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4-35장


33장에서 계속

12. 34장은 최종심판을 말하고, 35장은 최종 구원을 말함으로 이사야서 전반부의 실제적 결론을 내린다. 그러면 1절의 ‘열국’과 ‘민족’은 증인일까 심판의 대상자일까?

    하나님께서 하늘이나 땅을 불러 증인으로 삼으신 적은 더러 있다(1:2, 신 32:1). 그러나 여기서는 증인이라기보다는 심판 대상자들에게 와서 심판을 선포하는 것을 들으라는 것이다.

13. 하나님의 진노는 완전한 진멸을 불러온다. ‘살륙 당한 자는 내어던진 바 되며’라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내어던지는 것’의 상대어를 생각해보자.

    매장내지는 정상적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 결국은 죽임을 당하고 시체마저 버려진다는 뜻이다. 그러면 악취가 진동하게 되고 피가 강물같이 흘러 산이 깎여 나간다. 이러니 시체를 어떻게 매장하겠는가? 엄청난 살육이 있을 것을 의미한다.

14. 이 심판이 단순한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전우주적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중요한 단서가 있다면?

    하늘의 만상(일월성신)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 같이 말리는 것(4): 천체의 변동은 최종 심판의 표징으로 사용된다(마 24:29, 계 6:13)

15. 25장에서 열국의 대표는 모압이었다. 이제는 에돔이다. 에돔(에서, 야곱의 형)은 이스라엘과 혈통관계가 있음에도 끊임없이 대적하였다(옵 1장, 겔 35장). 에돔에 대한 심판은 마치 무엇과 같다고 암시하는가?

    희생 제사: 어린 양과 염소의 피, 수양의 콩팥 기름이란 제사제물을 뜻한다. 번제를 드릴 때 짐승을 잡아서 각을 뜨고 깨끗이 태워 없애는 것처럼 깨끗이 살라질 것이다.

16. 에돔을 ‘멸망으로 정한 백성’이라고 하는 것(5)은 에돔의 멸망이 어쩌다가 생긴 일이 아니라 필연적인 것이라는 말인데 그에게 내리는 칼을 어디에 비유하는가?

    목마른 사람이 갈증을 해소한 후에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는 것에 비유함(5절의 ‘족하게 마셨은즉).

17. 어린 양과 염소, 수양 외에 들소와 수소와 송아지가 한 가지로 도살장에 내려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덩치가 큰 짐승들도 예외없이 도살될 것은 신분의 고위 여하를 막론하고 심판이 시행될 것임을 뜻한다. 특히 들소(7)는 제사에 사용되지 않는 짐승으로 크고 힘이 세다.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을 것임을 상징하는 셈이다.

18. 에돔이 이렇게 끔찍한 살육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복수’이기도 하고 ‘시온의 신원’이기도 하다(8). 하나님이 이런 복수의 화신인가?

    복수라기보다는 신원이란 단어에 주목하는 것이 옳다: 신원이란 보상, 보수의 의미인데 그 동안 시온(유대)이 당한 고통을 회복시키는 의미가 강하다. 최후 심판은 미루고 미루었던 하나님의 분노를 터뜨림으로 하나님의 위치를 회복시키는 셈이다. 이걸 누가 탓하랴! 그 동안 참아주신 것만도 감사해야지!

19. 역청과 유황의 공통점은?

    불에 잘 탄다: 밤이나 낮이나 끊임없이 불길이 치솟아 오르는 모습은 최후 심판 이후의 모습이다(막 9:48).

20. 에돔에 온통 꺼지지 않는 불이 타고 있는데 웬 짐승들이 이렇게 번성하는가?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말이나 짐승이 번성한다는 말은 동일한 의미로 땅이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황폐화된다는 말이다. 논리적으로 따질 문제가 아니다. 옛날에는 달을 쳐다보며 감상에 젖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았다. 그런 것을 논리적으로 따지면 안된다.

21. 줄과 추는 무엇을 하는 도구인가? 여기서는?

    줄과 추는 건축 도구이다: 혼란스럽게 하는 줄과 공허하게 하는 추라면 파괴를 의미한다. 혼란과 공허는 창조 이전의 무질서하고 혼돈스러운 모습을 가리키는 말이다.

22. 에돔이 심판을 받고 무너지면 살판 난 것은?

    짐승들이다: 신났다. 짐승들이 동류를 만나서 쉬고, 깃들이고, 알을 낳고, 짝을 짓고.....

23. 제비를 뽑아 땅을 나눠주신 것은 가나안 정복 이후의 일이다. 그와 비슷하게 하나님께서 짐승들에게 그렇게 땅을 나누어주셨다. 짐승들도 아무데서나 제 멋대로 사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거주지가 정해져 있다. 짐승들이 자신의 거주지를 빼앗기지 않고 영영히, 대대로 거하게 된다는 것이 에돔의 심판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짐승들이 번성하고 잘 산다는 것은 반대로 에돔이 깨끗하게 멸망했다는 역설적인 표현이다. 그렇긴 하지만 짐승들의 번성을 너무나 자세하게 그것도 하나님께서 특별한 관심을 가진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담이 범죄하고 징계를 받을 때와 노아 홍수 때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좀 다르다. 그 때는 사람에 대한 징계가 곧 자연에 대한 징계로 이어졌다. 그러나 여기서는 에돔은 멸망할지라도 자연은 번성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이다. 다음 장의 회복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에돔의 멸망과 자연의 회복이 오버랩(overlap)처럼 그려진다.

