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3장


1.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문제아를 설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가 알아들을 수 있을만한 많은 이야기를 총동원해서 설득해야 한다. 때로는 ‘야, 이 돌대가리야’라고 소리 질러야 한다(1, 3). 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율법이 아니라 믿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하여 사용한 주장이나 예를 다 찾아보자(1-18).

    너희가 정말 돌대가리냐?(1, 3)
    성령받은 것이 행위로냐 믿음으로냐?(2)
    지금까지의 수고가 아깝지 않느냐?(4)
    하나님의 역사(성령주심과 이적)가 너희의 행위 때문이냐?(5)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은 믿음 때문이다(6).
    믿음으로 복을 받는 것이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8),
    율법은 우리를 의롭게 하지 못한다(10-11),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셨다(11).
    율법의 저주를 풀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무에 달리셨느니라(13-14),
    사람의 약속보다 더 단단한 하나님의 약속(15)
    선후관계에 있어서 믿음이 율법보다 먼저 주어졌다(17).
    아브라함 때에는 율법이 없었다(18):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다.

2. 율법주의자들의 주장을 반박하려면 구약을 잘 인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래서 그런지 바울은 구약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 잘 보면 인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몇 군데나 인용하고 있는가?

    6번: 6절의 ‘함’ 8절의 ‘하였으니’ 10절의 ‘기록된 바 ... 하였음이라’ 11절의 ‘하였음이라’ 12절의 ‘하였느니라’ 13절의 ‘기록된 바 ... 하였느니라’

3. 갈라디아 성도들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역사적 사실을 부인했다는 말인가?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아도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된다고 믿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2:21). 수십년 교회를 다녀도 ‘교양을 쌓기 위해서, 혹은 사업상 교제를 위해서’ 다녔다면 그동안의 봉사나 사역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4. 바울은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다른 얘기는 접어놓고 이것 하나만 물어보자(알고 싶다). 성령을 받은 것이 행위로냐 믿음으로냐?’ 이 물음에 대해서 바울이 기대하는 답변은 무엇인가?

    말씀을 듣고 믿을 때 성령이 임하셨다(행 11:15, 15:7).

5. 믿음을 유발시키는 행위는 무엇일까?

    듣는 것(2, 5):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롬 10:17, 참고 요 5:24, 행 13:48, 18:8, 엡 1:13). 그러므로 들려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믿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방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것이다.

6.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일인지 비슷한 예를 들어보자.

    하나님의 부름을 좇아 목사가 되었다가 돈 때문에 사역을 접은 사람? 생령으로 만들었더니 육체가 되어버린 인간? 양자를 들여서 공들여 키웠는데 어느 날 그동안의 양육비를 갚겠다고 얼마냐고 묻는다면?

7. 갈라디아 성도들이 겪었던 많은 괴로움이란 무슨 괴로움일까?

    믿음으로 인하여 당한 고난: 특히 바울을 적대시하며 따라다니며 괴롭히던 유대인들로부터 당한 고난일 것, 그것을 무의미하게 할 수 없지 않으냐?

8.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지 않았느냐고 하는 것은 할례를 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을 수 있는 기막힌 변증이다. 창 15:6 과 17:9을 비교해서 설명해보자.

    할례받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롬 4:10-11). 그 믿음에도 사실은 흠이 많다. 100% 완전한 믿음이 아니라 ‘그렇게 믿겠다는 각오에 지나지 않는 것’을 믿음이라고 인정하셨다. 그것은 행함으로 인정받은 것이 아니란 증거이다.

9. 바울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주장이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에 성경이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주장하는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 아브라함(6)을 통해서 모든 이방이 복을 받으리라고 하신 것(8): 이 놀라운 일을 가능하게 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말한다(14).

10. 바울은 구약을 인용하여 율법과 믿음을 날카롭게 대비시키고 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는 말씀을 기억하면 된다(11). 반면에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된다고 믿는 자는 어떤 말씀을 기억해야한다고 하는가?

    율법책에 기록된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신 27:26). 율법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온전하게 지킬 수 없는 우리 인생이 문제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야겠다면 그렇게 하라(레 18:5)는 식이다.

