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9장


1. ‘아리엘’은 ‘하나님의 심장’, ‘하나님의 사자’라고 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번제단’이라고도 한다. 의미는 다소 애매할지라도 가리키는 것은 명확하다.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가?

    예루살렘 성: ‘다윗의 진친 성읍’과 같은 말이다. 하나님께도 예루살렘은 소중한 곳이다.

2. 1-2절에 나온 네 개의 아리엘 중에서 하나는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다. 어느 것이며 그 의미가 무엇인지 문맥으로 따져보자.

    4번째 것: 개역성경 난하주에 ‘하나님의 제단의 면’이라고 주가 붙어 있다. 제단의 사면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제사를 드릴 때마다 피가 뿌려지는 곳이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3. 하나님께서 아리엘을 괴롭게 하겠다는 말이다. 어떤 괴로운 일이 생겼기에 아리엘이 낮아져서 땅에서 말하며 말소리가 나직하게 날까?

    적군이 포위하고 공성을 높이 쌓았기 때문이다(3): 적군이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기 때문에 낮은 것이고, 기어 다녀야 한다. 이것은 앗수르의 침입을 말하는 것이다.

4. 연부년이란 ‘한 해가 가고 또 다른 해가 연이어’ 라는 뜻이므로 아리엘은 적어도 몇 년간 이런 괴로움을 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고통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성전의 금을 벗겨서 공물로 주고 항복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회리바람과 폭풍이 날려버리고, 맹렬한 불꽃이 사르듯이 그들을 징벌하실 것이다(6). 적군들은 마치 무엇과 같이 사라질 것이라고 하는가?

    티끌이나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을 것(5): 이렇게 당한 사람은 산헤립이다(사 37:36). 그 과정은 잘 알 수 없지만 이 일로 대제국의 위대한 왕도 죽음을 당하고 만다.

5. 아리엘을 포위하고 있던 적군들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이제 곧 함락이 되기만 해봐라. 항복하지 않고 버틴 죄 값을 톡톡히 치르게 해 주리라. 이사야는 그들의 희망을 어디다 비유하고 있는가?

    꿈: 배부르게 먹고 깨어났는데 여전히 배고픈 것처럼 허무할 것이다.

6. 눈은 선지자요, 머리는 선견자라? 그래서 어쨌다는 말인가?

    감긴 눈은 선지자고, 덮인 머리는 선견자라는 말이다. 눈이 감기고, 머리는 덮였으니 선지자와 선견자가 어떻게 백성을 제대로 인도하겠는가?

7. 하나님의 말씀이 책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무식한 자에게는 소용이 없다. 유식한 자에게도 봉한 책은 소용이 없다. 오늘 우리도 성경을 이렇게 대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보자.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종류의 사람이 있는가?

    무식: 읽어도 모르겠더라.
    봉한 책: 그냥 폼으로 갖고 다닌다. 읽기는 읽는데 몇 번 읽었다고 자랑하는 것이 목적이거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

8.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부어주셔서 그들의 눈이 감겼다면 여호와의 책임 아닌가?

    여기서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부어주셔서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는 것은 심판의 원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심판 자체이다(6:9-10). 정신 차리고 심판을 피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말이다. 문제는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도록 했느냐를 따져야 한다.

9.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 나름대로는 열심히 하나님을 섬긴 증거는 무엇이며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책망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입과 입술로 여호와를 존경했다는 것은 형식적일지라도 하나님을 예배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들의 입과 입술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마음이 없는 경외에 대해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마음은 없이 그렇게 하라고 하니까 하는 것 뿐!

10. 자식이 부모를 깔보면 패륜이 되는 것처럼 ‘패리’란 뒤집는다는 뜻이다. 유다가 무엇을 뒤집었다는 말인가?

    진흙과 토기장이, 피조물과 창조주, 토기와 토기장이: 진흙이 토기장이와 맞먹는 것, 피조물이 창조주를 향하여 ‘언제 당신이 나를 지었는가?’ 라고 하는 것, 토기가 토기장이를 향해서 ‘총명이 없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유다가 하나님에게 자기의 도모를 숨기려는 것은 패리한 짓이다.

11. 17절의 레바논이 무슨 뜻인지 문맥에서 찾는다면?

    삼림: 두 표현, ‘레바논이 기름진 밭으로 변하는 것’과 ‘기름진 밭이 삼림으로 되는 것’은 서로 ‘역’의 관계이다.

12. 귀머거리가 말을 듣고 소경이 보는 일은 언제 가능할까? 성경의 어디에 이런 언급이 있더라?

    마 11:5,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요한이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오실 그 이가 당신이오니이까?’ 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면서 쓰신 말이다. 요는 이 말씀이 이 땅에 오실 메시야에 대한 사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13. 겸손한 자에게 기쁨이 더하는 것은 정상 아닌가(19)? 이것이 어떻게 기이한 일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는가?

    겸손을 영어로 humble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에는 ‘비천하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원어도 마찬가지다. 겸손한 자라기보다는 ‘비천한 자’이다. 그 다음의 ‘빈핍한 자’와 대등한 표현이다.

14. 하나님께서 행하실 ‘기이하고도 가장 기이한 일’이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는 것일까(14)? 그럴 수도 있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기이한 일이기보다는 징계에 해당한다. 더 기이한 일이 또 있는지 찾아보자.

    레바논이 기름진 밭이 되고 기름진 밭이 삼림이 되는 것(17-21): 레바논은 삼림이 울창한 지역이다. 기름진 밭은 유다를 가리킨다. 그렇게 보면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방인과 유다의 입장이 뒤바뀌는 것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원가지인 이스라엘은 찍혀나가고 돌감람나무인 이방인이 접붙임을 받아서 하나님의 약속의 진액을 섭취하고 있다(롬 11:17). 이 접붙임은 본성을 거스린 것이며 기이한 일이다. 귀머거리와 소경의 예를 보면 이것이 메시야에 대한 예언임을 알 수 있다.

    패륜아와 같은 유다에 메시야를 보내서 결국은 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일(22-24)이야말로 진짜 기이한 일이다. 지독하게 말을 듣지 않던 야곱이 하나님을 거룩하다고 말하는 것과 그 분을 경외하는 것은 정말로 기이한 일이다. 언제 이런 일이 가능할까? 로마서는 복음이 이스라엘에서 이방인에게 갔다가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올 것(롬 9-11장, 11:25-26)을 말하는 데 종말 직전에 일어날 일이다. 23절을 개역성경의 난하주와 NIV(원문의 단수 ‘그’를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그들’로 번역함)와 비교해보라. NIV가 의미를 잘 살려 번역(의역)하였다.

    이렇게 기이한 일이 생기는 것은 이스라엘이 기이한 짓을 했기 때문이다(15-16). 이스라엘이 행한 기이한 일은 ‘패리함’이다.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뒤집어엎는 방법으로 기이하게 갚으셨다. 그러면 혼미하던 자도 총명하게 되고, 원망하던 자도 교훈을 받을 것이다.

15. 본문의 문단을 다음과 같이 구분하고 제목을 붙여보자.
1) 1-4:
2) 5-8:
3) 9-12:
4) 13-16:
5) 17-24:

    1) 1-4: 예루살렘에 대한 탄식
    2) 5-8: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자들도 징계함
    3) 9-12: 징계받은 이스라엘의 모습
    4) 13-16: 징계받아야 할 이유
    5) 17-24: 기이한 회복에 대한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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