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


아모스 1 장

※ 본문 내용을 다음 도표에 간략하게 정리해서 참고 하기 바람

나라이름 벌받을 도시
이스라엘   초장이 애통하고,
갈멜산 꼭대기가 마름
다메섹 (길르앗)을 압박함 왕, 백성이 사로잡힘 다메섹, 아웬, 벧에던
가 사 사로 잡은 자를 (에돔)에 붙였음 궁궐을 사름
나라가 망함
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에그론
두 로 사로 잡은 자를 (에돔)에 붙였음 궁궐을 사름 두로
에 돔 (형제)를 끝까지 괴롭힘 궁궐을 사름 데만, 보스라
암 몬 (길르앗)에서 아이 밴 여인을 죽임 궁궐을 사름, 왕,
백성이 사로잡힘
랍바
모 압 에돔 왕의 뼈를 불살라 회를 만듦 나라가 망함 그리욧
유 다 여호와의 율법을 무시, 우상을 숭배 궁궐을 사름 예루살렘

1. ‘지진 나기 2년 전’이라는 표현은 누구나 아는 시기라는 말이다(슥 14:5). 이것을 달리 말하면 아모스의 예언이 있고 2년이 지나서 누구나 아는 지진이 일어났다는 말이다. 무슨 의도가 깔려 있는 걸까?

    아모스의 경고가 지진으로 일부 성취되었다: 말씀의 경고를 무시하지 말라. 개인적으로도 얼마든지 이런 재난을 당할 수 있다. 말씀대로 사는 사람에게는 반대로 하나님의 선물이 주어진다.

2. 아모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쉽게 순종하기 어려운 점 두 가지는 무엇이었을까?

    1) 유다 백성이면서 이스라엘에서 사역하는 것: 유다와 이스라엘은 서로 적대적일 때가 많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이었다. 그러기에 초대 문서 선지자를 남쪽 유다에서 불러 북쪽 이스라엘에서 사역하도록 하셨다.

    2) 목자 출신이라는 것: 농부 출신이 목사가 되어 서울에서 사역한다고 생각해 보라. 출신을 감추는 것이 백번 유리할 것이다.

3. 성경에서 인물을 소개할 때 대부분의 경우에는 ○○의 아들 △△라는 식이다.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처럼 말이다. 그런데 아모스의 경우에는 왜 ‘드고아의 목자’라고 소개할까?

    명백한 답은 없다. 다만 드고아라는 지명의 특수성이 삼하 14:1-4에 나타난다. 어쩌면 드고아라는 곳이 지혜로운 사람이 많았던 곳이 아닐까? 아버지가 별로 유명하지 않거나 일찍 죽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의 아들 아모스라고 하는 것이 정상이다.

4. 히브리 문학의 특징 중에 같은 내용을 표현만 달리해서 이중으로 반복하는 것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2절에는 내용상 같은 것이 몇 가지가 있을까?

    3가지 (시온=예루살렘, 부르짖으며=음성을 발하시며, 애통하며=마르리로다)

5. 목자의 초장과 갈멜산 꼭대기는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곳이다. 평지와 산꼭대기다. 심판을 예고하면서 평지는 애통하고 산꼭대기는 마르고... 어떤 느낌을 주는가?

    하나님의 심판이 철저할 것이다.

6.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기분이 어떨까? 하나님을 만났을 때 두려워 엎드린 사람이 대부분이다. 아모스가 들은 하나님의 음성은 어떠하였는가?

    울부짖는 사자 같았다(2): 사자가 울부짖으니(포효) 목자뿐만 아니라 초장에 있는 양떼들이 애통하는 것이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목자가 사자의 포효하는 소리를 들으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아모스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이렇게 들렸다. 이런 하나님의 음성이 소명의 원천이 된다.

7. 북쪽 이스라엘에서 사역하도록 부름을 받은 아모스가 어느 나라에 대해서 예언하고 있는가?

    다메섹, 가사, 두로, 에돔, 암몬, 모압, 유다: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만으로도 바쁠텐데... 아무리 이 소리 저 소리를 해도 목표는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변죽을 울리는지 기대하며 읽어야 한다.

8. 모든 예언서에는 유다와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나라에 대한 예언이 꼭 들어 있다. 호세아만 예외일 뿐이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예언에 왜 다른 열방들이 꼭 들어가야 할까?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열방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9. 다메섹(아람 즉 현 수리아의 수도, 현재의 다마스커스)의 죄는 무엇인가?

    길르앗을 압박함

10. 우리말 ‘타작한다’는 본래 뜻은 ‘곡식을 떠는 것’이지만 ‘심한 매질’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스라엘의 철 타작기가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 잘 모르지만 그것이 어떻게 다메섹이 이스라엘을 얼마나 괴롭혔는지 타작의 방식을 상상해보자.

    볏단을 두들겨서 낱알을 떼어내면 낱알이 이리 튀고 저리 튀며 떨어진다.
    (곡물을 가루로 만드는 기계?)

11. ‘다메섹의 서너가지 죄’란 말은 정확하게 번역하면 ‘다메섹의 세가지 죄들과 넷’이다. 그러면서 실제로 언급하는 죄는 (   )가지 뿐이다. 같은 표현을 쓰고도 이스라엘의 죄는 7가지를 나열한 것을 보면 이 표현이 7가지 죄를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옳겠다.

    한: 각 나라마다 7가지 죄를 나열해야 하지만 대표적인 것 하나만 언급하고 실제 목표인 이스라엘은 7가지 죄를 다 지적하는 것이다.

12. 5절에 지명을 의미하는 단어가 몇 개일까? (참고 왕하16:6-9)

    5개(다메섹, 아웬, 벧에던, 아람, 길): ‘길’도 지명이다.

13. 가사는 블레셋 족속의 5대 도시 국가 아스돗, 아스글론, 에그론, 가드, 가사 중에 하나인데 무슨 죄가 있는가?

    사로 잡은 자를 에돔에 붙였음

14.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 두로 왕 히람이 많은 재료와 사람을 보내서 도와주었다(왕상5). 그래서 솔로몬과 히람왕이 서로 조약을 맺기까지 했었다. 그런 관계이었기 때문에 두로가 특별히 더 죄가 많음을 지적하는 말은?

    그 형제의 계약을 기억지 아니하고 (사로잡은 자를 에돔에 붙였음)

15.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향할 때 하나님께서 싸우지 말고 우회하여 가라고 명한 족속들이 있었다(신2). 조상을 더듬어 올라가면 형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괴롭힌 족속이 둘이나 있다. 어느 족속일까?

    에돔(신2:4,8, 23:7,8)과 암몬(신2:19)과 (모압)

16. 아모스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한 것과 이웃나라들에게 경고한 것을 비교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이유는?

    대단히 두려움(주변 나라들의 형벌의 원인이 도망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잡아다가 준 죄이거나, 직접 해를 가한 죄 때문이라는 것은 이스라엘이 침략을 당하거나 산지 사방으로 도망가는 일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17. 주변 5개국의 죄와 벌에 있어서 공통점이 있다면?

    이스라엘이 환란을 당할 때 괴롭힌 죄(비록 가장 먼저 징벌을 받고 사방으로 도망 다니기 바빠도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은 이스라엘에게 있는 것)

18. 주변 5개국에 대한 예언의 형식에서 공통점이 있다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서너가지 죄, 돌이키지 아니 하리라, 불,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두로, 에돔 제외): 자신의 선포가 분명하게 여호와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점이 가장 강조되어 있다고 보아야겠다. 설교는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아니,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

    (‘죄를 돌이키지 아니하리라’에서 ‘죄’는 원어에 없는 의역이다. 단지 ‘그것’이라고 되어있을 뿐이며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 있기도 하다)

19. 인신 매매의 죄에 해당하는 나라는?

    블레셋과 두로

20. 이스라엘을 직접 침략하여 괴롭힌 나라는?

    다메섹, 암몬, 에돔

    묵시(默示): 계시,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을 인간에게 열어주시는 일
    드고아: 예루살렘 남방 19㎞, 즉 이스라엘이 아닌 유다왕국에 속해 있었다.
    길르앗: 요단 동편 지역이며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가 차지했든 땅이다
    하사엘: 아합 집안을 벌하기 위하여 엘리야가 하나님의 명을 받아 기름부어서 세운 아람 왕, 벤하닷Ⅱ세의 군대장관이었음, 후에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학대함, 그의 아들이 벤하닷Ⅲ세 임
    두로: 국명은 베니게(페니키아), 수로보니게 여인이라고 할 때 ‘수로’는 시리아, ‘보니게’는 페니키아
    에돔: 붉다는 뜻으로 에서의 별명
    데만: 에서의 손자, 곧 에돔 족속을 가리킴
    보스라: 사해 남쪽에 있는 에돔의 수도
    암몬: 롯이 둘째딸에게서 낳은 벤암미의 후손
    랍바: 암몬의 수도, 점령시에 우리야가 죽임 당한 곳, 암만(현)

아모스 2 장

1. 모압의 죄는 에돔 왕의 뼈를 불살라 회(灰)를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게 왜 죄가 되는가?

