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7장


1. 끝 부분에 금강석을 붙인 것은(요즈음은 대체로 인조 금강석이겠지만) 유리칼, 레코드판의 바늘 등인데 그 옛날에 이런 게 있었네! ‘끝에 금강석을 붙인 철필’은 용도가 무엇일까?

    아마도 단단한 바위에 글을 새기기 위한 것일 게다: 바위에 금강석 철필로 새겨놓은 것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유다의 죄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금강석 끝 철필이 중요한 게 아니고 바위에 새긴 것처럼 도무지 지워질 수 없는 유다의 죄를 주목해야 한다. 그러면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다는 말인가? 일단은 그렇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 한(31:31-34).

2. 유다의 죄를 하필이면 마음 판과 단 뿔에 새겼을까?

    용서 받아야 할 곳이 마음이고 용서하기 위한 과정에 필요한 곳이 단 뿔이다. 마음은 하나님께서 감찰하시는 곳이고 단 뿔은 죄를 용서하는 곳이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죄를 용서하려고 해도 죄가 감추어지지 않는다.

3. 어른들이 아이들 몰래 나쁜 짓을 하면 들키지 않을까? 2절과 관련해서 생각해보자.

    어쩌다 몰래 몰래 하는 일은 숨길 수 있지만 유다가 한 짓거리는 자녀들도 훤하게 기억할 정도였다(2). 심했다는 말이다.

4. 요즈음 식으로 말하면 온 땅에 깔린 게 죄다! 그로 인한 벌도 요즈음 식으로 말하면?

    재산 몰수(3), 상속불가(=기업에서 손을 뗌, 4a: 대주주가 손을 떼고 나면 껍데기만 남는 회사가 되듯이), 종살이(4b). 16장과 관련해서 생각해보면 16:1-9는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고 16:10-17:4절은 그 이유이다.

5. 사람을 믿고 혈육을 의지하는 게 죄인가?

    사람은 믿어야 한다. 문제는 여호와를 떠나는 것이다. 여호와를 떠나면 다른 그 무엇도 죄가 된다. 여호와의 계명을 따라서 사람을 믿고 혈육을 의지하는 것은 복이다.

6. 하나님을 떠난 저주받은 인생은 사막의 떨기나무 같다는데 사막의 떨기나무가 어때서? 때로는 지친 나그네의 휴식처가 되기도 하고(창 21:15) 하나님께서 나타나시기도 한 곳인데(출 3:2)?

    물가에 심기운 나무(8)와 대조적이다. 더위가 올지라도, 가물어도 걱정이 없는 물가의 나무와 달리 메마르고 가지만 앙상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7. 사막의 떨기나무가 보지 못하는 좋은 일이 무엇일까?

    나무가 많은 가지가 벋고 잎이 푸르러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8절).

8. 돈 때문에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고 해서 돈이 나쁜 것이 아니다. 돈을 잘못 다루는 사람이 나쁘다. 원인은 사람에게 있다. 사람의 여러 가지 잘못도 근원을 찾아보면 어디가 잘못되었기 때문일까?

    진짜 부패한 것은 보이지 않는 마음이다(9): 다른 것도 부패하지만 마음이 더욱 부패하였다기보다는 마음이 부패하였기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이 부패한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다. 그래서 마음은 신앙의 좌소라고 한다. 이 곳에 부패한 본성이 자리 잡으면 그 사람이 하는 모든 짓이 악할 수밖에 없다. 이 곳에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 마음이 부패한 것을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은 아신다.

9. 하나님은 심장을 살피고 폐부(폐, 혹은 마음의 깊은 속)를 시험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면 사람과 어떻게 다른가?

    공의로운 심판을 행하신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는 없다는 뜻이다. 사람은 동기보다는 결과를 보고 판결을 하지만 하나님은 동기까지 다 보신다는 말이다. 지금은 심장이나 폐를 들여다보거나 상태를 쉽게 알 수 있지만 옛날에는 도무지 들여다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시절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10.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한단다.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신가?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심판하실 때는 철저하게 보응하시는 분이시다. 다만,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방법대로 따르는 자에게는 그 보응을 대신 갚아줄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다른 방법을 제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거부하는 자에게 심판하실 때가 되면 철저하게 심판하신다.

11. 자고새가 낳지 않은 알을 품으면 어떻게 되나?

