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1-32:8장


1.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대의 왕들은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이다(1:1). 이 중에서 애굽을 의지하던 왕은 누구인가?

    히스기야(왕하 18:21, 24): 28-35장의 내용은 7-12장과 비슷하다. 다만, 7-12는 아하스 시대에 앗수르를 의지하는 것에서 예언이 시작되었는데 28-35에서는 히스기야 시대에 애굽을 의지하려는 것에 대한 책망으로부터 예언이 시작된다.

2. 우리는 6.25를 생각하면 전차가 생각난다. 그 놈의 전차 때문에 혼비백산했던 경험이 있다. 이사야 시대의 이스라엘 군사들에게 물어본다면 전쟁을 생각하면 무엇이 가장 아쉬웠을까?

    말이 이끄는 병거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모양이다(1절의 말, 병거, 마병): 실제로 의지해야할 것은 하나님인데 말이 더 크게 보인 모양이다. 앗수르 군대가 이런 병거를 이끌고 세계를 제패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애굽의 말에 끌린 모양이다. 아무래도 하나님보다는 현실이 다급한 모양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를 예상하고 미리 말씀하신 것을 기억했어야 했다. ‘왕된 자는 말을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말을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신 17:16)

3. 하나님께서 유독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기껏 종살이 하던 곳에서 구해놨더니... (왕하 17:7: 북 이스라엘이 망한 원인을 설명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이런 마음이 드러난다)

4.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지혜로우신데 왜 재앙을 내리시는가? ‘...도’에 주목해서 생각해보자. 또 누가 지혜롭다는 말인가?

    애굽이나 유다의 지도자: ‘애굽에게 도움을 구한다고? 하나님께서 애굽보다 못하시다는 거냐? 너희만 꾀가 있고 하나님은 없는 줄 아느냐?’ 는 느낌이다.

5. 여호와께서는 ‘그 말을 변치 아니하시는 분’이시다. 정말인가? 징계를 말씀하시고도 돌이키신 적이 적지 않은데?

    정말이다: 그러나 ‘너희가 끝내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이란 전제가 붙어 있는 말이다. 수도 없이 징계를 말씀하시면서도 결국은 회복을 말씀하시는 분이시다. 그의 백성들이 돌이키면 언제든지 복을 주실 준비를 하고 계시는 분이시다.

6. 이스라엘이 보기에는 가장 강력한 힘이 애굽의 군대이었다. 그들의 말이 부럽기까지 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눈에는 그것이 무엇으로 보이는가?

    사람과 육체(신과 영이 아닌): 애굽 군대가 아무리 강해도 사람이고 말이다. 그것들을 ‘신’과 ‘영’에 대비시키면 정말 보잘 것 없는 것이다. 마치 3차원과 4차원을 비교하는 것처럼! 3차원의 존재들끼리 비교시키면 대단할지 몰라도 4차원에서 보면 장난일 뿐이다. 사람과 신, 육체와 영은 도무지 비교 대상이 아니다.

7. 충분한 설명도 없이 돌연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호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어디에 비유하고 있는가(2가지)?

    사자와 새: 1) 사자가 먹이를 빼앗기지 않는 것처럼 예루살렘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내용상 산헤립에게서 보호받은 것을 의미한다(39장 참고). 왜냐하면 이사야의 사역기간 중에 이스라엘이 애굽을 의지하던 때는 히스기야의 통치기간이었기 때문이다. 2) 새가 날개치며 새끼를 보호하는 것처럼.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신 32:11).

8.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보호하는 모습을 네 개의 동사로 표현하고 있다. 세 동사(호위하며, 건지며, 구원하리라)는 이해가 쉬운데 ‘넘어와서’는 무슨 뜻일까?

    새번역에는 ‘다치지 않게 뛰어넘어서’라고 번역하였다. 뛰어 넘어서 새의 둥지를 다치지 않게 보호하겠다는 의미이다. 출 12장의 유월절에도 같은 단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넘어간다’는 것은 곧 죽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9. 선생님이 이런 저런 말씀을 아무리 많이 해도 결론은 ‘공부 열심히 하라’이다. 학교의 서무과장이 이런 저런 얘기를 해도 결론은 ‘공납금을 빨리 내라. 유리창 깨지 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런 저런 말씀을 많이 하셔도 핵심은?

    돌아오라! ‘심히 거역하던’이란 말은 하나님을 단순하게 떠난 것뿐만 아니라 고의적으로 배역하였음을 뜻한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던 과정에서 ‘부인’ ‘부인, 맹세’ ‘부인, 맹세, 저주’의 과정을 밟은 것처럼.

10. 하나님께 돌아오고 나면 은우상, 금우상을 던져버리겠지만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을 때는 그것이 어떤 물건이었는가?