    (형제에게) (최악의 모독)을 주는 식으로 저지른 죄를 묻는 것: 둘 중의 한 개

2. 이스라엘의 먼 외곽에 위치한 나라들(다메섹, 두로)의 죄를 지적할 때 ‘옳소’ 했는데 점점 가까이 오더니(지리적, 인종적으로) 급기야 이스라엘에 대하여 하나님의 선고를 전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기절했겠지,
    그럴 리 없다. 하나님께서 이방나라를 심판하는 거야 당연하지만 선택한 우리를 심판하실 리가 없다. 다메섹, 가사, 두로는 이스라엘과 무관한 이방의 수도이다. 에돔, 암몬, 모압은 혈연관계가 있는 나라들이다. 유다는 형제국이며 마지막에 나오는 이스라엘이 자신의 이름이다. 아모스의 말이 시작되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나라에 선포되는 심판에 대해 환호성을 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아모스의 말이 점점 자기에 대한 내용으로 접근해 오자 식은 땀을 흘렸을 것이다. 이건 완전히 목조르고 뒷통수 치기다!

3. 이스라엘의 죄가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다른 점이 있다면?

    1) 다른 나라는 서너 가지라 해도 실제로 한두 가지인데 이스라엘은 서너 가지라 하더니 엄청나게 많다.
    2) 하나님께서 많은 복을 주셨는데도 범죄한 점 (아모리 멸망, 선지자를 세움)
    3) 내부적인 범죄 - 다른 나라를 침공하거나 괴롭힌 죄가 아니라
    4) 하나님께 범죄 - 인간적인 범죄

4. 이스라엘의 범죄를 분류해보자.

    1) 경제적인 범죄: 의인을 팔며, 궁핍한 자, 가난한 자의 티끌, 겸손한 자의 길
    2) 성적인 범죄: 부자(父子)가 한 젊은 여자에게 다님
    3) 종교적 범죄: 단 옆에서 전당잡은 옷 위에 누움, 저희 신의 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 나실인을 실족케, 선지자의 일을 방해

    열방의 죄는 전쟁을 매개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스라엘의 범죄는 주로 가난한 자와 관련이 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의 하나님이시다. 그렇다고 가난한 자를 일방적으로 두둔하는 것도 아니다(출 23:3, 6). 가난한 자를 돕는 방법은 올바른 권력을 세우는 것이며 의사결정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이성구).

5. 이스라엘의 범죄 중에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는 어느 것일까?

    부자(父子)가 한 젊은 여자에게 다님 (레 20: 근친 상간은 사형)

6. 하나님께서 사람의 형편을 고려하여 준 재미난 율법이 많이 있다. 가령, 남의 포도원에 들어가서 마음대로 따먹는 것은 괜찮으나 그릇에 담아서는 안되며, 남의 곡식밭이라 해도 손으로 이삭을 따는 것은 괜찮으나 낫을 대면 안된다 (신23:24-25). 총각이 장가를 들면 군대에도 보내지 말고 일년동안 집에 한가히 거하여 그 신부를 기쁘게 해주라(신 24:5)는 것 등등.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를 염두에 둔 이런 류의 고마운 규정을 무시하고 있는 범죄는 어느 것일까?

    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움: 가난한 자의 옷은 이불 대용이기 때문에 전당 잡은 옷이라도 해 지기 전에 돌려 주라 하셨다(출 22:26-27). 그 말씀을 하필이면 다른 곳도 아닌 단 옆에서 거부하는가?

※ (7-11) 다음 설명 혹은 내용이 이스라엘의 어느 범죄와 가장 가까운가?

7. 뇌물을 먹고 불의한 재판을 하는 것.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8. “야 네가 언제부터 그렇게 잘 믿었냐? 주일 한 번 빼먹는다고 세상이 끝나냐?”

    겸손한 자의 길을 굽게 하는 것

9. 자기 회사 직원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주지 않은 채 열심히 헌금하는 것

    모든 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눕는 것

10. 한 성에 두 사람이 있는 데 하나는 富하고 하나는 가난하니 그 부한 자는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가난한 자는 아무 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하나뿐이라...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삼하 12)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며

11. 아무 직분도 없는 사람을 예배에 빠지게 하고 술집에서 놀게 하는 것보다 목사나 장로를 그렇게 한다면 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이런 재미를 노렸단다.

    나시르(나실) 사람으로 포도주를 먹게함: 나실 사람은 하나님께 특별한 구별한 사람으로 포도주와 독주를 먹지 아니하고 머리를 깎지 않고, 시체를 가까이 하지 않아야 했다(민 6).

12. 다음 중 아모스의 경고에 귀 기울일 필요가 없는 나라는?

    다메섹, 두로, 가사, 유다, 이스라엘, 모압, 암몬, 아모리

    아모리: 이미 예전에 망해버린 나라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설명하기 위하여 언급하고 있다.

13. 만약에 6.25와 같은 하나님의 심판이 닥친다면 다음 중 어떤 사람이 살아 남거나 난리를 피하기에 가장 유리할까?

    돈이 많은 사람, 학식이 풍부한 사람, 좋은 차를 가진 사람, 배를 가진 사람, 자가용 비행기를 가진 사람, 양심이 고운 사람

    아무 소용이 없다.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 자가 없다. 유리할 듯 싶은 그 조건이 오히려 자신을 해칠 수도.

14. 자전거를 타고 도망가는 아이를 붙들어서 뒷바퀴를 들어버리면 자전거가 아무리 좋아도, 타는 사람의 힘이 아무리 강해도 도망갈 수 없다. 자전거가 제대로 달리려면 뒷바퀴가 땅에 닿아 있어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연설가요 가수라도 공기가 사라져서 소리를 전해주는 매체가 없으면 자신의 뛰어남이 아무 소용이 없다. 수확을 많이 거둔 부자가 먹고 마시며 인생을 즐기려해도 목숨이 붙어 있어야 한다. 임금협상을 위하여 파업도 불사하겠다고 열을 올리는 것도 회사가 망하지 않아야 가능하다. 이런 인생의 전제조건이 부정되면 우리의 노력이라는 것은 정말 허망한 것이다. 기도하지 않고 열심히 성경공부하는 것, 하나님없이 좋은 대학가겠다고 밤낮없이 애쓰는 것 등이 바로 그런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런 전제 조건을 흔들어 버리면 우리의 노력이 아무 소용이 없음을 기억하면서 우리 삶의 (         )를 분명하게 해두자. 노력하지 말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우선 순위: (꿈 속의 달리기, 전륜구동 차의 앞바퀴, 현대인에게 전기)

    모압: 롯이 첫째 딸에게서 낳은 후손

아모스 3 장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잘못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특별한 관심의 대상(자기 백성, 선택한 민족)이기 때문이다: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 이것은 연애나 마찬가지다. 연애감정을 지닌 사람을 잘못 대하거나 무시하면 큰일이 난다. 사랑과 질투는 동의어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정 싫으면 마음을 잘 달래서 떼어내야지 마음을 다치게 하면 큰 사고를 당할 위험이 있다.

2.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 라는 말씀과 ‘그러므로 ... 너희에게 보응하리라’는 말씀은 논리적인가?

    논리적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지만 거절하는 자에게는 엄정한 심판이 있다. 특별한 사랑을 베풀었음에도 거부한다면 반드시 심판이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의 시작이다. 들으라는 명령이 세 번(3:1, 4:1, 5:1) 반복되고 있다. 예언을 시작하기 전에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고, 제도적 장치와 경고를 주었지만 이스라엘은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신 목적을 상실하였다는 것이다(3:1-2).

3. 다음 대화의 마지막 대답을 아모스의 의도에 맞게 고쳐보자.

    A: “사자가 왜 부르짖고 있지?” B: “그야, 한 건 했겠지.”
    A: “창애가 왜 튀어오르지?” B: “새가 치었으니까 튀지 그걸 질문이라고 해?”
    A: “창애가 왜 거기 있었지?” B: “누군가가 거기다가 설치했겠지.”
    A: “내가 왜 이렇게 심판 예고를 하고 있지?” B:_______________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8): 하나님에게서 무슨 계시를 받지 않고서야 내가 왜 이러겠느냐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왜 이러는지 아느냐? - 하나님 때문이야. 이것이 우리 삶의 해답이라면 복된 자이다.

4. 1-8절에 가장 많이 반복되고 있는 단어는 무엇이며, 반복해서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찌
    내가 이유 없이 이러고 있는 것이 아니다는 말을 하고 싶은 탓이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

5. 그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해서 아모스가 하고 싶은 결론적인 말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시키셨기 때문에 재앙이 온다.

6. 아모스는 문학적으로 탁월한 사람이었다. 특히 3-8절에 사용한 문학적 기교를 말해보자.

    반복, 설의법, 비유, 말을 잘 하거나 글을 잘 쓰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위해서 노력할 필요가 있다. 독서는 물론이고 일기를 쓰거나 편지를 쓰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된다.

