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33장


1. 아버지 히스기야는 29년 통치했지만 기록이 아주 상세하다. 반면에 므낫세는 55년이나 통치했음에도 기록은 참으로 간결하다. 무슨 차이인가?

    자랑할 만한 게 별로 없어서: 차라리 지우고 싶은 기록이기 때문이다.

2. 히스기야가 위대한 왕으로 소개되고 소개가 끝나자마나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얘긴가? 왕이 바뀌었다고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가? 누구의 책임인가?

    히스기야: 자신의 다음 세대를 준비하지 못한 탓이다.

3. 므낫세가 12세에 왕위에 올랐으니 히스기야가 병이 나은 뒤에 태어난 아이다. 히스기야의 목숨이 연장 되어 가장 악독한 왕이 태어났으니 죽어야 될 인간이 죽지 않은 탓인가?

    은혜에 감사해서 아이를 잘 가르쳤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를 가르쳤어야 한다. 자녀교육의 문제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다고 모든 일이 다 끝이 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해야 할 몫을 잘 감당해야 한다. 특히 자녀를 신앙으로 키우는 일 말이다.

4. 우상숭배도 뿌리가 깊은 잡초다. 히스기야 시대에도 뿌리가 빠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므낫세는 왜 이런 것들을 다시 세웠을까? 도대체 누구의 책임일까?

    12살에 왕이 되었으니 아마도 신하들이 바람을 넣었을 것으로 추정이 되는데 이 신하들은 히스기야 밑에서 충성하던 사람들일 텐데... 아이고 머리야! 여하튼 다음 세대를 준비하지 못한 히스기야의 책임이다.

5. 우상을 세울 때가 그리도 없어서 하나님의 전에다 세워(4, 5, 7)?

    하나님을 우상과 동일시했거나 그렇지 않으면 일종의 반항이다. 반항이라면 아버지가 섬기던 하나님에 대한 도전일 수 있는데 온갖 우상을 다 섬기는 것을 보면(9) 아무래도 후자같아 보인다. 신앙적이었던 아버지에게 왜 이렇게 반항적일까? 신앙은 강압적인 방법으로 전수되는 것이 아니다.

6. 므낫세가 행한 악한 일을 묘사하는 6절이 어디선가 본 듯하지 않은가?

    신 18:10-11에서 금하신 내용이다: 므낫세가 신명기 말씀을 알고 청개구리 모양으로 한 것일까? 아버지에 대한 반항이라고 하는 차원에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7. 므낫세의 악행을 말하면서 역대기 기자가 솔로몬에게 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을 회상시키는 의도는 이런 악행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무효화된다는 뜻이다. 무효화되는 내용이 무엇인가?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이름이 영원히 있을 것(7)과 그들이 그 땅에서 옮김을 당하지 않을 것(8): 이런 하나님의 약속이 무효화되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버리실 것이고 주민들은 타국으로 옮겨질 것이다.

8. 포로로 잡혀가서 그렇게 고생을 해야(11) 하나님을 아는가?

    안타깝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인간이 너무도 많다. 이런 과정을 밟지 않고 믿어지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9. 포로로 잡혀간 왕이 다시 돌아오는 일은 흔치 않은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하나님의 은혜다: 잡혀간 것이 하나님의 징계라면 회개하고 돌아섰을 때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베푸실 수 있다. 단순한 군사력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특별히 간섭하셔서 된 일이라는 것을 므낫세가 제대로 깨달았다는 의미다.

10. 회개하고 돌아와서 왜 성읍을 견고하게 했을까?

    어떻게 돌아오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앗수르 왕의 호의가 없이는 돌아올 수 없다. 그럼에도 다시 견고하게 방어를 준비하는 것은 앗수르의 침공을 예상하고 있으니... 앗수르 왕에게 협조하는 척하고 살아서 돌아온 모양이다.

11. 므낫세가 포로로 잡혀간 것은 통치기간 55년 중 대략 재위 47년 때의 일이다(BC 650년 경). 돌아온 므낫세가 성전을 정화하고 하나님만 섬기라고 하는 데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거의 평생 우상을 섬기다가 말년에 포로에서 돌아와 갑자기 여호와만 섬기라고 하니 제대로 시행되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본인은 혼이 나고 회개를 했더라도 평생 우상을 섬기던 사람들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다. 아몬의 뒤를 이은 요시야 때에야 온전한 개혁이 이루어진다. 사울이 회심한다고 사울을 따르던 사람들이 동시에 회심하지 않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가령, 주지스님이 그렇게 회심했다고 쳐도 마찬가지다.

12. 열왕기에 따르면 유다 멸망의 주범은 므낫세다(왕하 21:11-15). 역대기에서는 이런 사실을 기록하지 않고 대신 어디에 관심을 보이는가?

    므낫세의 회개: 회개하고 하나님만 섬기려고 애를 썼지만 그리 잘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몬의 통치와 비교하면서도 므낫세의 스스로 겸손하였던 것을 부각시키는 것을 보면 므낫세의 회개를 중요하게 다루는 셈이다. 아무리 악한 왕이었다고 해도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아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셈이다.

13. 유다에서는 쿠데타가 드물다. 쿠데타를 일으켜보아도 왕조가 바뀐 적이 없기 때문이다(대하 24:25-26, 요아스, 대하 25:27, 아마샤). 아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왕을 죽여도 왕조가 바뀌지 않는 이 기묘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까?

    다윗에게 하신 약속 때문이다(삼하 7:13): 소용없는 반역을 왜 저지를까? 주로 종교적인 문제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므낫세 시절에는 거의 앗수르의 속국이나 다름없었으므로 종교적인 문제도 정치적인 문제(앗수르파와 애굽파, 혹은 독립파)와 맞물려 있었을 것이다.

14. 아몬이 24세에 죽임을 당했다면 그의 아들은 도대체 몇 살에 왕이 되었단 말인가?

    8세(34:1): 아몬이 15세에 장가를 갔다는 얘긴데, 이래서야 철이 제대로 들겠나? 배워야 할 시기에는 배워야 하고 훈련받아야 할 시기에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너무 일찍 너무 많은 것을 누리면 제대로 인간이 되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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