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1~2:5


< 주: 이사야의 원문은 비교적 어렵다고 합니다. 개역성경의 난하주에 가능성이 있는 다른 번역이 유달리 많이 달려있는 것이 그 예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장 구분이 어색한 부분이 적지 않아서 ‘책망, 징계, 회복’을 하나의 사이클로 보면서 장을 구분하면 좋을 것입니다. 기존의 장별보다 이런 단락을 중심으로 구분하려고 합니다 >

1. 이사야는 원어에 가깝게 발음한다면 ‘예솨야후’라고 하겠는데 이 발음은 ‘예수’와 ‘야웨’의 합성어이다. 그러면 이사야의 이름 뜻이 무엇인가?

2. 이사야가 활동한 시대는 유다왕 (     ,     ,     ,     )의 시대이었다. 이사야 선지자의 메시지의 대상은 누구인가?

3.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2)는 표현은 이사야의 서두를 거창하게 보이게 한다. 혹은 하나님의 답답한 마음을 받아줄 인간이 없어서 애꿎은 하늘과 땅을 부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한다는 원칙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같은 표현이 신 32:1에 나온다. 이런 표현을 사용한 정확한 이유가 신 32장을 기록한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에 명시되어 있다(신 31:14-29). 무엇 때문에 하늘과 땅을 부르는지 찾아보자.

4. 하나님의 탄식(2-4)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5. 이스라엘은 거룩한 나라요(출 19:6) 거룩한 백성이요(신 7:6) 여호와의 자녀로 기대되었지만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6. 이스라엘이 짐승보다 못한 것은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 외에 한 가지 더 있다. 본문에서 찾아보자.

7. 5-6절의 내용과 7-8절의 내용은 어떤 관계일까?

8. 7-8절이 과거형으로 기록되어 있지만(영어라면 완료형이다) 내용이 과거는 아니다. ‘매를 더 맞으려고’(5)에서 보듯이 미래를 가리킨다. 미래를 왜 과거형으로 기록하였을까?

9.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을 시온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왜 딸이라고 불렀을까?

10. 소돔과 고모라와 달리 남기는 남았네! 그나마 은혜이다! 남은 모습이 포도원의 망대, 원두밭의 상직막, 에워싸인 성읍인데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11. 자기를 낳고 길러준 부모를 모른다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전혀 섬기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여전히 섬기고 있었다는 증거는?

12. 위의 질문에서 보듯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데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부모를 알아보지 못하는 짐승같다고 하는가?

13. 이스라엘을 향하여 ‘내 백성’이라고 하시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 백성’이라고 하신 적이 있다(출 32:7). 얼마나 속이 상하면 내 백성을 내 백성이 아니라고 하시는가? 본문에서 은근슬쩍 그런 심경을 비치는 모습이 어디에 있는가?

14. 문서설을 주창하는 자들이 10-14절를 인용하여 하나님께서 ‘제사와 절기를 싫어한 증거’로 삼는다. 이스라엘의 종교가 발전하기 이전의 문서(소위 J, E 문서)로 취급하는 것이다. 신명기나 레위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제사와 절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에 심하게 말하면 전혀 다른 종교라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이 어떻게 틀렸는가? 독해력 문제이다.

15. 도둑질을 하기 위해서 차를 구입한 사람들도 사고나지 않고 사업(?) 잘 되게 해달라고 고사를 지낼까? 이렇게 고사를 지내는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16. ‘내가 안 해준 게 뭐고?’, ‘네가 해준 게 뭐가 있느냐?’ 이러면서 싸우는 부부는 누구 말이 맞을까? 이런 질문이 본문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17. 하나님은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잔뜩 먹어서 배가 터질 지경이고, 꼴도 보기 싫은 자식들이 다 몰려와서 북새통을 이루고, 무거워 일어날 수도 없는 짐을 지고 피곤해서 쓰러지기 직전이다. 자식들의 입에 발린 말도 다 듣기 싫다! 만신창이다. 왜 이 모양인가?

18. 18-20절의 전후 문맥은 혹독한 책망이다. 혹독한 책망 가운데 들어있는 이 말씀의 성격은 무엇일까?

19. 이스라엘이 신실하지 못한 요소를 21-23에서 두 가지만 지적한다면?

20. 슬프다는 표현이 4절과 24절에 두 번 나온다. 누가 슬픈 걸까? 어떻게 이 슬픔을 극복하는가?

21. 왕이 편한 복장으로 하는 말과 정식복장을 다 갖추었을 때 하는 말은 차이가 있을까? 본문 나타나시는 하나님은 어느 편인가?

22. 이스라엘이 상수리나무를 왜 그렇게 기뻐했을까? 하나님께서 그런 것까지 야단치시는가?

23. 구약 성경의 장, 절 구분은 맛소라 학파 사람들이 했는데 특히 이사야서가 제대로 단락이 정리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사야서의 가장 큰 특징은 책망과 회복이다. 따라서 책망과 회복은 한 단락으로 보는 것이 좋다. 1장에서 책망과 회복을 말하고 난 다음 다시 책망이 시작되는 곳은 어디인가?

24. 구약의 선지자들은 종말에 대해서 예언할 때 초림과 재림이 구별되지 않았다. 마치 투명한 그림이 겹쳐 보이는 것처럼 그들이 보기에는 다 같은 종말이었을 것이다. 2:2-4는 말일에 대한 예언이다. 초림일까? 재림일까? 증거는 무엇인가? 우리는 그들보다 잘 구별할 수 있다.

25.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라는 말씀은 결코 산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시온 산은 높은 산이 아니라 자그마한 언덕일 뿐이다. 1:7-8에서 빼앗긴 것에 대한 회복의 약속이다. 그러면 산 이야기가 아니고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가?

26. ‘야곱 족속아 오라’(2:5)고 한다. 2-3절을 근거로 야곱 족속이 와야할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27. 이스라엘의 배역한 현실을 지적하는 표현들을 전부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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