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1장


1. 좋은 말도 많을텐데 툭하면 저주 얘기일까(3)?

    이스라엘의 상황이 ‘좋은 말로 얘기할 때’가 아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극에 다다른 상태에서 어떻게 좋은 말을 기대하겠는가? 다만 그 분노를 극도로 자제하시면서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의 빛을 주시는 것만도 감지덕지해야 할 판이다. 저주나 심판이 있음을 전하라고 하는 것은 그래도 아직은 완전히 포기한 것이 아니란 뜻이다.

2. 쇠풀무 애굽이란 무슨 뜻인가? 두 가지 측면을 생각해보자. 참고) 왕상 8:51, 신 4:20.

    비참했던 노예 생활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견디어 내면 질 좋은 무쇠를 만들어 내는 도구이기도 하다. 왕상 8:51(철 풀무), 신 4:20

3.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명령을 좇아 행하는 것: 출애굽기의 십계명 서문과 어떻게 다른가? 하나님께서 처음 이스라엘을 불러내셨을 때에는 이스라엘이 할 일이 별로 없다. 갓난 애기와 같으니까! 그저 예, 예 하는 수밖에! 그러니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우선이다. 그래서 ‘너희는 내 백성이니라’에 강조점이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그 약속을 한 지 수백년이 흐른 지금에는 이스라엘이 답을 할 차례이다. 어른이 된 자녀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기에 이렇게 순종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4. 출애굽 때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약속하신 것)이 무엇인가? 또 조상들에게 맹세한 내용은 무엇인가?

    이스라엘에게: 명령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라는 선언이었다.
    조상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리라.

5. 위의 두 가지 맹세(언약)를 하나님께서는 잘 지키셨는가?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이나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언약의 당사자로서 하나님은 약속을 다 지켰다. 반면에 이스라엘은 아직도 지키지 않고 있다. 5절의 ‘오늘날이 그것을 증거하느니라’는 말씀은 ‘오늘 너희들의 모습이 바로 그 증거니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셨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지키지 않아서 저주를 받을 것이다(3).

6. 약속을 했는데 한 사람은 약속을 지켰다. 그러면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우선 어떻게 해야 하나?

    지키라고 졸라봐야지(7): 언약을 지키지 않는 이스라엘에게 출애굽 때부터 지금까지, 간절히, 부지런히 경계를 했지만 끝까지 듣지 않았다. 맞아도 싸지!

7. 이 본문에서 유독 언약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2, 3, 4, 5, 6, 8, 10) 이유가 무엇일까? 7개의 표현 중에서 느낌이 다른 것을 하나 지적한다면?

    이스라엘이 언약을 어겼음을 지적하느라고, 그래서 언약에 포함되어 있는 저주 조항이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강조하느라고. 언약의 의미가 다 동일하지는 않다. 특히 8절의 ‘언약의 모든 말’이라는 표현에는 저주에 관한 부분이 포함되었음을 말한다.

8. 우상숭배를 가리켜서 무엇이라고 표현하는가?

    반역(9), 언약 파기(10):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여기서는 절규)을 듣지 않는 것은 그들의 극심한 우상숭배 때문이다. 거리마다 우상이 넘쳐 났다. 어떻게 하나님의 온갖 은혜를 체험한 이스라엘이 이럴 수가 있을까?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은혜를 베풀지 않으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이 범죄한 인생의 본성이다(롬 1:28).

9.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민이 그 분향하는 신들에게 가서 부르짖어도 그 신이 구원하지 못하는(12) 이유가 무엇인지 11절과 관련해서 생각해보자.

    아무리 부르짖어도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신다는 뜻이다: 우상이 구원을 베풀지 못한다는 이런 질책의 대부분은 우상의 무능을 탓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아무리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듣지 않으시니 차선책으로 우상에게 부르짖게 될 것이지만 소용없을 것이라는 뜻이 강하다.

    재앙을 내리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니 어디 가서 하소연을 하겠는가? 애당초 그 신은 무능하니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을 수 없다. 무능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니 어차피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심판을 어디 가서 하소연할 것이냐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내가 듣지 않겠다는데 누가 듣는다는 말이냐?

    결국 부르짖는 열심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부르짖느냐는 것이다. 대상을 잘못알고, 회개하지도 않고, 부르짖기만 하는 열심은 아무 소용이 없는 짓이다.

10. ‘기도하라’는 말씀이 성경의 곳곳에 있고 심지어 ‘기도하지 않는 것을 죄’라고까지 했는데(삼상 12:23) 어떻게 기도하지 말라고 하시는가?

    재앙을 내리기로 최종적으로 결심했다는 뜻이다.

11. 거룩한 제육이 그들에게서 떠났거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집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여전히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있었다. 우상도 섬기고 하나님도 섬기고... 15절은 뜻이 분명하지 않다고 난외주에 설명이 있다. 70인 역에는 ‘내 사랑하는 자가 가증한 일을 행하였거늘 내 집에 있음은 어찜이냐? 서원이나 거룩한 고기(물고기가 아니라 제육)가 죄악을 없게 하겠으며 혹 이것으로 피하겠느냐?’라고 번역했단다. 이스라엘은 차갑게 마음이 식어버린 애인에게 줄 선물 고르느라고 바쁜 사람인 셈이다.

12. 한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에게 ‘좋은 행실 맺는 아름다운 푸른 감람나무’라고 불렸다. 즉 ‘싱싱하고 푸른 감람나무’ 이었다. 극상품 포도나무이기도 했다. 이제는?

    벼락을 맞아 일부는 불에 타고 일부는 꺾인 나무: 큰 소동이 나고 불이 났다면 벼락을 맞은 것으로 보는 것이 무난해 보인다.

13. 16-17절에서 하나님의 대조적인 두 모습을 찾아보자.

    이스라엘을 심으신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벼락으로 때려버린 하나님: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무섭게 책망하실 때에도 겨우 도끼를 찍어버린다는 정도였는데 비하면 이것은 얼마나 혹독한 선언인가!

14. 여호와께서 선지자로 하여금 알게 하신 것은 무엇이며(19) 그것을 미리 알게 하신 의도는 무엇인가?

    대적들의 음모: 열매가 한창인 나무를 그대로 찍어버리듯이 선지자를 죽여버리자는 음모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미리 알게 하셨다.
    죽음을 두려워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 아나돗 사람들이 하는 말 ‘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 두렵건대 우리 손에 죽을까 하노라’는 위협에 굴하지 말라는 의도이다.

15. 아나돗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길래 예레미야를 위협하고 죽이려 하는가(21-23)?

    예레미야의 고향 사람들(렘 1:1), 솔로몬이 추방해버린 제사장 아비아달의 후손들이 살던 곳(왕상 2:26): 고향 사람들이 이러는 것은 가령, 고향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수 있다. 즉 예레미야의 메시지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자기들은 위대한 제사장의 후손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는데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악하다’는 말은 자기들이나 자기 고향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 것으로 여길 수 있다.

16. 예수를 가리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이라고 할 때는 죽음을 피하려고 하지도, 변명하지도 않는 것을 뜻하지만 선지자에게 이 표현이 적용된 것은 무슨 뜻인가(19)?

    ‘죽을 줄도 모르고 끌려가던 존재’라는 뜻이다. 대속의 개념과 상관없는 말이다. 소나 개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을 알지만 양은 모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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