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0장


< 10:1-18: 어리석은 우상 숭배 >
1. 배우지 말아야 할 열방의 길(풍속)은 무엇인가? (=무엇을 두려워 말라고 하시는가?)

    하늘의 징조와 우상을 두려워하는 것(=열방의 규례): 고대인들이 비정상적인 천체현상을 두려워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현대인들에게 운명, 사주팔자,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유성과 충돌도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는가!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자들에게는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팔자나 운명이 바뀐 사람들이다. 이 세상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심으로 끝이 임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일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2. 우상의 특징을 나타내는 표현들을 다 정리해보자. 결론은 무엇인가?

    벤 나무(3), 공장(기술자)의 손으로 꾸미고 든든히 한 것(3-4), 메고 다니는 것(5, 스스로 걷지 못한다는 뜻): 한 마디로 신이 아니라 ‘나무’다(8).
    갈린 기둥: 망치질로 다듬은 종려나무 기둥(용도는 일종의 허수아비)

3. 하나님과 우상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하는가?

    권능과 무능력(6-8): 열방의 지혜로운 자와 왕족보다 뛰어나신 분인 반면에 우상은 나무!
    창조자(11)와 피조된 재료로 만들어진 것(9).

4. 이 세상은 온갖 우상과 미신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점집이 사라지지 않고 미신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미신과 우상을 타파하는 유일한 방법이 무엇일까?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과 우상의 차이를 깨닫지 못하면 무엇을 섬기든 우상이고 미신일 수밖에 없다.

5. 다시스의 은박, 우바스의 금, 청색 자색 옷감, 지금 식으로 말하면 최고의 명품들이다. 이런 재료를 가지고 최고의 기술자가 만들었으니 얼마나 위대한 작품이겠는가?

    사람이 만든 것일 뿐: 그런 재료를 가지고 다른 것을 만든다면 명품이 될 수 있으나 신을 만든다면 무능한 우상일 뿐이다. 자신들이 만들고 그 앞에 엎드려 복을 빌고, 두려워하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인간 속에 들어 있는 절대자에 대한 의식(종교심)이 그릇되게 나타나는 탓이리라.

6.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우상의 무능에 대한 내용이 반복되는 것(2-5, 6-11, 12-18)처럼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말씀하시는 주체가 둘이고(하나님과 선지자) 선지자의 말에 대한 대상이 둘이기 때문이다(하나님과 백성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자(2-5) 그에 대한 선지자의 찬송(6-11)이 뒤따르고, 또 백성들을 향한 권고(12-18)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7. 하나님은 천지를 말씀으로 지으셨다고 하던데 여기서는 좀 다르네?

    같은 말이지만 우상과 대비시키느라고 좀 다르게 표현했을 뿐이다. 권능과 지혜와 명철로 지으셨고, 말씀으로 운행하신다. 반면에 우상은 거짓 것이요, 생기조차 없다.

8. 야곱이 하나님의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야곱의 것인가?

    야곱이 하나님의 것이어야 하지만(=이스라엘은 그 산업의 지파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은 야곱의 것이라’고도 하신다(16절의 야곱의 분깃. 참고, 창 15:1 나는 너의 상급이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주인이기도 하고, 소유물이기도 한 관계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관계이다.

9. 17절의 ‘에워싸인 가운데 앉은 자’와 18절의 ‘이 땅에 거하는 자’는 같은 사람이다. 이 사람들이 꾸러미(보따리, 짐)를 챙겨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먼 곳으로 포로되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에워싸인 가운데 앉은 자란 포위되어 갇힌 자라는 말이다. 대항하지 말고 잡혀갈 준비나 하라는 것이다.

10.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내어던지는 것도 단순히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깨닫게 하려고(18): 아무려면 자기 자식을 죽으라고 패는 부모가 있겠는가! 옛날에는 그랬는데 요즈음 세상은 하도 험악해져서 이런 말을 할 수도 없더라!

< 10:19-25: 슬픔과 중보 기도 >

11. 이제 선지자는 장차 당할 이스라엘의 처절함을 슬퍼한다. 징계받은 이스라엘의 모습을 어떻게 그리는가?

    장막이 훼파되었지만 세울 자가 없다. 자식도, 목자도, 양떼도 다 흩어졌다.

12. 장차 당할 처절한 모습을 바라보며 무엇이라고 기도하는가?

    징계하시되 완전히 멸하지는 마옵소서(분노하지 마옵소서): 더 이상 징계하지 말아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당할 수밖에 없는 징계요, 참을 수밖에 없는 상처이다.

13. 어디로 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걷는 자가 하는 것 아닌가? 인생길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과연 그러한지 성경 밖에서도 찾아보자.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생,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 운명과 마주 서서 부딪쳐 나간 사람들을 영웅시하는 것도 범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에 용감하게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인생길을 걸으려면 절대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분의 지도를 받아 걷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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