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1장


1. 야고보는 누구인가?

    주의 동생 야고보(갈 1:19, 행 12:17, 15:13-21, 21:18, 고전 15:7, 갈 2:9, 12): 당시에는 야고보란 이름이 아주 흔했다. 주의 동생 야고보는 오랫동안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육신의 형인 예수를 하나님과 동급에 놓은 것(1)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음을 나타낸다.

    그 외에 12제자 중의 하나인 요한의 형 야고보는 44년경에 헤롯 아그립바에 의해 순교했으며(행 12:2),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마 10:3)는 예수님의 12 제자 중 하나였다는 것밖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만일 그가 이 편지를 썼다면 자기를 ‘사도’라고 소개했을 것이다.

2.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는 누구를 가리키는가(참고, 2:2, 5:7)?

    팔레스틴 주위에 흩어져 있는 믿는 유대인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졌고(2:1) 그 믿음 때문에 고난을 받고 있었으므로(1:2-4, 12-18) 모든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2:2(회당), 5:7(이른 비와 늦은 비)를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온 세상의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다만, 현재에 적용한다면 12이면서 하나인 이스라엘, 즉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하나된 교회를 가리킨다.

3. ‘시험을 이겨내라! 참아라!’도 아니고 기뻐하라고?

    시험이 곧 시련, 연단이기 때문이다(2-3, 롬 5:3-4): 그리스도인들은 힘든 현실보다는 그 현실이 가져다 줄 미래를 보고 사는 사람들이다(롬 8:18). 등산처럼, 힘이 드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힘드는 것 자체를 즐긴다. 힘들지 않으면 재미가 없다. 곧 믿음의 시련은 인내를 만든다. 인생이 시험의 연속인 것처럼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불평하고, 짜증낼 이유가 없다. 합격하고 나면 다음 단계의 시험이 있고, 떨어지면 재시도 쳐야 한다. 가장 한심한 사람은 ‘언제 시험 쳤는데?’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어차피 치러야 할 시험이 있는 줄 아는 사람은 시험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4. 온전한 신앙인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많은 것이 요구되겠지만 인내없이 온전하게 될 수 없다: 인내는 온전한 신앙인이 되는 데에 필수적이다(마 5:48). 스스로 자제할 줄 모른다면, 성질나는 데로 행동한다면 결코 온전한 신앙인이 될 수 없다. 여기서 ‘온전’이란 성숙을 뜻한다. 마치 견습공이 훈련과정을 다 마치고 정식으로 일꾼이 되는 것처럼.

    구비: 모든 조건에서 완전함(제사장이나 희생제물에서 요구되는 자격을 가리키는 말이다)

5. 야고보서에는 윤리적이라고 할만한 교훈이 많다. 그 중에서도 제일 먼저 언급한 것이 시험에 관한 것인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이 이런 저런 시험에 직면해 있었기 때문이다.

6. 지혜가 부족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어떤 지혜를 말하는 것일까? 설마 학교 성적이 나쁜 사람을 가리키지는 않겠지?

    시험을 당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 시험에 굴복해서 신앙을 저버리지 말고 먼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서 시험을 이겨내라는 의미이다. 시험에 대해서 말하다가 바로 지혜를 언급하는 것은 그럴 때일수록 지혜롭게 처신해야 하기 때문이다.

7. 선생님들이 강의 중에 가급적 쓰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면 ‘알았니?’ 하는 질문이다. 어떤 분들은 말끝마다 사용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습관적으로 ‘예’ 하지만 다른 방법으로 확인을 해야지 이렇게 물어서는 안된다. 선생님이나 부모가 질문하는 아이들에게 무심코 하기 쉬운 말이 있다면 무엇일까? 하나님은 그러시지 않는다.

    그것도 모르냐?: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지혜가 부족하여 묻는 아이들에게 쉽게 뱉을 수 있는 말이다. 대단히 위험한 말이다. 하나님은 꾸짖지 아니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도 배우자.

8. 예수님께 병을 고치러 간 사람들은 병도 고치고 구원도 받았다. 예수님을 한번 만나 보기를 소원했던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났을 뿐 아니라 자기 집에 모시게 되었고 온 집안이 구원을 얻었다. 불구경 갔던 모세는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고향을 떠난 아브람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이들을 이렇게 대접하는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이라고 할까?

    후히 주시는 하나님

9. 의심하면서 기도하는 사람은 비유컨대 선생님께 ‘설마, 선생님인들 이런 문제를 풀 수 있겠어요?’하고 묻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렇게 물으면 어떻게 될까?

    아는 것도 제대로 안 가르쳐 주고 야단맞을 가능성이 높다: 믿음없이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거의 이런 수준 아니겠는가! 두 마음을 품은 자요, 두 주인을 섬기는 자이다.

10.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은 무슨 의미인가?

    정함이 없다: 행동이 불안정하고 흔들린다. ‘믿고 구했는데 안 주시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바로 정함이 없는 불안정 마음이다. 찬송가에서 ‘바다 물결같이 내게 임하니’라고 하는 것은 역동성, 곧 생기발랄함을 가리킨다.

11. 높고 낮음의 기준이 무엇인가?

    여기서는 재물같다.

12. 부한 형제가 자신의 부유함에 대해서 자랑하지 말라고 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곧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부는 것은 순간적이기도 하고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곧 사라질 것 대신 영원을 준비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화무십일홍이라던가? 모란이나 목련이 아름다우나 생명이 길지 않다. 어떤 시인은 이들이 뚝뚝 떨어지는 장면을 슬프게 노래했다. 그나마 국화, 백일홍, 무궁화는 오래 가서 다행이다.

13. 낮은(가난한)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라? 높은 게 있어야 자랑하지?