7. 성읍에서 나팔을 부는데 왜 백성들이 두려워하는가?

    나팔은 전쟁 신호이기도 하다.

8. 노아의 홍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애굽의 재앙, 이스라엘의 멸망은 사전에 경고된 것이었다(7절). 지금도 이런 일을 있기 전에는 선지자들이 나타나는가? 아니면 이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비밀을 미리 보이시지 않는가?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는 선지자가 필요했으나 계시가 완성된 신약시대에는 따로 선지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이단들이 직통계시를 주장하지만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모든 해답을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9. 아스돗의 궁이나 애굽땅 궁들에게 고하는 내용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하는 내용은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전자: 구경해라. 믿는 자가 수치를 당하며 하나님의 낯을 깎아 내리는 일이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일 수도 있다.
    후자: 매맞을 것이다.

10. 이스라엘의 회복이나 구원은 선지자의 필수 메시지이다. 3장에도 그런 내용이 있는가?

    없다 (12절은 회복의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징계에 더 중점이 있다고 보아야겠다)

11. 목자가 사자 입에서 두 다리나 귀조각을 건져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왕 잡아 먹혔으면 괜히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는 게 아닐까? 그런데 왜 목자가 그것을 건져낼까?

    이유는 자신이 훔치지 않았다는 증거를 삼기 위함이다(출 22:13). 건져보아야 그것이 양을 구하는 것은 아니다. 말은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지만 내용상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이다.

12. 예전의 우스개말로 ‘앙꼬없는 찐빵, 물없는 사막...’ 14절을 이런 식의 말을 만들어 보자.

    뿔꺾인 단 (뿔이 제단의 핵심, 왕상1:50)

13. 돈이 있는 사람은 잘 써야 할 의무가 있다. 이기심에서 나온 사치한 모습이 연상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무엇부터 심판을 하시는가?

    겨울 궁, 여름 궁(상아궁): 상류층의 부유한 모습이다.

14. 이스라엘이 거한 땅을 가리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이 땅 사면에 대적이 있어’라는 말은 어느 것이 진실인가?

    둘 다: 사면에 대적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살 때는 그 대적들이 너희를 당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면 바로 대적의밥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태이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하루도 자신의 힘으로 살 수 없는 곳이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15.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이렇게 죄를 짓게 된 이유를 언급하는 구절을 찾아보자.

    무지(3:10): 법치국가에서 법을 모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신앙인이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이다.

16.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널 사랑하게 될거야’ 이런 말을 듣고도 후반부만 생각하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구제불능이다. 아모스도 이런 식의 화법을 구사하고 있다. 어느 절인가?

    12절: 도무지 구원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이렇게 빙 둘러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고 한다면 말뜻은 알아들은 셈이니 가능성은 있다. 전혀 위로의 여지조차 없는 말이다.

    의합(意合): 뜻이 서로 통함
    창애: 짐승을 꾀어 잡는 그물
    사마리아: 이스라엘의 수도

아모스 4 장

1.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라는 말씀과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는 말씀은 각각 몇 번 나오는가? 차이가 있다면 무엇 때문인가?

    일곱 다섯 명령이 아닌 경고(5), 징계 선언(3)이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5번은 과거사에 대한 책망이다.

2. 이스라엘의 타락이 점점 깊어만 가고 있다. 특별히 4장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다면?

    여성들의 타락(음주): 여성들이 사회적 활동이 비교적 제약이 많았던 때에 여성들이 타락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은 거의 끝까지 간 느낌을 준다. 바산의 암소가 누구를 가리키는 지에 대해서 다소 견해 차이가 있다. ‘암소,’ ‘가장’ 등을 참고하면 사치와 방종을 일삼는 유한마담을 가리킬 수도 있지만 ‘들으라’는 동사가 남성형(히브리어는 동사의 어미가 남성, 여성으로 구분됨)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 중에 부유층을 가리키는 비유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스라엘의 부유층을 일단계로 유한마담에 비유하고 다시 암소에 비유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3. 바산의 암소들이 지은 죄라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배역이기보다는 사회적인 범죄(인간끼리의 범죄)에 대한 경고인 셈이다. 이것이 그렇게도 중대한 범죄가 되는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배역이나 마찬가지이다(4, 5 or 12, 13). ‘IMF시대는 시대고 내 돈 내 쓰는 데 웬 말이 그리 많은가?’ 라고 했다가 제주도 공항에서 봉변을 당한 노신사가 있었단다. 이런 노인과 같은 사고방식이 만연하면 민주주의 공동체는 스스로 무너지게 되어있다.

4. 공직에 있는 사람이나 훌륭한 목사님들 중에는 돈 문제로 도중에 주저앉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신은 돈에 깨끗해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 왜?

    뒤에서 돈을 챙기는 부인, 자식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가장이 올바르게 설 수 있도록 돕지 못하는 가족이 있으면 언제든 일이 터지게 마련이다. 적정한 규모를 세우고 능력 범위 내에서만 살림을 사는 것이 체질화되지 않으면 언제 위험이 닥칠지 모른다.

5. 나중에 이스라엘은 앗수르인들에게 잡혀가는 참혹한 고난을 당한다(대하33:10-11). 그 때에는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할 것을 암시하는 도구가 무엇인가?

    갈고리, 낚시: 이스라엘이 도살장의 고기와 낚시꾼에게 잡힌 고기와 같은 처지가 될 것이라는 경고이다. 실제로 앗수르인들이 이런 짓을 한 모양이다(왕하 19:28). 이미 저지른 죄로 사람이라기보다는 바산의 암소라고 불리는 판이니 짐승 대우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6. 이스라엘이 벧엘과 길갈에 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상을 섬기러: 자기들 나름대로는 하나님께 경배하러 갔다. 원래 이 두 곳은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언약이 있어서 이스라엘에게는 소중한 곳이었다. 외형상으로는 과거의 찬란함이 그대로 있어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신사참배에 굴복하고 성경과 찬송을 일제의 요구대로 뜯어고친 일제하의 한국교회가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데 결과적으로 죄만 더하는 꼴이다.

7. 아침마다 희생을 드리는 것, 3일마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 누룩넣은 것으로 수은제를 드리는 것, 소리내어 낙헌제를 드리는 것(4-5) 중에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전부 똑 같이 싫어하시는 것이다: 너희가 기뻐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 자신은 결코 기뻐하지 않는 것이다. 누룩넣은 것에 주목할 필요가 없다. 감사제에는 원래 유교병을 드렸으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이 없이 제멋대로 드리는 모든 행위는 하나님께서 기뻐 아니하신다.

8. 아침마다 희생을 드렸다는 것을 원어로 살펴보면 아침마다 드리는 상번제가 아니라 일년에 한 번 성소에서 드리는 제사를 아침마다 드렸다는 말이고 삼일마다 십일조를 드렸다는 것은 원래 일년에 한 번 드리는 것인데(레 27:30-33, 민 18:21-32, 신 12:5-9) 삼일마다 드렸으니 얼마나 열심이었을까? 그런데 왜 하나님은 불만이신가?

    하나님의 말씀은 도외시하고 그런 형식적인 열심을 내는 것은 전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9. 어느 분이 통닭의 모가지를 발라먹으면서 ‘입은 바쁜데 목구멍은 한가하구나’ 하시는 바람에 폭소가 터졌다. 이런 유머 감각은 대단히 소중한 재산이다. 아모스를 보면서 대단한 감각을 지녔다는 생각이 든다. 비슷한 표현이 어디에 있는가? 무엇을 그렇게 표현했을까?

    이를 한가하게 하며: 원어는 ‘깨끗한 이빨을 주었다’는 말이다. 잇사이에 끼일 것도 없는 심각한 흉년을 가리킨다.

10. 출애굽 사건이 있기 전에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이 내린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는 고센 지역을 처음부터 재앙에서 빼준 것은 아니다. 몇 가지 재앙이 내린 후에야 고센 지역을 구별한 것은 재앙이 분명히 하나님께서 내리신 것을 확신시키기 위함이었다. 본문에서 이스라엘을 돌이키시려고 하나님께서 비슷한 일을 행하신 것이 있다면?

    일부 지역에는 비가 오고 일부에는 오지 않는 기이한 현상: 6절의 기근은 전체적인 기근이었다. 단순한 기상 이변이려니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게 아니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이제는 이런 현상을 보여주지만 그래도 돌아오지 않았단다. 눈치가 그렇게 어두워서야! 추수하기 석달 전에 오는 비(늦은 비)는 곡식이 충실하게 여무는데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이 비가 오지 않는다는 것은 천재지변에 해당하는데 일부 지역만 이런 현상이 생기게 하는 데에도 이스라엘은 눈치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눈치없는 자식과 친구하면 속이 터진다.

11. 하나님께서 벌하신 내용을 순서대로 정리해보면 1) 어떤 느낌이 드는가? 2) 이렇게 벌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기근, 가뭄, 풍재, 깜부기, 팟종이, 염병, 칼, 외적의 침입, (지진):
    1) 차츰 강도가 세어진다. 2) 돌아오기를 바라며

12. ‘말들이 노략을 당한 것’과 ‘너희 진의 악취로 코를 찌르게 한 것’은 내용상 같은 것이다. 무슨 뜻일까?

