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장


1. 예레미야의 사역 시기는 언제라고 하는가?

    유다왕 요시야 13년부터(BC 627) 유다 왕 시드기야의 제 11년 말까지(BC 586, 유다가 멸망하던 해): 대강 40년간으로 나라가 멸망하던 시기이다.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해도 예레미야가 유다 멸망 이후에도 사역을 좀 더 계속했다. 망해가는 나라의 불씨를 살리려고 애를 쓴 비운의 선지자이다. 나중에는 이러한 징계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바벨론에 대항하지 말고 항복하라고 권고하였다.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던지신다’이다.

    요시야 왕이 종교 개혁을 시작한 것은 즉위 12년째이며(대하 34:3)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고 종교 개혁을 시작한 것은 18년째이다(왕하 22:3-8). 예레미야가 부름받은 것은 요시야 13년이다(2). 종교 개혁이 막 시작되던 때이다.

2. 유다 말기의 왕은 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이다. 이들의 관계를 왕하 23-24장을 보면서 간단하게 정리해두자.

    요시야가 느고의 진격을 막다가 죽임을 당하자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었다(왕하 23:29-30, 29절의 ‘치고자’는 ‘돕고자’로 고쳐야 한다). 느고가 바벨론에 패하고 물러나면서 유대를 침략하여 여호아하스를 폐하고 여호야김을 세웠다(왕하 23:33-34). 바벨론이 득세하는 와중에(1차 침입) 여호야김은 죽고(대하 36:6-12, 왕하 24:6, 렘 22:19를 참고해서 재구성해야 한다)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되지만 바벨론의 2차 침입으로 사로잡히고 시드기야가 왕으로 세워졌다(왕하 24:14-17).

    요시야는 31년간 통치했고, 여호아하스(요시야의 아들)가 3달, 여호야김(요시야의 아들)이 11년, 여호야긴(여호야김의 아들)이 3달, 시드기야(요시야의 아들)가 11년을 통치했다.

3. 말씀을 뜻하는 히브리어는 ‘다바르’인데(2, 4) 이것은 말뿐만 아니라 ‘행위’도 포함되는 것이다. 실제로 예레미야는 말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예레미야의 행동과 삶 자체도 하나님의 말씀이었다(13, 18, 19, 51장). 히브리인들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우리 한국 성도들의 어떤 점이 이해가 잘 되지 않을까?

    말과 행동이 다른 것: 아마 미국 사람들은 매운(hot) 것과 뜨거운(hot) 것을 잘 구별하지 못하나보다. 히브리인들은 말과 행동이 잘 구별되지 않나보다. 우리는 말은 이렇게 하고 행동은 저렇게 하는 것이 아주 쉬운데?

4. 복중에 짓기 전이면 언제일까? 어머니와 아버지가 만나기 전일까?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해서 예레미야를 복중에 짓기 전에 알았을까?

    예레미야를 부른 것이 우연이나 즉흥적인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 있던 일이라는 뜻이다.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일을 하시기로 미리 작정하셨단 말이다. 어렵고도 힘든 일을 할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불러 이런 일을 맡기셨다는 사명감이다.

5. 왜 유다의 선지자가 아니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을까?

    하나님의 말씀이 유다만을 위한 것이 아니란 뜻이다. 예레미야가 전하는 메시지의 대상은 모든 나라라는 것을 의미한다(46-51장). 예레미야의 별명이 뭐냐니까 ‘눈물의 선지자’가 아니라 ‘열방의 선지자’란다. 일반적으로 부르는 별명은 눈물의 선지자이고 이것이 그의 삶을 잘 표현하고 있으므로 굳이 부정할 필요가 없다. 본문의 열방의 선지자라는 말은 별명도 고유명사도 아니다. 열방을 위한 선지자라는 뜻일 뿐이다.

6.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운 것에 대해서 예레미야가 걱정하는 것은 무엇이며 해결책은 무엇인가? (모세와 이사야의 경우와 비교하면?)

    말을 잘 못하는 것: 해답은 하나님의 말을 예레미야의 입에 두는 것이었다(9).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전하면 되는 것이다. 설교라는 것이 무슨 재주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전하는 것이 주목적이어야 한다. 예레미야가 말을 잘 못하는 것은 ‘기술이나 내용’의 문제인 반면에 모세의 경우에는 하드웨어 즉 ‘발성기관’의 문제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대언자 아론을 보내주셨다. 이사야는 죄의 문제였고!

