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9장


1. 56:9-57장은 지도자들의 잘못과 음란한 우상숭배를 책망했으며, 58장에서는 형식적인 종교의식을 꾸짖었다. 그렇다면 본문은 어떤 죄악에 대한 책망인가?

    백성들의 일반적인(사회적인) 범죄: 56:9-58장 까지는 종교적인 부패에 대한 책망이라면 59장은 사회적인 부패를 지적함으로 이스라엘이 총체적인 죄악에 빠져 있음을 책망하고 있다. 하긴 이 두 가지가 따로 놀 수는 없다.

2. 백성들이 기도를 하기는 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여호와의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1): 형식적인 종교행위는 있었지만 그것이 전혀 하나님과 상관없는 것임을 이스라엘은 알지 못했다.

3. 백성들의 죄악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기도를 듣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죄악이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인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기호(嗜好)의 문제이다. 부자지간에도 아버지의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기분 문제인 경우가 적지 않다. 하나님의 능력에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을 하시는지 그 분을 기쁘게 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4. 백성들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사라진 것은 무엇이며 풍성하게 나타나는 것은 무엇인가(3-8)?

    사라진 것: 공의, 진리(4)
    나타난 것: 피, 죄악, 거짓, 악독, 허망한 것, 잔해, 독사의 알, 거미줄, 죽음(독사의 알을 먹고), 독사, 벌거벗은 자, 강포한 행습, 행악하기에 빠른 발, 죄악의 사상, 황폐, 파멸, 굽은 길(3-8).

5. 입에서 술냄새, 담배냄새, 입냄새가 나는 경우에는 가까이 하기 힘들다. 이스라엘이 그런 형국이다. 비유컨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까이 갔더니 손에서, 입에서 무슨 냄새가 나는가? 발은 어떤가?

    손과 손가락에서는 피 냄새, 입에서는 거짓, 악독이 악취를 뿜는다(3절). 발은 못된 짓 하기에 빠르다(7절)

6. 법이 공정성을 잃으면 무시당하게 마련이다. 그러면 법 대신 무엇을 의지하게 되는가?

    허망한 것(4):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진리대로 판결하는 자도 없다는 것은 사법기관이 썩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법대로 해결하는 것보다는 부정한 수단(뇌물, 미신, 사기)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그 비슷한 사회가 되다보니 탈주범이 한 마디 한 것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7. 백성들이 죄를 범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함이다. 그래서 결국은 무엇을 얻는다고 비유하는가?

    독사의 알과 거미줄로 된 옷: 하나님을 버리고 죄를 지어가며 많은 것(부, 명예, 높은 지위)을 얻었다고 해도 그것은 위험하기도 하고 허망한 것일 뿐이다.

8. (새가) 독사의 알을 품으면 독사가 나온다. 위험을 키우는 일이다. 거미줄로 천을 짜면?

    아무 소용이 없다. 거미줄에 묶인다? 여기서 거미줄은 옷을 짜기 위한 것이다(6절). 따라서 투명한 옷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남을 해코지해서 덕을 보려는 짓이 결국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스라엘이 하는 짓은 위험하면서도 아무런 유익이 없다.

9. 이스라엘은 공부에 별 흥미가 없는 학생 같다. 선생님의 말씀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지만 엉뚱한 얘기를 하면 귀가 번쩍 뜨인다. 이스라엘은 무엇에 재빠르게 반응하는가?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 흘리기

10. 이스라엘은 손, 손가락, 입, 혀, 발을 총동원해서 죄를 짓는다. 그러나 이런 부위는 말단 졸개이다. 진짜 죄가 많은 부위는 어디일까?

    마음: 그 사상은 죄악의 사상이라(7). 생각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이런 죄를 짓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평강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8). 마음이 징계를 받은 상태이다. 온갖 죄를 다 지어가면서 많은 것을 얻었다 해도 마음의 평강을 얻지 못하면 소용없는 것이다.

11. 갑자기 호칭이 변했다. ‘너희’에 대한 책망이 ‘우리’로 변했다. 내용은 어떻게 변했는가?

    책망에서 회개로: 단순한 탄식이 아니라 선지자가 앞장 선 회개라고 보는 것이 좋겠다. 특히 12절. 총체적인 부정으로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선지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앞장서서 회개하는 수밖에 없다.

12. 선지자가 보기에 자신들에게 없는 것은?