    중년에 떠난다: 아무리 사랑하고 정성을 쏟아도 결국은 허무한 짓이다. 불의로 치부한 것은 결국 허무하게 사라지고 만다. 한 때 국민적 영웅이었던 황 모 교수의 처참한 결과를 보라. 전직 대통령들, 고위직 관리들, 샐러리맨의 우상이었던 재벌 회장... 최근에만도 너무 많은 별들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12. 심판이 있다고, 불의한 방법으로 애쓰고 노력해도 허무할 것이라고 아무리 경고하고 외쳐도 듣지 않으면 선지자가 할 일은 무엇인가?

    기도하는 수밖에! 선지자의 간구이다. (12-)

13. 기도는 무엇으로 시작해야 하는가?

    하나님을 부름으로: 영화로우신 보좌여 원시부터 높이 계시며 우리의 성소이시며(13)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14. 선지자는 하나님을 어떤 분이시라고 하는가?

    영화로우신 보좌, 원시부터 높이 계시는 분, 우리의 성소(12), 이스라엘의 소망, 생수의 근원(13): 이런 분을 떠나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스라엘이 이런 하나님을 떠나다니! 영원한 것은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의 가장 큰 특징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자고새가 품은 알처럼, 흙에 기록된 말처럼!

15. 흙에 기록된다는 말은 무슨 표현과 대조적인가?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한 것: 얼마 못 간다. 바람이 불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생수의 근원이란 마르지 않는 샘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것을 떠났다는 것은 이내 목이 마를 것이란 의미이다.

16.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렸다고 고해바치더니(?) 느닷없이 고치라니(14)?

    하나님을 버리는 것은 하나님만 버리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를 버림이요, 선지자를 버린다는 것은 선지자로 하여금 온 몸에 멍이 들도록 두들겼다는 말이다(15).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으니(16)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는 말이다. 영육간에 흔들리지 않을 재간이 없다. 갈멜산상에서 싸우고 이내 낙심해서 도망가던 엘리야를 생각해보라. 선지자도 하나님께서 치유하시고 구원해주시기를 소망한다.

17. 선지자가 하나님을 말씀을 외치는데도 여호와의 말씀이 어디 있느냐고(15)?

    선지자가 전하는 말씀을 믿지 않고 오히려 조롱했다는 말이다. 선지자가 외친 말씀은 이 성이 멸망당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조롱하는 자들이 ‘무슨 증거가 있느냐?’고 핍박을 했지만 얼마 후에 그들은 그 증거롤 체험하게 된다. 체험할 게 따로 있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던 자들이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어떻게 그렇게 끔찍한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모르는 게 죄지!

18. ‘내 입술에서 나온 것이 주의 목전에 있나이다’라는 말을 쉽게 고친다면?

    내가 그릇되게 전하지 않았음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19. 선지자가 재앙의 날을 부르고, 멸망하기를 바라는 것이 온당한가(18)? 더구나 자신의 구원을 바라면서(14)? 하나님께서 심판하려고 할 때 그것을 말리던 모세와 어떻게 다른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라는 말이지 내 원수를 갚아달라는 말이 아니다. 재앙의 날도 선지자는 결코 원하지 않았다(16). 선지자가 되는 것조차 자신이 원한 것이 아니었다(1:6-9). 도무지 다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니 이렇게 해서라도 자신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이었음을 입증하시라는 말이다. 모세는 그것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님을 알고 말렸다. 반면에 예레미야는 더 이상 어쩔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렇지? 예레미야가 얼마나 아팠을까를 생각하는 것이 옳다.

20. 선지자가 이렇게 간구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은 무엇인가?

    또 다시 외치라: 스스로 삼가서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지 말라. 안식일을 지키지 않아서 조상들이 당한 고난을 자초하지 말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는 기본이다.

21. 왜 하필이면 유다 왕들의 출입하는 평민의 문과 예루살렘 모든 문에 서서 이르라고 하시는가?

    모든 계층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라는 의미이다.

    평화의 왕이 이 문으로 들어오실 것에 대한 상징을 전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이기에: 안식일에 짐을 싣고 문을 통과하는 그들에게(24)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이런 짐 대신 평화의 왕이 들어오실 것이라(25)고 외치기에 좋은 장소이다. 전하는 메시지의 내용이 말씀을 전하는 장소와 결합되면 시너지 효과가 나타난다.

22.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할 때의 결과와 청종치 아니할 때 일어나는 일을 비교하면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일까?

    여호와의 집의 존재 유무: 예루살렘 성의 존재 유무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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