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5장


역사적 배경: 바벨론이 강성하던 시절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나라는 메디아였다. 메디아는 2대에 걸쳐 군비를 정비하여 바벨론을 칠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남쪽의 작은 나라 바사왕 고레스에게 함께 바벨론을 치자고 제의했다. 고레스는 사전에 바벨론으로부터 정치적인 협상을 하고 있던 차라 메디아의 요청을 거부했다. 메디아 왕 아스티아게스가 분노하여 바사를 정복하도록 군대를 보냈는데 군대를 이끌고 간 하르파거스 장군이 변심하여 고레스에게 투항해 버렸다. 메대 왕이 직접 출정하였지만 또 장군들이 반란을 일으켜 왕을 체포하고 고레스에게 투항해버렸다. 고레스는 가만히 앉아서 거대한 나라를 통째로 얻고 메대의 군사와 작전대로 바벨론으로 진격한다. 도중의 작은 성들은 싸우지도 않고 항복해버렸다. 바벨론은 워낙 강한 성이었기에 메대, 바사의 군대가 포위를 해도 신경도 쓰지 않고 잔치를 즐기고 있었다. 마침 나보니두스 왕이 돌아와서 신년 축제를 벌이고 있던 때였다. 밤중에 고레스가 유브라데 강의 둑을 터뜨리고 물길을 돌리자 바벨론 성의 가운데로 흐르는 운하의 하상이 무릎에 찰 정도로 낮아져서 고레스의 군사는 운하를 따라서 무혈점령에 성공하였다(단 5:30). 고레스는 바벨론의 관리들을 그대로 앉히고, 유화정책을 폈으며 자신의 군대가 정복민들을 학대하지 못하게 했다. 정복한 민족들의 고유한 문화를 존중하였고, 바벨론 포로민들이 원거주지로 돌아가도록 허용하였다. 이런 일에 대하여 이사야가 정확하게 예언을 하고 있다(44-45장).

0. 본 장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역을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대비해서 정리한다면 각각의 주제는 무엇인가?

    2-6, 8, 9-10, 13-14: 구속(고레스를 통해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겠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고레스를 세우는 일은 곧 자기 백성을 구속하겠다는 말이며, 8절은 의로움으로 가득 찰 메시야 시대를 말하고, 9-10의 두 가지 비유는 고레스를 통해서 행하는 이 일에 대해서 누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라는 뜻이다.
    7, 12: 창조

    성경을 요약한다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기보다는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해야 하고, 인간을 창조하셨다기보다는 인간을 구속하셨다고 해야 한다. 천지창조는 인간을 구속하기 위한 시작과정일 뿐이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창조보다는 구속의 이야기를 세밀하고 말한다.

0. 본문에서 하나님과 우상을 어떻게 대비시키는가?

    하나님: 보이지 않는 존재(15),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않을 것(16-17), 하나님을 믿는 자는 헛되지 않을 것(18, 19, 23), 구원할 능력이 있음(21-22), 의와 힘이 있음(24)

    우상: 보이는 존재(15), 우상을 섬기는 자는 치욕을 당할 것(16-17), 우상은 흑암한 곳에서 은밀히(애매하게) 말함(19), 구원할 능력이 없음(20)

0. ‘나 여호와’, ‘내가(나는)’, 혹은 ‘나 외에’ 라는 표현이 각각 몇 번이나 나오는지 찾아보자.

    나 여호와: 1, 3, 5, 6, 7, 8, (11), (13), (18), 19, 21, 22(나는 하나님),
    (1 내가, 원문에는 없음), 2, 4, 4, 5, 7, 7, 12, 12, 13, 19, 21, 21, 23,

    나 외에(밖에): 5, 6, (14), (18), 21, 21, 22,
    이스라엘의 진정한 구원자는 나 외에 없다는 선언이다.

1. ‘기름받은’이란 말의 히브리 원어에서 생겨난 고유명사가 있는데?

    메시야: 그럼 고레스가 메시야인가? 메시야의 그림자(상징) 역할을 맡았다. 고레스가 육체적인 자유를 허용했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영적인 자유까지 허용할 것이다.

2. 열국으로 항복하게 하는 것과 열왕의 허리를 풀게 하는 것은 내용상 동일하다. ‘허리를 푼다’는 것을 현대 군사용어로 바꾸면?

    무장해제(武裝解除): 띠를 동인다(5절)는 것은 전쟁이나 싸움을 시작할 채비를 차리는 것이다. 그러니 허리를 푸는 것은 무장을 해제하고 싸움을 포기하는 것이다.

3. 고레스의 오른 손을 잡고 모든 적을 쳐부순다면 도대체 누가 싸우는 건가?

    고레스는 자기나름대로 전쟁을 하지만 실제로 뒤에서 그렇게 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겉으로 보기에는 자기의 노력 탓이고, 행운이 따르는 것이고, 운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유로운 꼭두각시? 이게 말이 되나?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을 특별히 그렇게 묘한 존재로 만드셨으니 어쩌겠는가? 그래서 우리의 행위(주어진 자유)에 대한 책임을 물으셔도 우리는 할 말이 없다.

