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2장 |
‘예수는 천사보다 더 탁월한 존재이므로’: 1장 전체를 가리킨다. 그 분에게서 들은 것을 더욱 조심스럽게 간직하라는 것이다. 2. 모든 들은 것을 소중하게 간직하란다. 언제 들었지? 1:2: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3. 1-4에서 복음을 특별히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할 이유가 있다면? 천사들이 전한 것(갈 3:19,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받은 율법을 의미함)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순종하지 않아 큰 벌을 받았다면 천사보다 더 큰 이가 전하고, 하나님께서 성령과 함께 친히 증거한 것을 등한히 여기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므로 더더욱 예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고 삼갈 것이다. 4. 전통적으로 히브리서는 바울이 썼을 것이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히브리서의 저자는 제 2세대 그리스도인일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전하여 준 것(3): 최소한 히브리서의 저자가 예수님의 12 제자는 아니며 예수님께 직접 들은 자는 아니란 증거이다. 5.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라는 것을 보지 못한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게 되었는가? 주님이 친히 말씀하셨고 그것을 들은 자들이 전하여 주었으며 하나님께서 확증하셨기 때문이다. 6. ‘성령의 나눠 주신 것’(4)의 ‘성령의’ 는 주격인가? 목적격인가?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 성령을 나누어 주신 것(결국 같은 것 같다)
[ 1장은 2장 4절까지 한 단락으로 연결해서 생각하는 것이 좋다. 예수님의 탁월함? ] 7. 앞 장에서 예수는 천사보다 더 뛰어나신 분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1-4절은 천사보다 더 뛰어나신 그 분이 직접 전하고 하나님께서 친히 보증하신 구원을 무시하면 얼마나 더 큰 벌을 받겠느냐고 했다. 그런데 왜 또 예수를 천사와 비교하는가(5-9)? [18번까지 정리한 다음에 다시 생각해보자] 천사보다 탁월한 그 분이 현실적으로 천사보다 못해 보이는 이유를 설명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천사보다 낮은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이유(9-17)를 설명하려는 의도이다. 8. 5절은 어디로 연결되는가? 8절의 ‘만물로’ (‘만물을’ 아니고): 오는 세상을 천사들에게는 복종케 하심이 아니라 만물로 저에게 복종케 하셨은즉... 예수는 만물의 주관자라는 말이다. 9. ‘어딘가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라는 표현은 있는 줄은 아는데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지 모를 때 사용하는 말이다. 히브리서 기자가 ‘누가 어디’(=어떤 이가 어디에선가, 6)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앞의 경우와 좀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 왜? 바로 뒤에서 유명한 구절을 정확하게 인용하기 때문이다: 이 표현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경우에 사용하는 히브리식 표현이란다. 모두가 아는 구절을 구태여 장절을 명시하는 것은 오히려 독자를 피곤하게 만든다. 더구나 지금처럼 성경이 장절로 구분되어 있지 않았으니 정확하게 위치를 지적하는 것이 오히려 아는 사람에게는 번거롭기만 했을 것이다. 10. 인용된 시 8:4-6(6b-8a)은 사람에 관한 글인가? 메시야에 관한 글인가?
사람에 관한 것 같은데? 9절에 의하면 메시야에 관한 글로 인용하고 있음: 창조시라고 불림,
하나님의 창조를 찬양하는 시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의미하는 말로 해석함, 비슷한 예로 창 3:15, 수 1(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 것이라) 11. 인자를 잠간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신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가? 죽음의 권세 아래 놓인 것(9절) 12. 예수께서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다(9). 이것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세부적인 이유를 본문에서 찾는다면?
1) 5-8에서: 만물을 향한 통치권의 확립을 위해서 (그래야 우리도 통치권을 회복하기 때문) 13. ‘만물이 저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고’(8)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하게 실현되지 못한 현실을 가리킴 14. 9절의 ‘우리가’에 걸리는 동사는? (예수를) 보니: 이 본문에서는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는 우리가 아니다. 15. 6-8에서 인용한 말씀은 시 8:6인데, 6-8절에서는 직접 인용이라면 9절에서는 간접 인용이다. 인용하는 의도가 어떻게 다른가?
