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3장


1. 하나님과 야곱을 어떤 사이라고 하는가? 본문에 수없이 많이 나타나는 표현들을 종합하여 가장 적절한 관계를 설정해보자.

    짝사랑하는 관계, 즉 이스라엘은 일방적인 사랑의 대상이다(4), 반면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았다(22-24): 창조자, 조성자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야곱만 창조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별한 관계를 나타낼 수 있는 표현이어야 한다. 너는 내 것이란 표현도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 ‘너는 내 것’이라고 하자 ‘내가 물건이가?’라고 대답하는 것은 아직 덜 사랑하고 자존심이 살아 있을 때의 이야기다. 이 표현이 기분 좋게 들릴 때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단계이겠고 그렇지 않을 때는 무서운 주인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구속자, 네 하나님, 거의 거룩자, 구원자,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 왕(15), 찬송 부를 자(21). 증인, 종 등 온갖 표현을 다 써가며 사랑을 구하는 하나님이 안스러울 지경이다.

2. 하나님의 종답게 살지 못하여 바벨론의 종으로 잡혀간 이스라엘을 향하여 다시 애정 어린 고백을 쏟는다. 정말 끈질긴 하나님이시다. 도대체 왜 그러시는가?

    너는 내 것(1) = 사랑의 대상(4)이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이유라면 일찌감치 포기하고 새로 만드는 것이 나을 것이다. 고생 않으려면 사랑할만한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한번 빠지면 고생이 뻔한 데도 온갖 경제적, 인격적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 사랑이다. 끈질기신 하나님!

3. 물 가운데를 함께 하기보다는 아예 물을 지나지 않게 하시면 안 되나? 강을 건널 때 물이 침몰치 않게 하시려고 물을 붙들고 있기보다는 강을 건너지 않아도 되도록 하시지 않고? 불꽃이 사르지 못하도록 지키기 보다는 아예 불을 통과하지 않도록 하면 될 것 아닌가?

    그리로 가야 할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인류가 범죄한 탓이다. 징계를 받을 짓을 했기 때문이다. 그럴지라도 함께 그 과정을 걷겠다는 황송한 말씀이시다. 아담이 범죄한 이후 인류가 당하는 아픔을 함께 겪으시며 온전한 그 나라의 회복을 위해서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지극정성을 기억해야 한다. 시험을 없애 달라고 기도를 가르치지 않고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메시지와 동일하다.

4. 바벨론에 포로된 이스라엘을 구원해내려니 몸값이 필요하다. 이스라엘 대신에 누구를 몸값으로 지불하셨는가?

    애굽, 구스, 스바를(3): 사자에게 다른 먹이를 던지고 구해내듯이 이스라엘을 구해내시겠다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그런 방식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구원하시겠지만 그런 과정을 밟겠다는 것이다. 바사제국(고레스)의 강한 정복욕을 채우기 위해서 애굽, 구스, 스바를 치게 하고 이스라엘은 빼내겠다는 의미인데 훗날에 고레스의 아들 켐베이시스가 애굽을 치게 된다. 구스는 하 애굽(나일 강 상류 지역), 스바는 아라비아 반도 남쪽이지만 홍해를 건너 구스를 다스리기도 했으므로 넓게 보면 애굽이라는 지명 속에 다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5. 바벨론에 포로로 간 이스라엘의 구원이라면 굳이 동서남북을 말할 필요가 없는데 동이나 북이면 충분한데?

    강조법 내지 과장법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놓여나 돌아오듯이 먼 훗날 메시야 왕국으로 죄인들이 돌아올 것에 대한 예언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를 무엇이라고 하는가?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알고, 믿고 깨닫게 하려함(10, 21절은 부수적인 이유라고 볼 수 있다). 꼭 그래야 하나? 뭣이 답답해서? 답답할 것이 전혀 없는 것이 정상인데... 사랑 때문이다. 사랑이 아니라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일이다.

7. 10절의 증인은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하나님을 위한 증인이다. 그러면 9절의 증인은 누구며 누구를 위한 증인일까?

    이방인들, 그들의 신 곧 우상: 10절과 대조시킨다면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도대체 나 외에 누가 신이며 그것을 누가 증거하겠느냐?

8. (위의 질문의 답을 참고해서) 이스라엘과 열방과 민족들을 다 불러 모으는 이유는 무엇인가?

