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9장


1. 애굽에 대한 심판을 대별하면 세 가지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인재(1-4)와 자연재해(5-9), 지혜자가 사라질 것(10-15)

2. 하나님이 손오공인가? 웬 구름을 타고 임하시는가?

    구름이 빠른 속도로 전국을 뒤덮는 것처럼 심판이 임할 것이며 피할 수 없음을 뜻한다.

3. 여호와의 심판이 시작되면 우상이 떨고 애굽인이 두려워 할 것이다(1).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시기에 그럴까?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시는 것이 아니라 포악한 왕이 등장할 것이다(4): 각기 형제를 치며 이웃을 치며 성읍이 성읍을 치며 나라가 나라를 칠 것(2)은 내란을 뜻한다. 결국 포악한 왕이 등장할 것이며 이것은 엄청난 징벌이 될 것이다. 인재를 뒤이는 자연재해는 두려움보다는 슬픔과 근심의 원인이다.

4. 정신이 쇠약해지고 도모하는 것이 깨어진다(파하신 바가 된다)는 것(3)은 믿을 데가 없어지고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면 애굽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우상과 마술사와 신접한 자와 요술객에게 묻는 것(3):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고 다른 어떤 것을 의지하게 되면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빠져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대신 의뢰하는 우상들을 심판해버리면 미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죽었다면서 초인을 의지하려던 니이체가 미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 외에 그 어떤 것으로 인간이 지닌 두려움을 쫓아내기는 불가능하다.

5. 개역성경의 난외주를 보면 2절의 ‘그가’는 원문상으로 ‘내가’, 3절의 ‘그가’는 ‘나의’라고 밝혀두었다. 말하자면 원문상의 직접화법을 간접화법으로 번역한 셈이다. 직접화법으로 고친다면 쌍따옴표를 어디에 붙여야 할까?

    2절 “내가 애굽인을 .... (4절) 포악한 왕이 그들을 치리하리라”: 조금 어렵다. 4절의 ‘그가’도 원문상으로는 ‘내가’이다. 4절 끝 부분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는 우리말로는 포함시켜도 될 것 같은데 원문상으로는 주어, 동사가 없는 문장이라서(‘이것은 ~ 이다’라는 표현이 생략된 형태) 선지자의 말로 보는 것이 좋아 보인다.

6. ‘찬물도 위 아래가 있다’는데 우상과 마술사와 신접한 자와 요술객은 위 아래가 없을까?

    이것들을 찾는 사람들의 눈에는 뒤로 갈수록 더 무능하다. 답답하니까 능력이 없음을 알고도 매어 달린다는 뜻이다. 용하다는 의사를 찾아다녀도 안 되니까 돌팔이에게 매달리는 꼴이다.

7. 아무리 가뭄이 극심한들 ‘바닷물이 없어진다’는 것은 너무 심한 표현 아닌가? ‘강이 잦아 마르겠고’라는 표현과 병행 구절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설명해보자.

    5-6절의 여러 표현들이 강약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같은 뜻이다. 애굽 사람들은 나일 강을 바다라고 불렀다. 따라서 이 바닷물은 나일강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해나 갈릴리도 바다는 아니지만 바다라고 불렸다. 큰 강의 하류는 강인지 바다인지 분간하기도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크고 넓은 하류까지 말라버릴 것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바닷물, 강, 시냇물의 순서로 언급되고 있음을 참고하자.

8. 6절의 ‘달과 같이 시들겠으며’의 원문은 ‘갈대와 골풀(파피루스)이 마를 것이며’이다. 왜 이렇게 엉뚱하게 번역했을까?

    없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갈대와 골풀도, 초장과 곡식 밭도 없어질 것이다. 그믐에 달이 사라지듯이. 풀이나 곡식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물이 없으면 시내 자체도 없어진다. 날아 없어진다는 것은 말라서 바람에 날려갈 정도라는 말이다. 아무리 심한 가물이 들어도 농작물이 바람에 날려갈 정도로 마르진 않는데...

9. 나일 강이 마르면 농부와 어부 중에서 누가 더 걱정이 많을까?

    농부: 7절이 농부에 대한 언급이고 8절이 어부에 대한 언급이다. 애굽의 농사는 거의 대부분 나일 강을 따라서 이루어진다. 어업이 주업이 아니라 농업이 주업인 나라에서 나일강이 농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10. 물이 말라버리고 없는데 물에 그물을 치는 자가 왜 피곤하지?

    일감이 없으면 더 피곤하다: 손님이 많이 들락거려서 피곤하다는 것은 대부분 엄살이다. 만약 손님이 전혀 없어봐라 훨씬 더 피곤하다.

11. 세마포는 가늘게 뽑은 실로 만든 고급 섬유이고, 백목은 대중적인 흰 모직물이다. 세마포와 백목의 관계는 그 다음의 기둥과 품군들의 관계와 비슷하다면 기둥과 품군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고위 관리(고관들)와 하층 노동자(막노동자들): 고급 제품을 생산하는 자나 하급 제품을 생산하는 자가 다 수치를 당하고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근심한다는 것은 애굽의 산업이 완전히 피폐될 것이라는 말이다. 가난한 사람이야 죽어나더라도 부유한 사람은 ‘이대로’를 외치는 우리나라 보다 더욱 피폐해질 것이다.

