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3장


1. 많은 사람이 선생 되지 말라고? 괜히 이런 말을 해서 주일학교 선생님 모집하는데 애로 사항이 얼마나 많은가?

    선생 되지 말라는 뜻이 아니고 제대로 선생 노릇 하라는 말이다. 유대인들은 가르치는 자를 대단히 존경했다. 아마도 선생 되기를 원한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선생으로서 해야 할 일의 막중함보다는 선생이라는 권위나 명예를 노리는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동시에 미성숙한 성도들에게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한 상징으로 선생을 언급했을 것이다.

    ‘취직도 어려운데 목사나 할까? 취직이야 보장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라서 끔찍한 표현이 많이 나온다. 능력이 없어서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그렇게 공부하려거든 학교 때려 치워라’는 말의 본뜻은 학교를 그만 두라는 말이 아니다. 제대로 공부하라는 말이다. 말귀를 알아들어야지, 학교 그만두라 했잖아 하면서 정말 그만 두면 진짜 얻어터질지도 모른다.

2. 믿는 자에게는 심판이 없다던데 믿는 선생님은 심판이 있네?

    심판이라기보다는 책임을 묻는다는 뜻이다. 달란트를 맡긴 종에게 계산할 날이 있다는 것(눅 12:47-48)과 마찬가지다. 그게 무서워서 달란트를 받지 않겠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풍성하게 선물을 주시는 분이신지를 배우는 게 우선이다.

    맡긴 달란트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해서 이윤을 남기면 당연히 주인의 것이다. 그것을 종에게 주셨다. 한 달란트를 현재 화폐로 몇억원 정도(금 32Kg)로 상상해보라. 얼마나 큰 상급을 준 것인지. 십계명의 1000대와 삼, 사대도 마찬가지다. 비유컨대 잘 하면 상급을 백만원 주고 못하면 벌금으로 삼, 사 천원 내라면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안 하는 사람은 정말 바보다.

3. 야고보 자신을 포함해서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실수하는 인간: 신앙의 유무나 믿음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인간은 실수를 하는 존재이다. 실수하지 않는 분은 하나님뿐이시다. 주의해야 하고, 겸손해야 한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야고보는 이런 미성숙한 성도가 복음으로 말미암아 온전한 사람(2)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썼다.

4. 야고보에 따르면 선생은 물론 우리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흔하고도 심각한 실수는 무엇인가? 그게 왜 그렇게 심각한가?

    말로 하는 실수: 별 밑천이나 준비도 없이 쉽게 저지를 수 있는 반면에 결과는 치명적이거나 심각하기도 하다. 대상이 신체나 물건이 아니고 마음, 영혼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특히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선생은 더욱 더 그래야 한다.

5. 온전한 사람이란 의인이란 뜻도 아니고 완벽한 사람이라는 뜻도 아니다. 야고보가 말하려는 요점에 주의한다면 온전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행함이 따르는 믿음을 지닌 사람(성숙한 그리스도인):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은 말로서 형제를 실족케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6. ‘재갈, 키, 혀, 작은 불’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작은 부분이면서 전체를 좌우하는 능력을 가진 것들: 우리는 이런 것들이 으레 그러려니하고 잘 놀라지 않는다. 가령, 몸 전체를 뒤흔드는 꼬리가 있다고 상상해보라. 이 꼬리는 얼마나 대단한가? 우리의 혀가 이런 위력을 지녔다는 말이다. 이런 혀를 함부로 놀리면 엄청난 재앙을 초래한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5절의 ‘많은 나무’는 ‘큰 수풀’ 곧 산림이란 뜻으로 볼 수 있다. 큰 산을 태워버린다는 의미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 작은 것으로 전체를 통제할 수 있다는 의미도 있다(굴레 씌우리라, 제어하며, 운전하나니). 바로 다음에 혀는 길들일 수 없는 것이라는 얘기가 이어지지만 이 부분에서는 길들일 수 있는 것이라는 의미가 깔려 있다.

7. 5절의 ‘많은 나무’는 ‘큰 수풀’ 곧 ‘산림’을 의미한다. 혀는 큰 산을 태워버릴 수 있는 불이기도 하다. 산 하나를 홀랑 태워버릴 수도 있다. 그러면 산에 갈 때 이 불을 어떻게 해야 하나?

    맡겨 두고 가야지, 소지하는 것조차 금지다: 형제들을 대할 때 혀를 극히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함부로 ‘교만해서 그렇다’거나 ‘귀신이 씌었다’거나 ‘죄가 많아서 그렇다’거나 ‘하나님께서 택하시지 않은 백성인 모양이다’라고 말하지 않아야 한다.

8. 혀는 생각과 다르게 놀기도 하고, 생각없이 설치기도 한다. 사과하거나 화해하고 싶어서 만났는데 의도와 다른 엉뚱한 말이 튀어나와 사태를 더 악화시키기도 하고, 웃자고 한 마디 했는데 웃기는커녕 원수가 되기도 한다. 결국 혀로 인하여 엄청나게 고통을 겪기도 한다. 그런 사람에게 혀는 (        )이다.

    불의의 세계: 혀가 ‘악의 덩어리’ 혹은 ‘악으로 가득 찼다’는 의미이다. 재갈 먹이지 않으면 이렇게 위험하다. 6절의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는 말은 ‘자신도 지옥불에서 살라지느니라’는 말이다.

