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9장


[ 역사적 배경 ]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부로닥발라단 왕하 20: 12)은 BC 722년에 바벨론 지역을 다스리던 앗수르에 반란을 일으켜 바벨론을 통치하다가 앗수르 왕 사르곤에 의해 쫓겨났다가 다시 회복했으나 사르곤의 아들 산헤립에게 또 추방당했다. BC 702년에 엘람에 근거지를 정하고 앗수르에 대항하고 있었다. 이 때 히스기야의 병 나은 소식을 듣고 앗수르에 대항하기 위한 군사동맹을 목적으로 사절단을 보냈을 것이다. 아직은 단독으로 앗수르에 맞설 힘을 가지지 못했던 때이다. 산헤립이 히스기야를 공격하던 때(병든 때)가 BC 701년이다.

1. 바벨론은 후일에 유다를 멸망시키는 나라이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강대국이 무엇 하러 이 작은 나라에 사절단까지 보냈을까?

    군사 동맹을 위해서: 바벨론이 후일에 강대국이 되지만 현재로서는 힘없는, 앗수르의 속국이기 때문이다. 히스기야가 거드름을 피워도 될만큼 약한 나라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히스기야가 경험한 기적에 관한 것이었을 것이다(대하 32:31).

2. 앗수르는 위험 세력이고, 바벨론은 우호 세력이다. 히스기야가 바벨론의 사절단에게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 ‘보물을 보여준 것’은 초등학교 아이들의 맞는 답이고...

    일종의 교만이다. 산헤립에게 쩔쩔매던 그가(왕하 18:13-16) 좀 형편이 나아졌더라도(대하 32:22-23, 27-31)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했다. 돈 있다고 티내지 말고, 아는 게 좀 있다고 티내지 말자.

3. 이사야의 질문에 대한 히스기야의 답변 ‘원방에서 왔나이다’는 자랑일까? 변명일까? 가능성이 양쪽으로 있다고 보고 그 의미를 생각해보자.

    자랑이라면: 먼 곳에서 사신이 왔다는 것은 자신의 업적이 널리 알려졌다는 자부심이 담긴 말이었을 것이다.

    변명이라면: 먼 곳에 있는 나라이므로 유다에 그리 위협적이지 않다. 이렇게 멀리서 왔으니 환대해줘야 하지 않겠느냐?

4. ‘그들이 무엇을 보았느냐?’는 이사야의 질문에 대한 히스기야의 답변하는 태도는 어떠한가?

    솔직하다: 이것이 철없는 태도인지 반성하는 태도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아무래도 전자 같아 보이는데... 병이 나은 것과 바벨론의 사자가 온 것에 대해서 다소 흥분한 것 같다.

5. 이사야의 선고를 히스기야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바벨론은 앗수르의 압제를 받고 있는 약소국인데 어떻게 유다의 모든 것이 바벨론으로 옮겨질까?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 일이었을 것이다.

6. 유다가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잡혀가는 것이 결국은 히스기야의 잘못 때문이네?

    전체적으로 유다 역사를 보면 그 일이 히스기야 때문이 아니라 민족적인 범죄행위 때문이다. 히스기야의 교만이 일조했음은 틀림없지만 전적으로 이 일 때문만은 아니다.

7. 끔찍한 선고에 기꺼이 순응하는 히스기야의 모습은 다윗의 어떤 모습을 연상시키는가? 아마도 이런 점 때문에 그의 생전에는 태평과 진실이 있었을 것이다.

    나단 선지자의 지적에 바로 회개하는 다윗: 엘리도 그랬고, 다른 선지자들도 그랬던 것 같은데?

8. 무엇이 놀라운 은혜를 체험한 히스기야를 넘어지게 하였는가? 질병? 전쟁?

    자만: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로 위기를 넘기고도 그 은혜를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공로인 양, 자신의 방법으로 살려는 태도 때문이다. 그럴 능력이 없으면 차라리 자랑할 것이라곤 하나도 없이 하나님만 바라고 사는 것이 더 복되지 않을까? ‘하나님의 은혜’를 사람의 방법으로 지키는 것은 위험하다. 없을 때는 하나님께 매달리다가 있으면 재물을 의지하는 비극! 월드컵에서 선제골을 넣고 흥분하다가 퇴장 당하고 결국은 시합에 지고 말았다(하석주). 받은 은혜를 잘 보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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