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6장


< 24장은 전 세계적인 심판에 관한 내용이었다. 25장도 종말적인 심판의 한 측면을 보여준다. 25:9-12은 타락한 성읍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 26장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성읍에 대한 찬양이다 >

하나님께서 만드신 견고한 성읍에 대한 찬양(1-6), 의인과 악인의 삶(7-14) 환난 중 의인들의 간구(15-18), 소망의 기도와 권면(19-21)

1. 이사야에 수 없이 등장하는 ‘그 날’은 언제인가?

    심판 받을 자는 심판을 받고 구원 받을 자는 구원을 받는 날,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가 몰락하는 날: 전장에서 언급된 그 날의 계속이다(24:21, 25:9, 27:1, 2, 12, 13). 일차적으로는 바벨론에서 귀환하는 때로 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종말의 때로 보아야 한다.

2. 그 날에 부르는 이 노래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알기가 어렵다. 공동번역과 NKJV을 참고하면 1절의 ‘우리...’부터 6절까지이다. 무엇에 대한 찬양인가?

    여호와의 의로운 나라에 대한 찬양: 7-18절은 의인의 기도이다.

3. 유대 땅에 성과 곽으로 둘러싸인 견고한 성읍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여호와의 구원: 견고한 성과 곽으로 둘러싸인 성읍이 난공불락이듯이 여호와의 구원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4. 이 견고한 성읍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신(信)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이다. 누구를 가리키는 말일까?

    유대인 자신들의 나라가 회복되는 것을 말하겠지만 신약적인 의미로 본다면 ‘믿음으로 구원받는 자’를 가리킨다. 믿음을 가진 자가 곧 의로운 자이다.

5. 세상살이라는 게 얼마나 걱정거리가 많은가? 어쩌면 단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는 것이 세상인지 모른다. 이런 세상에서 걱정거리에 눌리지 않고 살려면?

    심지가 견고한 삶을 사는 것: 신을 지킨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없이 이 땅에서 마음 편하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6. 사람이 신의를 지키는 것이나 심지가 견고한 것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런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여호와를 의뢰함으로(3, 4): 여호와를 의뢰하면 주께서 그를 지키시며 평탄케 하시기 때문이다(7). 자신의 노력보다 주께서 주시는 힘으로 사는 것이 쉽다. 그 분께서 영원한 반석이 되시기 때문이다.

7.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시다. 다른 말로 만세반석? 이 반석의 용도가 무엇일까?

    피난처, 요새: 심판과 관련지어보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곳이란 뜻이다.

8. 정상적으로는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으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이 발로 무엇을 하는가?

    하나님께서 낮추신 높은데 거하는 자와 솟은 성을 밟는다(5-6): 이전에는 감히 쳐다볼 수도 없었던 높은 데 거하는 자를 이제는 발로 밟을 수 있을만큼 변할 것이다. 스탈린이나 후세인과 같은 독재자의 죽음으로 인한 변화도 그러하지만 우리 주변에도 우리가 감히 쳐다보거나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거하는 사람이 많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면 정말 허무하게 쓰러질 것들 말이다! 하나님의 성읍이 우뚝 서는 날, 의롭지 못한 성읍들은 이렇게 무너질 것이다.

9. 어디 기다릴 데가 없어서 주의 심판하시는 길에서 주를 기다리는가(8)?

    심판이 자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원수들을 심판하는 것이기에 반가운 것이다. 그러니 심판하러 오시는 주님마저 반갑게 기다리는 것이다. 오라, 세상의 종말이여! 이제야 세상 사람들이 의가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의롭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그제서야 알게 될 것이다.

10. ‘여호와여’라는 부름이 반복된다. 어디서 어디까지 몇 번이나 반복되는가?

    8-19절까지 7번: 의인의 묵상(기도)이다.

11. 10-11절을 근거로 악인의 가장 큰 특징을 말한다면?

    하나님을 돌아보지 않는 것(위엄, 손):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가장 악한 일이다.

12. 한 때 우리를 관할하던 주 외의 다른 주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죽어서 기억에서 사라짐(14): 다른 주란 이스라엘의 압제했던 이방나라의 왕들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13. 예전에 좀 긴 기도를 하시는 분들은 기도 시간에 성경 전체를 떼기도 했는데 이와 비슷하게 의인의 기도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는 셈이다. 편의상 11-19절의 내용을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해보자.

    과거: 13a, 14-15, 과거에 이방나라에게 당한 압제와 그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과 이스라엘이 한 때 강력한 국가를 이루었던 것에 대한 회고이다.

    현재: 16-18, 임산부와 같은 고통에 처했음에도 헛수고만 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현실에 대한 비판이다.

    미래: 11-12, 13b, 19, 장치 임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기대이다. 어차피 미래를 말하면서 과거를 언급하는 것은 과거에 이렇게 인도하셨던 하나님께서 변함없이 장래에도 그러할 것이라는 고백이다.

14. 잉태한 여인이 해산의 고통을 어떻게 견딜까? 남들도 다 당하는 일인데? 하와가 잘못해서?

    이 고통 다음에 새 생명이 태어난다는 기대감이 견딜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런 고통 다음에 바람을 낳았으니... 이런 허망함이 이스라엘의 현실이다.

15. 이스라엘의 현실은 마치 잉태하고 고통하였을지라도 바람을 낳은 것과 같다. 새 생명을 탄생시키지 못하였으니 어떡하나?

    하나님께서 죽은 자마저 살려내실 것이다. 이스라엘은 실패할지라도 하나님은 죽을 자를 살려서라도 실패란 없다.

16. 이스라엘이 문을 닫고 밀실에 들어가서 숨어야 하는 이유는?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두려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심판받는 세상과 단절한 채 하나님만 묵상하라는 것이다. 온 세상이 물로 심판받을 때 노아의 가족이 방주에 들어갔던 것처럼! 온 애굽의 장자가 죽임을 당하던 그 날 밤에 양의 피를 바른 집안에서 죽음의 천사를 피하던 것처럼!

17.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 죽은 자들이 살아나서 ‘그런 적 없다’고 발뺌하면 어떻게 될까?

    증거가 필요하다면 빠짐없이 많은 증거가 나타날 것이다. 땅이 삼켰던 피를 내어놓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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