 계속 하겠느냐는 힐난이다.

9. ‘이웃을 고용하고 그 고가를 주지 아니하는 자’ 누구이며 어떤 대가를 받았는가?

    왕(여호야김), 그의 죽음을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다(18-19): 바보같은 왕! 그러니 둘째를 제쳐두고 백성들이 넷째를 왕으로 삼았지! 그런 일이 있어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나보다. 깨닫지 못하는 백성을 패망하리라(호 4:14).

10. 나라를 튼튼히 세우는 방법 중에는 거대한 궁궐을 짓고 왕의 위엄을 내세우는 것도 있는 모양이다. 대원군이 그럴 목적으로 당백전을 발행하여 위세를 부리다가 오히려 나라를 말아먹었다든가? 이스라엘에도 그런 왕이 있었던 모양이다. 백향목으로 집짓기를 경쟁하던 왕 말이다(14-15). 이스라엘 왕의 지위는 어떻게 튼튼해지는가?

    공평과 의리를 행함으로(15): 그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기 때문이며(16)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나라를, 왕의 위를 세우시기 때문이다. 네 아비가 먹고 마시며 형통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요시야는 그런 왕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요시야의 아들들이 한결같이 이 모양인가! 아버지란 정말 어려운 직업이다.

11. 정상적으로 장례를 치르는 경우와 나귀같이 매장하는 경우의 차이점을 본문에서 찾아보자.

    통곡의 유무: ‘슬프다 내 형제여’, ‘슬프다 내 자매여’, ‘슬프다 주여’, ‘슬프다 그 영광이여’ 이것은 장례식에서 하는 통곡의 실제이다. 죽은 나귀는 그렇게 하지 않고 그냥 갖다 묻어버린다.

    [참고] 여호야김의 마지막에 대한 기록이 대하 36:6-12, 왕하 24:6, 렘 22:19 세 곳에서 제 각각이다. 다음과 같이 추정해 볼 수 있다. [주전 605년에 느부갓네살이 이집트 군대를 쫓아내고 예루살렘까지 함락하였다. 여호야김과 귀족들을 사로잡아 쇠사슬로 결박하였는데(대하 36:6-12) 갑자기 부친의 사망소식이 들려 급히 귀환하면서 여호야김에게 충성할 것을 다짐받고 풀어주었을 것이다. 주전 601년에 이집트가 득세하자 여호야김은 바벨론을 배반한다(왕하 24:1). 느부갓네살이 주전 597년에 출전하자 예루살렘에서 반란이 일어나 여호야김을 죽이고(렘 22:19) 아들 여호야긴을 왕위에 올린다. 경건한 사람들이 여호야김을 조상들의 무덤에 묻어주었을 것이다(왕하 24:6).

12. 레바논은 이스라엘 북쪽, 바산은 북동쪽, 아바림은 남동쪽(요단 건너 모압쪽) 고산지대로 유다를 둘러싼 형태이다. 유다를 내려다보면서 무엇이라고 외칠까?

    외치기는 그냥 통곡하는 거지(영어로 보면 이해하기 쉽다. cry는 외침의 의미도 있지만 소리 높여 우는 의미이기도 하다): 바로 이어지는 말씀은 외칠 내용이 아니라 외칠 이유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서 수치와 욕을 당할 것(=패망)이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통곡밖에!

13. 20절의 ‘너’는 예루살렘, 혹은 예루살렘 거민이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란 누구일까? 참고로 여호야김이 친애굽파로 바로느고에 의해 왕이 되었지만 뒤이어 팔레스틴의 세력을 잡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게 된다. 악정을 행한 탓도 있지만 바벨론에 반기를 들었다가 백성들의 손에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데 반기를 든 이유가 여기의 ‘사랑하는 자’와 관련이 있다.

    바벨론에 함께 반기를 든 동맹국들: 느부갓네살이 “애굽 하수에서부터 유브라데 하수까지 애굽 왕에게 속한 땅을” 다 빼앗았다(왕하 24:1-7).

14. 평안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나 이스라엘은 듣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그랬고 그게 습관이란다(21). 우리는 어떨까?

    아무래도 비슷한 것 같다: 말을 잘 들으면 어딘가 약해 보이고 반항하면 뭔가 있어 보인다.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말하면 쑥스러워서 열심히 공부하고도 안했다고 말한다. 성악설? 성선설? 범죄하고 쫓겨난 인생은 아무래도 성악설이 더 맞는 것 같다. 순종의 사람 이삭이 별 우여곡절없이 평안한 삶을 누린 것을 보라. 순종하는 자식이 예쁘다.

15. 목자도 사라지고 사랑하던 자도 사라지면 어떻게 되나?

    수치와 욕을 당하지: 비유컨대 이스라엘이 목자없는 짐승이라면 잡아 먹히는 수밖에 없고 사랑하던 자가 도망가버린 여인이라면 더욱 암담한 처지가 될 수밖에 없다. 예루살렘이 그런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다. 목자는 지도자요, 사랑하던 자는 동맹국들이다. 결국은 바벨론에 철저하게 짓밟힐 것이란 뜻이다. 후일 쓸만한 인간들은 모조리 바벨론으로 끌려간다.

