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36장


1. 요시야를 죽게 만든 느고가 3개월 후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바벨론과 싸우려고 므깃도를 지나서 갈그미스로 갔던 느고가 유다를 침공한 이유가 뭘까?

    괘씸죄: 왕하 23:33에 보면 요시야의 뒤를 이은 여호아하스(살룸)를 하맛 땅 립나(리블라)에 가두었다고 한다. 바벨론과 싸우는 도중에 일부 군사를 동원해서 유다를 침공한 모양이다. 나중에 바벨론과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돌아갈 때 그를 애굽까지 끌고 갔다. 요시야의 친바벨론 정책을 이어받은 여호아하스를 폐위하고 조공도 아닌 벌금을 받았다. 겨우 3개월 왕노릇 했는데 무슨 악한 짓을 그리 많이 했을까? 요시야시대에 드러나지 않았던 백성들의 일반적인 경향을 의미하는 말 아닐까?

2. 애굽 왕이 침공해서 허수아비 왕을 세웠다. 엘리아김을 왕으로 세우더니 이름을 바꾸란다. 엘리아김이 순종하기는 했는데 잘 보면 반항이다. 왜 그럴까?

    엘리아(야)김의 이름 뜻(하나님께서 세우심)은 여호야김(여호와께서 세우심)과 똑같다. ‘엘’은 하나님이고 ‘여호야’는 하나님의 이름을 뜻하는 말이니까. 일제시대 때 개명에 반대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일본 이름을 쓴 사람 중에는 입에 담지 못할 욕을 자기 이름을 삼은 사람도 있었다더라.

3. 여호아하스는 애굽으로 끌려가고(4) 뒤를 이은 여호야김은 바벨론으로 잡혀갔다(6). 나라가 어떻게 이 모양인가?

    예견된 일이다(대하 32:25-26, 34:22-28, 왕하 23:26, 24:3-4). 차라리 요시야는 이런 꼴을 당하지 않고 일찍 죽은 것이 복이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애굽과 바벨론의 헤게모니 다툼에 희생을 당한 꼴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면 이렇게 된다고 선지자가 수도 없이 외쳤던 말씀대로 된 것이다. 개인이든 나라든 역사를 피상적으로만 본다면 본질을 놓칠 수 있다.

4. 여호와를 배반한 탓에 나라가 망해가고 있는데 왕들은 여전히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기에 바쁘다. 요시야 이후 당사자 네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보고 촌수관계를 따져보자!

    여호아하스(36:1), 여호야김(36:4), 여호야긴(36:8), 시드기야(36:10)인데 한결같이 악했다. 여호야긴(여호야김의 아들)만 제외하고 세 사람은 형제로, 그렇게 선한 왕이었던 요시야의 아들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아니, 이러니 요시야가 그렇게 선한 일을 했어도 유다의 멸망을 멈출 수 없었다! 끝없이 인내하시던 하나님(출애굽기, 여호수아, 사사기, 열왕기에서)께서 드디어 유다를 자기 앞에서 물리치기로 하시니(24:3) 일이 이렇게 되는 것이다.

5. 유다는 바벨론이 한 번의 침략으로 망한 것이 아니다. 3차 걸친 침공으로 완전히 망하게 된다. 본문을 1, 2, 3차 침공으로 구분해 보자.

    6절: 1차 침공(여호야김 4년, BC605), 정치적으로만 본다면 여호야김이 친애굽 정책을 편 탓이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이 인질로 잡혀갔다. (여호야김은 사로잡혔으나 도중에 놓여난 것으로 추정함)
    10절: 2차 침공(BC597, 여호야긴 3월): (바벨론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풀려난) 여호야김이 또 친애굽 정책을 시도한 탓이다. 에스겔, 모르드개,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갔다. 대부분의 백성들이 사로잡혀 갔다. 1차 침공 이후 여호야긴이 왕이 되기까지는 여호야김이 왕노릇했다(왕하 24:1).
    17-20절: 3차 침공(BC586, 시드기야 11년): 시드기야가 친 애굽 정책을 편 탓이다.1, 2차 때는 사로잡아가고 보물을 빼앗는 정도이었지만 3차 때는 완전히 허물어버리는 것이 목적이었다(17-19).
    열강의 틈바구니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선지자들이 그렇게 외쳐도 애굽과 바벨론의 눈치만 살피다 끝내 이렇게 망하고 말았다. 하나님의 눈치를 살피라니까!

