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24장


1. 일평생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요아스는 어느 기간 동안 그랬다고 하는가?

    제사장 여호야다가 사는 날 동안(2, 14): 죽고 난 뒤에 그렇지 않았다는 말이다. 여호수아 시대에는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고 한다(수 2:7). 잘 배우고 가르쳐준 선조들이 떠난 후에도 배운 대로 평생 갈 수는 없는 걸까?

2. 왕이 명령을 해도 레위 사람들이 빨리 하지 않았다?

    레위인들이 성전세를 거두러 다니는 일에는 익숙지 않아서 그랬을까? 요아스 왕 이십삼 년에 이르도록 그랬단다(왕하 12:6). 이건 여호야다의 책임이 크다. 혁명을 일으키고 종교개혁의 선봉에 서서 도대체 뭘 했느냐 말이다. 사람마다 잘 하는 일이 있고 약점이 있다.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다 잘 하기는 어렵다. 재능에 따라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는 일이 중요하다.

3. 성전세를 거두지 않았느냐고 책망하는 것을 보아(6) 백성들이 성전세를 내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는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지?

    방법을 바꾸었다. 헌금궤를 사용하고 관리하는 사람을 세웠더니 제대로 되었다. 이게 무슨 차이인가? 성읍마다 거두러 다니는 것은 반발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성전에 궤를 두고 거두는 방식은 최소한 예배를 드리는 사람만 성전세를 내면 되니까 반발이 없었던 탓 아닐까? 강제로 거두는 것에 비하면 자원해서 드린 셈이다. 선한 일이라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나 제도도 필요하다.

4. 요아스가 여호와의 전을 보수할 뜻을 두기까지 여호야다는 뭘 했을까? 어린 요아스가 이런 생각을 하려면 세월이 제법 흘렀음이 틀림없는데 대제사장이 성전을 보수할 생각을 하지 않다니? 스스로 해도 시원찮을 일을 하라고 해도 늦장을 부리고?

    대제사장으로서 무능함과 백성들의 불신앙이 겹친 것 같다. 여호야다가 참 이해되지 않는 인물이다. 이런 일에도 능력을 발휘했어야지!

5. 성전세를 누가 관리하는가?

    왕과 여호야다(12): 레위 사람들이 왕의 서기관과 대제사장에게 속한 관원에게 가져가고(11) 결재는 왕과 여호야다가 한 셈이다. 헌금도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함부로 유용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면 성도들이 기꺼이 헌금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6. 왕하 12:13절에는 그 돈으로 다른 대접이나 그릇을 만들지 않았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왜 다른 집기를 만들었다고 할까?

    왕하에서는 성전수리 중에 다른 용도로 쓰지 않았다는 말이고 여기서는 성전수리를 마치고 난 뒤에 남은 돈으로 그릇을 만들었다는 말이다.

7. 대제사장이던 여호야다는 죽어서 왕의 묘실에 장사되고 왕인 요아스는 왕의 묘실에 장사되지 못했다. 왜 이 모양이지?

    여호야다는 왕이 아니었지만 왕위를 회복하고 여호와 신앙을 되찾게 하여 왕에 버금가는 일을 했지만 요아스는 거저 주어진 왕의 자리에 앉아서 오히려 왕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8. 우상을 섬기도록 사주한 유다방백들은 도대체 뭐야? 어떻게 이런 인간들이 유다의 방백의 위치에 있었을까?

    아마도 정치적 비주류(여호야다를 위시한 제사장들이 주류)였을 것이다. 정치적인 인간들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선악을 가리기보다는 반대를 일삼는 경향을 보인다. 정치적인 인간들이 여호와 신앙을 우습게 여기는 것은 일도 아니다. 요는 요아스가 정치적이냐 신앙적이냐의 기로에서 정치를 선택했다는 말이다.

9. 여호야다가 죽고 난 후에 요아스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은 여호야다가 할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어떤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까?