16. 해산의 고통이 임하면 여자의 체면이나 우아함은 깨끗이 사라진다. 그런 날이 올 것을 모르고 지금은 어떻게 큰 소리 치고 있는가?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지은 궁궐에서 온갖 호사를 다 누리고 있는 셈이다(23): 새에 비긴다면 높고 높은 레바논 백향목 꼭대기에 둥지를 틀고 안전하다고 호언장담하는 셈이다.

17.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 누구인가? 어떤 왕인가?

    실제로는 여호야긴 왕이다(고니야 52:31, 혹은 여고냐 24:1, 마 1:12, 대상 3:16). 다른 왕들은 애굽왕이나 바벨론 왕이 세운 꼭두각시였지만 요시야 사후에 아버지로부터 왕위를 이어받은 유일한 왕이다. 3달간 왕 노릇하다가 BC 597년 이차포로 때 바벨론으로 잡혀갔지만 옥에서 놓여나서 대접받으며 살다가 죽었다(왕하 25:27-30). 이것이 실질적으로 유다의 종말이다. 예수님의 족보상으로는 유다의 마지막 왕이다.

18. 오른손의 인장반지는 대단히 귀한 것이다. 지금도 본인이 아니면 인감증명서를 발급해주지 않는다. 이렇게 귀한 것을 어떻게 하겠다고 하시는가?

    천한 파기 취급을 당할 것: 이빨 빠진 사기 그릇은 깨서 버리는 것 외에 아무런 소용이 없다. 고니야의 모친도 함께 사로잡힐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당시에 고니야가 18세의 소년이었으므로 실권은 그 모친이 잡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란 추정도 가능하다.

19. 고니야는 무자할 것이라고 했지만 마태복음의 족보에는 아들이 있는데(마 1:12)?

    여기서 무자할 것이란 왕위를 잇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30). 실제로 그에게는 7명의 아들이 있었고(대상 3:17-18), 손자 스룹바벨은 총독으로 귀환하기도 했다(대상 3:19).

    [참고]
    여호야김: 유다 왕 요시야의 둘째 아들이다(대상 3:15). 애굽 왕 바로느고는 여호아하스(살룸) 왕을 사로잡아 가고 대신 그의 형인 엘리야김을 `여호야김'으로 개명시켜 유다 왕으로 삼았다(왕하 23:34). 부왕 요시야가 바로느고와의 싸움에서 전사했을 때, 원래는 그가 왕위를 이어야 했는데, 그는 바로에 복종하는 것을 찬성한데 반하여 동생 여호아하스는 유대에서 반애굽당에 동정하는 한편 그들을 지도했기 때문에 백성은 그를 왕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바로느고는 여호아하스를 제거하고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웠다. 때에 그의 나이 25세였다. 여호야김은 정복자로부터 부과된 금은 등 공물을 백성들에게 부과하여 조직적으로 징수하였다. 이렇게 돈을 주고 산 평화도 오래 계속되지 못했다.

    바로느고가 승리한 지 만 3년 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갈그미스에서 바로느고를 격파하고 “애굽 하수에서부터 유브라데 하수까지 애굽 왕에게 속한 땅을” 다 빼앗았다(왕하 24:1-7). 그렇기 때문에 여호야김은 바로느고 대신에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않으면 안되었다. 여호야김은 내정에 있어서 압제를 행했으며, 불의와 불공평으로 노동을 강요하였다. 또 이기적이고 사치 생활을 했으며, 탐람과 무죄자의 피흘림과 강포를 자행하였기 때문에 예레미야 선지자의 신랄한 비난을 받았다(렘 22:13-19). 그는 이렇게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또한 우상을 숭배하였다. 예레미야는 그가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무서운 징계가 내린다는 뜻을 두루마리에 썼으나, 그는 오히려 이를 비웃고 여후디가 3편, 4편을 낭독하면 소도(小刀)로 그것을 베어 화로불에 던져 불살라 버렸다. 여호야김은 이렇게 불경하게도 하나님의 예언을 소각했다. 부왕 요시야는 율법책을 발견하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백성에게 이를 낭독한 후에 죄를 자복하고 우상을 숙청하므로 크게 부흥했건만, 여호야김은 이와 정반대로 방백들의 만류도 듣지 않고 하나님을 무시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다시 기록하고 여호야김에 대해 예언했다(렘 36장). 그의 치세 제6년인가 제7년(바벨론에 예속된지 만 3년)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으로 침공해 왔으므로 그는 굴복하고 성전 기구의 일부도 빼앗겼다. 그는 3년 후 반역했다. 주위의 외적들은 늘 그를 몹시 괴롭혔다(왕하 23:34,36, 24:1,2, 렘 46:2). 끝내는 바벨론에게 패망되어 쇠사슬에 결박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대하 36:6). 그는 예루살렘에서 11년 동안 치리했으며, 그의 최후는 참으로 비참하여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 밖에 던지우고, 나귀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라고 예언되었다(렘 22:19, 36:30). 그의 최후가 어떠했는지는 분명치 않다(왕하 24:6, 대하 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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