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6장


1. 사 36장은 왕하 18장에 있는 내용이다. 비교해서 차이가 있는가 보라.

    왕하 18:14-16이 없음, 그 외에는 거의 같거나 약간 축소시킴(왕하 18:32, 34절 ↔ 사 36:16, 19): 이사야는 왕하 18-19장과 동일한 자료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 틀림없다. 37장은 차이가 전혀 없다. 그런데 유독 히스기야가 산헤립에게 항복하고 성전의 금을 갖다 바친 내용만 왜 삭제했을까? 특별한 의도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것은 36-37장을 쓰는 의도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36-37장은 이사야를 통해서 주어진 약속과 예언의 성취이다. 이사야의 본론(7장 이하)은 아하스에게 하나님만 의지하고 북 이스라엘과 아람의 동맹군에 대해서 두려워말라는 것이지만 아하스는 이것을 거절하고 앗수르를 의지한다. 선지자는 앗수르를 믿지 말라고 경고하고 하나님께서 앗수르에서 유대를 구원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36-37은 그 약속의 성취이다. 그런 점에서 히스기야의 실수는 도움이 안 되는 내용이니까.

2. 라기스가 어디길래 앗수르 왕이 라기스에서 군대를 파송하는가?

    라기스는 예루살렘의 남서쪽 평지(세펠라 지역, 좁게 보면 평지지만 크게 보면 골짜기다)의 가운데 있는 중요한 요충지이다. 예루살렘은 산악지대의 꼭대기에 있고 라기스는 평지 계곡 가운데 있다. 만약 애굽이 이스라엘을 도우려고 원군을 보낸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요충지이다. 산헤립이 라기스를 먼저 점령하고 본부를 차린 다음에 예루살렘을 치는 것이다. 산헤립이 이스라엘과 관련된 두 가지 유물을 남겼는데 하나는 자신의 공적을 기록한 석비이고 또 하나는 왕궁의 벽화인데 라기스를 공격하는 장면을 자랑스럽게 그려놓았다. 산헤립이 라기스 점령을 자랑으로 생각할만큼 중요하고도 튼튼한 성읍이었다.

3. 랍사게가 선 곳, ‘세탁업자의 터의 대로 윗못 수도구 곁’이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이사야가 아하스를 만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던 곳이다(7:3). 아하스가 끝내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은 결과 북 이스라엘과 아람의 침입은 문제가 되지 않더라도 앗수르의 침입을 당하게 되었고, 선지자가 섰던 자리에 랍사게가 서서 위협을 하고 있다(7:3-17).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긴 것이 이런 식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좋은 말로 할 때 듣는 것이 약이다.

4. 랍사게는 하나님을 부정하지 않는다(10). 믿는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에게 유리하게 끌어다 붙이기 위해서 하나님을 부정하지 않는다. 자기가 이렇게 쳐들어온 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뭐라고 하면서 자신의 말을 정당화시키는가?

    하나님의 산당과 제단을 히스기야가 축소시키지 않았느냐(7)? 이방인의 시각에서는 예루살렘에서만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이 신을 모독하는 것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5. 랍사게가 유다의 대신들에게 한 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자. 그 중에 어느 말이 듣기에 가장 아플까?
1) 4-5:
2) 6:
3) 7:
4) 8-9:
5) 10:

    1) 4-5: 뭘 믿고 까부느냐? 입만 살아가지고!
    2) 6: 애굽을 의뢰하지 말라. 상한 갈대 지팡이는 오히려 사람을 상하게 하는 법이다.
    3) 7: 하나님의 산당과 제단을 히스기야가 축소시키지 않았느냐? 이방인의 시각에서는 예루살렘에서만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이 신을 모독하는 것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4) 8-9: 말을 준대도 탈 사람이 있겠느냐? 강남의 아파트를 거저 준대도 유지비라도 있겠느냐?
    5) 10: 이것도 하나님의 뜻 아니겠느냐? 여호와께서 네게 그랬다고? 겁이 없구만! 그래도 이 말이 가장 듣기에 거북했을 것이다. 교회가, 성도가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이 말이 거북스럽다면 그래도 희망이 있다.

6. 옛날 전쟁은 그래도 운치있는 전쟁이다. 어떤 점이 그런가?

    백성들이 못 알아듣게 아람 방언으로 말해다오! 왕의 체면은 세워다오! 이런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 랍사게는 고약한 놈이다......?!

7. 두 번째 랍사게의 말(13-20) 중에서 12절과 16-17절은 많이 달라 보인다. 왜 그럴까?

    12절은 대신들에게 공갈치는 말이고, 16-17절은 백성들에게 유화책을 쓰는 것이다.

8. 두 번째 랍사게의 말(13-20)도 간단하게 정리해보자.
1) 14-15, 18:
2) 16-17:
3) 18-20:

    1) 14-15, 18: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2) 16-17: 항복하면 잘 먹고 잘 살게 된다: 원문에는 ‘항복하라’는 말 대신에 ‘평화를 누리자’는 표현을 썼다.
    3) 18-20: 앗수르왕보다 더 강한 신은 없다.

9. 랍사게가 하는 다음 말은 아주 그럴 듯하다.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각각 자기의 포도와 자기의 무화과를 먹을 것이며 각각 자기의 우물 물을 마실 것이요 내가 와서 너희를 너희 본토와 같이 곡식과 포도주와 떡과 포도원이 있는 땅에 옮기기까지 하리라’(36:16-17). 이 말을 듣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는 것이 정상인가?

    항복하면 잘 먹고 잘 살겠구나: 이건 바보다.
    죽지는 않겠구나: 정상이다.
    다른 지방으로 끌려가겠구나: 말끼를 알아듣는, 눈치 빠른 사람이다.
    랍사게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입장을 미화하여 항복하라고 백성들을 유혹하는 말이다.

10. 잘 모르는 지명(하맛, 아르밧, 스발와임)이 많이 나온다. 모르는 지명이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앗수르에게 점령당한 곳: 이 지역의 신들이 다 앗수르 신 앞에 굴복했으니 여호와인들 별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이런 앗수르인들을 가리켜 이사야는 ‘간 큰 도끼’라고 말했다(사 10:15).

11. 랍사게가 하는 큰 소리(18-20)가 자기로서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는 ‘그들(신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졌느냐?’는 말은 옳지 않다. 어떤 반론이 있을 수 있는가?

    사마리아의 멸망은 앗수르의 위대함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범죄함 때문이다(왕하 17:7-8). 다른 나라는 몰라도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해서 자기가 위대하기 때문이라는 말은 취소해야 한다. 그것 때문에 앗수르는 반드시 징계를 받게 된다(사 1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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