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0장


1. 이사야서의 내용상 큰 특징은 책망, 징계, 회복의 반복이다. 40장은 어느 단계인가?

    회복: 위로하라(1), 정다이 말하라, 복역의 때가 끝났고, 죄악의 사함을 입었고, 배나 받았느니라(2).

    이스라엘이 이렇게 회복되어야하는 존재가 된 것은 39장이다. 39장까지 1권으로 보고 40장부터 제 2의 이사야라고 하는 주장이 있는데 39장을 별도의 책으로 나누어 버리면 40장은 근거가 없는 책이 된다. 느닷없이 위로하고, 징계가 끝이 났다? 앞쪽에 복역의 이야기가 있는 것이 정상이다. 한 개의 양피지에 기록하기에는 엄청나게 큰 부피임에도 사해사본이 발견될 때 이사야는 두 개의 두루마리가 아니라 1개의 두루마리로 발견되었다. 제 2 이사야를 주장하는 주된 이유는 41장에 등장하는 고레스 때문이다. 고레스는 히스기야보다 100여 년 후의 사람이므로 이사야가 예언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비평학자들은 하나님이 미래에 대해서 말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 다음 설명의 빈 곳에 알맞은 나라 이름은?

    1-39장의 역사적인 배경은 이사야시대(웃시야, 아하스, 히스기야)이다. 37장까지의 내용은 (      )의 왕 산헤립으로부터의 구원이라면 이제부터는 (      )으로부터의 구원, 더 나아가서 메시야의 구원(초림), 최종적인 구원(재림)으로 나아간다. 40-56:8의 배경은 (      ) 포로이다.
    앗수르, 바벨론, 바벨론

3. 1-3절은 헨델의 메시야에서 첫 번째 서창(테너)의 가사로 쓰일 정도로 운율적인데(특히 원어) 우리 개역성경은 그 맛이 없는 셈이다.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를 빼고 나머지만 고쳐보자, 원어는 그 말이 먼저 나오기 때문이다.

    ‘위로하라, 위로하라, 내 백성을’: 영어(NIV)는 Comfort, Comfort, My people이고, 원어 발음은 ‘나하무, 나하무 암미’이다. 우리말은 음절이 길어서 어쩔 수 없네!

4. 이스라엘은 중도사면인가? 만기 출소인가?

    만기 출소: 그러면 하나님께 굳이 감사할 것도 없네? 하나님을 배반하고 끝내는 이런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들이 지은 죄에 대해서 형벌을 이 정도로 정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용서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안다면 만기출소하고 떳떳할 수 없다. 영영 버리지 않고 일정한 기간만 벌한 것에 오히려 감사해야한다! 사형에 처할 죄인을 조금 맛만 보여주고 데려나오면서 ‘만기출소 했으니, 수고했다’고 하는 셈이다.

5. ‘배나 받았느니라’는데 무엇을 배나 받았는가?

    벌: 벌을 충분하게 받았다는 뜻이다. 자신들의 죄에 비한다면 결코 충분한 벌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는 말이다.

6. 3절의 ‘광야에서’라는 구가 무엇을 수식하는 것으로 보느냐에 따라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해진다. 본문처럼 ‘예비하라’를 수식하는 경우와 난외주처럼 ‘외쳐 가로되’를 수식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 자연스러운지 생각해보자.

    양쪽으로 해석이 다 가능하며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신약에 어떻게 인용되었는가를 살폈다면 잘한 일이다. 신약은 4번(마 3:3: 막 1:3: 눅 3:4: 요 1:23) 전부 후자이다. 그것은 신약이 구약을 직접 인용한 것이 아니라 70인역 헬라어 성경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약에서는 이 광야의 소리를 세례 요한을 가리키는 것으로 인용하고 있다.

7. 광야에서 외치는 자가 있었다. 백성들이 전부 포로로 잡혀가고 없는 광야에서 외로이 있던 소리가 드디어 할 일이 생겼다.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3) 그 외침이 유다의 고난이 끝난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여호와의 길, 하나님의 대로를 통행할 자들이 바로 유다 백성들이다. 즉 유다백성들이 돌아오는 길을 위해서 대로를 예비하라는 것이다.

8. 외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두 가지를 지적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4): 대통령이 행차하면 없던 길도 생기고, 청소차가 요란스레 돌아다니는데 감히 하나님의 행차에 골짜기가, 산이 그냥 가만히 있어? 고속도로가 생겨날 것이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돌아오는 모든 장애물이 제거될 것임을 암시한다.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5): 겔 11장에서 사라졌던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나타난다. 출애굽 시에 불과 구름기둥으로 나타나셔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셨던 그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나타날 것이다.