    가장 애지중지 하던 물건들: 예수 믿기 전의 술, 담배, 노름과 같은 것이었다. 이것 없이 어떻게 사느냐는 사람이 적지 않다. 쉽게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돈에 인생을 걸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예수 믿고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음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큰 변화인가!

11. 앗수르는 어떻게 엎드러진다는 말인가?

    칼에 엎드러진다. 표면상으로는 칼에 엎드러지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에 의해서 엎드러진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러 사람의 칼에 엎드러지지만 실제로는 한 분, 하나님에 의해서... 여리고 함락이 그랬고 여호수아와 기드온의 승리가 그랬다.

12. 8-9에서 평행구절(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는 것)이 몇 번이나 있는가?

    4번: 1) 칼에 엎더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니겠고 // 칼에 삼키울 것이나 여러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닐 것이며, 2) 그는 칼 앞에서 도망할 것이요 // 그 장정들은 복역하는 자가 될 것이라, 3) 그의 반석은 두려움을 인하여 물러가겠고 // 그의 방백들은 기호(군기)를 인하여 놀라리라, 4) 여호와의 불은 시온에 있고 // 여호와의 풀무는 예루살렘에 있느니라.

    이런 방식으로 기록되었음을 이해하면 문맥을 파악하기가 쉬워진다. 9절의 ‘그의 반석’과 ‘그의 방백들’을 평행구절이라는 것을 알면 반석은 앗수르 왕을 가리키는 셈이다.

13.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풀무가 있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 여호와께서 불로 표현된 장면을 생각해보자. 이 불의 특징이 무엇인지!

    선별적으로 태운다(=죄악을 소멸시킨다, 말 4:1): 광야에 나타난 불기둥은 추위를 막아주는 불이었고 가시떨기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불은 가시떨기를 전혀 태우지 않았다(출 3장). 다른 불로 하나님께 분향하다가 죽은 나답과 아비후는 불에 타죽었지만 옷이나 성막은 전혀 불에 타지 않았다(레 10장). 그러므로 여기서 이 불은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적만 골라 태우는 불이다. 예루살렘이 불타고 있다. 여호와의 백성은 아무 상관없고 적만 불에 탄다. 만약 간첩이 숨어 있었다면?

[32:1~8]

14. 제대로 된 왕은 무엇으로 나라를 다스리는가?

    의와 공평(1): 의(체데크)와 공평(미쉬파트)은 이사야가 강조하는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덕목이다(사 1:21, 27, 5:7, 16, 16:5, 28:17, 32:1, 16, 33:5, 40:14, 56:1, 59:9, 14). 이것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가장 중요한 원리이기도 하다(시 97:2, 98:9, 99:4, 잠 1:3, 8:20, 21:3, 렘 22:15, 23:5, 33:15, 골 4:1).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과 비교해보라. 이스라엘의 왕은 자기 뜻대로 나라를 다스리는 전제군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대신하는 대리자일 뿐이다.

15. 그는 어떤 왕인가?

    광풍을 피하는 곳, 폭풍을 가리우는 곳, 마른 땅에 냇물,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과 같은 왕이다: 위대한 업적을 남기거나 태평성대를 이끄는 왕이 아니라 어려움을 피하게 하는 왕이다. 지금 이런 형편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에서 피하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이라서?

16. 그를 만나면 어떻게 되는가?

    1)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귀가 기울어질 것이며 지식을 깨닫고 말을 분명히 할 것: 6:9-10, 29:10과 대조적이다. 어설픈 설교에 불만이 많은 성도는 눈이 번쩍 뜨일 표현이다. 그 분은 왕이라기보다는 뛰어난 말씀이다.

    2) 어리석은 자를 다시 존귀하다 칭하지 아니하겠고 궤휼한 자를 다시 정대하다 말하지 아니하고(5) 고명한 일에 서리라(8).

17. 이런 왕이 나라를 통치할 것이라는 말은 이스라엘의 왕들이 그러하지 않았다는 비판이기도 하다. 그들은 어떠했다고 말하는가?

    어리석은 자, 불의한 자(6), 궤휼한 자(7): 간사를 행하며, 여호와를 거스리며 주린 자의 심령을 비게 하며 목마른 자의 마시는 것을 없어지게 하는 자이며(=어리석고 불의한 자), 악한 계획을 베풀어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멸하며, 빈핍한 자의 정당한 말(권리)을 무시하는 자이다(=궤휼한 자). 궤휼: 간사하게 속임

18. 이와 같은 왕은 결국 누구를 가리키는 걸까?

    메시야: 31장 끝 부분에서 예루살렘을 보호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시더니 의로운 왕이 이 나라를 다스릴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진정한 관심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예루살렘으로 상징되는 메시야의 왕국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하다가도 어느 새 훗날 메시야의 왕국으로 관심이 옮아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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