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9장 |
시청각 교재로 사용하려고(=예언의 행동화, 행동화된 예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내릴 심판은 마치 오지병을 깨는 것과 같을 것(11)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시청각 교재이다.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이런 도구를 많이 사용하셨다. 때로는 선지자의 삶 자체를 그렇게 쓰시기도 하셨다(이사야, 호세아, 예레미야). 각종 제사나 성막이나 절기들이 다 그렇다. 2. 예레미야가 제사장의 어른들과 백성들의 어른들을 호출해서 데리고 갈 정도라면 제법 권위가 있었던 모양인데? 예레미야가 뭐 하던 사람이었지? 예레미야도 제사장이었다(1): 제사장 중에서 특별한 계시를 받았는데 다른 제사장이나 백성들이 이 계시의 내용을 싫어했다. 따라서 예레미야와 동행하던 어른들도 좋은 의미로 따라간 게 아니라 책잡기 위해서 따라갔을 것이다. 3. 하시드 문이 어떤 문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단다. 다만 뜻으로 풀이한다면 ‘질그릇조각의 문’이다(개역의 난하주). 그러면 왜 하필 ‘하시드 문 어귀 곁에... 가서’ 선포하라고 할까? 주변에 깨어진 질그릇 조각이 많이 있어서 오지병을 깨기 위한 배경으로 알맞은 곳이었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시청각 교재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배경까지 고려하셨다.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셨다. 우리는? 4. 귀가 진동하거나(3) 귀가 울린다(삼상 3:11, 왕하 21:12)는 표현은 어떤 의미일까? 맨 정신으로는 그 말을 들을 수 없어서 귀를 틀어막아야 할 정도의 재앙이 임할 것이라는 말 아닐까? 도대체 어떤 재앙이기에 그럴까(6-9)? 외적의 침입으로 인한 엄청난 살육과 예루살렘의 멸망: 후일에 유다가 멸망할 때 이런 모습으로 처참하게 파괴되고 만다(바벨론과 로마). 5. 하나님의 이름은 다양하다. 여호와(스스로 있는 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만군의 주 여호와, 전능하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질투하시는 하나님... 어떤 이름을 쓰시느냐는 것은 상황과 관련이 있다. 본문에는 어떤 이름이 어떤 상황에서 쓰이고 있는가?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아주 공식적인 직함이다. 개인적인 친근함이 배제된 표현이다. 개인적인 정이나 관계를 접어두고 행한대로 처벌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모습이다. 6. 이스라엘이 엄한 처벌을 받게 된 이유는 ‘이 곳을 불결케 했다’는 것이다. 이곳이 어딘데? 성전이나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 혹은 가나안: 요는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우상에게 바쳤다는 말이다. 친구가 준 선물을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는 것도 곤란한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특별히 골라서 준 땅을 그것도 우상에게 바쳐? 7. 이스라엘의 죄를 간단하게 말하면(4-5)? 하나님을 버린 것: 그 결과로 ‘이곳을 불결케 하며 이곳에서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무죄한 자의 피로 이곳에 채웠고,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다’ 이는 하나님께서 명하거나 뜻한 바가 아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필연적으로 이런 현상이 따른다. 사람은 속에 뭔가를 채우지 않으면 안 되는 영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8. 도벳이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칭하지 아니하고 살륙의 골짜기라 칭하는 날이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어떻게 끔찍한 선언일까? 지명이 바뀌는 일이야 흔히 있던 일 아닐까? 참고로 도벳은 인신 제사를 드리던 곳이며 어원이 ‘불사르는 곳, 혹은 불이 타오르는 곳’이란 의미로 추정된다. 단순하게 지명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그럴만한 사건이 있을 것이란 말이다: 인신 제사를 드릴 때는 그 이름이 나름대로 거룩한 이름으로 여겨졌겠지만 장래에는 한 두 사람을 죽이는 장소가 아니라 수 많은 사람이 처참하게 죽게 될 것이라는 경고이다. 9. 하나님의 심판으로 외적이 쳐들어 오더라도 잘 막아내면 될 것 아냐? 다른 신들을 섬기면서도 국방을 튼튼히 하면 될 것 아닌가? 