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32장


1. 산헤립의 침공과 히스기야의 대응에 관한 기록은 왕하 18:13-19:37, 사 36-37장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이 본문은 간단하게 기록한 셈이다. 비교해 보자, 어떤 차이가 있는지?

    히스기야의 잘못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않았다: 다윗의 잘못에 대한 기록도 생략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역대기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이스라엘을 도우셔서 나라를 회복시킬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2. 유다를 침공한 산헤립이 바로 예루살렘을 치러왔을까?

    아니다. 실상은 예루살렘만 남고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읍이 점령당했다(왕하 18:3). 뇌물도 소용이 없었다.

3. 산헤립의 침공에 대해서 히스기야가 취한 조치는 무엇인가?

    물을 구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3-4)과 성벽을 견고하게 하는 것(5), 하나님의 신뢰하게 하는 것(6-8): 성 밖에 있는 물 근원을 막았다는 것은 밖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고 성 안으로 끌어들였다. 장기전을 대비한 것이다.

4. 조그마한 예루살렘에 무슨 외성까지 쌓았을까?

    작은 성이니 외성이라도 아주 작은 것이다. 실로암 못 바깥과 기혼 샘을 둘러싸는 작은 외성이 있었다.

5. 히스기야가 백성들에게 이렇게 신앙적인 말로 위로할 수 있었던 것은 도와주는 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히스기야를 도와준 선지자가 누구일까?

    이사야(20, 사 37:5-7): 이사야가 전한 메시지의 중요한 부분은 ‘임마누엘’이다(사 7:14). 히스기야도 이사야의 영향을 받았음을 은연중에 보여주는 것이 하나님을 가리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 라는 표현이다.

6. 예루살렘에서 방비가 한창일 때 산헤립은 라기스를 공략하고 있었다. 라기스 공략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예루살렘에서 애굽으로 가는 길목이며 전략적 요충지다. 예루살렘의 배후를 먼저 친 셈이다. 그러나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라서 산헤립이 라기스 점령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여겼다.

7. 산헤립이 보기에는 히스기야가 여호와만 의지하라고 하면서 제대로 여호와를 섬기지 않는 것처럼 보인 것이 무엇인가?

    한 제단 앞에서 예배하고 그 위에 분향하라는 것(12): 여러 곳의 산당들을 제거한 것이 산헤립의 눈에는 여호와를 잘 섬기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방신을 섬기는 방식이 곳곳에 신전이나 우상을 세우는 것임을 감안해보면 산헤립에게는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히스기야가 제거한 산당들도 어쩌면 여호와 신앙을 표방하는 왜곡된 여호와 신앙이었을 것이다. 특히 느후스단이 그렇다.

8. 산헤립이 여호와를 우습게 아는 이유가 무엇인가?

    지금까지 어떤 신도 자기들의 신을 이긴 적이 없기 때문이다(13-15): 이스라엘이 이런 어려움을 겪는 것이 여호와가 약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징계하려는 것인데 그것도 모른 채 이런 소리를 하다가 결국은 자신도 망하고 만다. 애굽의 바로가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결국은 쑥대밭이 된 것을 알 리가 없지!

9. 산헤립은 편지쓰기를 좋아했나 왜 또 편지를 보냈는가?

    급했기 때문일 것: 신하들에게 맡겨놓고 느긋하게 라기스에 머물러 있을 형편이 못 되었던 모양이다. 구스 왕 디르하가의 공격이(왕하 19:9) 예상되었을 수도 있다.

10. 산헤립의 신하가 왜 유다 방언으로 소리를 지를까?

    이스라엘을 모독하고 백성들의 사기를 꺾으려는 의도인데 당연히 백성들이 알아듣는 말로 해야 한다. 산헤립의 신하란 이런 목적으로 데리고 다니는 통역자인 셈이다.

11. 하나님 비방하기를 어떻게 손으로 지은 세상 사람의 신들을 비방하듯이 비방할 수가 있을까?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똑같은 우상일 뿐이고 자기들이 섬기는 신보다 못한 신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죽어봐야 알지!

12. 산헤립의 실록에 의하면 그가 지중해 연안의 대부분의 도시를 함락하였고, 유다 지역에 46개의 요새와 도시들을 정복하고 200,150명을 포로로 잡아 왔다고 한다. 예루살렘을 에워싸서 히스기야를 새장의 새같이 가두었다고 자랑스럽게 기록하고 있다. 왜 성경의 기록과 이렇게 다를까?

    아마도 1차 침공 때(BC 701)에 큰 전과를 올리고 돌아가서 이렇게 떠벌려 놓았을 것이다. 후에 다시 2차 원정에 나섰다가 본문의 일을 당했을 것이다. 왕하 19장에 보면 군사 185,000을 잃어버리고 돌아갔으니 할 말이 별로 없었을 것, 그 후에 자식들에게 암살당했다.

13. 유다 왕에게 예물을 가지고 오는 경우가 그리 흔치 않다. 솔로몬과 웃시야 시절에 그런 적이 있다. 히스기야에게는 왜 외교사절들이 찾아 왔을까?

    당대의 최강국 앗수르를 물리쳤으니 이제는 유다가 최강이다. 유다와 평화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기도 하고 앗수르를 막아주었으니 감사하기도 했을 것이다.

14. 엄청난 시련을 딛고 히스기야가 존귀하게 되었다.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이적을 체험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교만하여짐(25): 사람이 어째 이럴까? 그래도 멀리 가지 않고 곧 돌아섰으니(26) 다행이다.

15.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의 부와 영광을 구하는 것이 기복신앙일까? 그렇다면 히스기야의 복이 그렇게 큰 복이 아닐텐데?

    기복신앙은 영적인 부분에 관심이 없이 물질에는 관심을 쏟는 것이다. 영적인 복이 우선이고 그 다음에 이런 물질의 복이 따라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신 일이며, 진정으로 감사할 일이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그 후에 이 모든 것이 더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마 6:33).

16. 물을 끌어들이는 일이 무엇이길래 히스기야가 엄청난 복을 받은 기록에 덧붙여 놓았을까?

    전쟁을 대비하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포위되었을 경우 살아남기 위한 방책이며 적으로 하여금 물을 구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단순한 물길이 아니라 520m에 이르는 바위터널이다.

17. 엄청난 부나 권력을 누리게 되면 사람은 변한단다. 아무리 히스기야지만 변하지 않을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럴 때에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까?

    시험하신다(31): 징계를 위함이 아니라 교만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18. 히스기야의 행적이 이사야의 책에 기록되었다고?

    이사야 36-39장과 왕하 18:9-20:19의 내용은 동일하다. 산헤립이 침공하고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생명이 15년 연장된 그 사건 말이다.

19. 히스기야는 백성들에게서 존경을 받았고 백성들은 정중하게 장례를 치렀다. 므낫세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아 이건 불행이다! 왜 그런가?

    이사야를 죽였을 뿐 아니라 유다를 멸망당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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