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장


1. 요한계시록은 ‘요한이 전해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다. 마태복음은 ‘마태가 전해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고 레위기는 ‘레위인이 맡은 성전의 일’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면 히브리서는 왜 제목이 히브리서일까?

    대상이 히브리인이기에: 유대인들이 예수의 말씀을 믿고 따르다보면 문제가 생겼다. 박해를 견뎌야 했고 새로운 가르침에 적응도 해야 했다. 율법을 준수하는데 있어서 형식을 존중하던 이들이 교회의 예배 형식에서 오히려 허전함을 느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문제가 생겨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일어났을 때 이에 대한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것이 히브리서를 기록한 목적이다.

    구약을 잘 아는 히브리들에게 쓴 글이기 때문에 구약을 잘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는 어려운 책이다. 그 외에도 전체적으로 논리적이고 논증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이해하기 어렵다.

2. 유대인을 대상으로 선교한다고 하면 하나님에 대하여 설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하나님에 대하여 혹은 구약에 대하여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가장 중요하게 가르쳐야 할 것이 무엇일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다. 구약이 그를 가리키고 있다.(바울의 두 설교: 행17:24-31: ‘우주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신 하나님’을 가르침, 행13:17-41: ‘예수에 관한 설교를 행함’ 왜 이렇게 다른가? 대상이 다르기 때문 즉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대상의 차이). 구약을 인용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임을 설명하려고 한다. 성경의 핵심은 하나님, 인간, 예수이지만 히브리서의 핵심은 예수이다.

3. ‘하나님께서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구약성경: 선자자들이 여러 부분(=여러 시기, 여러 번), 여러 모양(=여러 방법)으로 전한 것이 하나님의 역사이었음을 믿는다는 것은 곧 성경의 영감을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구약성경을 인용한다. 선자자들을 통해서 조상에게 말씀하셨던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조상에게 주어졌던 말씀과 초대교회에 주어진 말씀은 동시에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임을 믿는 자는 복되다!

4. ‘이 모든 날 마지막’을 두 글자로 줄이면?

    말세: 성경이 말하는 말세는 메시야가 오심으로 이룩된 새로운 시대, 곧 초림에서 재림까지의 모든 날을 가리킨다(=신약시대). 이런 개념을 살려서 오늘을 말세지말(末世之末)이라고 하기도 한다.

5. 첫 문장(1-2)의 주어는 ‘하나님’이고 동사는 ‘말씀하셨으니’이다. 그러면 목적어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보다는 그것을 전한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함으로 말씀의 내용은 여기에 없다. 아니, 옛적에 하신 말씀과 아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고 있는 셈이다.

6. 예수는 만유의 후사, 모든 세계의 창조자,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 본체의 형상, 만물을 붙드시는 자, 죄를 정결케 하시는 자, 위엄의 우편에 앉은 자이다. 결국은 어떤 분이라는 말인가?

    하나님: 만유(의 후사 = 소유주), 모든 세계(의 창조자), 천사보다 탁월함(유대인들은 모든 피조물의 으뜸이라고 생각함), 하나님의 영광(임재, 속성)의 광채, 본체의 형상(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요 14:9), 만물의 주관자(=만물을 붙드시는 자), 죄를 정결케 하시는 자, 높은 곳에 계신 위엄(=하나님)의 우편에 앉은 자.
    [추가] 선지자, 시기, 모세(3:1-6)

7. 예수님의 특징 중에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나이다’(시 31:15)와 가장 밀접한 것은?

    만물을 붙드시는 자 = 만물의 주관자: 그리스도의 통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에만 머물러 있는 분이 아니다. 교회에서만 힘을 쓰고 회사나 사회에서는 힘을 못 쓰는 분이 아니다.

8. 예수의 탁월함을 증명하기 위하여 사용한 방법을 둘로 요약한다면 1-3절은 (      )이고 4-14절은 (      )라고 말할 수 있다. 후자의 방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방편으로 구약을 다수 인용하였다.

    1) 선포: 존재론적 탁월성에 대해서는 설명없이 그냥 밀어붙인다.
    2) 비교: 천사와 만유와 비교하여 그리스도의 탁월성을 드러낸다.

9. 예수의 탁월함을 증명하기 위하여 무엇과 대비시키는가?

    천사: 유대인들에게 천사는 대단한 존재이다. 하나님과 거의 비슷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하나님의 대리자요 말씀을 전하는 자이었으니....

10. 정말 선한 선생님을 가리켜 천사표 선생님이라고 한다. 천사가 아름다운 이름이기 때문이다. 천사보다 더 아름다운 이름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아들(5): 아름다움을 넘어서 영광스러운 이름이다. 이런 이름을 달고 추한 짓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단단히 반성해야 한다.