    영원한 것, 즉 영원한 생명을 자랑스럽게 여겨라: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육체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비천하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자랑으로 여겨야 한다. 부한 자가 낮음을 알고 낮은 자가 높음을 아는 이것이 바로 지혜이다.

14. 시험을 기뻐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12)?

    여기서 인정받으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험의 어려움보다는 상급의 크기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롬 8:18). 도박꾼들은 확률에 목숨을 건다. 손해 볼 가능성이 약간인데 이익의 가능성이 엄청나게 크다면 당연히 배팅을 한다. 이런 기회를 즐긴다는 말이다. 생명의 면류관이란 영생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 땅의 일시적인(평생일지라도) 고난과 비할 바가 아니다.

15. ‘시험’이라는 단어가 반복되고 있는데 다 같은 뜻이 아니다. 다른 의미를 가진 것 하나는?

    12절의 시험(페이라스몬)은 연단이란 뜻이고 나머지(페이라조메노스)는 유혹이란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욕심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16.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오는 것’이란 말은 어느 구절과 대조를 이루는가?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니라(13): 하나님도 욥, 아브라함,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 예수, 사도 바울 시험하셨는데? 망가뜨리고자 함이 아니라 복을 주려고 시험하셨다. 그러므로 이것은 ‘유혹’이 아니라 ‘시련’ ‘연단’이다. 꾸짖지 아니하시고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서 더 큰 복을 주시려고, 또는 특별한 뜻이 있어서 주시는 연단이다. 상을 주기 위한 시험이다. 학생들 중에서 시험을 치를 때마다 자신에게 상을 주려고 시험을 치른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복된지 모른다.

17.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이 말씀은 어느 구절의 반복인가?

    각 사람이 자기 욕심에 이끌려 미혹됨이니(14): 독사가 아무리 좋은 것을 먹어봐야 독밖에 더 만들겠나? 독이 들어가면 죽기밖에 더 하겠나? 욕심이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욕심보다 더 무서운 것은 욕심을 잉태하는 것이고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욕심이 낳은 죄를 키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욕심에 끌려 미혹되지 말라(=시험에 빠지지 말라). 더구나 그 시험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속지 말라(16). 자신이 잘못하여 어려움에 처해서도 ‘예수님은 이것보다 더 한 고난도 참으셨는데 ...’라는 성도가 적지 않다.

18. 하나님에게는 왜 회전하는 그림자가 없을까?

    그 분이 빛의 근원이니까: 빛들의 아버지란 빛(해, 달, 별)을 창조하신 분이시란 말이다. 그러니 그 빛의 지배를 받는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 회전한다는 것은 태양의 방향에 따라 위치가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19. ‘한 첫 열매’란 ‘일종의 첫 열매’란 뜻이다. 인간이 과연 피조물의 첫 열매인가?

    여기서 첫 열매란 같은 급 중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뜻이다: 가령 수확물 중에서 하나님께 드린 것은 모든 수확물의 대표이다. 피조물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피조물이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이 범죄하면 모든 피조물도 함께 징계를 받았다. 이렇게 귀한 존재로 만든 사람(여기서는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시험하시지 않는다는 뜻이다.

20. 듣기보다는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과 성내는 것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성질 급한 점에서는 동일하다. 급하게 성내는 사람은 상대방의 의도와 상관없이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때로는 오해로 화를 낸다.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은 성질도 잘 내지 않는다.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자는 더 더욱 그럴 것이다(21).

21. 성내는 것과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이다: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며, 더러운 것(=넘치는 악)을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22. 성내지 말라고 한다고 해서 성이 안날 리가 없다. 어떻게 해야 성이 안 나거나 더디게 낼 수 있을까?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감격과 기쁨이 있어야 성도 덜 나는 법이다. 이미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는다’는 말이 말씀에 대한 실천을 의미한다.

23.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그것이 어떻게 자신을 속이는 일인가?

    결과적으로 생각과 행동이 다른 사람,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24.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감격했으면 그 감격이 오래 지속되어야 한다. 기도원이나 부흥회에서 받은 은혜가 오래 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감격이 행동으로 옮겨져야 오래 지속된다. (실제로는 말씀보다는 일시적인 분위기에 흥분했을 가능성이 크다.) 말씀에 대한 감격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쉽게 잊혀진다. 그것은 마치 이론을 배운 선수가 실전에 옮기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거울을 보고 곧 잊어버리는 현상과 같다. 만약에 거울로 본 형상을 그림으로 그려본다면 훨씬 잘 기억하지 않을까? 더구나 옛날 거울에 비친 모습은 희미하여 제대로 보기도 어려웠으니까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25.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란?

    마음에 심긴 도(21), 들은 말씀: 유대인들이 말하는 율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하게 이루신 율법, 즉 은혜로 구원을 주신 그 분의 말씀을 가리킨다. 구약의 율법이 사람을 얽매이게 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혜의 율법은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요 8:32). 기쁨으로 자원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바라는 바이다.

26.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실행하면 복을 받을 것이라는데 무슨 복일까?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것을 체험하게 됨: 결과적으로 잊어버리지 않게 된다(24, 25). 행하는 일에 복을 받는다는 것은 그 일을 행하는 것 자체가 복이라는 말이다. 왜? 구체적인 성취야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그 과정에서 말씀이 살아 있음을 체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27.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는 것은 곧 무엇과 같은가?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것: 자기 마음을 속이는 점에서 동일한 것이다(22, 26). 혀를 재갈 먹이지 않는 것이 곧 듣기보다는 말하기를 좋아하며 급하게 성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28. 혀를 재갈 먹이지 않는 사람의 경건은 왜 헛것일까?

    말만 경건한 사람은 결코 경건한 사람이 아니다. 경건은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의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는 것이며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다. 이웃에 대한 사랑과 자신의 거룩한 생활은 서로 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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