하나님께서 모계(謀計 모략과 계획)를 무효케 하시면 아무리 용을 써도 소용이 없다: 열심히 장사해서 큰 돈을 벌 수는 있을지 몰라도 생명은 연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의 지략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하나님께서 도우시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것이다(렘 9:24, 잠 9:10). 10. 죽으면 그만이지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 짐승의 밥이 되면 더 고통스러운가? 끔찍하게 살육을 당한 것이라는 말: 죽을 때 죽더라도 정상적인 장례가 치루어지지 않는 것을 더 수치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여기서는 장례를 치러줄 사람도 없을만큼 끔찍한 살육이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1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그 아들의 고기, 딸의 고기를 먹게 하고 또 각기 친구의 고기를 먹게 하겠단다(9).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이미 과거에 있었다(왕하 6:24, 북이스라엘과 아람과의 전쟁 때): 후일에는 바벨론이 유다를 공격할 때(애 2:20, 4:10), 로마가 예루살렘을 점령할 때 이런 일이 발생한다. 이미 레위기 26:29나 신명기 28:53에 예고되었던 일이다. 아무리 예고해도 말 안 듣는 백성에게는 어쩔 수 없나보다. 12.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하필이면 오지병을 깨는 것과 같다고 하는 것은 심판의 어떤 특징을 보여주는가? 돌이킬 방법이 없다(=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나니): 과일은 흠이 나도 일부만 버리고 먹을 수 있다. 어떤 것은 썩혀서 먹기도 한다. 고물로 처리할 수도 있다. 오지병은 깨어지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을 뿐 아니라 회복이 불가능하다. 말하자면 철저하게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과연 그렇게 되었는가? 좁게 보면 정말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넓게 보면 하나님은 깨어진 오지병마저 다시 복원하시는 분이시다. 13. 오지병을 깨듯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면 이 성은 도벳같이 될 것이란다(12). 도벳이 어떤 장소길래 그렇게 말씀하실까(11c)? 공동묘지: 원래는 우상을 섬기던 사당이 있던 명승지였겠지만 매장할 자리가 없도록 도벳에 장사하면 도벳은 공동묘지나 마찬가지다. 이 성을 공동묘지로 만들어버리겠다는 것은 이 성이 시체로 가득하게 될 것이란 말과 같다(7-9, 7:32-33). 14. 14절의 ‘도벳 땅처럼 되리라’는 말씀의 주어는 누구(무엇)인가? 그러면 이 말의 의미는? 예루살렘 집들과 이스라엘 왕들의 집, 산산히 부숴짐: 도벳 땅은 하시드문 가까이에 있는 곳이다. 질그릇 조각의 문 말이다. 질그릇이 부숴져 아무 짝에도 쓸모없이 버려진 것처럼 유다의 집들도 그렇게 무너져 내릴 것이다. 12, 13절은 도벳의 변하는 모습을 염두에 두면서 동일한 내용을 묘하게 반복하고 있다. 신을 섬기던 성스러운 땅, 깨어진 질그릇을 버린 땅, 공동묘지의 변화가 바로 범죄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15. 이스라엘이 사람들이야 그렇다고 치고 이스라엘 집들이 이렇게 처참하게 부숴져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집들이 그 집 위에서 하늘의 만상에 분향하고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더러워졌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죄지은 놈들이야 사람이지 집이 무슨 죄가 있다고? 주인을 잘못 만나서 그렇지! 진짜 싫어지면 꾸중도 직접 대놓고 말하기 싫을 때가 있다. [ 19:14-20:6절까지 한 단락이다 ] 16. 도벳에서 돌아와 여호와의 집 뜰에 서서 모든 백성에게 말하였단다. 그러면 도벳에서는 누구에게 말하였는가?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1): 17. 도벳에서 행한 말씀과 성전 뜰에서 주신 말씀을 비교해보라. 성전 뜰에서 행한 말씀은 도벳에서 예언한 내용의 요약이다: 내용이 달라질 리가 없다. 18. 목을 곧게 하는 것과 말을 듣지 않는 것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소가 멍에를 메지 않으려고 뻣대는 것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이다: 우리말의 목에 힘준다는 표현은 고개를 숙이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점에서 내용상으로는 비슷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