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61장


1. 여기서 ‘내’가 누구를 가리키는가? 선지자 이사야인가?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에게 해방을 선포하는 것은 이사야보다 훨씬 후대의 일이다. 결정적인 것은 예수님께서 이 구절을 자신에게 적용하셨다는 점이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8-19). 그러므로 1-3절은 메시야의 사명을 말하는 것이다.

2.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데 기름은 왜 붓는가?

    중요한 직책을 맡기셨다는 뜻이다. 선지자(말씀 선포), 왕(올바른 통치), 제사장(병을 고침)을 세울 때 기름을 부었다. 이렇게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메시야’이다.

3. 왜 하필이면 가난한 자(고통당하는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가?

    포로된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나아가서는 자신에게 아무런 소망을 발견할 수 없어 메시아를 기다리는 ‘심령이 가난한 자’를 가리킨다.

4. 복음은 갇힌 자에게 놓임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가 권위주의 정부나 독재 정권과 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인가?

    정치적인 놓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죄와 사망의 올무에서 놓여나는 것을 말한다. 성도가 개인 자격으로 그런 일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교회의 사명은 영적인 일에 우선이고 그 연장선상에서 정치적인 현실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5. 1-3절의 모습은 구약의 어떤 것과 가장 비슷한가?

    희년: 온 이스라엘 땅에 나팔을 울리면서 자유가 선포되고 모든 것이 회복되는 기쁨의 해였다(레 25:9, 10).

6. 온 세상에 기쁨만 있는 것은 아니다. 또 무슨 일이 있길래?

    은혜의 해이기도 하지만 신원의 날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에게 신원은 대적에게는 보복을 뜻한다.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지만 원수들에게는 심판이 있을 것이다.

7. 짝지은 세 종류, 즉 재와 화관(花冠), 슬픔과 기름, 근심과 찬송의 공통점은 각각 무엇인가?

    전자는 머리에 쓴다는 점, 두 번째의 것은 액체가 흐르는 점(슬픔의 눈물과 희락의 기름), 마지막 것은 소리가 난다는 점: 공통점이 있는 반면에 의미는 정반대이다. 갚아주신다는 점을 멋들어지게 표현하였다. 이 경우의 기름은 축제 때 귀빈의 머리에 향내 나는 기름을 붓곤 하였다. 요즘으로 치면 향수를 뿌리는 셈이다.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 한이 맺힌 사람에게는 맛있는 것을 선물하면 제일 효과적이고 공부를 제대로 못한 사람에게는 명예 박사라도 학위를 받는 것이 가장 기쁠 것이다. 재를 뒤집어 쓰고 울부짖던 사람에게는 화관보다 더 기쁜 것이 없을 것이다. 정말 멋지게 갚아주신다.

8. 찬송을 왜 옷에다 비유했을까? 찬송과 대비되는 것은 근심인데 근심거리가 있는 사람이 무슨 옷을 입는지 생각해보자.

    근심하는 사람이 입는 베옷과 대비시킨 표현이다. 거칠고 성긴 베옷대신 부드럽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는 것처럼 근심하는 사람에게서 찬송이 터져 나올 것이다.

9. 의의 나무라? 이 나무는 여호와께서 심으신 나무요, 여호와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왜 나무에다 비교했을까? 어떤 나무일까?

    다시는 넘어지지 않을 튼튼한 나무라는 뜻일 것이다. 원문의 이 나무는 굵고 튼튼한 상수리나무(oak)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친히 심었기 때문에 다시는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 구속받은 이스라엘 (61:4-62:12) ]

10. 4절부터 62:12까지 구속받은 이스라엘에 대해서 말한다. 이스라엘은 가난한 자, 마음 상한 자, 포로 된 자, 갇힌 자, 슬픈 자이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갚아주실까(4-9)? 그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것 하나만 고른다면?

    너무 많아서 정리 불가! 한 마디로 즐거움이 넘친다. 제일 마음에 드는 것? 개인적으로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 가장 영광스러워 보인다. 4-9절은 메시야의 사역의 결과이다.

11. 무너진 성읍이 다시 재건되고 이방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열방의 재물을 먹으며 이스라엘은 제사장 노릇을 한다는 말도 이해하기 어렵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주는 것을 결코 먹지 않을 사람이다(다니엘과 세 친구들). 언제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을 도운 적이 있는가?

    지나간 역사를 더듬어 보면 이스라엘은 본의 아니게 제사장 노릇을 했다. 복음이 이스라엘에서부터 나왔으니 말이다(출 19:5-6). 유대인에게 열심히 전하던 복음이 이방인에게까지 전해졌으므로 바울은 롬 15:27에서 곤궁에 처한 유대인 신자들을 도와야 한다고 역설했다. 실제로 3차 전도여행 시에 엄청난 헌금을 거두어서 각 교회 대표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들어왔었다(참고, 롬 15:26, 고전 16:1-4).

12. 회복된 이스라엘이 받은 복은 질적인 차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양적으로도 차이가 있다. 배나 얻을 것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충분한가?

    분깃을 배로 받는다는 것은 맏이로서 상속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분을 되찾는 셈이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격을 되찾는 셈이다. 종이라도 되겠다고 돌아온 탕자에게 반지를 끼우는 것과 같은 말이다.

13.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배로 갚는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께서 공의롭기 때문이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이스라엘이 불의의 강탈을 당했기 때문이다. 누가 언제 그랬다는 말인가?

    이스라엘이 포로로 끌려가는 것은 이스라엘의 범죄함 때문이었지만 도구로 사용된 앗수르나 바벨론이 필요 이상으로 이스라엘에게 불의를 행하였다는 말이다.

14. 이스라엘이 받을 복의 큰 특징은 제삼자가 보아도 다 아는 복이란 점이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마 5:13-15): 복을 받고 사는 것을 세상 사람이 다 알게 하라고 하신다.

15. 어떻게 하여 이스라엘은 이런 복을 받고 기뻐하게 되었는가?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셨고 의롭다고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자신의 능력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역사하신 일이다.

16.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사역과 결과를 어디에 비유하고 있는가? 얼마나 효과적인 비유인가?

    땅에서 쏟아나는 싹을 막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거대한 바위라도 막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의(구원사역)와 찬송(결과)이 쏟아나게 하신다. 10-11절은 메시야 사역의 또 다른 측면에서 본 결과이다. 4-9절이 구체적이고 현상적인 결과라면 10-11절은 근본적이고 내면적인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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