    많은 군사들이 죽음

13. 3장에서 이스라엘을 ‘사자 입에서 건져낸 두 다리나 귀 조각’처럼 건져냄을 받으리라고 했는데 그와 흡사한 표현을 4장에서 찾는다면?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 조각(11): 징계받은 이스라엘의 처참한 모습이다. 결코 구원을 받은 모습이 아니다.

14.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는 최후 통첩은 무엇인가?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는 것: 회개하라는 말이라기보다는 ‘각오하라’는 말이다. 심판주로서 하나님을 만날 준비, 혹은 각오를 하라는 말이다.

15. 심판을 행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라고 설명하는가?

    위대하신 분(13): 하나님을 보이는 세계(산)와 보이지 않는 세계(바람)를 주관하시며, 자신을 계시하시며, 시간을 창조하시고(아침을 어둡게), 장엄하신 분(땅의 높은 데를 밟는 자)이라고 소개한다.

    사람에게(러아담) 그(사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하며(델리치에 확인요) - 시 19:1

16. 하나님을 열심히 섬긴다고 노력한 사람을 보고 하나님께서 난 너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2-23). 모든 일이 아버지의 뜻대로 된 것인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 없이 자신의 열심, 자신의 자랑에 근거한 행위는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이다. 이와 내용이 흡사한 말씀이 어디에 있는가?

    4, 5절(열심히 해보아라 - 이것이 너희의 기뻐하는 바니라, 하나님이 아니라) - 순종이 제사보다 낳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아모스의 문학적 기교: 풍유(사회적 범죄), 역설(종교적 범죄), 신탁(영적 무지), 송영
    바산: 요단 강 동편의 기름진 목초지 (요즈음 시리아와 분쟁의 한가운데 있는 골란고원?)
    바산의 암소: 살찐 암소를 가리킨다.
    하르몬: 이스라엘 백성이 잡혀갈 장소(구체적인 곳은 어디인지 알 수 없음)
    수은제: 감사제(이 경우에만 누룩 넣은 떡을 제사에 사용할 수 있음)
    낙헌제: 일종의 화목제물
    풍재: 곡식의 이삭을 새까맣게 만드는 병
    깜부기: 곡식을 발갛게 말리는 병
    인진(茵蔯): 엉거시과에 속한 풀, 쓴 맛이 강하여 고난의 상징을 쓰임
    묘성(昴星): 많은 별무리 중 하나(욥9:9)
    삼성(參星): 오리온 성좌의 가운데 삼형제 별
    패망이 산성에 미치다: 산성이 패망하다.
    공의(公義):
    식굿: 바벨론의 별 신(혹은 전쟁의 신)
    기윤: 앗수르의 전쟁의 신, 자기 손으로 만든 별 형상의 우상

아모스 5 장

1. 이스라엘은 전성기를 맞아 어느 때보다 행복한 때이다. 이런 때에 슬픈 노래(哀歌)를 지어 부르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스라엘의 참담한 미래(멸망)를 보면서: 애가는 슬픈 노래란 뜻이지만 실상은 조가(弔歌)를 뜻한다(삼하 1:17). 남의 잔치 집에서 조가를 부르는 격이다. 초상집에서 ‘좋아졌네 좋아졌어’라는 휴대폰 멜로디가 울리는 격이라고 할까?

2. 아모스가 지어 부른 애가는 어디서 어디까지인가?

    2절 전체: 초상집에서 반복해서 외는 짧은 구절이다.

3. 처녀가 엎드러지는 것, 자기 땅에 던지움, 1,000명이 100이 되고 100이 10된다(전부 같은 뜻일 텐데)는 것과 같은 표현을 찾는다면?

    요셉의 집을 멸하심(6): 천명이 백이 되면 아직도 백명이나 남지 않았는가? 이 숫자는 전쟁을 치르기 위한 군인들의 숫자다. 군인이 10분의 일로 줄었다는 것은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것이다. 술이나 담배가 수명을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고 하지만 실제로 수명감소에 미치는 영향은 겨우 몇 년 정도이다. 그런데 수명을 절반으로 줄이는 일이 발생한다면 이것은 어마어마한 재앙이요, 10분의 일로 줄어들게 된다면 죽음보다 더 비참하다고 말할 것이다. 1/10이 남은 것은 결코 남은 것이 아니다. 남기겠다는 표현보다 멸할 것이다는 측면이 강하다.

4. 하필이면 멸망당할 이스라엘을 처녀라고 표현하는가?

    전혀 이방나라에 정복되지 않은 모습을 나타낸다: 처녀지, 처녀성은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이란 의미를 지닌다. 그만큼 더 안타까운 일이다.

5. 3장과 4장에서 심판을 언급한 내용이 5장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어디까지인가? (사실은 거기까지를 4장으로 하는 것이 옳은데...)

    3절까지: 4절부터 심판이라 아니라 구원을 위한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이다.

6. 하나님께서 찾거나 가지 말라고 하시는 벧엘, 길갈, 브엘세바 이 세 곳은 도대체 어떤 곳인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라.

    과거: 조상들이 하나님을 만나거나 하나님을 기쁘게 하였던 장소이었다(창21:33, 26:24, 46:1, 2, 삼상8:1, 2). 벧엘은 족장언약이 갱신된 자리고, 길갈은 족장들에게 주신 땅에 대한 약속이 이루어진 것을 확인한 최초의 장소이고, 브엘세바는 족장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모두 머물렀던 곳이다.

    현재: 하나님과 상관없는 장소. 비록 우상을 섬기기는 하지만 벧엘과 길갈은 북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예배성소로서 중요한 곳이었다.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은 역설적인 표현이다(4:4절에는 가라고 함). 가서 제대로 예배를 드려라는 뜻이다. 브엘세바는 유다의 남쪽 부분으로 이스라엘은 국경을 넘어서 순례를 간 셈이다. 족장들의 기억이 있는 곳도 우상숭배의 장소가 되고 말았다. 경치가 좀 괜찮다 싶으면 관광객들이 몰려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것과 비슷하겠다.

    미래: 벧엘은 허무하게되며, 길갈은 사로잡힐 것임

7. 교회가 허물어지고 나니 예배당이 술집이 되거나 관광지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버려지기도 한다. 옛날 얘기가 아니라 서구의 현실이다. 본문에 그런 말이 있다면 어디에 있을까?

    벧엘(하나님의 집)은 허무(無)하게 될 것(5): 하나님없는 화려한 건물은 아무 것도 아니다.

8.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은 보통 야곱의 집(시 114:1, 사 8:17, 사 46:3)일텐데 왜 여기서는 요셉의 집이라고 하나?

    북 이스라엘만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북쪽 열지파 중에서 가장 강성한 지파가 요셉지파(에브라임)인 탓이다. 암 9:8에는 다시 야곱 집이라고 하는데 회복할 때는 남북 이스라엘을 다 포함하기 때문이다.

9. 벧엘, 길갈, 브엘세바 이 세 곳을 찾거나 가지 말라고 하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찾으면 살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어디로 가야 하나?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이 있는 분을 찾으라는 말이다: 그래서 벧엘, 길갈, 브엘세바로 가라(4:4-5)고 하기도 하고 가지 말라고도 하는 것이다. 거기에서라도 만물의 주관자(8)되시는 하나님을 찾는다면 굳이 가지 말라고 할 이유가 없다. 거기서 하나님을 찾지 않고 우상을 섬기기 때문에 가지 말라고 하신다.

10. 편법과 불법이 판을 칠 때 정당한 법을 따라서 노력하는 사람은 괴로운 법이다. 모두가 부정을 저지를 때 혼자서 정직하기란 본문의 표현을 빌린다면 무엇과 비슷할까?

    인진을 씹는 것: 쑥처럼 쓴 나물이다. 부정한 사람들과 경쟁하려면 우리의 성실성은 부정에 반비례해야 가능한 일이다. 정말 어려운 일이다. 몇 곱절의 성실성이 더 요구되는 일이다. 그렇게 노력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그 흐름에 따르게 마련이다. 유속이 심할수록 거꾸로 오르기 위해서 더 힘을 써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11. 심판을 선언하다가 느닷없이 묘성과 삼성이 튀어나오는 것은 천지를 만드신 능력의 하나님께서 심판을 행하시면 누가 막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분이란 자연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이라고 하면 되겠다. 그러면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시며 백주로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는 분’이란 무슨 뜻으로 이해하면 좋을까?

    시간을 주관하시는 분: 반드시 그렇다고 하기는 조금 어색한 점이 있긴 하지만 8절을 현대식 표현으로 고친다면 시공간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면 좋겠다.

12. 큰소리 치는 사람은 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힘, 지혜, 부, 혹은 가족이나 친척의 힘 등등이 있을 수 있다. 9절의 강한 자는 무엇을 믿고 큰소리쳤을까?