4. 앗수르와 바벨론은 식민지 백성을 흩어서 국가를 세우지 못하게 하였으나 페르시아(바사)는 식민지 백성이 자신의 국가로 돌아가서 나라를 세우도록 유화정책을 펼쳤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고레스의 진군을 아무도 저항하지 않았다. 이사야는 고레스가 등장하기 150여년 전에 이런 모습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1-3절: 하나님께서 고레스로 하여금 모든 나라를 수월하게 점령하도록 해주실 것이다.

5. 고레스는 결코 하나님을 섬긴 자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를 선택해서 온 세상을 주관하게 하시는 것은 누구를 위함인가?

    나의 택한 이스라엘을 위하여(4): 세계사의 변두리에 불과한 이스라엘을 위해서 세계사를 움직이고 계신다? 믿기 어려운 말이지만 사실이다. 이 광대한 우주에 비기면 먼지보다 작은 인간을 위해서 하늘의 별과 달을 만드셨다(신 4:.19)는 것도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성경은 분명히 그렇게 말한다. 미가 선지자가 메시야의 탄생지를 베들레헴이라고 했지만 만삭의 마리아는 나사렛에 있었다. 이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은 아구스도를 동원하셨다(눅 2:1)고 한다면 무리한 해석일까? 하나님의 자녀인 나 하나를 위해서 온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자.

6. 고레스와 이스라엘(야곱)을 비교해보자.

    고레스는 당대의 최고 권력자, 온 세상의 정복자, 이스라엘은 포로로 잡혀간 신세,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중요한 인물은 이스라엘이다. 고레스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7. 하나님께서 고레스에게 주신 복은 무엇인가?

    열국을 정복케, 막대한 재물을 얻게: 고레스의 행복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오직 이스라엘을 위해서 고레스에게 이런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 고레스만 복이 터졌다고? 세속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당연히 그렇다. 진정한 복은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이고 본다면?

8. 하나님께서 고레스에게 그렇게 복을 주시는 이유를 고레스는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 반면에 하나님은?

    고레스의 생각은 알 길이 없지만 일반적이라면 ‘자신이 잘 나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자신을 지명하여 부른 자가 여호와인줄 알게 하려고: 하나님 편에서 보면 고레스에게 자신을 알게 하는 것은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과정일 뿐이다.

9. 자기 백성을 위한 구원자로 이방인을 세우시는 이유가 있다면?

    무리로 알게 하려고: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큰 목적이다. 우리의 목표도 하나님을 아는 것이어야 하리라.

10. 고레스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책에 따라 돌려보낸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 편에서 보면 하나님의 의도에 따른 것이다. 그것을 나타내는 구절은? 이런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라고 하면 좋을까?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4, 5):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신의 일을 하지만 그래도 그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자신의 의지대로 세상을 점령하고 다스린다 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손에 의한 것이다. 빛과 어두움은 처음 창조를 언급하는 것이지만 평안과 환란은 창조이후의 세계를 주관하시는(구속) 의미가 강하다.

11. 8절의 ‘듣게’는 hear인가 listen 인가?

    rain(동사), drop이다. 옛날식 표현으로 ‘비가 온다’는 것을 ‘비가 든다’고 한다. 참고로 우리말 ‘듣다’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액체가)방울방울 떨어지다, (약, 기계)효과가 있다. (소리)귀에 들리다

12. 고레스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2-7)과 8, 12-13절의 말씀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관한 것인가, 아니면 구속 사역에 대한 것인가?

    문맥으로는 당연히 이스라엘의 구원(구속)이다. 그런데 창조에 대한 언급이 계속되는 것은 구속이 곧 창조 사역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구속사역이 완성되어야 진정한 의미에서 창조가 완성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안식도 그 때에 완성되는 것이다(cf 요 5:17). 그런 점에서 창조와 구속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창조자인 내가 이렇게 이스라엘을 구속하겠다는 데 누가 이의를 달겠느냐?’는 느낌도 포함되어 있다.

13. 하늘이, 궁창이 쏟아 붓고 땅이 움돋게 할 ‘의’는 무엇인가?

    일차적으로는 고레스를 통해서 유대인들이 귀환하게 되어 유대가 풍요로워지는 것을 가리키지만 나아가 메시야로 말미암은 구원의 풍요로움을 가리키는 말이다.

14.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말한 ‘너는 무엇을 만드느뇨?’ ‘너의 만든 것이 너를 가리켜 그는 손이 없다’ 는 말을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바꾼다면?

    나를 왜 이 모양으로 만들었느냐? 그것도 솜씨냐?

15. 토기장이의 진흙이나 태어나는 아이가 유대인을 의미한다면 예상되는 그의 항의성 질문은 무엇일까?

    왜 우리로 이 고난을 당케 하시며, 이방인의 손을 빌어 구원케 하시나요? 만약 이방인을 의미한다면 ‘왜 유대인들에게만 이렇게 복을 주시느냐?’는 불평일 수도 있지만 ‘엿장수 마음대로 아니냐?’는 뜻이다.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의 기쁜 뜻을 따라 된 일이므로 어느 누구도 불공평하다가 항의하거나 따질 일이 아니다.