9. 외치는 자의 소리가 다시 외칠 때 마르는 풀은 누구를 가리킬까(6)? 복역의 때가 끝나서 돌아오는 이스라엘이 풀처럼 마른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가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영영히 서리라는 것은 일시적으로 사라진 듯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좁게 본다면 영원히 싱싱할 것만 같은 바벨론을 가리킨다: 바벨론에서 포로로 지내며 소망이 없어 보이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영원히 거할 것이며 영원히 쇠하지 않을 바벨론은 풀의 마름같이 시들어 버릴 것이다. 포로로 잡혀 고생하는 입장에서 보면 하나의 바람일 수는 있겠지만 이렇게 믿는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다.

    넓게 본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못한 모든 인류: 이스라엘마저도 포함하는 인생이라고 보아야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 40:31).

10. 열심히 외치던 ‘소리’의 최종적인 메시지는 무엇인가?

    하나님을 보라: 포로에서 돌아오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왜 이렇게 묘사하는 걸까? 하나님께서 앞장서시고 이스라엘은 뒤를 따르는 양떼같은 모습으로 돌아올 것을 말한다(12). 돌아오는 이스라엘을 보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없이 이스라엘이 회복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성도의 진정한 복은 하나님이 앞장서시는 것을 따라가는 것이다. 범죄로 하나님이 떠나고 이스라엘이 징계를 받아 포로로 잡혀가는 모습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11. 하나님께서 강한 자로 임하셔서 친히 다스린다는 말도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그런데 여기에다 더 기분 좋은 일이 있다면?

    상급과 보응이 그에게 있는 것: 매를 들고 다스려도 순종할 판인데 매는 없고 상급과 보답용 선물만 있다면야 더욱 좋지 않을까!

12. 하나님은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가? 12-26절까지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하는지 한 단어로 나타내보자.

    절대자: 비교할 대상이 없다는 점이 강조된 점에서 창조자보다 절대자라는 것이 더 어울린다. ‘누가(누구와) 감히 ~ 하겠느냐?’는 표현이 7번이나 반복되는 것은 비교할 자가 없다는 말이다.

13. 이스라엘의 회복을 외치고 노래하더니(1-11) 갑자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12-26)은 웬일일까?

    이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신다면 확실한 것 아니냐? 누가 나서서 감히 방해하겠는가? 어떻게 이스라엘의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느냐(27)?

14. 하나님을 온순하게 양을 모는 목자라고 하더니(10-11) 갑자기 이렇게 대단하신 분(12-26)이라고 말하나?

    그의 백성들에게는 온순한 목자, 대적자들에게는 이렇게 위대하신 전능자, 창조자이시다.

15.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나 큰지 ‘하늘을 두루마리로 삼고 바다를 먹물로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다 기록할 수 없다’고 했다(찬송가 404). 하나님의 높고 높음을 이와 비슷하게 표현한 말을 본문에서 찾는다면?

    16절: 레바논 짐승들은 번제 소용에도 부족하겠고 그 삼림은 그 화목 소용에도 부족할 것이라. 그러면 레바논보다 덜 풍성한 이스라엘은 어떻게 감당하나? 실제로는 감당할 수 없지만 지극히 작은 예물을 하나님께서 큰 것으로 여겨주시기 때문이다. 진짜 예물인 독생자가 있기에 작은 예물도 기쁘게 받아주셔서 가능했다.

16. ‘손바닥, 뼘, 되, 명칭(어깨저울), 간칭(손저울)’의 공통점은?

    측량 도구: 하나님의 피조세계조차 측량할 수 없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측량하겠는가! 문명이 발달한 현대에는 좀 나아졌을까?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그건 우리끼리의 이야기일뿐,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면 문명의 발달이 하나님을 아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17. ‘물동이의 물 한 방울, 저울에 얹힌 티끌 하나, 떠오르는 먼지’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당시의 내로라 하는 나라들: 흔들리는 나라의 운명을 바라보면 주변의 강대국들이 얼마나 두려운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면 이 나라들이 ‘붓고 남은 물 한 방울, 있으나마나한 티끌이나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

18. 우상은 사람이 만든 것,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라고 하시는가?

    땅위 궁창에 앉으신 분(22): 높은 곳에 앉으셔서 세상을 주관하시는 창조자이시다.

19. 동물이든 식물이든 간에, 아니 아무리 작은 미생물일지라도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가 얽히고 설켜 삶을 이어간다. 창조주의 놀라운 섭리 하에서 창조되고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본문에서 그것을 의미하는 표현은 무엇인가?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 본질을 꿰뚫고 있다는 말이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하나도 빠짐없이 만상의 이름을 불러낼 자는 없다. 미물같은 생물이라도 살아가는 지혜를 보노라면 이런 고백을 할 수밖에 없다!

20. 야곱이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다’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어떤 경우에도 이들이 하나님을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생각해보자.

    자신들의 잘못보다는 하나님의 능력이 모자라서 그런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결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다’고 대답하신다.

21. 아이들이 설치는 것은 말리기 어렵다. 장정을 넘어뜨리기도 어렵다. 아이보다 장정보다 더 힘 있는 자는?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포로에서 돌아오는 이스라엘이 이처럼 새 힘을 얻어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이 회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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