9.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 벌레, 해물이 어떤 점에서 혀와 대조를 이루는가?

    길들일 수 있는 것과 길들일 수 없는 것: 짐승을 길들이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가능한 일이다. 혀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정말 그럴까? 인간의 힘으로 안 되는 일이니 성령의 도우심으로 길들이라는 말이다. ‘말에 실수가 없으면 ... ’(2)이라고 하는 걸로 보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인데?

10. 혀에 무슨 원수를 졌기에 이렇게 심한 말을... 혀를 보고 뭐라고 하는가(6-8)?

    불(지옥불), 불의의 세계, 조련 불가, 쉬지 아니하는 악, 죽이는 독: 혀가 지닌 파괴력을 강조하는 말이다. 혀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했을 때 오는 결과가 이렇게 끔찍하므로 말로 형제를 실족케 말라는 것이다. 야고보의 독자들(미성숙한 성도들)에게는 분명히 혀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1:19-20, 1:26) 이렇게 강하게 말했을 것이다.

11. 하나님을 찬송하는 사람은 사람을 저주하지 못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만들어진 사람을 저주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저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2. 혀는 샘이나 무화과나무와 비교할 때 어떤 불가사의한 능력을 지녔는가?

    불가능한 일, 즉 동시에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 빛은 알갱이인가, 파동인가? 양립할 수 없는 두 성품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빛이다. 현재도 불가사의한 일이다. 우리 혀가 그렇다!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저주하는 것이 그 정도로 기묘한 일이다.

13. 야고보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무화과나무가 감람나무 열매를 맺는 것을 보았느냐? 그런데 너희는 어떻게 무화과나무이면서 감람을 맺느냐? 짠 물이 단 물을 내는 것을 보았느냐? 너희가 그렇게 능력이 탁월하냐?’ 이 질문들의 요지는 무엇인가?

    너희가 입에서 짠 물을 내고 있다면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저주의 말을 하고 있다면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마치 율법의 하나를 무시하는 것을 보면 전체를 무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저주의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다른 좋은 말은 전부 엉터리다.

14. 함부로 저주의 말을 하는 혀에 대해서 신랄한 비난을 퍼붓더니(2-12)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진다(13). 여기선 무엇을 말하려고 하기에 분위기를 전혀 다르게 만드는지 혀에 관한 부분과 대조적인 핵심 단어를 지적한다면?

    온유: 지혜있는 자는 온유한 자이다. 함부로 말을 해서 분란을 일으키거나 저주하지 말고 지혜있는 말로 온유함을 나타내라. 어설픈 지혜를 가진 사람, 즉 헛똑똑이가 씨끄러운 법이다. 진짜 지혜로운 사람은 그렇게 떠들지 않는다(잠 15:1).

15. 많이 선생되지 말라는 말로 3장을 시작했는데 갑자기 혀에 대해서 잔뜩 열을 내다가 이제 지혜에 관한 말을 하는 것은 이 지혜가 선생되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 아닌가?

    선생이 되려는 사람은 지혜로워야 하고, 온유해야 한다: 혀에 대해서 열을 낸 것은 선생될 자가 선생 노릇을 잘 못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셈이다.

16. 자기 속에 시기와 다툼이 있는데 그것을 자랑하는 사람이 있을까?

    인내와 순종보다는 반항과 싸움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이 더 많다: 싸우자고 선동하는 것이 순종하거나 용서하자는 것보다 훨씬 더 잘 먹혀들어가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더 자랑스럽게 여기기 때문이다. ‘남자가 싸울 때는 싸워야지’ 웬지 이런 말은 멋있어 보인다. 그러나 시기와 다툼을 일으키는 지혜는 지혜가 아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기고만장한 인물이 창 4장의 라멕이다. 당대 최고의 인물이었지만 가장 어리석은 사람인 것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가진 자만 알 수 있는 일이다.

17. 야고보가 말하는 지혜는 일반적으로 머리가 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물론 공부 잘 하는 머리도 아니다. 어떤 지혜인가?

    하나님을 아는 것: 위로부터 난 지혜(17)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행하는 지혜를 말한다(잠 9:10, 사 33:6).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위대한 일을 해도 지혜로운 것이 아니다. 좋은 일을 많이 하면서 시기와 다툼이 일어나는 것도 결국은 그것이 지혜가 아니란 증거이다. 장사하는 사람이 교회에 헌금하고, 성당에도 헌금하고, 절에도 시주하는 것을 지혜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보기에는 어리석음의 극치이다.

18. 세상적 지혜와 위로부터 난 지혜를 서로 대조해보라.

    세상적 지혜: 시기, 다툼, 자랑, 거짓 → 요란, 모든 악한 일.
    위로부터 난 지혜: 온유, 성결, 화평, 관용, 양순, 긍휼, 선한 열매, 편벽과 거짓이 없음 → 화평, 의의 열매.

19. 야고보의 은 ‘에 재갈을 물리자’는 이다. 이가, 이가?

    말: 국어사전에 ‘말’의 의미를 찾아보면 적어도 10개 가까이 나온다. 이 질문과 답에는 겨우 세 개 밖에 사용하지 않았으니 너무 야단치지 마시라(2, 2, 2, 1, 3, 2,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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