12. 소안은 애굽의 삼각주 북부에 있었으며 하애굽의 왕궁이 있었고, 힉소스 왕조의 수도이었다. 놉은 삼각주의 남단에 위치한 멤피스를 가리킨다. 멤피스도 한 때는 수도이었다. 애굽의 진골은 소안의 방백과 놉의 방백이다. 이들이 어리석은 짓을 하면 나라가 흔들린다. 이들을 가리키는 표현을 찾아보자.

    소안의 방백은 지혜로운 모사(11), 옛 왕들의 후예(11), 애굽의 모퉁이 돌(13): 이들은 애굽의 지혜, 명예, 기초이었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면 취한 자가 토하며 비틀거리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13. 애굽의 지도자들, 지혜로운 자들이 왜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는가?

    여호와께서 그 가운데 사특한 마음을 섞으셨으므로(14): 지도자들의 마음에 악한 생각이 들면 국가적 재앙이다. 하나님께서 이런 방법으로 애굽을 심판하실 것이다.

14. 16절, 18절, 19절의 ‘그 날’은 같은 날인가?

    16-17절은 심판의 결과 혹은 결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반면에 18절, 19절은 심판에서의 회복을 말한다. 밀접하게 연관된 날이긴 하나 내용상으로 같은 날이라고 하기는 어렵겠다.

15. 애굽이 부녀와 같은 것이라는 말은 아무래도 여자를 무시하는 듯한 의미 같은데?

    전쟁을 치르는 능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애굽이 싸울 능력이 전혀 없음을 말한다. 여자는 아무래도 근력(힘)으로 싸워 이기기보다는 부드러움으로 싸우는 것이 유리하다. 그런 의미에서 전쟁은 여자에게 불리한 상황이다.

16. 유다의 땅이 왜 애굽에게 두려움이 되는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하도 혼이 나서 유다 땅의 소식이라면 간이 철렁하는 것이다: 현실은 앗수를를 의지하느냐 애굽을 의지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걸려있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애굽을 벌하실 때는 애굽이 이스라엘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리라는 것이다.

17.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는 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란 말은 그 땅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무리들이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수많은 유대인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애굽으로 이주하게 되어 나중에 수많은 수도원과 교회가 생겨났다. ‘70인 역’(LXX)이라는 최초의 번역성경도 바로 이 곳에서 탄생되었고, 초대교회의 활동이 가장 왕성한 지역 중에 하나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이었다. (640년 경 이스람의 침입으로 기독교 문화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 와중에도 기독교 전통을 이어온 곱틱교회가 있다? 확인 요함.) 그런 문맥에서 보면 그 성읍 중에 하나를 장망성(將亡城)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왜?

    장망성이란 것은 ‘장차 망할 성’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번연의 천로역정에서 기독도가 떠나가는 도시 이름이기도 하다. 개역성경 난하주에 보면 ‘일하헤레스’ 혹은 ‘태양성’이라고 주가 붙어 있다. 장망성을 뜻하는 글자(일하헤레스)와 태양성을 뜻하는 글자(일하ㅎ헤레스)는 너무나 흡사해서 오기라고 보는 탓이다. 태양성으로 본다면 ‘태양신을 섬기던 성읍조차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의미가 된다. 이것이 문맥상으로는 자연스럽다.

18. 애굽 땅에 제단이 있고, 변경에 여호와를 위한 기둥(창 28:22)이 있다? 그들이 여호와께서 부르짖고 여호와께서 구원자를 보내서 건지신다면 이스라엘과 애굽인의 차이가 무엇인가?

    그 날에는 애굽인과 이스라엘 사이에 차별이 없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진정한 구원을 염두에 두고 있다. 오늘 우리에게 있는 애굽 땅은 마음대로 복음을 전할 수 없는 북한 땅이나 중국 땅, 회교국가이리라.

19. 애굽과 앗수르는 앙숙인데 어떻게 왕래하는 사이가 될까(23)?

    함께 하나님을 경배할 것이라는 말은 하나님 때문에 가능할 것이란 말이다. 주 안에서 지위고하나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하나가 될 수 있는 것과 같다. 애굽과 앗수르가 손을 잡는다는 것은 세계평화가 이룩되는 것이다. 끝없는 전쟁의 한복판에 서서 온 세계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가 되는 것을 내다보고 있다. 선지자의 현실에서는 도무지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말이다.

20. 당시의 초강대국인 앗수르와 이집트가 함께 세계 중의 복이 되는데 이스라엘은 왜 끼어드는가? 위치가 가운데라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 중에서 답을 찾아보자.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3): 아브라함과 그 후손으로 말미암아 이런 복이 주어진다. 결국은 그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를 통해서 이루어질 일이다. 이스라엘의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역할도 바로 이것이다. 지역과 신분을 초월하여, 깨어진 인간관계를 회복시켜 하나 되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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