16. 11절의 의미는 9절, 10절의 내용과 동일 선상에 서 있다. 장래 일이든 과거의 일이든 창조주 하나님의 소관이라는 말이다. 내 아들들에 관한 장래 일은 무엇이며 과거 일은 무엇인가?

    장래 일은 고레스를 일으켜서 백성을 해방하는 것, 과거 일은 포로로 잡혀간 것.

17. 내용상으로 보면 12-13절은 아무래도 앞의 어느 구절과 연결되는 것 같은가?

    8절: 토기장이나 해산하는 아이의 이야기는 삽입절이다. 모든 것을 창조한 내가 고레스를 일으켰다는 말이다. 문맥은 고레스를 일으킨 것인데 창조 얘기가 끼여들고 토기장이의 이야기가 끼여든 것은 창조자이시며 주권자인 내가 이렇게 일을 하였다는 것이다.

18. 애굽의 수고한 것과 구스의 무역한 것과 스바의 장대한 족속들이 다 네게로 돌아와서 네게 속할 것이요 그들이 너를 따를 것이라 사슬에 매여 건너와서 네게 굴복하고 간구하기를 하나님이 과연 네게 계시고 그 외에는 다른 하나님이 없다 하리라? 진짜? 언제 이런 일이?

    여기서 ‘너’는 일단 고레스가 대표로 등장하는 바사(페르시아) 제국을 가리킨다. 페르시아가 이 모든 지역을 점령하고 대제국을 이룰 것이고 그 체제 속에서 이스라엘이 본토로 돌아올 것이다. 더 나아가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에 대한 예표이기도 하다(60장 참고).

19. 고레스를 등장시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가리켜 왜 스스로 숨어 계시는 자라고 하는가(15)?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창조주 하나님은 평소에는 유한한 인생에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고난을 당할 때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일지 모르나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습을 감추고 계실 뿐, 나타나셔야할 때에는 분명히 나타나신다는 확신을 의미한다. 반면에 눈이 보이는 하나님(=우상)은 아무런 능력도 없는 가짜다.

20. 하나님이 우상과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지 16-17절에서 근거를 찾는다면?

    영원함: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은 영원한 반면에 우상에게서는 영원한 것을 기대할 수 없다.

21. 여호와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누가 그걸 모르나? 여기서 강조점은 무엇인가?

    헛되이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이 거하기에 딱 알맞게 제대로 만드셨다. 지구가 사람이 거하기에 얼마나 적절하게 되었는가? 그렇게 생각해보면 하나님은 숨어계시는 듯싶어도 자신을 충분하게 계시하셨다.

22.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 한번 제대로 알아봐라. 땅과 하늘을 창조하신 것을 보든지 아니면 야곱 자손에게 한 말이 헛된 말인지 아닌지 확인해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의롭고도 정직한 말씀만 하신 반면에 우상은 무엇이라고 말하였을까?

    흑암한 곳에서 은밀히 말함(19): 어두운 곳이란 정체를 알 수도 없는 동굴 같은 곳이고 은밀히 말한다는 것은 의미가 분명치 않은 말을 가리킨다. 컴컴한 동굴 속에서 사람의 음성인지 바람소린지 분간이 되지도 않는, 애매한 소리로 말하는 것이 우상의 답변이라는 말이다.

23. ‘열방 중에서 피난한 자들’(20)이란 어떤 사람들을 가리키는 걸까? ‘나무 우상을 가지고 다니며 능히 구원치 못하는 신에게 기도하는 자들’과 대비되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전쟁 피난민이 아니라 여호와 신앙으로 박해받고 쫓겨난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구원하신다는 선언인 셈이다. 무지한 자들의 무지한 박해를 두려워 말라는 것이다.

24. 고하며 진술하고 또 피차 상의하여 보면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말인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지 않으시면 도무지 알 수 없다고 하던데?

    고하며 진술하고 피차 상의할 일을 하나님께서 이전에 행함으로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신 일들을 잘 살펴보면 하나님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만이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심을 알 수 있다.

25. 고레스를 세워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것 같더니 어느 새 하나님의 구원은 온 세상을 향하고 있다. 하나님의 구원이 유대인을 넘어서 온 세상으로 향하고 있는 증거를 두 군데 지적한다면?

    20절의 ‘열방 중에서,’ 22절의 ‘땅 끝의 모든 백성아’ 23절의 ‘모든 무릎’과 ‘모든 혀’: 나를 앙망하라는 것은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리라는 것이다. 그리하면 구원을 얻을 것이다. 참으로 쉬운 방법이다. 공양미를 삼백석이라도 바치라면 힘이 무척 들겠지만 그냥 바라고 돌아가면 되니까!

26. 하나님의 입에서 의로운 말이 나갔는데 돌아오지 않는다니?

    ‘헛되이’를 보충해야 한다. 삼하 2:22에 비슷한 구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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