    산성: 산 위에 튼튼한 성을 쌓고 들어앉아 있으면 외적이 와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고대도시들은 거의 모두가 산 위의 동네이었다. 점령하려면 항복할 때까지 포위하고 기다리든지 아니면 공성(혹은 토성)를 쌓아서 올라가든지 해야 했다. 평지의 성보다 산성은 더욱 안전한 곳이다. 하나님대신 그런 산성을 의지하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산성을 망하게 하겠다고 하신다.

13. 모든 곳에서 다 그러해야 하지만 특히 공의가 실행되고 징계가 실행되어야 할 장소는 어디인가?

    성문에서(10, 12, 15): 성읍에서 경제, 정치의 중심이 되었던 장소이다. 이 곳에서 각종 재판이 열렸다(신 21:19, 수 20:4). 재판에서 공정성이 사라진다면 법이 설 자리는 없어진다.

14.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 이유는 부정을 행하는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직한 자가 무엇이라고 말했을까? 본문을 근거로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가난한 자에게 부당한 세를 취하지 말라고 하는 것(11).

15. 돈을 벌기 위해서, 승진하기 위해서,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고 노력하여 마침내 목표를 이루었으나 누리지 못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갑자기 건강이 나빠졌다거나, 뜻하지 않은 일로 모든 것을 포기해야하는 경우가 있다. 이스라엘이 이런 경우를 당한 것은 허물이 많고 죄악이 중하기 때문이다(신 28:30, 39). 특별히 더 아까운 이유가 무엇일까?

    보통 집이라면 말도 안 한다. 다듬은 돌로 지은 집이다: 최고급 집이라고 보아야 한다. 얼마나 정성과 돈을 들였겠는가! 아름다운 포도원도 마찬가지의 의미일 것이다. 보통 포도원이 아니라는 말이다. 얼마나 아깝고 안타까웠을지 모른다.

16. 애써 집을 짓고, 포도원을 가꾸어도 자신이 누리지 못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불의가 판을 치는 사회는 그것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무엇일까?

    지혜자가 잠잠하는 것(13): 큰소리치고 앞장서는 사람들이 다 어리석은 자들이라면 집과 포도원이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체가 무너져 내릴 판이다. 목숨을 걸고 바른 말을 하는 사람들이 다 사라진다면 그 나라는 무너지는 길밖에 없다. 지혜자가 잠잠한 것은 나라로서는 가장 비극적인 일이다. 진짜 일할 사람이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공동체가 위험에 처했다는 뜻이다. 그러면 자격 없는 자들이 나서서 설치게 된다.

17.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하신다고 믿었다. 항상 자기들의 편인 것으로 믿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 편인 줄로 생각하는 것은 착각임을 깨달으라는 말씀이 있다면?

    14-15절(17, 18절?): 14절과 15절은 반복이다.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14)는 것은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구하시리라’는 말씀과 동일하다. 전후 문맥으로 보면 이 말이 심판의 의미를 띠고 있다. 남은 자라는 것은 심판 가운데서 그래도 긍휼을 베푸시리라는 말이다.

18. 광장에서나 거리에서 사람들이 호곡하는 것은 그래도 이해가 되겠는데 왜 포도원에서도 호곡을 하나? 바로 다음 표현 ‘내가 너희 가운데로 지나갈 것임이라’는 말을 참고로 생각해 보라. 이것은 아모스가 인용한 말이다.

    한 곳도 빠짐없이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리라는 표현이다. ‘내가 너희 가운데로 지나갈 것임이라’는 표현은 죽음의 그림자가 애굽을 뒤덮었던 것을 연상시킨다(출 12:12).

19. 절기와 성회를 지키는 것, 제사를 드리는 것, 찬양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인데 이것들보다 사람끼리의 문제인 공법이나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인가?

    아니다. 사람사이의 일, 즉 공법이나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형식적으로만 섬기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가?

20. 교회에서는 아주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지만 가정이나 사회생활에서는 전혀 존경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양쪽에서 다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상태이었는지 알려면 어디에서 관찰하면 되는가(두 곳)?

    종교적 열심을 알 수 있는 곳: 벧엘, 길갈, 브엘세바
    도덕적 상태 혹은 사회 생활의 수준을 알 수 있는 곳: 성문

21. 5장에만 하나님의 심판 선언이 대략 몇 번 정도 기록되었는가? 한 방에 끝내지 않고 계속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8-10번: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범죄 하나님의 심판 선언
처녀가, 자기 땅, 1,000→100(3)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5) 멸하심(6)
패망이 산성에(9)
부당한 수익 소득이 없음 (집, 포도원)(11)
의인을 학대,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함 지혜자가 잠잠함(13)
공의를 혹시 남은 자를(15)
슬피 울 것임(16-17)
여호와의 날이 혹독할 것임(18)
형식적인 예배를 드림 듣지 아니함(23)
우상 숭배 다메섹에 사로 잡힘(27)

22. 여호와의 날은 희망과 축복의 날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데 선지자는 이 꿈을 깨고 있다. 여호와의 날은 심판의 날이라고 한다. 백성들의 생각과 아모스의 생각을 정리해보자.

    백성들이 생각하는 여호와의 날: 빛, 사자를 피함, 축복의 날
    아모스가 말하는 여호와의 날: 어두움, 곰을 만나는 것, 뱀에게 물리는 것, 심판의 날

23. 수양회 표제로 적당한 말이 있다면?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24)

24. 광야에서 40년간 희생과 소제물을 드렸다는 사실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왜 물으시는가(25절)? 뿐만 아니라 지금도 잘 드리고 있는 데 하나님께서 왜?

    그게 무슨 소용이 있었느냐? 행 7:42-43과 비교해보면 하나님을 잘 섬긴 것이 아니라 우상, 특히 이방의 별신(하늘의 군대)를 섬긴 것 아니냐는 말이다.

    인용문을 잘 비교해보면 다소 차이가 난다.
    1) 시제의 문제: 개역성경의 아모스 본문은 미래형이지만 사도행전에는 과거형으로 되어있다. 히브리어는 미래형이나 과거형이란 시제가 없다. 문맥으로 판별할 뿐이다.
    2) 우상의 이름: 70인역이 이름을 고쳤기 때문이다. 아마 뜻은 같으나 다른 외래어로 옮겼기 때문일 것이다.
    3) 다메섹이 바벨론으로 바뀐 것: 누가가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고쳐서 인용한 것 같다.

25. 마음이 담기지 않은 선물은 가증스럽다. 아부성, 혹은 뇌물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을 괴롭혔는가?

    절기(21), 성회, 번제, 소제, 화목제, 노래 소리(=찬양의 제사): 마음이 없고 형식만 남은 예배가 하나님을 얼마나 괴롭히겠는지 생각해보자.

26. 이스라엘은 모세의 규례를 따라 의무를 다 했음에도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해 드리지 않았다. 하나님의 느낌은 어떠했을까?

    식굿이나 기윤과 같은 우상의 하나로 취급당한 셈이다(26): 우리는 하나님을 돈보다, 공부보다 덜 중요한 분으로 여기고 있지 않은가? 최우선 순위가 하나님인가?

    인진(茵蔯): 엉거시과에 속한 풀, 쓴 맛이 강하여 고난의 상징을 쓰임
    묘성(昴星): 많은 별무리 중 하나(욥9:9)
    삼성(參星): 오리온 성좌의 가운데 삼형제 별
    패망이 산성에 미치다: 산성이 패망하다.
    식굿: 바벨론의 별 신(혹은 전쟁의 신)
    기윤: 앗수르의 전쟁의 신, 자기 손으로 만든 별 형상의 우상

아모스 6 장

1. 6장을 세 부분으로 문단을 나누어 보고 각 문단의 요점을 정리해보자.

    1) 1-6: 행복한 지도자들
    2) 7-11: 심판 선언
    3) 12-14: 믿는 바를 제거함

2. 여로보암 2세는 부왕 요아스의 통치기반 위에 재위 40년 동안 안정되고 부강한 나라를 이끌며 다메섹을 속국으로 삼고 있었다. 그런 이스라엘을 본문에서는 무엇이라고 표현하는가?

    열국 중 우승한 나라(1): 시온에서 안일하고 사마리아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라는 표현은 정치적 안정감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런 시대는 거의 보기 드물다.

    갈레, 대하맛, 블레셋보다 이스라엘이 더 넓다.

3. ‘시온에서 안일한 자, 사마리아 산(수도)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이스라엘 족속이 따르는 자’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남북, 이스라엘의 지도자: 시온은 유대의 수도, 사마리아는 북 이스라엘의 수도이다.

4.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안일하고, 사치와 게으름에 빠지게 된 이유는 나라의 부강이다. 그런 상태에서 그들은 생각을 잘못하고 있다. 무엇인가?

    흉한 날이 멀다: 사실은 그 생각이 강포한 자리를 가깝게 하고 있다(3).

5. 상아상에서 자는 것, 침상에서 기지개 켜는 것, 먹고싶은 대로 실컷 먹고 노래 부르는 것...(4-6). 이게 나라를 망하게 할만큼 나쁜 짓인가?