7.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구원하시겠다고 하셨으니(8, 19) 예레미야는 이후에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는가?

    여기서 ‘구원하겠다’는 것은 천국에 가게 한다거나 고난이나 죽음에서 구하여 내서 행복하게 살게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함께 하시며 제대로 일을 하게 하겠다’는 뜻이다! 실제로 예레미야는 너무나 고통스럽고 슬픈 노래를 부르며 애절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은 다 감당했다.

8. 예레미야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함께 하며 구원하실 것이므로(8): 그러면 아무런 고난도 없는 걸까? 사실은 엄청난 고난을 겪는데... 유다의 선지자라 해도 걱정이 많을 터인데 열방의 선지자? 어떻게 당시의 거대한 나라들에 말씀을 전한다는 말인가? 두려워할 이유는 충분한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예레미야의 입에 두었으므로(9): 선지자는 받은 말씀을 그대로 전하기만 하면 된다. 오늘날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듣기 위한 노력이 앞서야 하는 것 아닐까? 그냥 열심으로 밀고나가?

9. 10절 동사(뽑고, 파괴하고, 파멸하며, 넘어뜨리고, 건설하고, 심는 것)의 목적어는?

    열국: 앞의 네 개는 파괴, 뒤의 두 개는 건설적인 단어다. 초기에는 심판을 주로 외치고 후기에는 회복을 말씀하는 그의 메시지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10. ‘당연하지’라는 말 대신 ‘당근이지’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질문에 대답 대신 말없이 당근을 보여주어도 무슨 뜻인지 알아 듣는다. 하나님께서는 당근 대신에 무엇을, 왜 보여주셨는가?

    살구나무(dqev;) =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반드시 지킨다(dq'v;)는 뜻이다: 살구나무란 말이 ‘지킨다’는 말과 자음이 같고 모음이 비슷하다. 일종의 word play이다. 마치 ‘당연하지’ 대신에 ‘당근이지’가 쓰인 것처럼 ‘살구지’ 하면 ‘반드시 지키지’라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접시꽃 당신이 아니라 살구꽃 당신이다. 살구라기보다는 아몬드, 밤, 호두와 같은 견과류이다.

11. 북에서부터 기울어진 끓는 가마 환상의 의미는? 그런 일이 생기는 이유는?

    북방 모든 민족이 유다의 성읍들을 칠 것: 실제로는 동북쪽이나 서북쪽일지라도 쳐내려오는 통로는 항상 북쪽이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심(16): 이민족의 침입과 점령이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예언하는 것이 백성들이 듣기에는 매국노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점령을 당하고 주권을 빼앗겨도 일시적인 현상으로 여겼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런 메시지를 전하는 예레미야를 백성들이 그냥 두었을까?

12. 아무리 그렇지만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징계하기 위해서 사방의 적들을 불러들이는가?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얼마나 참고 참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신명기(28:15-68), 레위기(26장)에서부터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거듭거듭 경고한 이래 수많은 선지자들이 경고를 거듭했고 작은 징계를 수도 없이 가했음에도(특히 사사기) 끝내는 이런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다윗에게 ‘위가 영원하리라’고 하신 약속을 지키려고 얼마나 노력하셨는지 모른다.

13. 예레미야가 심판을 선포해야 할 때 만약 그들을 두려워하면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께서 선지자로 두려움을 당하게 한다(17): 네가 그들을 두려워하면 진짜 두렵게 만들어 버린다. 용기를 내라! 두려워하면 오히려 용기를 줘야 할텐데...? 겁을 내니까 무서운 법이다. 겁을 내지 않으면 무섭지 않다. 여호수아서에서 이스라엘이 싸움을 시작하면 이기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셨다. 싸움을 시작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패하고 말았다.

14. 열방의 선지자로 세움을 입었지만 그대로 예레미야가 주로 상대해야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유다 왕들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18): 주로 지도층들을 상대해야 했으니 그만큼 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15. 모든 사람이 예레미야를 칠지라도 이기지 못하리라?

    나중에 예레미야가 옥에 갇히고 온갖 고생을 다 하는데? 그를 치던 자들이 먼저 당하고 조소하던 자들이 더 큰 조소를 당하게 된다. 진정한 구원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구원이다.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