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 3장


1. ‘종말로’라는 말은 ‘마지막으로’란 뜻이다. 바울이 1장에서는 성도들이 받는 핍박에 대해서 격려하고 2장에서는 주의 재림에 대해서 교훈을 주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하는 부탁이 무엇인가?

    기도해 달라: 주의 말씀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러워지는 것과 우리도 악한 무리들에게서 건짐을 받도록 기도하라고 한다. 데살로니가에서 말씀이 전파된 것처럼 다른 곳에서 전파되도록 기도해달라는 것이다. 우리가 악한 무리에서 건짐을 받아야 하는 이유도 복음 전파에 방해가 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바울이 위대한 것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야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언제나 기도를 부탁하는 것이다.

2. 주의 말씀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된다? 이게 무슨 뜻인가?

    마치 경주에서 열심히 뛰어 우승하여 면류관을 쓰는 것처럼 주의 말씀이 그렇게 승리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3. 기도해야 하는 이유와 믿음이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닌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믿음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라면 우리가 이렇게 애를 쓸 필요가 없지만 그렇지 않기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 이 일을 위해서 기도가 필요하다.

4. 편지를 마무리 하면서도(1-5)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어떤 방식으로 격려하는가?

    칭찬, 당부, 확신, 믿음: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1, 칭찬), 기도하라(1-2, 당부), 주께서 너희를 지키시리라(3, 확신), 명한대로 행하고 행할 줄을 확신하노라(4, 믿음).

5.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온갖 고난을 무릅썼다. 데살로니가 성도들도 바울의 가르침을 지키려고 온갖 박해를 다 견뎌냈다. 그럼에도 자신이나 성도들의 노력 때문에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에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5): 바울이나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애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인도하셔야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헌신하면서도 자신들의 수고 때문에 일이 되는 것이 아니란 믿음이 귀한 것이다.

6. 성도들이 복음을 받아들인 것을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사랑에 들어가는 것은 알겠는데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리스도께서 온갖 고난을 인내하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셨으므로 이제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닮아 인내하는 것을 가리킨다.

7. 규모없이 행한다는 말의 본래 의미는 ‘군인들이 대열에서 이탈하는 것’을 뜻한다. 성도들 중에 대열에서 이탈한 사람들이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지 본문에서 세 가지 표현을 찾는다면?

    배운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들(6, 10), 우리를 본받지 않는 사람들(7), 일하지 않고 일만 만드는 사람들(11)이다. 아마도 그릇된 종말론 사상을 가지고 불성실하며 무위도식하며 무질서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살전 5:14)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이런 형제들에게서 떠나라는 것은 그들과 교제를 끊음으로 그들의 변명이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는 것이다(12, 15절 참고).

8. 권리를 행사하는 것과 본을 보이는 것, 어느 것이 더 매력적인가?

    인간적인 면에서는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당연히 더 매력적이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더 큰 소망, 즉 영혼 구원이라는 위대한 과제가 있었다. 그것을 위해서 권리를 포기하고 열심히 일하면서 본을 보이는 것이 더 매력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수고했기 때문에 담대하게 말할 수 있다, ‘우리를 본 받으라’.

9.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 이게 누구의 말인가?

    비슷한 명령이 더러 있으나(창 3:19, 잠언 10:4, 21:25, 시 128:2) 이렇게 직설적인 표현은 없다. 그러니 바울의 작품이라고 해야겠다.

10. ‘일하지 않고 일만 만든다’는 표현은 참으로 재미있는 번역이다. 가령, ‘일하지 않고 참견만 한다’고 번역했을 경우와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의미가 다른 두 가지 사안을 두고서 ‘일’이란 동일한 단어를 반복하여 사용함으로 일종의 언어유희를 하고 있는 셈이다. 글을 읽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이다. 앞의 일은 생산적인 노력을 말하는 것이고 두 번째 일은 참견내지는 방해를 뜻하는 말이다. NIV도 그런 맛을 지니고 있다, They are not busy, they are busybodies.

11. 한국의 어머니들은 자식이 손에 흙을 묻히지 않고 먹고 사는 것이 소망이기도 하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한다. 바울 사도가 들었으면 뭐라고 했을까?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12),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하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말라(8): 열심히 일하고 정당하게 얻은 소득으로 먹고 살아야 한다. 손에 흙을 묻히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전문직이나 고생을 덜 하는 직업을 의미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일하지 않고 돈을 버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열심히 일하고 일한 만큼의 댓가를 바라야 한다. 심지어 자기는 일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다 해결해주시기를 기다리기만 하는 믿음 좋은(?) 성도들도 있다.

12.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는 말이 여기에 왜 들어왔지?

    게으른 자들의 훼방에 마음 상하지 말라는 뜻이다.

13. 말을 안 듣거든 왕따시켜 버려라(14)?

    권면하고 돌이키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기 위해서 교제를 금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교제를 금하더라도 원수가 아닌 형제같이 권하면서 교제를 제한해야 한다.

14.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었더라면 이런 편지를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런 저런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성도들의 마음에 무엇이 깃들기를 기원하는가?

    평강(=화평): 진정한 평강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다. 하나님과 화평한 사람이 이웃과 화평할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이렇게 복을 빈다,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지어다’.

15. 편지를 타이핑하든지, 컴퓨터로 찍던지 마지막 사인은 자필로 한다. 왜 그래야 하는지 바울의 표현을 빌려서 대답을 한다면?

    편지마다 표적이기로(17): 본인이 직접 썼다는 표시이다. 거짓 교사들이 바울의 이름으로 위조 편지를 보내는 것(2:2)에 대한 경계이기도 하다.

16. 바울은 문제있는 성도를 어떻게 대하라고 하는가?

    여론의 압력으로(6, 14), 모범을 보여서(7-10), 확고한 교훈으로(12), 지속적인 사랑으로(15).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