    그 행위 자체보다 그러면서 형제의 환난을 돌아보지 않은 것이 문제다. 결과로 이런 평안을 누리던 자들이 앞서 사로잡히리라고 하신다. 그러면 기지개 켜는 소리가 사라질 것이다. ‘포로로 잡혀가리라’는 말 대신 ‘기지개 켜는 소리가 그치리라’는 것은 아모스의 문학적인 소질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표현력을 키우는 것도 가르치는 자, 설교자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다.

6. 아모스는 화를 자초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현재 상황을 어디에 비유하고 있는가? 요셉의 환난이라는 표현을 근거로 설명해보자.

    요셉을 죽이려고 구덩이에 던져놓고 음식을 먹고 있는 형들(창 37장)

7. 성악을 전공한 친구와 같이 군에 입대했을 때 고참들이 이 친구에게 시키는 노래는 항상 뽕짝이었다. 이 친구는 한사코 부르려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터지고... 한 곡 부르면 될텐데 싶지만 악착같이 부르지 않고 버티는 것은 나름대로 성악에 대한 자존심이었다. 이 고참들이 하는 짓과 비슷한 현상이 본문에 있다면 무엇일까?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였다는 것(5):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였다(대상 23:5). 그러나 이들은 자기들이 즐기는 데에 사용하였다. 헛된 노래의 도구로 사용하였다.

8. 부모를 갖다버린 자녀가 승승장구하면서 출세하는 것을 보는 부모는 마음이 어떨까? 배신감에 치를 떨까? 아니면 그래도 자식을 위해서 조용히 사라져줄까? 하나님은 어떨까?

    부모의 반응은 여러 가지겠지만 기본적으로는 ‘포기’일 것이다. 자식을 포기하는 분도 있을 것이고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고 절망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고 궁궐을 싫어한다는 것(8)은 이런 류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분이시다. 심판을 예고하신다고 ‘악착같이 갋는 분’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우리네 부모처럼 갋을 능력도 희망도 없어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야단을 쳐서라도 결국은 자신의 뜻대로 이끄시는 분이시다. 끔찍한 심판을 선포하는 모든 선지자들의 최종 메시지는 이스라엘의 회복이란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9:11-15).

9. 이스라엘의 장례는 죽은 사람을 굴 속에 매장하는 것이다. 화장을 하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왜 화장을 하고 있을까?

    전염병이나, 적군에 의해서 한꺼번에 몰살을 당하는 것과 같은 비정상적인 죽음을 암시하는 것 같다.

10. 죽은 자의 뼈를 가져가는 자가 말을 건넨 ‘내실에 있는 자’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일까? 왜 여호와의 이름을 일컫지 못하는가?

    죽음을 기다리는 최후의 생존자: 자신의 힘으로 죽은 자의 시체를 치울 수도 없다.

    이렇게 무서운 재앙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분명하게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경고를 전적으로 무시하고 듣지도 않다가 심판을 당하고 혼이 나면 그 이름을 입에 올리기조차 두려워한다.

11. 산불이 나면 모조리 다 타는 듯 싶어도 군데군데 작은 나무나 풀은 남아 있다. 이스라엘에 심판이 시작되면 이런 산불보다 더 심각할 것이다. 왜?

    예외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해보면 지진이 나서 큰 집이 갈라지더라도 작은 집은 용케 그냥 있을 수도 있는데 터진다는 표현은 심판이 외부에서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발생하는 것이기에 예외없이 모두가 심판을 당할 것이다.

12. 비유컨데, 이스라엘은 새로 산 승용차가 얼마나 좋으냐고 침을 튀겨가며 자랑하고 있다(12-13절). 하나님께서 뭐라고 대답하시는 셈인가?

    포장도로가 없는데 차가 좋으면 뭣하냐(12절)? 휘발유 없이도 움직일 수 있냐(13절)?: 아무리 좋은 승용차라도 비포장 도로에서야 트럭보다 못하다. 제대로 닦아둔 길, 평탄하고 곧은 길이 없으면 음속으로 달리는 자동차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 아무리 잘 달리는 말, 힘 좋은 소라도 바위 위에서야 어쩌겠느냐는 말이다. 이스라엘의 교만함 때문에 땅을 바위투성이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13.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이 ‘말이 바위 위를 달리는 것’이며, ‘소가 바위를 가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무슨 짓을 하고 있길래 이렇게 말씀하시는가?

    공법과 정의를 짓밟았고(12), 하나님대신 자신의 얕은 꾀를 의지하기 때문이다(13): 공법을 쓸개로, 정의의 열매를 인진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법을 지키는 사람에게 쓸개와 같은 고통을 주고 의롭게 노력한 사람에게 오히려 덤터기를 덮어 쉬운 것을 말한다. 뺑소니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도우러 간 사람을 오히려 가해자로 몰아부치는 경우가 이런 예가 될까?

14. ‘우리 부모가 해준 게 뭐 있느냐?’고 하는 것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불효자식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이스라엘은 사실이 그렇지 않음에도 그런 소리를 함부로 하는 불효자식과 같다. 그 말이 어디에 있는가?

    13절: 우리 뿔은 우리 힘으로 취하지 아니 하였느냐? ‘내가 학비 벌어서 공부했고, 아르바이트하면서 입학금 벌었지 않느냐? 남들은 공부만 하고 있을 때 나는 돈을 벌어야 했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버지, 어머니가 내게 뭘 해 줬느냐?’는 놈은 인간이 아니다.

15. 표준새번역이나 NIV 성경의 6:13절은 개역성경과 많이 다르다. ‘너희가 로드발을 점령하였다고 기뻐하며 가르나임을 우리의 힘만으로 정복하지 않았느냐고 말하지만...’ 어느 쪽도 잘못이 아니다. 그렇다면 번역이 이렇게 다른 이유가 무엇일까 짐작해보자.

    아모스가 언어유희(word play)를 하기 때문이다. ‘로드발’과 ‘가르나임’으로 번역된 지명은 개역성경처럼 보통명사로 해석할 수도 있다. ‘허무한 것(nothing)’을 원어로는 ‘로-다바르(no-grass)’인데 지명으로 쓰인 예는 다윗 시절에 사울의 절름발이 아들 므비보셋이 숨어살던 곳(삼하 9:5, 로드발)에서 볼 수 있다. ‘목초지가 없는 곳’이란 뜻이니 유목민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허무한 곳’이다. ‘뿔’도 원어는 ‘카르나임’인데 지명, 보통명사, 양쪽으로 다 쓰일 수 있다. 이 두 곳은 위치상으로도 (로드발은 요단강 동편, 카르나임은 다메섹 가는 길목) 실제로 여로보암이 점령한 곳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는 어감을 살려서 번역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예를 들면 ‘감은 감인데 못먹는 감은?’ 이런 수수께끼를 외국어로 옮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16.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전국을 가리키는 표현은 ‘단에서 브엘세바’이다. ‘하맛 어귀와 아라바 시내’도 이와 비슷한 표현인데 차이가 좀 있다. 아모스의 시대적, 지리적 배경을 감안해서 이 구절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지 추측해보자.

    여로보암 2세가 다스리던 이스라엘의 전 국토(왕하 14:25).

    갈레: 니므롯이 시날 땅에 세운 성읍 중 하나이다(창 10:10)
    하맛: 수리아 중부의 성읍인데 오론테스 강을 끼고 있으며, 현재의 하마와 동일지이다. 수리아의 중요한 도시이며, 소아시아에서 남쪽으로 뻗은 대통상로가 있고, 하맛 왕국의 수도로서 번영하였다.

아모스 7 장

1. 왕은 풀을 먼저 베어 거둔다. 그 다음에 움이 돋는 것은 일반 백성들의 몫이다. 이 때 황충이 닥치면 백성들만 죽어난다. 왕은?

    자신의 몫을 백성을 위해서 내어놓지 않을 것이라는 비난이 깔려 있다.

2. 화재가 휩쓸고 지나가면 그래도 남는 것이 있지만 홍수가 지나가면 마실 물도 없다고 한다. 황충도 재앙의 하나로 등장하는 걸로 봐서 만만치는 않겠지만 황충이 지나가면 어떨까?

    초목을 모조리 갉아버린단다. 나무마저 다 갉아버려서 집도 제대로 남아 있지 않는단다.

3. 불이 바다를 삼키고 육지마저 삼키는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

    아마 최후심판 아닐까? 여기서는 그런 심판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를 말한다. 따라서 실제로 불이 바다를 삼키고 땅을 사르는 일이라기보다는 바로 앞에서 메뚜기 재앙을 언급한 것과 관련해서 보면 극심한 가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4.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신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신실한 기도나, 진실된 회개는 하나님의 뜻마저 돌이킬 수 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교제의 대상으로 만드셨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하나님의 예정이나 주권에 개입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눈에 그렇게 보이도록 하신 것이다. 절대자가 우리를 위해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예정 변경’도 불사하신다고 생각하면 된다. 뜻을 돌이키신 경우가 많이 있다(출 32:14, 대상 21:15, 대하 12:12, 욘 3:10).

