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3장


※ 13-23장은 주변 강대국들에 대한 심판 예고이다. 이스라엘의 선지자가 이방 나라에 대해서 예언하는 것은 단순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는 것을 넘어서 장차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가 온 세상을 정복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예언적 전망: 서로 다른 시공간 속에서 제 각각 독립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을 단일한 환상 속에서 보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13장의 묘사들 사이에는 시간적, 공간적 간격들이 뒤섞여 있다.

1. 바벨론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일이 무엇인가(2-5)?

    징계함으로 노를 푸심(3, 5), 싸우심(4), 온 땅을 멸하심(5):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를 위해서 바벨론이 사용되지만 결국은 바벨론도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2. 애매한 구절은 문맥을 잘 따지는 것이 중요하다. 2절과 3절은 동일한 내용이다. 그렇다면 동일한 표현끼리 짝을 지어서 그 의미를 생각해보자.

    너희 = 나의 거룩히 구별한 자: 곧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그들 = 용사들: 4절을 참고하면 열국 민족의 군대이다.
    존귀한 자의 문에 들어가게 함 = 나의 노를 풀게 함: 그러므로 존귀한 자는 바벨론 귀족(약탈의 대상자)을 가리킨다.

3. 2-3절이 ‘목표’라면 4-5절은 2-3절의 내용과 어떤 관계인가?

    준비 과정: 하나님께서 친히 먼 나라의 군대를 불러 모아 검열하면서 바벨론을 칠 준비를 하신다.

< 6-16: 바벨론에 대한 심판 >

4. 여호와의 날이라면 기쁨과 환희의 날 아닌가? 바벨론에게 여호와의 날은 어떤 날인가?

    멸망의 날(6), 애곡의 날(6), 여호와께서 노하는 날(9, 13): 사랑의 하나님께서 어떻게 지옥을 만드시고 사람을 그렇게 잔혹하게 취급하시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극치이기도 하지만 극렬한 질투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인내력이 대단하신 분이시지만 끝까지 참기만 하는 무골호인이 아니다.

5. 여호와의 날에 바벨론은 임산한 여자보다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왜?

    임산한 여인의 고통은 끝이 있고,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벨론의 고통은 힘도 없고(=손이 피곤하며), 희망도 없고(=마음이 녹을 것), 괴롭고 슬플 뿐이다.

6. 하나님의 바벨론에 대한 심판의 ‘구체적인 내용’은 몇 절부터인가?

    9절부터: 6-8절은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의 요약인 셈이다. 전체적인 조망을 한 다음에 구체적인 사례를 나열하는 방식이다.

7. 바벨론에 쏟아지는 하나님의 분노가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는가?

    땅, 천체, 사람: 땅(9)을 황무케 하여 죄인을 벌함, 하늘의 별과 해와 달이 빛을 잃음으로(10) 사람을 벌함, 하늘과 땅을 흔들어 떠나게 함(13), 바벨론에 대한 징계를 말하면서 천체의 변동을 말하는 것은 바벨론에 대한 심판 예고가 단순하게 바벨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에 대한 최후 심판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심판의 최종결과는 사람이 희소하게 되는 것이다.

8.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어두움을 걷어내고 빛을 비추는 것이다(창 1:2-3). 하나님의 구원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다시 어두움이 임할 수 밖에 없다(마 8:12, 25:30). 그래서 최후 심판 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하는가?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이 빛을 잃어버린다(10, 겔 32:7, 욜 2:10, 암 5:18).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임하기 때문이다.

9. 바벨론이 이렇게 심판을 받아야하는 이유는 악하기 때문이다. 그 악함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단어를 두 개만 찾는다면 무엇일까?

