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6:9~57


[ 어떤 학자들은 56:9부터 제3 이사야서라고 부른다. 메시지의 변화일 뿐 그렇게 주장할 확실한 근거는 없다. 1-39장은 포로로 잡혀갈 것을 예언하면서 초림, 재림의 예수가 뒤섞여 나타난다. 40장 이후는 포로로 잡혀간 것을 전제로 하고 희망을 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주로 초림의 예수를 다룬다. 56:9 이후에는 포로귀환이 이루어진 상태를 전제로 하고 귀환한 사람들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재림 예수가 주로 나타난다 ]

1. 들과 삼림의 짐승들에게 ‘다 와서 삼키라’고 하다니(9) 도대체 무엇을 삼키라는 말인가?

    양이겠지: 파수꾼(개, 목자)이 전혀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잡아 먹으란다.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전혀 무관심한 양치기 개나 목자(즉, 지도자)에게 경고하는 말이다. 이런 파수꾼이나 목자를 둔 양이 불쌍하지!

2. 파수꾼에게 가장 요긴한 능력은 무엇인가?

    적을 발견해내는 눈과 발견한 즉시 경고를 발할 목소리: 지도자는 비난을 받더라도 앞 날의 위험을 예측하고 대비해야 한다. 일이 터진 다음에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IMF라는 괴물이 닥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미리 예측했어야 한다. 일이 터진 다음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해서는 안된다.

3. 이스라엘의 파수꾼은 무엇을 못하는가?

    보는 것과 짖는 것: 보지 못하는 소경이요 짖지 못하는 개와 같다. 이건 보신탕감이다.

4. 이스라엘의 파수꾼이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누워 자면서 꿈꾸는 것, 술 마시는 것: 누워 자기만하고 술 마시기만 좋아하니 결과적으로 무능해지는 걸까, 아니면 무능하니까 엉뚱한 일에만 관심을 가지는 걸까? 잘 노는 것도 능력이 없으면 안 되는 일인데... 아무래도 생각이 잘못돼서 능력이 엉뚱한 곳으로 발전된 것이리라.

5. 지도자가 무능하고 욕심만 부리면 밑의 사람들도 그렇게 되기 마련이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부패하기 마련이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라는 뜻으로 쓰인 표현은?

    어디 있는 자이든지(11): 지리적인 장소라기보다는 지위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6. 술 마시는 사람들이 건배할 때 쓰는 용어 중에는 ‘위하여’ 라든가 ‘우리가 남이가’ 정도는 준수한 것이다. 더러 시대상을 반영하는 경우가 있어서 민망스러울 때도 있다. 이스라엘의 정신없는 지도자들이 건배할 때는 뭐라고 했을까?

    내일도 오늘같이(12): IMF로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하고 있을 때에도 오히려 그런 상황을 더 좋아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 사람들이 그랬다나? ‘이대로!’

7. 남을 돕는 일에는 발발 떠는 사람도, 먹고 즐기는 일에는 손이 무척 크단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도 탐욕이 심하고 족한 줄을 모르고(11) 자기 이익만 도모하지만(12) 매사에 그렇지는 않다. 어떤 때에 손이 클까?

    술 먹는 일에(12):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는 말은 ‘오늘은 내가 한 잔 살께’ 라는 말일 것이다. 자기 집 식구들 생활비조차 아까운 사람이 술 먹는 일에는 손이 크더라.

[ 57장 ]

8. 의인이 일찍 죽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화액 전에(from the evil to come) 취하여 감(1): 죽음 이후의 세계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선한 사람이 일찍 죽는 것을 설명할 길이 없다. 남아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먼저 간 사람은 일찍 편안한 쉼을 얻는 것이다(2). 이 땅에서 겪을 화액을 미리 피하여간 행복한 사람이다(예, 왕상 14:11-13). 역으로 보면 죽은 사람이 행복하다고 느껴질만큼 힘든 일이 닥칠 것이라는 선언이다. 군대에서 힘들게 훈련받을 때 아는 친구가 훈련병 사이에 있으면 험한 소리로 잡아낸다. 혼을 낼 듯이 불러내서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쉬게 하는 것처럼.

9. 의인이 죽든지 자비한(경건한) 자들이 사라지든지 도무지 관심이 없다면 도대체 어디에 관심이 있을까?