5. 다림줄은 수직여부를 알아보는 도구이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재고 있는 담은 이스라엘이다. 수직 여부를 알아서 어떻게 하시려고?

    수직이 아닌 담은 허물게 마련이다: 건설은 그 다음의 일이고.

6. 9절에서 동의어를 찾아보자.

    이삭의 산당 = 이스라엘의 성소 = 여로보암의 집: 이삭이 이스라엘과 동의어로 표기된 것은 독특하다(16절). 그에 비하면 ‘황폐’와 ‘훼파’ ‘칼로 침’은 덜 중요하다.

7. 아마샤는 아모스를 생각하면 무척 기분이 나쁘다. 왜?

    어디서 촌놈이 나타나서 행세하다니? 나는 제사장인데 자격증도 없는 자식이? 여기는 내 구역인데?

8. 아마샤가 아모스를 고발하는 죄목은 ‘모반’이다. 아마도 6:7절과 7:9절을 근거로 그랬을 것이다. 제사장이라면 종교적인 측면을 비난하던지 고발했어야 하지 않을까?

    종교적인 문제를 불법한 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정치를 이용하는 것이다: 성동격서란 말처럼, 흑심을 감춘 채 지엽적인 잘못을 핑계로 사람을 매장시키는 짓은 흔한 일이었다. 더구나 9절을 근거로 했다고 하면 여로보암에 대한 아마샤의 말(11)은 왜곡이다. 견딜 수 없는 것(11)은 이 땅이 아니라 자신이었을 것이다. 아마샤는 종교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더라도 종교적인 인물이 아니라 정치적인 인물이었다(13).

9. 아마샤도 아모스의 예언 활동은 인정하는 셈이다. 예언을 그치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떤 점이 모욕적인가?

    밥을 먹기 위해서 예언하는 자로 취급하는 것: 자신이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치부하면 되나? 선지자나 목사나 밥벌이를 위한 것일 때 얼마나 비참해지는가? 그것을 비참하게 여기지 않고 당연하게 ‘봉급을 올려달라’는 식이 되면...

10. 사무엘 시대에 이미 선지자의 무리가 있었고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에 이미 선지학교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 아모스가 스스로 선지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직업적 선지자군에 속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평신도 선지자인 셈이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준비된 사람이 필요한 것을 강조한다. 준비란 무엇인가? 누군가가 만든 정규 교육과정만이 준비의 과정인가? 교육은 제도적 교육만이 전부가 아니다. 평소에 자신의 일에 성실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던 아모스를 부르셨다. 반면에, 아마샤는 친왕정적 종교지도자였다. 제도로부터 독립성이 요구되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는 전문가가 필요했다. 의사였던 로이드 존즈가 목사로 나섰다.

11. 당시의 전문가인 아마샤의 반대에도 비전문가인 아모스가 굴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셨다는 확실한 소명감이 사명을 완수케 한다. 직업적 훈련보다, 자질보다, 부르심의 인식이 더 중요하다.

12. 7장의 전반부를 아모스의 소명기사라고 한다면 왜 아모스서의 중간에 끼여있는가?

    아모스가 사역 초기에 환상을 보았다면 이것은 아모스의 소명기사이다. 이 환상이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의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학자들도 의견이 분분한 형편이라서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본서의 뒷부분에 기록한 것은 소명기사가 아니라 다른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

    선지자가 되어 상당한 기간동안 사역을 한 다음에 본 환상이라고 본다면 아모스의 외침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이스라엘의 모습에 낙심하지 않도록 확신을 주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참고로 사 6장도 이사야의 소명기사가 아니다.

13. 아모스 자신은 부정했을지라도 아모스는 선지자였고, 예언자이었다.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주된 임무이다. 또 다른 부수적인 임무가 있다면 무엇인가?

    중보자의 역할: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는 자가 있다니! 예언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번역본에 따라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라는 문장의 시제가 차이를 보인다. 이것은 히브리 원문에 시제가 없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에는 이전 문장의 시제를 따른다. 따라서 과거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러면 ‘나는 선지가 아니었으나 이제는 선지자이다’라고 이해할 수 있다.

14. 아모스가 본 처음 두 환상을 다른 환상과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있는가?

    가장 큰 차이는 중보적 기도의 유무이다. 그래서 처음 두 환상은 하나님께서 돌이키셨고, 다른 환상에는 아예 용서가 없다.

15. 아모스가 행한 아마샤에 대한 예언은 아마샤만의 징계는 아닐 것 같다. 왜?

    징계의 내용이 이스라엘 전체가 당하는 고난과 동일한 것이다.

아모스 8 장

1. 어떤 드라마는 주인공의 얼굴이 크게 클로즈업 되는 것으로 끝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화면의 변화를 보면서 ‘아 끝이구나’하는 느낌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아모스가 여름 실과 이야기를 하지만 하나님의 메시지의 내용은 여름실과와 관련이 없다. 여름실과라는 말을 듣는 백성들은 무언가 다른 것을 연상하게 되어있다. 그게 무엇일지 본문에서 찾아보자.

    이제 끝이 이르렀구나 라는 생각(2절): 여름실과(케이츠,)는 끝(케츠,)이란 단어와 발음이 유사하다(word play). 동성애 영화의 제목 필라델피아이었는데 ‘필 아델포스’ 즉 형제를 사랑한다는 뜻에서 생긴 지명이다. 단순한 발음만 대비시키는 것이 아니라 여름실과를 추수한 기쁨이 산산이 부서지리라는 암시마저 포함하고 있다.

2. 궁전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는 웅장하거나 즐거운 것이 틀림없다. 날마다 잔치를 열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날이 이르면 그 잔치소리가 무엇으로 바뀔 것이라고 하는가?

    애곡: 임박한 심판의 날에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라는 선언이다.

3. 시체를 온갖 곳에 내어다 버리는데 왜 잠잠히 내다버리는가?

    너무 많이 죽으면 슬프지도 않고 신경이 쓰이지도 않는다: 사람이 죽는 것도 처음 한 두명이면 놀라기도 하고 뉴스거리도 되겠지만 일상적인 일이 되면 무신경하게 되고 만다. 심판의 날이 닥치면 그만큼 흔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4. 10대를 만석꾼으로 지냈다는 경주 최부자 가문에는 조상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몇 가지 교훈이 있단다. 벼슬은 진사 이상 하지 않는다, 파장에 물건을 사지 않는다는 식인데 그 중에 ‘흉년에 땅을 사지 않는다’는 것도 있다. 본문이 언급하는 어떤 내용과 관련이 있을까?

    궁핍한 자, 가난한 자를 삼키지 않는다(4절): 흉년이 들면 가난한 자들이 땅을 헐값으로 내어놓기 마련이다. 정당한 값을 지불하지 않고 남의 어려움을 이용해서 치부를 하지 말라는 교훈이 담긴 것이다.

5. 돈내기(일한 성과에 따라 임금을 지불하는 것)는 사람 죽을까봐 겁나고, 일당을 주면(시간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는 것) 장승될까 겁난다는 말이 있다. 사업이나 장사하는 사람 중에는 움직이는 것이 바로 돈과 연결된 경우가 많다. 움직이는 만큼 돈이 더 들어오는 것이 눈에 선한데 하나님의 절기 때문에 일을 쉬어야 하다니... 이에 대해서 본문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하나님 때문에 장사도 못하겠네(다른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하나님의 절기도 무시하고 열심히 일을 하면 돈을 벌겠지만 제대로 누리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억지로라도 쉬게 되면 돈벌이에 대한 기대치를 조금 낮출 수밖에 없다. 결국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6. 속이지 않고 돈을 벌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있어서 장사하는 사람이 예사로 속임수를 쓰려는 경향이 있다. 반드시 고쳐져야 할 악한 생각이다. 얼마나 믿을 수 없으면 ‘100% 정말 순 진짜 참 기름’이라는 말이 다 생기는가! 물건을 팔면서 에바를 작게 하는 것이나, 돈을 받으면서 세겔을 크게 하는 것은 속임수다. 에바는 무엇이고 세겔은 무엇일지 짐작해보자.

    에바는 되, 세겔은 저울추: 파는 되는 가급적 적게 만들고 돈을 받을 때 무게를 재는 추는 가급적 무겁게 만든다.

7.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는 방법이 몇 가지 종류가 등장하는가?

    저울이나 되를 속이는 것(5b), 어려운 형편을 이용하는 것(6a), 제품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6b): 근본적으로는 한 가지 이유뿐이다. 사지 않을 수 없는 가난한 자의 약점을 이용하여 어거지를 부리는 것이다. 잿밀이란 버려야 할 찌꺼기를 가리킨다. 가난한 자는 속고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당하는 것이다. 그러니 땅이 떨고, 거민이 애통하는 것 아닌가!