6. 1차 침공은 여호야김 4년에 있었는데 2차 침공은 8년 후의 일이다. 이 때는 여호야긴 3월이다. 그러면 중간에 8년 정도는 누가 왕이었는가?

    여호야김은 사로잡혔으나 도중에 놓여난 것으로 추정함: 여호야김의 마지막에 대한 기록이 제 각각이다(대하 36:6-12, 왕하 24:6, 렘 22:19). 다음과 같이 추정해 볼 수 있다. 주전 605년에 느부갓네살이 이집트 군대를 쫓아내고 예루살렘까지 함락하였다. 여호야김과 귀족들을 사로잡아 쇠사슬로 결박하였는데(대하 36:6-12) 갑자기 부친의 사망소식이 들려 급히 귀환하면서 여호야김에게 충성할 것을 다짐받고 풀어주었을 것이다. 주전 601년에 이집트가 득세하자 여호야김이 바벨론을 배반한다(왕하 24:1). 느부갓네살이 주전 597년에 출전하자 예루살렘에서 반란이 일어나 여호야김을 죽이고(렘 22:19) 아들 여호야긴을 왕위에 올린다. 경건한 사람들이 여호야김을 조상들의 무덤에 묻어주었을 것이다(왕하 24:6).

7. 느부갓네살이 여호와의 전 기구를 자기 신당에 갖다 둔 이유가 뭘까?

    자기는 승리한 기념품이겠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유대인들이 돌아올 때까지 보관해주는 것이다(스 1:7-11).

8.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여호야긴을 포로로 잡아가고 대신에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웠다(10).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다윗의 위가 영원하리라고 하셨는데 다윗의 위는 시드기야로 이어지는가?

    메시야의 계보는 여호야긴으로 이어진다: 마 1장의 여고냐가 여호야긴이다(대상 3:16, 렘 37:1의 고니야). 잡혀갔지만 나중에 놓여나서 왕으로 대접을 받았다(왕하 25:27-30).

9. 유다의 멸망은 므낫세의 악행이 결정적인 것이었다(왕하 24:3-4). 요시야의 개혁도 대세를 돌려놓지 못했다. 그렇다고 완전 파멸에 이르지 않는 방법은 없었을까?

    예레미야의 말을 듣든지(12) 아니면 느부갓네살의 말이라도 듣든지(13):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대항하지 말고 항복하라고 외쳤다(렘 38:17-23). 시드기야는 이 경고마저 무시하고 바벨론을 배반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을 들었더라면 완전 파멸은 피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패망의 모습을 에스겔도 몸으로 보여주었다(겔 12:1-16). 결국은 예레미야와 에스겔을 통한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마저 듣지 않았다. 최후에 남았던 무리들마저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고 애굽으로 떠나버렸다(렘 43:4-7). 아무리 참고 참아도(15) 하나님으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10. 애굽에서 불러내서 가나안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웠지만 결국은 망해버렸지 않은가? 하나님의 실패 아닌가?

    아직 끝이 아니다: 끝없이 인내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지금까지 인내하셨던 것처럼 또 다시 인내하시며 새로운 출애굽을 준비하신다. 부지런히 그의 사신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신 그 일이 여전히 계속된다.

11. 유다가 망해버린 이유를 21절을 근거로 설명해 보자.

    안식년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망했다고 말하는 셈이다: 예레미야의 예언대로(렘 25:11, 29:10) 되었지만 이런 결과는 이미 예견되었던 것이다(레 26:34).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지 않은 탓이다(레 26:14-15).

12. 예레미야는 포로 생활이 70년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렘 25:11, 29:10). 바사의 고레스가 그걸 어떻게 알고?

    고레스는 자기 나름의 통치철학을 가지고 통치할 뿐이다. 하나님께서 그런 고레스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쓰시는 것이다(사 44:28, 45:1-4). 눈에 보이는 현실 뒤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유다가 패망을 당하고 포로로 잡혀갔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완전히 그들을 버리시지 않았다는 것을 고레스를 통해서 보여주신다. 이사야는 이 고레스를 메시야라고 부른다. 진짜 메시야의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 땅에 메시야를 보내실 예언을 하시는 셈이다.

13. 역대기는 이스라엘의 패망사인가?

    이스라엘의 심판에 대한 메시지에는 반드시 회복의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다. 다른 이방 나라에 대한 메시지와는 명백히 다른 점이다. 그러므로 역대기도 다시 회복될 희망이 보인다. 이스라엘의 패망사가 아니라 인내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라고 해야겠다. 하나님의 백성은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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