    교만과 강포(11): 오만이나 거만을 답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교만과 강포의 결과이며 덜 구체적인 것 같다. 이사야 시대(BC739-680)의 강대국은 앗수르이었다. 그런데 왜 바벨론(BC619이후, 메대는 BC519 직전)이 먼저 등장하는가? 조만간 앗수르를 점령하고 거대한 강국으로 재등장할 것을 미리 내다본 탓인가(39장)? 그럴 수도 있겠지만 성경에서 바벨론은 ‘인간의 영광과 교만의 대명사’이기 때문이다(창 11:9, 계 14:8). 바벨탑, 고바빌로니아, 신바빌로니아로 끈질기게 명맥을 이어오다가 기어코 유다를 포로로 잡아끌고 간 후에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만다.

10. 한창 때의 바벨론은 다민족 국가로 온갖 민족이 다 몰려들어 있었지만 심판이 시작되면 이들이 본래의 동족에게로 뿔뿔이 흩어져 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마치 무엇처럼?

    쫓긴 노루나 모으는 자 없는 양 같이: 다민족국가의 해체를 뜻한다. 노루가 도망가는 방법은 산지사방으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흩어진다. 양은 흩어지면 모이지 않는단다.

< 17-22: 메대를 통한 멸망 >

11. 은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금을 기뻐하지 아니하는 메대 사람을 격동시켜 그들을 치게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뇌물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쩌면 죄지은 사람이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가장 유효한 방법이 뇌물일텐데 이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징계를 피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메대가 바벨론을 치는 것이 전리품이나 영토 확장의 목적보다 불명예스러운 속박에 대한 보복이었기 때문에 은과 금이 통하지 않았다.

12. 바벨론은 정말 대단한 나라이었으며 무너졌다가도 다시 일어나곤 했다. 그러나 메대에 패한 이후에는 제대로 힘을 써보지 못했다. 어떻게 되리라고 하는가?

    소돔과 고모라처럼 황무하리라: 바벨론을 점령한 고레스는 바벨론을 파괴하지 않았지만 BC 518년의 Darius Hystaspis는 성벽을 50규빗만 남기고 완전히 파괴해버렸다. 알렉산더가 바벨론을 부흥시켜보려고 시도했으나 요절해 버렸고, 그 후 오랫동안 완전한 사막이었다가 최근에 들어서 석유가 발굴되면서 부흥의 기미를 보였지만 후세인이 바벨론의 영광을 꿈꾸다가 백성들만 처참하게 만들고 말았다. 한 때는 갈대아인의 자랑거리(자랑하는 노리개)였는데...

13. 바벨론이 철저하게 무너져서 들짐승만이 거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데 아라비아 사람은 왜 들먹일까?

    아라비아 사람들은 일정한 거주지 없이 떠도는 유목민을 뜻한다. 아무데서나 천막을 치고 잠시 머무는 아라비아 사람들조차 바벨론을 임시 거처로 사용하지 않을 정도이니 얼마나 철저하게 무너졌겠는가!

14. 이사야서의 저자가 단일 저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비평학자들은 본 예언 단락(13-23장)도 다른 저자의 것이라고 말한다. 본문에 등장하는 ‘바벨론’과 ‘메대’ 때문이다. 본 단락이 기록된 시점은 아하스 왕이 죽은 해로 추정되는데(14:28, BC716), 바벨론과 메대는 이 시대에는 아주 미미한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점령당한 해가 BC722이다. 그러니까 이사야 시대(BC739-680)의 강대국은 앗수르이었다. 바벨론이 니느웨를 점령한 것이 BC612이고, 메대가 바벨론을 점령한 것은 BC539이다. 말하자면 이사야는 100년 내지 160년 정도 후의 일을 예언한 것이다. 그래서 이사야가 쓴 것이 아니라 후대의 선지자가 이사야란 이름으로 쓴 것이란다. 무엇을 무시하고 있는 셈인가?

    선지자의 예언 능력: 비평학자들은 예언이나 기적을 전혀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한다. 이적을 행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으니 이적은 모조리 부정하거나 달리 해석하면 도대체 무엇을 믿는 것인가?

    자산(?山): 민둥산
    가석(可惜): 측은히 여김
    바벨론 멸망에 관한 예언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스라엘에게는 후일에라도 이사야의 예언이 헛말이 아님을... 하나님의 나라가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으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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