    공평, 의, 빛, 구원, 성실, 정직: 그래서 낮에도 황혼 때 같이 넘어진다. 낮(안식)인데도 밤(고난)과 같다는 뜻이다.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상태이다.

13. 배가 고파도 같이 굶으면 참기가 쉬운데 남들은 다 잘 먹고 있는데 혼자 굶고 있으면 할 짓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꼭 이와 같다는 표현이 어디에 있는가?

    강장한 자 중에서도 죽은 자 같은지라(10): 다른 사람들은 번영하고 복을 누릴 때(강장한 자) 이스라엘은 죽은 자와 같다. 모든 동기생들이 졸업하는데 혼자 낙제해서 남은 기분이랄까?

14. 9-10절은 징계받은 모습, 11-12절은 회개, 13-15a는 회개 중에서도 구체적인 죄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죄악으로 인해 ‘악을 떠나는 자가 탈취를 당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악의 세태에 물들지 않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행하는 자가 악인의 먹이가 된다는 뜻이다. 악의 소굴에서 ‘이제 이 일에 손을 씻겠다’면 그냥 곱게 놔두지 않듯이 악을 떠나는 자를 징벌하는 악한 사회라는 것이다.

15. 사람이 없다니(16)? 쓸만한 사람이 없다는 말인가? 관주에는 사 51:18이나 사 63:5절과 비교해보라는데?

    중재자가 없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의 문제는 죄의 문제인데 이것을 해결해줄 사람이 없다. 히브리인들은 같은 내용을 다른 표현을 써서 반복하기를 좋아한다. 사람이 없다는 말이니 바로 다음의 중재자가 없다는 것은 동일한 표현이다.

16. 이스라엘에 희망이 없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하시는가?

    자기 팔로, 자기의 의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신다(16). 이스라엘의 의로 되지 않으니 자기의 의로! 그래서 독생자를, 아니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17. 하나님은 무엇으로 무장하셨는가? 용도별로 분류를 한다면?

    자기의 팔, 자기의 의, 구원, 보수, 열심: 팔과 의와 열심(도구)으로 이루실 일이 구원과 보수(목표)이다. 구원은 사랑의 결과이지만 보수(報讐)는 공의로움의 결과로 다른 역본에는 의분, 응징으로 번역된 말이다.

18. 하나님께서 완전무장(?)을 해서 누구를 위해, 누구와 싸우시려나?

    야곱 중에 죄과를 떠나는 자를 위해(20), 그들의 행위, 대적, 원수, 섬들에게 보복(18): 하나님께서 행동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자기 백성을 위함이다. 그러다 보니 부차적으로 보응, 보복을 당하는 자들이 있는 것이다. 단순하게 이스라엘의 구원만을 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온 세상의 심판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19, 동방과 서방). ‘섬들’이 의미하는 것은 온 세상의 끝이다.

19.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이 이스라엘에게 어떤 방식(수단)으로 임하는가? 오늘날 우리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사역도 이와 같다는 점을 감안해서 두 가지 수단을 찾아보자.

    성령(나의 신)과 성경(나의 말)(21):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고 성령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고 충만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전형적인 방법이다.

20.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시면 이스라엘의 입이 어떻게 변하는가(3 ↔ 21)?

    거짓과 악독이 뿜어지던 입(3)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떠나지 않는다((21). 냄새 나던 입에서 깔끔한 향기가 뿜어져 나오는 셈이다. 입 맞출 기분이 나지 않겠는가!

21. 56:9절부터 59:14절까지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해서 신랄하게 꾸짖었다. 이스라엘의 잘못이 많기도 하겠지만 그렇게 책망하고 꾸짖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중보적인 개입을 말하려는 것이다(15-21): 너희들의 모습이 이 모양이니 하나님께서 친히 나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문제를 다 해결했으니 돌아오기만 하라’는 식이다. 책망이 주목적이 아니라 돌이키게 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22. 20절은 롬 11:26에 다음과 같이 인용되었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본문과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있는가?

    사 59:20은 구속자가 ‘죄로부터 돌아서는 자에게 임한다’ 그러나 롬 11:26은 ‘야곱 중에서 경건치 않은 자를 돌이킨다.’ 전자는 구원에 전제조건이 있는 것이고 후자는 구원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역이다. 전자는 히브리 원문을 그대로 옮긴 것이므로 하자가 없다. 후자는 70인 역이 문맥(15절 하반절부터 구제불능 이스라엘 대신에 하나님께서 직접 나서는 문맥임)을 따라서 그렇게 번역한 것인데 바울이 인정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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