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4장


1. 모델 하우스는 아직 짓지 않아서 머리 속에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지어질 집을 그대로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본문에 나오는 에스겔의 세 가지 행위(1-3, 4-8, 9-11) 중에 어느 것이 일종의 모델인가?

    모로 누워서 지내면서(4-8), 부정한 떡을 만들어 먹는 일(9-11): 이스라엘이 꼭 이와 같은 고난에 처해질 것이라는 뜻이다. 건축자는 모델 하우스와 똑같은 집을 지어야 한다. 이스라엘은 에스겔과 똑 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모델도 모델 나름이지 이런 모델은?

2. 상징은 꼭 같지는 않지만 닮은 점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본문의 어느 행위가 상징에 해당하는가?

    에스겔이 만든 진지(1-3): 일종의 모형이다. 예루살렘이 이렇게 외침을 당할 것에 대한 상징이다.

3.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고 있는 짓은 마치 무엇과 같은가?

    아이들의 전쟁놀이터 만들기: 흙벽돌(=박석, 礡石, 토판)에 예루살렘을 그려서 세우고 둘레에 그 성을 공격하는 진을 세우고 장비를 설치하는 것이다. 예루살렘이 이런 꼴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에스겔이 환상을 보고 사역을 하던 때가 예루살렘이 완전히 함락되기 전이다.

4. 다른 역본에 보면 그렇게 포위된 예루살렘을 지켜보라는 말이 있다(NKJV, Set your face against it). 개역은 이 느낌이 살아나지 않는다. 어느 부분일까?

    3절의 ‘성을 향하여’: 얼굴을 성에 고정시키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에 대한 상징인데 하나님께서 얼굴을 향하고 있으면 복 아닌가? 복을 주시려고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을 때에야 얼마나 좋을까마는 징계를 하려고 노려보고 있다면 무서운 일이다.

5. 선지자가 애들 장난처럼 진지를 만들고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으면 사람들이 ‘뭣 하는 짓이냐?’고 물을 것이다. 그러면 에스겔이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고 계신다, 징계하시려고 말이다: 하나님께서 얼굴을 특정한 곳으로 향하게 하시면 복이 아니면 심판이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6. 왜 좌편으로 누워 삼백 구십일, 우편으로 누워 사십일을 지내라고 할까? 반반씩 아니고?

    좌편은 이스라엘, 우편은 유다를 상징하기 때문: 좌편으로 누우면 이스라엘이 있던 북쪽이 보인다. 기준이 해가 뜨는 동쪽이기 때문이다.

7. 에스겔이 죄를 담당하는 것은 대신 죄를 지는 것(대속)일까, 아니면 모델일까?

    모델: 에스겔처럼 이스라엘 백성과 유다 백성들이 고난을 당한다는 예시다.

8. 북 이스라엘이 당할 고난은 390년이고 유다가 겪어야 할 고난은 40년이다. 다음 연대를 참고해서 생각해보자. [왕국의 분열 BC 930, 북 이스라엘 멸망 BC 723, 유다 멸망 BC 586, 이스라엘의 귀환 BC 538]

    북 이스라엘의 건국부터 유다의 귀환까지 약 390년, 유다가 완전히 망하고 귀환하기까지 40년이다. 그렇게 본다면 왕국이 분리되어 떨어져 나간 이스라엘의 전역사가 징계인 셈이다. 하긴 이스라엘의 왕들이 하나같이 악했다는 점에서 전체가 징계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9. 자신이 모형처럼 만든 예루살렘을 향하여 눈을 부릅뜨고 팔을 걷어부치고 예언의 말씀을 퍼붓는다면 사람들이 뭐라 그럴까? 그것도 모로 누워, 줄로 자신을 묶어 마음대로 몸을 돌리지도 못한 채!

    반응은 다양하겠지만 선지자가 왜 그러는지 알기는 알 것: 어떤 목사님께서 젊은 날에 아무도 없는 새벽기도 시간에 수천명이 모인 것처럼 열심히 설교를 했더니 새벽기도가 부흥했더란다. 목사가 불쌍해서 와준 사람들 때문에.

