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7


1. ‘이 일’이란 성전 완공(BC 516)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니까 얼마 후에 에스라가 귀환했을까? 참고로 아닥사스다 왕은 BC 464년에 즉위했다.

    에스라가 귀환한 아닥사스다 왕 칠년은 BC 458년이다. 약 60년 후의 일이다. 그 사이에 그리 큰 일은 없었던 모양이다. 아무리 그렇지만 60년이란 세월을 이렇게 간단하게 한 마디로 건너뛰는가?

2. 에스라는 자신의 족보를 왜 이렇게 상세하게 기록했을까?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타당성을 강조하려는 의도 아닐까? 백성들을 가르치는 일에 적임자임을 스스로 천거하는 셈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포로 시절에 제사장의 역할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직계 조상은 건너뛰고 있다. 이스라엘의 족보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3. 빵빵한 집안이네! 조상 중에 누가 눈에 띄는가?

    비느하스, 혹은 대제사장 아론: 아론을 대제사장이라고 강조한 것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당연히 아론이 눈에 띄겠지만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비느하스를 천거하고 싶다. 하나님을 향한 열심은 비느하스가 최고다(민 25:11-13). 아론이 시조라면 비느하스는 중시조로 대접 받을만한 위치에 있다. 그대가 신앙의 명가를 이룬 시조가 되든지 아니면 시조는 아닐지라도 중시조는 돼라!

4. 신학대학원에서도 성경을 직접 가르치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다른 이론은 제쳐두고 성경만 가르치는 대학원이나 성경만 통독하는 모임의 이름에는 에스라가 많이 쓰인다. 왜 그럴까?

    율법에 익숙한 학사로서 백성들에게 율례와 규례를 가르쳤기 때문: 모세가 가르쳤던 그 율법을 다시 가르쳤다.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정통하여 잘 가르치는 것은 정말 귀한 일이다(고전 14:5, 딤전 5:17). 그 뿐 아니라 잊혀져가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기록을 정리하고(역대기) 말씀으로 새롭게 여호와 신앙을 일으켜 세운 선지자다. 역대기와 에스라서를 기록한 이유가 그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제 2의 모세’라고 칭송을 받기도 한다. ‘학사’란 표현은 서기관이나 학자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5. 에스라는 위대한 신앙인이다. 소위 신앙이 좋다고 하는 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면?

    불신자에게도 인정을 받는 것(6, 12절의 ‘완전한’, 14절의 ‘일곱모사’):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다는 것은 왕이 그의 능력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세속적인 인정이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무능함이나 게으름, 불의함에 대한 핑계로 신앙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신앙 때문에 무능한 사람으로 찍히는 것과 신앙을 핑계로 무능해지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

6. 돌아온 사람들을 가리키는 표현, 즉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이라는 표현(7)이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1차 귀환자들과 표현이 똑같다(2:2의 ‘이스라엘’ 2:36의 ‘제사장’ 2:40의 ‘레위 사람들’ 2:41의 ‘노래하는 자들’ 2:42의 ‘문지기들’ 2:43의 ‘느디님 사람들’): 1차 귀환 후 약 80년 후에 귀환하는 모습이 흡사하다는 것은 비록 포로로 잡혀가서 여기저기 흩어져 살아도 동일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징계를 받으면서도 하나님을 잊지 않았다는 것은 회복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7. 돌아오는 데에 4개월이 걸렸네(9, 10)! 이 정도 걸렸으면 정상일까?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서 예루살렘에 이르렀다는 말(9)을 참고로 해서 생각해보자?

    좀 오래 걸린 셈이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과 어려움이 많았다는 뜻이다(8:15, 31, 21-22).

8. 에스라가 귀환한 것은 포로 생활이 시작된지 150년이나 되었을 때의 일이다. 이 정도의 시간이 지났으면 그 곳에 정착하여 동화되고도 남을 시간이다. 함께 돌아온 사람들도 훌륭하지만 에스라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런 일을 하게 했을까?

    말씀에 대한 열심(10):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기 때문이다(원문상 초두에 ‘왜냐하면’이란 말이 붙어있다, 영어의 For). 여호수아가 그랬고(수 8: 34-35), 하나님도 그랬다(시내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 교회를 섬기는 일에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을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말씀을 연구해서 잘 가르치는 일만큼 귀한 일은 없다. 다른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9. 바사의 왕이 어떻게 알고 에스라가 하고 싶은 일(동족과 함께 귀환, 제사 드리는 일, 가르치는 일)만 하라고 조서를 다 내렸을까?

    에스라가 청원한 대로 조서를 내렸기 때문이다: 에스라가 가만히 있는데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아니다. 그에게 간절한 소망과 그것을 이루려는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28절의 ‘내가 힘을 얻어’라는 표현도 이런 의미이다. 하나님은 꿈꾸는 자를 통해서 역사를 이루신다. 소원을 품게 하시고 그 소원대로 행하게 하신다(빌 2:13).

10. 에스라는 어떤 말로 왕을 설득했을까?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하늘의 하나님의 진노가 왕과 왕자의 나라에 임하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23). 공갈을 친 건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왕에게 가르친 셈이다.

11. 에스라가 율법과 규례를 가르치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가르치면 되지 굳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려고 한 이유가 있을까?

    무언가 좋지 못한 소식을 들었을 것이 틀림없다: 14절의 ‘유다와 예루살렘의 정형을 살피기 위하여’ 파송되었다는 말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근거다. 에스라가 역대기를 써서 가르치므로 개혁해야 할 만큼 종교적인 큰 문제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12. 성경에서 보통 ‘강 서편’이라면 요단 강 건너편을 가리키지만 온 세상을 다스리는 아닥사스다 왕이 말하는 강은 요단 강이 아니다. ‘강 서편’이란 어느 지역을 가리키는가?

    유프라테스 강 너머 지역을 가리킨다: 이 강을 건너면 본래 바사의 본토에서 벗어나는, 지방 행정구역이다. 에스라의 일행이 통과해야 하는 변방지역이다. 단, 25절의 ‘강 서편’의 의미는 제한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에스라에게 위임된 권한이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한정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13. 조서의 내용이 참 세밀하다. 구체적인 지시사항을 해당자별로 간단하게 요약한다면?

    1) 유대인들은 에스라와 함께 가서(13-15),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라(16-20).
    2) 고지기들은 요청하는 대로 돕고(21-22),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에게 세금을 면제하라(24).
    3) 에스라에게 재판권을 주노라(25-26).

14. 에스라가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준행치 아니하는 자의 죄를 정하여 혹 죽이거나 정배하거나 가산을 적몰하거나 옥에 가둘 수 있다’는 것은 에스라가 무슨 직책을 맡았다는 말인가?

    총독: 단순하게 말씀을 가르치는 자라면 이런 힘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에스라가 이런 방식으로 백성을 지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 부분은 왕이 자신의 방식대로 명한 부분일 것이다.

15. 누가 성전을 아름답게 하는가?

    하나님께서: 왕과 에스라와 모사와 방백들을 통하여(28) 온전한 제사를 드릴 수 있게 하셨다. 성전이 아름다운 것은 건물 치장을 잘 하는 것이 아니다. 온전한 제사를 드릴 수 있을 때 성전이 아름다운 것이다. 성전을 재건하고 60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이스라엘은 인종적인 혼합 뿐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혼합되어 있었다. 이런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대한 열정을 품은 한 사람을 택하여 이들을 바르게 세우려고 하셨다. 백성들이 신앙적으로 바르게 세워지는 것이 성전을 아름답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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