8. 부자들이 이런 죄를 저지르는 주된 원인은 무엇일까?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기 때문이다(5a): 가난한 자들을 이렇게 착취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서지 않으면 인간에 대한 것도 바르게 될 수가 없다. 인간의 존엄성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데서 시작된다.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는 곳에 인간의 존엄이란 있을 수 없다.

9. 아모스가 예언하던 때는 이스라엘이 경제적으로 부강하던 시절이다. 그렇다면 5-6절이 보여주는 시대상은 무엇인가?

    고도의 상술이 판을 치고 있는 사회임을 보여준다: 경제적 번영이 필연적으로 빈부의 격차와 도덕적 타락을 가져온다. 활발한 상행위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려운 시절에 서로 도우며 사는 모습이 아니다.

10. 땅이 떨고, 땅이 하수같이 뛰놀다가 낮아지고, 해로 대낮에 지게 하여 백주에 땅을 캄캄케 하는 것은 경기로 치면 반칙(?)이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신이 정한 규칙을 위반하는 셈이다. 왜 하나님께서 반칙을 하시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칙을 워낙 심하게 하니까(5-6):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라는 답도 맞지만 질문의 의도에 따르면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더 낫다.

11.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은 어떤 면에서 천지개벽이요 상전벽해다. 이것을 어디에 비유하고 있는가?

    나일강의 범람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의 도전에 대응하다가 생긴 것이라고 말한다. 일년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범람하다가 깨끗이 물러가면 그 자리에 남은 물로 농사를 지었다. 강물의 변동이 얼마나 심한 것이었나 생각해보라는 말이다.

12. 이스라엘 백성들은 극한 슬픔을 당하면 어떤 행동을 취하는가?

    애곡함, 굵은 베로 허리를 동임, 머리를 대머리처럼 민다.

13.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날은 극도로 슬픈 날이 될 것이다. 마치 어느 사건처럼?

    애굽의 장자 심판: 애굽에 내렸던 심판을 이제 너희가 당하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14.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어도 이 모양이니(5-6) 말씀의 기갈이 오는 것 아니냐? 천지개벽보다 더 무섭고, IMF보다 더 무서운 것은 말씀의 기갈이다. 왜 그런가?

    심판이 내리고 재앙이 내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씀의 기갈이란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나셨다는 것이다. 완전히 포기했다는 뜻이다.

15. 하나님의 심판 날에는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물을 찾으러 다녀도 물을 구하지 못할 것이다. (바다)물에서 갈증으로 인하여 죽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이다. 오늘의 현실은 어떤가?

    오늘의 현실도 비슷하다. 우리는 정말 큰 바다에서 물을 찾아 헤매고 있다.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설교집과 설교테이프, 설교방송을 들을 수 있다. 그 속에서 생수를 찾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16. 방향이 이상하다. 물을 찾아 헤매는 사람이 ‘북에서 남으로’ 갔다면 이해가 되는 데 왜 북에서 동까지 갔을까?

    확실한 답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정말 헤매고 다니는 것을 묘사하기 위함이 아닐까? 북에서 남으로 갔으면 헤매는 것이 아니라 아직은 정신이 말짱한 상태이다. 북에서 이리저리 헤매다 결국 동으로 가는 정도면 진짜 비틀거리며 헤매는 것 아닐까? 아모스가 정말 이런 뜻으로 그랬을까? 모르겠다. 그렇게 추측해보았을 뿐이다.

17. 왜 하필이면 물을 구하러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헤매는가?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갈하여 피곤하면 다른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18. 문단을 다음과 같이 나눌 때 제목을 붙여보자.

    1-3: (심판 선언)
    4-6(14): (심판의 이유)
    7-13: (심판의 내용)

아모스 9 장

1. 기둥머리를 치면 지붕이 무너져야 정상인데 왜 문지방이 흔들리는가?

    위쪽을 쳐서 떨어져 문지방이 흔들린다: 완전하게 무너진다는 뜻이다.

2. 부숴져서 백성들의 머리에 떨어지는 건물은 무슨 건물인가?

    성전: ‘단 곁에 서서’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성전이 파괴되는 것은 이스라엘의 완전한 멸망이다. 9장에서는 이스라엘을 하나로 보고 있다. 8장부터인가?

3. 건물에 깔리지 않고 피한 사람들을 하나님은 끝까지 찾아낼 것이다. 퇴역 스파이를 찾아내어 복수하려는 첩보영화 못잖다. 본문에 없는 말을 조금 더 보충해보면 실감이 난다. 다음과 같이 조금 고쳐 쓸 때 (         )에 알맞게 채워보자.

    (        )처럼 파고 들어도, (       )처럼 날아 오르고, (    )가 풀섶(숲?)에 숨어버리듯(갈멜산의 꼭대기는 해발 540m 정도로 나무가 자람), (      )처럼 바다 밑에 숨더라도 하나님은 찾아내고 말 것이다. 바다 밑에는 물뱀이 있어서 거기도 안전한 곳이 되지 못한다.

    미꾸라지, 독수리, (종달)새, 물고기

4. 음부와 하늘이 대조를 이루는 것처럼, 3절에서 이런 대조를 찾는다면?

    갈멜산 꼭대기(해발 540m 밖에 안되지만 해변에 아주 가깝다)와 바다 밑

5. 하나님은 땅의 경계를 정하사 바닷물이 침범치 못하게 하셨다(시 46:7). 이제 취소하시려나? 땅을 무엇처럼 주무르시는 분이신가?

    애굽강(나일강)이 범람했다가 낮아지는 것처럼: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의 선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나일강은 정기적으로 범람하는데 하수의 넘침과 낮아짐이란 이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땅을 만져 녹게 하신다는 것은 ‘진흙처럼 만진다’고 하면 어떨까?

6. 5-6절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반복(8:8)하는 것이다. 자연만물뿐만 아니라 자연현상도 임의로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여기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언급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심판을 피할 수 없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몰라서 피할 생각을 하지, 돌이키라는 말이다.

7.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구스 족속같다(7)는 말은 아무래도 칭찬은 아닌 것 같다. 하긴 지금 칭찬들을 형편이 아니니... 렘 13:23을 근거로 하나님의 의도를 짐작해보자.

    도무지 돌이킬 가능성조차 없는 악한 놈들

8. 5-6절이 자연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라면 7절은?

    인간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이 땅에 민족이 형성되고 땅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일이다. 12절을 참고하면 너희만 하나님께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란 의미도 포함된 것 같다.

9. 범죄한 나라들이 멸망을 당할 때라도 이스라엘이 다른 점은?

    완전히 멸망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유가 이스라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 있다. 하나님의 작정 때문이다. 어떻게든지 인류를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 때문이다. 방금 철저히 멸한다고 하고선 온전히 멸하지는 않으리라?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다는 말이다. 심판, 징벌, 진멸이 본심이 아니다. 이 구절이 본심이다.

10. 체질은 알갱이를 가려내기 위함이다. 아무리 체질을 하여도 알갱이는 날아가지 않는다. 아모스가 이렇게 외쳐도 ‘화가 우리에게 미치지 아니하며 임하지 아니하리라’고 하는 자를 가리켜 뭐라고 그랬을까?

    넌 껍질이야!

11. 다윗의 위가 영원하리라고 하셨으나(삼 7:1-17) 끝내 다윗의 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멸망한 게 아니다. 그럼 무엇인가?

    무너진 천막일 뿐이다. 무너진 천막은 쉽게 일으킬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시 일으키신다.

12. 11-12절은 신약에 인용되었다. 행 15:12-21을 읽고 인용된 구절과 여기 본문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찾아보고 신약시대에 무슨 의미로 이해되었는지 설명해보자.

    에돔의 남은 자 → 남은 사람들: 에돔을 의도적으로 아담(=사람)으로 읽었다.
    만국 → 모든 이방인들
    단순한 이스라엘의 회복이 아니라 이방인을 포함하는 이스라엘의 회복이다.

13. 무너진 다윗 왕국을 다시 세우면 그 왕국에는 전에는 없던 자들이 있을 것이다. 누군인가?

    에돔의 남은 자와 만국: 가장 적대적이었던 에돔의 남은 자도 구원을 얻는다면 다른 나라야 말할 것도 없다. 그리스도가 세우는 새로운 다윗의 나라에는 에돔인이든, 어느 나라든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14. 다시 일으켜 세운 다윗의 나라에서는 곡식 베기 바쁘게 밭을 갈고, 포도따기 바쁘게 씨를 뿌리며 산들이 단 포도주를 흘린단다. 무척 바쁘겠다?

    그만큼 풍요로울 것이라는 말이다! 작은 산들이 녹으리라는 말은 욜 3:18을 참고하면 많은 가축들이 젖을 생산할 것이라는 뜻이다.

15.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다시 세우는 것이 이스라엘 왕국의 회복을 넘어서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면 14-15절에서 사로잡힌 자들을 돌이키는 것도 이스라엘의 포로귀환을 넘어서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탄의 포로가 된 인간의 회복을 말한다. 그러면 저희를 심는 본토는 어디인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결코 뽑히거나 우리의 구원이 결코 취소될 수 없음을 뜻한다. 거기서 성도들이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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