10. 밀가루에 보릿가루를 섞으면 더 나을까, 못할까?

    따로 먹는 게 낫단다. 밀이나 콩, 팥은 고급 음식이고 보리, 조, 귀리는 거친 음식이란다. 섞으면 오히려 못하다. 어쩌면 빈부귀천의 구별이 전혀 안되는 상황에 대한 예시 아닐까? 전쟁이나 포로로 잡혀가는 판국에 양반이 어디 있고, 상놈이 어디 있겠는가!

11. 이십 세겔중은 228g이다(20×11.4g). 한 끼 식사가 76g이면 어떻게 되나? 마른 라면 한 개가 125g이다. 끓이면 600g 정도 되겠네! 물 한 힌은 367cc다. 6분의 1힌은 61cc다. 야쿠르트 한 개가 50cc인데?

    그야말로 최소한의 음식과 물이다: 1년 넘게 이렇게 지내야 한다? 그래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시는가? 최소한의 음식으로,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휴우, 도저히 선지자 노릇 못하겠다!

12. 땔감이 부족하면 동물의 마른 배설물로 대신하기도 했지만 초식동물의 그것과 달리 인분은 그렇게 유용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신 23:12-14에 따르면 부정한 일이다. 왜 이런 부정한 짓을 하게 하시는가?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13, 열국으로 쫓겨 흩어질 때) 이스라엘이 당하게 될 일의 예표다. 부정한 떡을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일까? 오죽하면 하나님께 호소하여 인분대신 쇠똥으로 대치시켰을까? 알러지 환자가 먹어서 안되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면? 천식환자가 먹어서 안되는 약을 먹어야 한다면? 마카비 시대에 돼지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목숨을 잃은 적이 있다. 그런 점들을 감안해보면 부정한 떡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 어떤 고통일지 짐작이 조금이나마 되려나?

13. 아무리 이스라엘이 범죄했기로서니 자기 백성을 ‘열국으로 쫓아 흩을’ 수 있나?

    수없이 경고했던 일이다(레 26:33, 신 28:36, 37, 64-65, 68). 이런 일이 발생하는 원인은 그들의 죄악이다(17, 그 죄악 중에서 쇠패하리라).

14. 아무리 하나님의 명령이지만 인분으로 떡을 굽는 일은 차마 할 수 없다는 선지자의 호소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양보를 하시는가?

    인분 대신에 쇠똥을 쓰라고 하셨다(15). 그렇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어야 할 고통이 감해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선지자의 아픔을 조금 덜어 주었을 뿐이다.

15.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시는가? 에스겔 외에도 이사야는 3년동안 벌거벗고 다녔고(사 20:1-2), 호세아는 집 나간 아내를 찾아헤맸다(호 3:1-5). 예레미야는 종합선물세트처럼 온갖 종류의 고난을 달고 살았다.

    선지자들의 아픔이 곧 하나님의 아픔이었다. 자기 백성을 사랑하셔서 하나님도 이렇게 가슴이 아프다는 것을 깨달은 이 깨달음이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아픔을 이길 힘을 주었다. 특히 에스겔에게는 이런 아픔을 이겨낼 수 있도록 미리 그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 에스겔이 부럽다고? 그 뒤에 그가 겪어야할 고난은 생각도 않고? 그럴 바에는 차라리 안 보고 안 할래? 하나님의 영광만 보고 고난은 겪을 생각이 전혀 없는 이상한 욕심을 가진 성도들이 적지 않다! 헌신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이 기적을 체험하는 것만 간절히 바라는 것은 성도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진정한 평안을 누릴 때까지 이 땅에서는 이런 류의 고난이 끊이지 않는다. 하나님도 구원 역사를 완성하시기까지 쉬시지 않는다.

    박석 礡石(토판)
    운제 雲梯(사다리)
    토둔 土屯(흙 언덕)
    공성퇴 攻城鎚(추)
    전철 煎鐵(철판)
    철성 鐵城(철벽)
    경겁 驚怯(근심)
    민답 悶沓(두려워 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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