    음욕(5), 우상숭배(6-9): 아이들이 갑자기 성적이 떨어지면 이성교제나 인터넷에 몰두하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10. ‘무녀의 자식, 간음자와 음녀의 씨 너희는 가까이 오라’고 하고선(3) 책망하는 것(4-12)은 뭐야?

    불러 놓고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온갖 죄악을 다 저지른 자들이라도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말씀이다. 3절은 13절 끝 부분의 말씀과 맥이 닿아 있다. 다시 말하면 3절은 4-13절을 간단하게 요약한 말씀이다.

11. 무녀의 자식, 간음자와 음녀의 씨 너희는 가까이 오라? 이런 자식들을 불러다 무엇 하려고? 사거리에 가서 아무나 붙들어 오라는 말씀(마 22:1-14)과 마찬가지인가?

    복음(하나님의 초청)은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3) ‘나를 의뢰하는 자’만이 땅을 차지한다(13). 사거리에서 불려온 모든 사람이 잔치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예복을 입은 사람만(예복은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것)이 참여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12. 음욕을 피우는 것과 자녀를 죽이는 것(5)이 무슨 상관일까?

    음란함과 우상숭배(몰렉에게 자녀를 바치는 인신제사일 것)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음란함이란 우상을 숭배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면 필연적으로 음란해질 수밖에 없다: 5, 9절에 두 가지 현상이 동시에 나타난다.

13. 원래 이스라엘이 ‘제비뽑아 얻은 것’은 가나안 땅(=하나님에 대한 상징)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버리고 무엇을 기업으로 삼았는가?

    골짜기 가운데 매끄러운 돌: 원문에는 ‘돌’이 없다. 우상을 섬기는 제단 혹은 우상 자체일 수도 있겠다. 진짜 복을 차버리고 제 손으로 제 눈을 찔러 피를 보는 일이다.

14. 원래 이스라엘이 문과 문설주에 간직해야할 기념물은 어린 양의 피(출 12:7)와 하나님의 말씀(신 6:9)이다. 이제는 어떤 장소가 되었는가?

    우상을 세워둔 장소(8): 기념표, 기념하는 것이란 다름 아닌 우상이다. 어린 양의 피를 바름으로 정결케 되고 죽음을 벗어났던 그 숭고한 장소가 우상을 숭배하는 음란한 곳이 되어버렸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 기록된 바로 그 곳이 우상을 기념하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15.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한 것을 남편 아닌 다른 남자를 위해서 침상을 준비하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다. 어떻게 침상을 준비하는가?

    높은 곳까지 올라가서(7), 벌거벗고(8), 침상을 넓히고(8), 향품을 더하고(9), 피곤하지도 않다(10).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기 남편에게는 아무런 감동도 받지 못하면서 남의 남편에게서 감격하고 온 정성을 다 하는 꼴이라니! 더구나 높은 곳이란 공개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수치심마저 잃어버렸다는 뜻이다.

16. 옷을 벗고 침상에 올라가서 무슨 ‘언약’을 하는 걸까(8)?

    기껏해야 화대밖에, 아니면 시시껄렁한 사랑타령이나! 잠깐 후 정신을 차리고 보면 너무나 허무할 것을!

17. 형식이 비슷하다고 내용마저 같은 것으로 오해하면 안된다. 기독교인도 기도하고 불교인도 기도한다? 기독교인은 이웃을 사랑하고 불교인은 이웃에게 자비를 베푼다? 그래서 같은 것 아니냐? 내용은 너무나 다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소제를 드릴 때는 유향이나(레 2:1), 소금(레 2:13)을 부(副)제물로 드렸다. 유향이 없는 경우에는 굽거나 부치거나 삶는 노력이 더 필요했다(레 2:4-7).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면서 어떻게 비슷한 형식을 취하였는가?

    기름에 향품을 더하는 데 ‘더욱’ 더하였단다(9). 우상을 섬기면서도 형식은 하나님께 하듯이 그대로 한 셈이다.

18. 사신을 보내다니(9)? 이 사신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책망하는 문맥에서 나온 말이므로 정치적인 임무를 띤 사신이 아닐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임무를 띠고 이렇게 자신을 낮추면서 피곤도 모른 채 열심일까?

