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1장


1. 바벨론에서 보면 섬들이란 육지가 끝난 다음에 있는 것이다(5절 참조). 땅끝보다 더 먼 곳이다. ‘섬들아 잠잠하라’는 것은 ‘온 세상아 잠잠하라’는 말이다. 온 세상의 모든 민족들아 딴 소리하지 말고 힘을 다해서 토론하자고 하신다. 무엇에 대해서?

    동방에서 사람을 불러 열국을 그 앞에 굴복케 하는 이가 누구냐(2-3)? 특출한 왕이 등장해서 이 모든 일을 할지라도 그를 세워 이렇게 일을 하시는 이는 나 여호와라는 말씀이다. 하나님과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세속 역사도 사실은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2. ‘의로 불러서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뇨?’(2)를 다른 한글 역본들은 ‘누가 그를 가는 곳마다 승리(=원문의 ’의‘)하게 하였느냐?’로 번역하였다. 원문의 해석이 어려운 탓이다. ‘의가 누구를 불러 그의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뇨?’ ‘누가 그 의를 그의 발 앞에 불렀느뇨?’ 등으로도 번역이 가능하다. 이런 번역을 참고한다면 한글 개역의 세 동사(불러서, 이르게, 하였느뇨)의 주어는 각각 누구인가? (영역본들도 참고하는 것이 좋겠다)

    ‘자기’가 하나님을 가리킨다면 ‘하였느뇨, 불러서’의 주어는 하나님이시고 ‘이르게’는 의가 주어다. ‘자기’가 동방의 한 사람을 가리킨다면 ‘불러서’의 주어는 동방의 한 사람, ‘이르게’의 주어는 ‘의’, ‘하였느뇨’의 주어는 하나님이시다. ‘의’라고 번역된 단어가 ‘승리’로 번역이 가능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혼선이다. 동방의 한 사람의 성격이 ‘의로운 통치’에 있으므로(42:1, 42:6과 일관성 유지) 단순히 승리로만 이해하는 것보다는 ‘의’로 이해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 개역의 번역이 적절하다는 뜻이다. 원문이 다소 애매하므로 번역이 애매한 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3. 동방에서 하나님께 불려와 열국을 굴복케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사야가 누구를 염두에 두고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몇 장을 계속 읽으면서 찾아보자.

    고레스(44, 45 장): 고레스는 하나님의 선지자도 신앙인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하나님께서 세우고 쓰셨다. 그러나 단순하게 고레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이 땅에 임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메시야에 대한 의미를 담고 있다.

4.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일만 터지면 어디에 매달리는가?

    목공, 메질군, 금장색이 만든 우상을 의뢰한다: 강력한 왕이 등장하여 온 세상을 정복하자, 민족들이 자구책을 강구하는 것이 우상을 손질하는 것이다.

5. 금장색은 금을 얇게 펴서 우상을 만든다. 금을 고르게 잘 펴서 만든 우상과 솜씨가 좀 떨어진 금장색이 만든 우상은 어느 것이 값이 더 나갈까? 못질을 단단하게 해서 흔들리지 않는 우상과 좀 흔들리는 우상은 어느 쪽이 더 효력이 있을까?

    다 소용없는 짓이다: 요는 사람이 만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말이다. 잘 만든다고 더 나은 것도 아니고 잘 못 만든다고 애통해 할 것 없다. 애시당초 효력은 없는 것이니...

6. 이스라엘을 가리켜 종, 택한 자, 벗이라고 하신다. 도대체 어느 말이 맞는가?

    다 같은 말이다: 인간을 가리켜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 것이나 하나님의 벗이라고 하는 말은 같은 말이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왕노릇하는 것이나 문지기나 동일하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은 종노릇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특히, 부부 사이에서!

7. 본문에는 야곱의 현실이 어떠한지 짐작할 수 있는 표현이 많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 하나만 지적한다면?

    지렁이(14): 땅 끝에 있다(9).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다(9). 두려워하고 있다(10). 전쟁에 패하여 압제를 당하고 있다((11-13).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갈증에 목말라 하듯 하나님을 찾고 있다(17). 실제로 바벨론에 포로로 가서 강둑을 쌓는 대규모 토목 공사에 동원되어 고생하는 모습은 어떻게 보면 지렁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야곱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리라고 하신다.

8. 이스라엘의 구속자는 여호와라고 하신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을 것이란다. 그러면 2절에서 말한 ‘동방에서 불러온 사람’은 무슨 소용이 있나?

    그 사람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지만 실제로는 그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는 말이다.

9. 이스라엘을 어떻게 하겠다고?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로 만들겠다. 그러면 원수는? 이 기계에 부숴지고 타작한 겨처럼 될 것이다. 이스라엘을 일으켜 대적과 싸우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므로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인하여 자랑하리라’는 것이 더 좋은 답이 되겠다.

10. 이스라엘 땅에는 강, 샘, 못이 별로 없다. 그런 땅에는 강과 샘과 못이 가장 귀한 선물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광야나 사막은 무슨 선물이 가장 귀한 선물이 될까?

    무성하게 나무가 자라는 것: 광야에 백향목과 싯딤나무와 화석류와 들 감람나무를 심고 사막에는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이 나는 것처럼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풍성한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그제서야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알게 되리라.

11. 이스라엘의 구원의 모습이 두 가지로 나타난다. 전장에서는 포로에서 해방되는 것이었다. 본장의 8-14도 그런 셈이다. 15-19는 원수를 깨끗하게 정복하는 모습과 산천초목이 완전히 변해버린 모습이다. 어느 쪽이 진짜일까?

    둘 다 맞다: 이스라엘의 구속을 말씀하시면서 또 한편으로는 메시야에 의한 구속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15-19는 메시야로 인한 온전한 구속을 뜻하는 것이다. 사막에 물이 흐르는 것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메시야의 세상을 언급하는 표현이다(35장 참고).

12. 하나님께서 우상과 견주어(도무지 그럴 수 없는 것이지만) 다른 점이 무엇이라고 하시는가?

    장래사를 말할 수 있는 것: 과거사를 살펴도 동일한 결론을 얻을 수는 있지만(22) 장래사를 말할 수 없으면 능력이 없는 것이다. 여기서 장래사란 복이든 화든 미리 말한 대로 줄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묘하게도 무당이나 점장이들도 과거는 잘 맞힌단다. 장래에 대한 것은 두루뭉실한 것이 일반적이고 확률이 그리 높지 않다.

13. 앞에서는 동방에서 한 사람을 불러오신다더니 여기서는 ‘북방에서 오게 하며 해 돋는 곳에서 오게 하신다’고 하는가? 두 사람을 가리키는가?

    한 사람 고레스이다: 바사의 고레스가 바벨론을 멸할 때 메대 군사를 동원한다. 바사는 동쪽이고 메대는 북쪽이다.

14. 바벨론에 포로로 있던 이스라엘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진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무엇이라고 하는가?

    그 일을 이룰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모사도 어떤 우상도 그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회삼물(灰三物): 석회, 황토, 세사(細沙)를 한데 섞어 반죽한 것, 장례의 방회(傍灰: 관의 가장자리를 메움), 천회(天灰: 관의 위를 다지는 석회)로, 또는 건축에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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