6-8절: 예수님의 성육신이 만물에 대한 통치권 회복을 위함이다. 16. 예수께서는 어떻게 해서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셨는가? 죽음의 고난을 통하여(9): 이런 과정없이 영광만 누리려는 사람이 많은 세상은 그만큼 불의한 세상이다. 정직하게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잘 사는 사회이어야 하는데... 예수님도 고난을 통해서 온전케 되나? 그 전에는 불완전했다는 말인가? 불완전한 인간이 되었다는 말이다(그리스도의 인성을 가리킨다. 본래 온전한 분이셨지만 스스로 낮아져서 인간과 동일한 과정을 거쳐서 온전케 되셨다). 17. 10절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방법에 대한 찬양이다. 다음과 같이 ( )에 알맞은 말을 넣어 좀 쉽게 정리를 해보자.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 (하나님)에게는 18. 거룩하게 하시는 자,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는 각각 누구를 뜻하는가(11)? 예수와 우리: 본래는 하나님만 거룩한 분이시지만 우리를 자신과 같게 만드시기를 원하신다. 19. 12절에서 시편 22:22을 인용한 의도가 무엇인가? (시편 22편의 내용을 살펴보아야 한다) 예수가 하나님의 백성의 한 사람으로서 고난을 이겨내고 형제들과 함께 기쁨을 나눈다: 시편 22편은 고난받는 이스라엘 백성의 처절한 기도이다(특히 1-2절). 그런 기도가 응답되었고 그 기쁨을 백성과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것이다. 예수의 성육신이 바로 그렇다는 말이다. 죄악에 빠져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우리와 하나 되어 다시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하시고 그 기쁨을 함께 나눈다는 뜻이다. 11절에서 ‘하나에서 난 자’라고 말하고 12-13절에서 구약을 인용하고 다시 14-17까지 발전적으로 논증하고 있다. 20. 13절이 인용하고 있는 사 8:17-18절의 내용은 ‘앗수르의 침입에 대해서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선지자의 권고를 왕과 이스라엘이 무시하고 다른 나라와 안보동맹을 맺어도 바로 자기의 자녀들의 이름처럼 ‘노략이 속할 것’이며 이로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증명될 것이다’는 내용이다(설교: ‘피묻은 복장을 불에 사르며’ 참조). 요약하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버려도 이사야는 하나님을 의지할 것이며 그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신실함을 증명할 것이다’는 것인데 이런 내용이 예수님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가? 이사야만이 자녀들과 함께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린 것처럼 예수는 구속받은 자녀들과 함께 하나님만 의지하고(13a)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신다(15). 21. 예수께서 마귀를 없애고 죽음에 매여 일생 종노릇하는 자들을 놓아주려면 꼭 혈육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하는가? 가령, 물에 빠진 자를 구하려면 꼭 물에 빠져야 하나? 아닌데? 본문의 어느 말(단어, 표현)이 이 질문의 답이 될까?
14절의 ‘자녀’ 혹은 ‘한 모양’(=혈육에 함께 속하심), 17절의 ‘형제들과 같이 되심’: 자녀(형제)가 되기 위해서, 혹은 한 모양이 되기 위해서.
구원의 문제를 넘어서 같은 자녀(형제)가 되려는 것이다. 구원만 생각한다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구원하실 능력도 있고, 방법도 있다.
다만 같은 형제이기 때문에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는 식이다. 때로는 그렇게 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 아닐 수도 있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한 모양(혈육에 함께 속함)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14)! 우리가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해야 할지! 22. 우리의 처지가 어떠하기에 영광스럽고 존귀하신 예수께서 이런 고생을 겪으셔야 했는가? 사망의 세력에 잡혀 있었기 때문에(15): 본래 우리의 모습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행복한 줄로 알고 잘 사는 경우가 많다. 모르는 게 약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며, 회복된 모습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아는 사람이라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감격하게 된다. 인간이 하나님같이 된다? 죽을 몸이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가 된다? 23. 예수는 충성된 대제사장이다. 왜? 형제들과 같이 되어(도성인신) 죄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이다: 대제사장의 역할은 백성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백성들의 죄를 용서받는 것이다. 예수는 이 역할에 완벽했다. 마치 사고치고 집나간 동생들을 다독여 아버지 앞으로 데려온 큰 형님처럼! 24. 예수의 성육신을 설명하면서 예수와 우리의 관계를 형제지간으로, 자녀의 손을 잡고 이끄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백성을 위해서 희생하는 제사장으로 그리고 있다. 어떤 모습이든 질적으로 동일하게 되었음을 다양하게 표현한 것이다. 형제, 자녀, 백성을 다른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아브라함의 자손(16):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이 어느 날 갑자기 된 것이 아니라 오래 전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것의 성취임을 뜻한다. 공변된: 공정한, 정당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