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장


1. 고린도 교회에 인사를 하는 사람은 바울과 디모데이다. 그러나 이 짧은 인사말(1-2) 속에 하나님의 사역에 관하여 세 번이나 언급되었다. 바울이 보기에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2. 고린도와 아가야 지방은 어떤 관계일까?

3. 문법 공부를 조금 해보자.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①의 하나님이시요 자비②의 아버지시요’에서 밑줄친 ‘의’는 역할이 어떻게 다른가?

4. 바울의 가슴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펄펄 끓고 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아버지시다. 그러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 뿐이다. 무엇인가?

5. 아내는 천식으로 10여 년간 고통을 겪었다. 처음 발병했을 때는 도저히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혼자 살 준비를 하기도 했다. 정말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이제는 예전과 비교하면 거의 완치가 되었다싶을 정도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은 집사람 주변에 아픈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아프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우리 집사람을 찾는다. 불신자처럼 결론을 내면 ‘어느 누구보다도 위로하고 격려하는데 소질이 있는 모양이다’가 되겠지만 이런 경우에 바울은 어떻게 결론을 내는가?

6. 위로란 단어가 아주 많이 반복되고 있다. 3-7에 위로란 단어가 몇 번 나오는지 헤아려보자. 왜 이렇게 많이 나올까?

7. 혹시 고난을 당하게 되더라도 낙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8.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정도라면 거의 자포자기 수준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도들에게 왜 이렇게까지 고난을 겪게 하시는가?

9. 아시아에서 당한 우리의 환란을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10. 바울은 사람들, 특히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대할 때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대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들을 대할 때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11. 13절은 ‘이것만은 꼭 알아주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무엇이 염려스러워 이렇게 아쉬운 말을 하는 걸까?

12.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읽어도 모르는 것은 쓰지 않았다는 말인가?

13. 고린도 교회에 가기로 예정했다가 변경하게 된 이유가 결코 무엇 때문은 아니라고 하는가(15-22)?

14. 고린도 교회가 안 보내주면 못 가는가?

15. 다음 표현을 현재 우리가 흔히 쓰는 표현으로 고쳐보자. ‘육체를 좇아 경영하여 예 예하고 아니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었겠느냐?’

16.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신실하신 분(=예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시니)이시다(19). 그걸 어떻게 믿지?

17.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는 것과 우리가 아멘(=진실로 그러합니다. 혹은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는 것은 어떤 연관이 있는가?

18. 바울과 고린도 성도들 사이에 어떠한 오해도 갈등도 있을 수 없는 이유를 21-22절에서 찾아보자.

19. 많은 말로 변명하게 된 것(15-22)은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23) 때문이다. 고린도에 가지 않는 것이 어떻게 ‘너희를 아끼는 일’이 될까?

20. 사도 바울은 위대한 선교사이면서 동시에 가슴이 따뜻한 목회자였다. 24절에는 목회자로서 바울의 어떤 점이 드러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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