24. 전통적으로 16절의 ‘이것들’을 여호와의 말씀으로 보고 ‘성경은 모든 구절이 짝을 이루고 있기에’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원리와 하반절을 성경의 영감설을 증명하는 본문으로 사용한다. 그런데 앞뒤 문맥은 그렇지 않다. 짐승들이 번성하는 이야기 속에 하나님의 책을 해석하는 원리나 영감설을 말하는 이유가 뭘까? 아니라면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는 구절만 삽입구로 가정해서 빼고 읽어보라.

    ‘이것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17절의 ‘그것들’이 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은 명확하다: 삽입구로 친다면, 에돔 사람들은 철저한 징계가 가해져 모두가 사라진 반면에 짐승들은 빠진(멸종?) 놈도 없이, 짝을 이루어 잘 살고 있다. 그렇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말이다(=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그래야, 15, 16, 17절이 문맥상으로 자연스럽다. 다만, 이 때 ‘여호와의 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아마도 창세기?). 이런 일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확실하게 이루어지는지 아닌지 살펴보라는 도전이다(참고 55:11).

이사야 35장

25. 앞장 끝에서 말한 것처럼 짐승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번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광야와 메마른 땅,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날 것이다. 자연의 소생을 말한다. 2절 가운데의 ‘그것들’은 영어로는 ‘They’이다. 일반적인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지 광야와 메마른 땅을 가리키는지 분명하지 않다. 생각해보고 다른 번역본들을 참고해보자. 비슷한 구절이 40:5에 있다.

    아무래도 일반주어로, 즉 ‘사람들이’로 번역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우리말 개역은 광야와 메마른 땅을 가리키는 것처럼 번역되었다!

26. 자연의 회복을 말하면서 레바논과 갈멜과 사론을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참고 33:9)?

    징계 받을 때 대표이었으니 회복될 때도 대표 노릇해야지: 레바논은 향기로운 백향목으로, 갈멜산은 웅장한 상수리 나무로, 사론은 꽃들과 비옥한 목초지로 유명했다.

27. 3-4절은 ‘연약한 자의 소생’이라고 한다면 5-6절은 무엇이라고 할까?

    장애자의 소생

28. 세례요한이 예수님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이사야 35:5-6 을 가지고 대답을 대신하셨다(마 11:5, 눅 7:22). 무슨 의미로 그렇게 말씀하셨는가?

    메시야 시대의 표징으로: 예수께서 앉은뱅이를 고치시고(요 5:8-9),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는 것(요 9:6-7)은 ‘내가 메시야라’는 선언과 전혀 다르지 않다. 이사야의 예언을 아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그런 이적을 단순한 기적으로만 본 것이 아니다.

29. 7-10절도 일차적인 의미와 이차적인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일차적인 의미는 무엇을 가리키는 걸까?

    포로 귀환: 대로(7), 돌아오되, 시온에 이르러(10) 등의 표현이 이스라엘이 시온으로 돌아오는 과정에 대한 묘사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연약한 자와 장애자는 육체적인 의미라기보다는 징계를 받아 어려움에 처했던 이스라엘의 형편을 가리키는 것을 포함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사야의 예언은 항상 그러하듯이 일차적인 의미를 넘어서 이차적인 의미, 즉 메시야의 나라를 가리키고 있다. 만물이 회복되고(사막, 약한 손, 떨리는 무릎, 겁, 소경, 귀머거리, 저는 자, 벙어리, 메마른 땅, 우매한 자, 사나운 짐승이 사라질 것) 더 이상 상함도 없고 해치는 짐승도 없는 평화로운 곳, 영영한 희락, 기쁨, 즐거움이 있는 곳은 궁극적으로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이다.

30. 대로란 고속도로인 셈인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구속함을 입은 자들: 일차적으로는 포로에서 귀환하는 유대인들을 가리키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31. 이렇게 아름다운 낙원을 언급한 것이 여기가 처음이 아니다. 또 어디에 있었는가?

    11-12장: 이스라엘의 징계를 언급하는 두 단원(7-12장, 28-35장)을 파라다이스로 마무리 하였다. 이런 아름다운 하나님이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하나님과 선지자의 목표이니까 자연스러운 결말이다.

32. 본문은 초림을 말하는가, 재림을 말하는가?

    이사야의 메시지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초림과 재림이 겹쳐 있다. 그러나 초림도 재림을 위한 예비 단계라는 점을 생각하면 매사에 재림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하나님의 목표는 초림의 십자가가 아니라 종말에 완성될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