11.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율법을 행함으로 살리라’는 말씀은 바울이 보기에는 저주다. 다 행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율법에 철저했던 사람의 말이니 그만큼 신빙성이 더 있다. 그러면서 나무에 달린 예수를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율법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모든 것을 예수께서 대신 갚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의 요구대로 살 것이 아니요, 예수를 믿음으로 율법을 온전히 이루게 된다.

12.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게되는 성령의 약속(14)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브라함의 복이기도 하고 이방인들이 받게되는 복이기도 하다.

    성령: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게 되는 것은 ‘약속된 성령’이다(행 2:38, 요 14:16-17). 그러니까 ‘의’는 동격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령의 약속’보다는 ‘약속된 성령’이라고 번역하면 좋겠다.

13. 15절 다음에 생략된 말을 넣는다면?

    하물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함부로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겠는가?

14. 사람들끼리 한 약속도 함부로 고치지 못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이야 더욱 그렇지 않겠느냐? 무슨 약속을 말하는가?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8):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하여 모든 이방이 복을 받게 하겠다던 약속, 곧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겠다는 약속은 폐하여 질 수 없는 것이다. 모세가 율법을 주었는데 바울이 전하는 믿음으로 의롭게된다는 방법은 율법보다 먼저, 이미 아브라함 때 제시된 방법이다.

15. 18절 말씀의 요지는 ‘율법과 약속은 양립할 수 없는 관계’라는 뜻이다. 그러면 ‘은혜’는 무엇과 양립할 수 없는 관계인가?

    행함: 약속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유업은 은혜이다(18b). 그러면 율법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얻으려면 행함이 필요하다.

16.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터인데 율법은 왜 주셨다고 하는가?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 임시 방편(19): 죄가 죄인 것을 알게 하려고(롬 3:20) 추가로 주신 것이다. 그것도 임시로. 모세가 증서를 써주고 이혼하라고 하신 이유와 관련이 있다(마 19:8): 너희의 완악함 때문에 그렇게 하라고 한 것이지 본래는 그렇지 않다고 하셨다. 학생들이 스스로 알아서 학생답게 생활하면 교칙이 필요없다. 그렇지 못하니 필요한 것 아닌가? 교칙이 학교의 목표가 아니다. 학교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보조적인 장치일 뿐이다.

17. 율법과 약속이 중보자와 무슨 상관이 있길래 중보자 얘기를 꺼냈을까(19-20)?

    율법을 전해주는 데에는 중보자 필요하지만(19b, 20a, 행 7:53 ← 신 33:2) 약속을 전하는 데에는 중보자가 필요 없다(20b). 중보자를 거치지 않은 약속이 더 우월한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베푸신 약속(은혜)이었다(창 15장: 쪼갠 제물 사이로 하나님께서 홀로 지나가셨다. 아브라함과는 관계없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18. 언약에 비하여 율법이 열등한 점을 지적한다면 무엇인가? (1번 질문에 이어서, 17-21)

    1) 나중된 것(17)
    2) 중보자를 통하여 주어진 것(19-20, 중보자는 양쪽을 다 생각해야 한다)
    3) 범법함 때문에(19, 범죄하지 않도록)
    4) 일시적(19,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5) 몽학선생(24, 아이가 자랄 때까지만 선생일뿐 그 후에는 여전히 종)
    6) 가두어 둠(22, 더 죄짓지 않도록, 가출 못하게)
    7) 불완전(21)

19. 율법과 언약의 공통점은?

    방향은 같다: 율법이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고 언약은 바톤은 받아 하나님께로. 어릴 때는 몽학선생처럼 율법이 가르치다가 자라면 언약에게로 인계해야 한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인계하듯이.

20. 조선시대의 양반, 상놈에 대한 차별이나 남녀에 대한 차별을 폐지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현재에도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우월감이나 민족적 차별을 없앤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인종 박람회장이라고 불리는 미국에서도 인종간의 벽이 여전히 높기만 하다. 어떻게 안 될까? 방법이 전혀 없을까?

    열심히 전도해서 예수 안에서 하나되게 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도 불가능한데 2000년 전에 사도바울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28)라는 선언은 폭탄선언이다. 이 한 마디만으로도 바울이 남녀차별을 했다거나 노예해방을 부르짖지 않았다고 하는 비난은 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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