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5


1. 왕이 기분이 좋은 때를 잘 염탐해서 나타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하나님만 믿고 사흘 만에 그냥 들이미는 것이 좋을까?

    가뜩이나 생각도 모자라고 즉흥적인 왕이니 어전의 분위기를 잘 살펴서 접근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이럴 때를 대비해서 적절하게 부릴 수 있는 사람도 미리 만들어 놓지 않았을까? 이런 노력이 하나님을 제대로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지만 우리는 우리대로 최선을 다 해야 한다(눅 14:28-32). 구체적으로 이런 구분이 쉽지는 않지만 노력해야 한다.

2. 모처럼 나타난 왕후에게 대뜸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꼭 소원이 있어야 나타나는가?

    왕후라도 죽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나타날 수 없는 것이 법이니 무슨 심각한 일이 생겼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3.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3)? 정말 달라면 어떡하려고?

    이런 표현은 부탁을 꼭 들어주겠다는 상투적인 말이다. 이걸 문자대로 이해하면 안된다. 어떤 왕도 자기 나라의 절반을 떼어주는 법은 없다. 만약에 진짜 그렇게 달라고 했다가는 정말 큰 일이 난다. 이래서 국어공부가 중요하다.

4. 왕이 생각하기에 ‘왕후가 소원이 있어서 찾아온 것이 틀림없는데 소원을 말하지 않고 엉뚱하게 잔치에 초대하다니?’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궁금증이 더 커진다. 아무리 급한 일이라도 애를 좀 달구면 효과가 더 있다. 그래서 하만을 급히 부르라고 시키고(5) 잔치 자리에서도 먼저 소청의 내용이 무엇인지 묻는다(6).

5. 온 유대 백성이 죽을 지경인데 무슨 잔치를 여는가(4, 8)? 쇠뿔도 단 김에 빼라고 했는데?

    아무리 다급한 소원이 있더라도 왕의 마음을 확실하게 얻은 다음에 적절한 기회를 노리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다. 차분하고 냉정하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 하만이 반격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야 한다.

6. 하만은 왜 즐거울까?

    왕후가 왕과 함께 하는 잔치에 자신만 초청했기 때문이다. 이런 즐거움과 그로 말미암은 교만이 결국은 자신을 함정으로 몰아넣는 것도 모르고!

7. 하만이 왜 이렇게 참을성이 많을까(9-10)?

    대의(?)를 위해서 개인적인 원한을 참는 것이다: 모르드개를 개인적으로 처리하다가 왕이 알게 되면 유대인을 제거하려는 하만의 흉계가 모르드개 때문이라는 것이 알려져 일을 그르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전에는 보이지도 않던 놈인데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는 이 놈만 눈에 뜨인다. 그래 조금만 참자.

8. 엄청난 재물, 많은 자녀, 총리라는 권세, 왕후의 총애 이 모든 것을 능가하는 것이 무엇인가?

    모르드개에 대한 미움: 자신이 소유한 것들을 보는 즐거움보다 모르드개를 보는 분노가 더 크게 와 닿는다(13). 모르드개만 보면 기분이 나쁘다. 자신이 가진 것에 비하면 정말 별 것 아닌데 이렇게 분노해야 하는가? 인생이 그런 모양이다.

9. 본인은 잘 참고 있는데 부인과 친구들이 아첨하면서 분풀이할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오십규빗이면 23m인데 왜 이렇게 높은 장대를 준비했을까?

    모든 사람들에게 경고하려고: 왕에게 모반했던 자들이 나무에 달렸지만(2:23) 이렇게 높은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개인적인 원한으로 모르드개를 이렇게 달겠다고 하면 왕이 기분 나빠할 것을 전혀 예상 못하는 모양이다. 오만, 분노에다 주변 사람들의 아첨에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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