11. 예수를 어떤 분으로 표현하고 있는지 다음과 같이 분류해보자.

    신분: 만유의 주인(후사 = 상속자), 창조주(세계를 지으셨음).
    본질: 하나님( =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 본체의 형상)
    능력: 만물의 관리자, 인도자(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심), 구원자(죄를 정결케함), 하나님의 아들 (= 높은 곳에 앉으심, 천사보다 뛰어남, 천사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

12. 예수는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하던데 느닷없이 맏아들이라니? 하나님께 다른 아들이 있다는 말인가?

    예수는 모든 믿는 자들의 형이다(롬 8:9).

13.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할 때란 언제인가? (다른 번역본을 참고할 것)

    재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초림을 뜻하는 것이다. 한글 개역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5절의 ‘또 다시’ 7절의 ‘또’ 10절의 ‘또’에 주목해야 한다. 6절의 ‘다시’가 동사 ‘들어 오게’에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5절에서 반복한 것을 다시 반복한다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NIV는 ‘and again’으로 번역하고 있다(2:13).

14. 구약의 말씀은 그 말씀이 주어진 그 시대의 인물에 대한 글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으며, 또 현재 우리에게 주어지는 글이다. 5절에 인용된 삼하 7:14은 본래 어떤 상황에서 주어진 말씀인가?

    다윗이 성전을 짓겠다고 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서 하신 말씀이다. 그 당시에 직접 지칭하는 것은 솔로몬이다. 다윗의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키듯 솔로몬에 대한 약속이 곧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되었다. 예수를 믿는 오늘 우리에게까지 확대가 가능한 말씀이다.

    성경 말씀은 옛날 특정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인가?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인가? 성경은 단순한 고전이 아니다. ‘그 옛날에 이러하신 하나님이었다’가 아니라 오늘 현실에 내게 관여하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어야 한다.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기 원하시는 방법으로 말씀을 주셨다. 같은 말씀이라도 처한 상황, 때에 따라서 의미가 다를 수 있으므로 하나님의 뜻을 찾는 노력을 항상 해야 한다.

15. 6절의 인용문은 신 32:43의 인용이란다. 아무리 찾아봐도 신 32:43에는 그런 말이 없는데? 7절도 시 104:4의 인용인데 확인해보면 조금 다르다?

    당시에 널리 사용하던 70인 역의 인용이기 때문이다. 사해 사본과 70인 역에는 ‘너희 열방은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 다음에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들로 하여금 그를 경배하게 하라’는 구절이 들어 있지만 MT(맛소라 사본)나 한글 개역에는 없다. 더구나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을 ‘천사’로 인용하였다. 아마도 70인 역을 번역할 때 여러 사본들 중에 이 구절이 포함된 사본이 있었을 것이다. 7절 인용에 약간 차이가 있는 것은 구약을 직접 인용한 것이 아니라 의역을 한 70인 역(LXX, septuagint)을 인용했기 때문이다.

16.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아들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천사에게도 그런 표현을 쓰지 않았다(5). 그러면 천사와 아들은 어떤 점에서 다른가(6)?

    경배받을 자와 경배할 자: 무수리와 중전만큼의 차이보다 더 크다.

17. 태풍과 산불을 생각해보면 바람과 불꽃은 엄청난 위력을 지닌 것이다. 천사가 바람과 불꽃이라면(7) 예수는 무엇인가? 7-9에서 두 가지를 지적해보자.

    바람과 불꽃은 엄청난 위력을 지닌 도구이다. 예수는 이 도구를 사용하시는 분이시다.

    바람과 불꽃이 엄청난 위력을 지녔을지라도 소멸하기 쉬운 반면에 예수는 영영하시다. 8-9절을 정리하면 예수는 왕권을 지니고(보좌, 나라, 홀, 기름부음) 천사들을 부리시는 영영하신 분이시다. 시 45:6-7(8-9)의 동류란? 여러 왕들 중에서 더 뛰어난 왕이란 뜻이다.

18. 시 102:25-27(10-12)을 인용하여 그리스도의 탁월성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예수는 피조물이 아니라 창조자이시다: 피조물은 멸망할 것이고, 낡아지고 변하겠지만 아들은 영존할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진술을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으로 인용하였다.

19. 시 110:1(13)을 인용하여 천사와 예수는 어떤 차이가 있다고 하는가?

    천사는 하나님 우편에 앉을 존재가 아니라 심부름꾼 아니냐?

[종합] 천사보다 예수가 탁월한 것은 이름에서(4), 신분에서(5-하나님의 아들, 6-경배받을 자, 13-왕), 관계에서(7-9 사역자와 도구), 본질에서(10-12 창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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