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26장


1. 일반적으로 왕위는 백성들이 결정하지 않는다. 왕이나 왕의 측근에 의해서 결정되기 마련인데 왜 웃시야는 유다 온 백성들에 의해서 왕이 되었다고 할까?

    아버지(아마샤)가 반역으로 쫓겨났기 때문이다: 쿠데타가 일어나면 왕조가 바뀐다. 반면에 유다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나도 왕조가 변하지 않았다(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 아사랴). 다윗의 위가 영원하리라던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흔들리지 않았다. 백성들이 다 그렇게 믿고 있는 판에 왕위를 찬탈하려는 것은 생각도 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더 큰 이유는 하나님의 섭리였기 때문이지만 말이다.

2. 엘롯은 어디일까?

    아카바만, 에시온 게벨 근처에 있던 에돔의 항구도시였다(왕상 9:26, 8:17). 엘랏이라고도 한다. 다윗 시대부터 유다에 복속되었으나 여호람 때에 에돔의 반란으로 잃었다가(21:8-10) 아마샤가 되찾은 땅이다(25:14). 유다의 전성기 때에는 최남단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지금도 에일랏이라는 지명으로 이스라엘이 움켜쥐고 있다. 이집트, 이스라엘, 요르단이 좁은 지역에 밀착하고 있어서 여행자들에게 불편을 주고 있다.

3. 왕 노릇을 52년간 했다고? 어떻게 오래도록 왕 노릇을 잘 했을까?

    어렵다: 실제로는 아버지와 함께 24년, 아들과 함께 12년을 통치했다. 그러니 단독으로 통치한 햇수는 16년 정도다.

4. 쓸데없이 북이스라엘과 싸워 참패를 당하고 결국은 백성들에게 쫓겨난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고?

    아마샤가 초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것을 웃시야가 잘 따랐다는 말이다. 아마 아버지의 처신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기로 결심을 했던 모양이다.

5.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심을 했으면 끝까지 가야지 왜 또 스가랴가 사는 날에는 그랬다는가? 어디서 이 비슷한 표현을 보았더라?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에(삿 2:7, 18),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삼상 7:13, 15), 여호야다가 사는 날 동안에(왕하 12:2): 처음의 믿음을 끝까지 그대로 가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까?

6. 블레셋 사람들을 제압한 것(6)은 보통 일이 아니다. 아마샤가 나라를 말아먹다시피 했는데 쿠데타 세력에 의해서 옹립된 웃시야가 이렇게 단 기간에 나라를 반석 위에 세우다니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하나님의 기이한 도움 탓이다(15, 7절): 저절로 이렇게 된 것은 아니다. 국방을 튼튼히 하고 군대를 조직했으며 경제력을 키웠다. 하나님께서 기이하게 도우시는 것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할 때 주어지는 것이다. 이 때 차지한 야브네는 훗날 이스라엘 역사에서 중요한 곳이 된다. 예루살렘 함락(AD 70) 후 이 곳에서 회당을 열고 율법을 가르치자 산헤드린 공회가 이 곳으로 옮겨와서 유대의 전통을 이어가는 중요한 곳이 된다.

7. 웃시야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라를 강하게 만들고 있는가?

    국방과 동시에 경제 부흥도 일으켰다: 나라가 강해지려면 군사만 많다고 되는 게 아니다. 국방도 튼튼히 해야 하지만(9)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10) 강한 군사력이 힘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다. 다윗 왕조에서 이렇게 경제력을 키운 왕이 거의 없다. 적대국인 앗수르의 기록에도 ‘지중해 연안 국가의 우두머리 왕’으로 나온단다.

8. 웃시야가 교만해진 이유가 무엇일까?

    강성하여진 것이 자기 탓인 줄 안 것: 아무리 강성해지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면(신 8:18) 하나님 앞에 겸손해지지 않을까? 조금 잘되면 자기 탓으로 여기는 것이 우리의 고질병인가 보다. 하나님께서 가장 염려하는 것(신 8:12-14) 중의 하나다.

9. 향단에 분향하는 것이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이었을까?

    정교일치의 절대권력을 잡으려는 야욕일 것: 주변 나라에서는 왕이 정치와 종교를 혼자서 틀어잡고 절대권력을 휘두르고 있었지만 이스라엘은 양분 되어 있었다. 그렇잖아도 강력한 왕이었는데 더 강력한 왕이 되고 싶었던 모양이다. 가진 사람이 더 가지고 싶어 하는 것처럼!

10. 왕의 앞을 막는 일은 목숨을 걸어야하는 일이다. 어차피 죽을 각오를 했으면 혼자 죽을 각오를 하지 왜 제사장 80명을 데리고 갔을까?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용맹하고 사명감에 불타오른다고 해도 두려움이 없을 수 없다. 그런 두려움을 어떻게 이겨내느냐는 것이 중요할 뿐! 마침 아사랴에게는 함께 용기를 내줄 동료가 많았다.

11. 다행이다. 왕이 화를 내는 순간에 나병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제사장들이 죽임을 당했을지도 모르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즉각적으로 반응하시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하나님의 면전에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성전에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즉각적인 심판을 면치 못한다. 나답과 아비후가 그랬다(레 10:1-2).

12. 웃시야가 더 강력한 왕이 되기를 소망한 결과는 어떠한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다: 왕의 자리도 잃어버리고, 하나님도, 왕실의 묘자리도 잃어버렸다.

13. 왕들의 묘실에 접한 땅, 조상들의 곁에 장사하였다는 의미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왕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뜻이다. 왕의 가족을 장사하는 곳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곁에 따로 만든 곳에 장사되었다는 뜻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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