    눈뜬 소경, 귀 있는 귀머거리인 이스라엘을 깨닫게 하려고(10): ‘이스라엘아, 어느 누가(신이) 이런 일을 했는지, 할 수 있는지 찾아보라’는 말이다. 표준새번역은 ‘이 일을 고하며 이전 일을 보이겠느냐?’를 ‘이런 일을 미리 고하겠느냐?’는 미래형으로 해석하였다.

9.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그러니까 하나님도 지음을 받았다는 말인가?

    핵심을 놓치고 엉뚱한 말꼬리를 잡는 독법이다: 나 외에는 신이 없다는 의미일 뿐이다. 아예 꼬투리가 없도록 공동번역은 ‘손으로 지은 신이 나보다 앞서 있을 수 없고...’ 라고 하였다. 이 문장만으로 그런 의미가 있을 수 있다면 다른 문맥에서 그런 생각이 가능한지 살펴서 그렇지 않다면 무리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사람의 말이 완전하지 않은 도구이기 때문에 그렇다.

10.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증인이 되어서 목격한 바를 증거 해야 한다. 무엇을 목격했는가?

    고하였고(=구원하겠다고 예고한대로) 구원하였으며, 다른 신이 없음을 보였다(=원어상, 선포하였다)(12).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구원을 이루셨음을 확연하게 볼 수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증인이 되어야 옳다. 예수께 ‘하늘로서 오시는 표적을 보이라’고 했다가 책망받은(마 16:1-1-3)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잘못이 무엇인가? 눈에 뻔히 보이는 것을 애써 외면하면서 또 다른 표적을 요구하는 눈뜬 소경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체험한 하나님의 구원하심(=영혼 구원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심)을 증거해야 한다.

1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라면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포로로 잡고 있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일시적인 징계로 허용한 것이므로 조만간 바벨론에 큰 일이 벌어지겠지(14): 못난 자식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거나 파출소에 잠시 집어넣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그 자식을 학대하거나 나쁘게 다루었다가는 큰 일 난다.

12.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 일은 아무래도 옛적의 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일 같다. 무엇보다 더 위대한 일을 이루시는 걸까?

    새 일은 출애굽보다 더 크고 놀라운 일이 될 것이라는 암시적인 표현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을 위해서 죽임을 당하시고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일’은 분명히 출애굽보다 더 큰 사건이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출애굽이란 전대미문의,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인데도 잊어버려도 될 만한 새로운 일을 창조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13. 생각하지 말고 기억하지 말라는 이전 일이 무엇일까? 선지자의 의도가 진짜 과거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일까?

    징계 받아서 고생한 일이나 애굽에서 행하신 일을 포함하겠지만 핵심은 ‘과거에 얽매여 그렇게만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뜻이다. 자연이 아무리 위대해도 동일한 과정을 반복하는 반면에 하나님은 과거와 비교해서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을 하실 것이라는 말이다.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는 것이 그렇게 대단하고도 놀라운 일일까? 출애굽보다 더 놀라운 일일까? 아무래도 하나님의 독생자가 자신을 희생해서 인류를 구원하려는 사건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 이사야의 메시지는 자연스럽게 이 메시야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사 53장).

14. 왜 하필이면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물을 내는가?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홍해를 가르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물을 내신다. 그러면 덕을 보는 짐승들이 하나님을 존경할 것이란다. 사람이 범죄 했을 때 만물이 함께 징계를 받았다. 이제 회복이 될 때는 짐승들도 덕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하나님의 사역에 감사하는 들짐승이 내 곁에 얼마나 되는가?

15.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린 제사가 얼마나 많은데 ‘예물(제물)로 인하여 너를 수고롭게 아니하였다’하시는가?

    기본적으로 제물은 죽어야 할 자기 대신 짐승을 바치는 것이었다. 짐이 아니다. 오히려 짐을 얼마나 덜어주었는지 모른다. 더구나 가난해서 부담스러운 자들에게는 제물을 깍아주시지 않았는가(레 1장)!

16.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지 않았다고 하시는 말씀은 아무래도 지나친 것 아닐까?

    제사의 진정한 의미를 상실한 채 형식적으로만 드린 제사는 드린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사야가 이런 투의 말씀을 처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사울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삼상 15:22) 하신 지가 언젠데... 결국 이런 형식의 제사제도는 폐지되고 만다. 하나님은 무슨 제사제도를 도입하시려는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위대한 제물로 대속하신다.

17. 하나님께 찬송을 부르게 하려고 백성들 지었더니 찬송은커녕 무슨 짓을 하였는가?

    죄악으로 하나님을 괴롭힘(24).

18.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받을만한 자격은 무엇인가?

    없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그리하셨다고 말한다(2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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