    말씀을 가르치는 일과 주변에 제대로 된 사람들을 붙여주는 일: 여호야다가 공을 들여 결혼시켰지만 그 부인들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것과 신앙으로 이끌어줄 참모들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여호야다의 실책이다. 정치적인 담력으로 왕위를 회복시키기는 했으나 지혜롭지 못했던 모양이다.

10. 의인의 피를 흘리게 한 죄를 지적할 때 아벨의 피로부터 사가랴의 피라고 한다(눅 11:51, 마 23:35). 사가랴는 여기 나오는 여호야다의 아들(아마도 손자) 스가랴를 가리킨다. 사가랴 이후에는 의인이 피를 흘린 경우가 없을까?

    많이 있다. 이사야, 예레미야,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예수님: 그럼에도 아벨의 피로부터 사가랴의 피라고 하는 이유는 유대인들의 구약 성경은 역대기가 순서상 마지막 책이기 때문이다. 우리 식으로 하면 ‘창세기에서 말라기까지’라고 할 것을 ‘창세기(의 아벨)에서 역대기(의 사가랴)까지’라고 한다. 참고로 유대인들은 성경을 셋으로 구분했다. 모세가 기록한 율법서 다섯 권, 선지자들이 기록한 선지서 8권 (소 선지서 12권은 한 권으로 취급함), 선지자가 아닌 사람이 기록한 성문서 11권이 그것이다. 열왕기와 역대서는 내용이 거의 유사함에도 열왕기는 선지자가 기록했음으로 선지서에 포함되고 역대기는 제사장이 기록했음으로 성문서로 분류되어 마지막 책이 되었다.

11. 여호야다는 유다의 왕조를 지켜내는 위대한 일을 했지만 대제사장으로는 그다지 유능해 보이지 않았다. 죽을 때의 나이를 참고해서 왜 그런지 추측을 해보자.

    나이 탓이었겠다: 여호야다가 130세에 죽었다면 그가 요아스를 왕으로 세운 일은 최소한 90세를 넘어서 된 일이다. 그래서 정년이 필요한 모양이다. 아무래도 일정한 나이를 넘어서면 판단력이나 결단력에 문제가 생기는 모양이다.

12.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는 하나님의 영이 백성이나 왕을 감동시키시면 안 되나? 애꿎은 스가랴만 감동시키셔서 돌에 맞아 죽게 하시나?

    순종하려고 하지 않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영은 임하시지 않는다. 최소한 들으려고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신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런 존재로 만드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없으면 하나님도 일하시지 않는다.

13. 여호야다의 은혜가 얼마나 큰데 그 큰 은혜를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

    인간이 그렇더라! 특히 돈이나 권력을 하나님보다 중요하게 여기면 그렇게 되는 모양이더라.

14. 요아스가 여호야다의 아들을 죽인 것은 단순한 인간적인 배신을 넘어서 하나님을 배신한 행위다. 그러니 무슨 일이 생기는가?

    적은 무리가 쳐들어왔으나 심히 큰 군대로도 이기지 못하였다(24): 하나님을 저버리면 하는 일마다 안 되게 된다. 설령, 잘 된다 싶어도 길지 않다.

15.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서 크게 부상당한 요아스를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피 값을 갚으려고 반역한 무리들은 상을 받아야 하나?

    상 받을 사람들은 아니다. 진작에 요아스가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막았어야 했다. 힘을 다 잃어버린 왕을 그럴듯한 명분으로 죽였으니 반역일 뿐이다.

16. 왕을 왕들의 묘실에 장사하지 못한 것은 백성들의 원성도 높았겠지만 그런 것들을 명분으로 삼은 반역자들의 뜻이었을 것이다. 반역자들의 입장에서는 왕으로 정당하게 대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 아들을 왕으로 세웠을까?

    다윗의 위가 영원하기를 바라는 백성들의 바람과 자신들이 내세운 명분 때문이다: 자기들이 왕위를 찬탈하려는 것이 아니라 요아스의 잘못된 행위에 반기를 든 것이라고 명분을 내세운 이상 정통성을 가진 왕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실권은 자기들이 가진 채 조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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