    외국에까지 사람을 보내서 용하다는 우상을 찾는 행위 아닐까? 우리 나라에서도 용하다는 점쟁이나 무당은 아무나 함부로 만나지 못한단다. 피곤해서 다 죽어가다가도 고스톱치자는 말만 나오면 벌떡 일어나는 사람처럼, 공부하라면 잠이 쏟아지다가도 재미있는 이야기만 나오면 눈이 초롱초롱해지는 학생처럼, 우상 섬기는 일에는 그렇게 힘이 솟는 모양이다.

19.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경외치 않는 것이 하나님이 오랫동안 잠잠하였기 때문이었음을 하나님도 아시네! 그럼 잠잠하지 않으시면 될텐데... 그런데 왜 너의 의를 보이리라고 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잠잠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은 벌써 죽었다. 의롭지 못함에도 하나님께서 고통 가운데서 오래 동안 참고 계셨다는 뜻이다. 경상도 말로 ‘가마이(가만히) 있으이(있으니) 가마이떼긴(가마니 인)줄 아나?’

    ‘너의 의’는 ‘너의 소위’와 동일한 말(12)이다. 너의 의가 전혀 의로움이 아님을 드러내겠다는 선언이다.

20. 우상 숭배자의 말로와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결말은?

    우상 숭배자가 모은 것은 바람과 함께 사라질 것, 허망할 것이다. 길에서 치워 버려야 할 거치는 것일 뿐이다(14).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다. 결코 바람에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21.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도 ‘음부까지 스스로를 낮추었는데’(9) 그것은 겸손한 것(15)이 아닌가?

    하나님을 아는 것이 겸손의 기본이다: 높으신 하나님 때문에 나보다 못한 형제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이 겸손이다. ‘통회’란 ‘깨어지고, 부숴져서 잘개 쪼개진 것’을 가리킨다. 결국 겸손이란 하나님 앞에서 깨어질 수밖에 없는 자신의 존재를 깨달은 것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우상 앞에서 자신을 아무리 낮추어도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무지요 어리석음이다. 마땅히 낮출 자 앞에서 낮추는 것이 겸손이다. 이렇게 겸손한 자를 높고 거룩한 곳에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하겠다고 하신다.

22. 이스라엘이 구제불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징계를 해도 더욱 패역하고 자기 길로 행함(17): 이래도 하나님께서 고쳐 주리라고 하신다(18). 먼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19)고 하신다.

23. 하나님께서 영원히 노하지 않는 것(16)이나 징계를 하셔도 여전히 패역한 인생(17)을 고치시는(18) 이유를 본문에서 찾는다면?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가리켜 나의 지은 그 영과 혼이라고 하신다(16). 천지창조라기보다는 인간창조라고 할만큼 하나님께서 인간을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다. 그래서 패역하고 제 길로 가는 자식임에도 ‘먼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하신다(19). 창조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뜻에 따른 일이었지만 깨어지고 부숴진 인간을 고치시는 것도 하나님의 뜻에 따른 일이다. 구원의 이유가 사람에게 있지 않다. 이런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메시야를 보내는 것(창조보다 더 큰 재창조)도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24. 입술의 열매를 짓는 나 여호와? 입술이 맺을 수 있는 가장 큰 열매는 무엇인가? 이 입술이 이스라엘의 입술이라면 열매는 무엇일까?

    찬양(참고 히 13:15 찬미의 제사): 백성들의 입에서 찬양이 나올만한 일을 하시겠다는 선언이다. 먼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을 주시면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이 감사의 찬양밖에 더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지으신 입이 맺을 수 있는 가장 큰 열매는 찬양, 기도, 감사... 이다.

25. ‘징계를 해도 오히려 더 패역한 자’와 ‘악인’은 어떻게 다른가?

    하나님께서 고치시는 자는 ‘슬퍼하는 자(18), 통회하고 겸손한 자(15)’이다. 비록 패역에 패역을 거듭할지라도 어느 순간 하나님을 의식하고 돌이킬 마음만이라도 있는 자(하나님 편에서 보면 택한 자기 백성이다)를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고치시고 돌이키신다. 무슨 대단한 결단과 행위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 이루신 구원 사역에 회개라는 방식으로 참여하기만 하면 된다. 악인이란 끝까지 하나님의 초청을 거부하는(성령훼방죄를 짓는) 인간을 말한다.

26. 악인은 바다와 같다. 어떤 점에서?

    불안정함과 그 속에 더러운 것을 품고 있어서(20): 히브리인에게 바다는 결코 안식이 없는 불안정한 상태의 이미지이다(43:2). 이미지가 거대한 구정물통과 비슷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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