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22장


1. 왕이 죽으면 왕자가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당연한데 왜 예루살렘 주민이 아하시야에게 왕위를 계승하게 했다고 할까?

    아마도 다른 뜻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예루살렘 주민에 의해서 그 시도가 좌절되었음을 의미하는 것 아니겠는가? 아달랴가 다른 주장을 폈을 가능성이 보인다.

2. 아버지인 여호람이 32세에 왕이 되어 8년을 치리하고 죽었는데(21:20) 막내 아들이 42세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럴 땐 어떻게 하지?

    왕하 8:26절에는 22세였다고 한다. 아마 그럴 것이다.

3. 여호람의 악행을 심판하실 때 아하시야를 제외한 모든 아들이 다 죽었다(21:17). 아하시야는 얼마나 착하기에 살려주셨을까?

    착해서 살아남은 게 아니라 다윗의 씨를 보존하시려고 선처하신 것이다: 구스와 아라비아 사람들의 침공에서 살아남은 아하시야가 1년 만에 예후에게 죽임을 당했는데 그 사이에 낳은 아이가 요아스다(아달랴의 통치기간 6년 동안 숨어 있다가 즉위할 때의 나이가 7세, 23:21). 이 아이를 통해서 다윗의 위는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4. 이름이 왔다갔다 해서 미치겠다! 여호사밧의 막내 아들이 여호아하스라고 했는데(21:17) 여기서는 아하시야라고 하는가? 6절에는 아사랴라고 하고?

    여호아하스 = 여호와 + 아하스, 아하시야 = 아하스 + 여호와(=야)이니 의미는 같다. 성과 이름의 순서를 바꾸어 부르듯이 그럴 수 있나보다. 아사랴는 아무래도 잘못 표기한 것 같다.

5. 어머니가 아들을 꾀어 악을 행하게 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지(3)?

    본인들은 그것을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악을 분별할 능력이 없으면 아무리 열심이나 능력이 있어도 소용이 없다. 아니, 더 해로울 뿐이다.

6. 아달랴의 아들이 외삼촌 요람과 함께 하사엘과 싸운다(5). 결과는 어떻게 될까?

    보나마나 패전이다: 아합과 싸우던 엘리야가 아합의 집안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세운 세 사람(엘리사, 예후, 하사엘) 중의 한 사람이 하사엘이다(왕상 19:15-17). 그러니 결과는 명약관화다.

7. 이야기가 좀 복잡하다. 북 이스라엘의 왕 요람이 하사엘과 전쟁 중에 부상을 입었다. 그래서 전투에서 돌아와 이스르엘에서 치료 중이었다. 아하시야가 문병을 갔다(전쟁터에서 갔는지 예루살렘에서 갔는지는 불명확). 이 때 요람과 아하시야를 죽인 예후는 무엇을 하던 사람이었는가(왕하 9장)?

    전쟁터의 군사령관: 왕이 후송간 상황이라면 모든 권력이 일선사령관에게 집중된다. 이 때 엘리사의 제자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예후가 전광석화같이 쿠데타를 일으켜 아합의 집안을 멸망시켰다.

8. 아하시야가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멸망시키겠다고 하신 그 집에 얼쩡거리다가 자신도 죽임을 당했다. 어디 놀 때가 없어서 망하는 집에 가서 얼쩡거리나? 그래도 사람들이 인정해준 것은 무엇인가?

    그 아버지의 신실함: 아무리 그렇지만 여호사밧의 아들이니 장례는 치러주자는 것이다.

9. 결국은 아달랴가 일을 저지른다. 권력이란 게 참 무서운 거다. 왕의 모후라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데 그것도 모자라 스스로 왕이 되려고 왕자들(자기의 손자)를 모조리 죽이나? 백번 양보해서 단순한 권력욕 외에 아달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면 절박한 사정이 있었을까?

    친정(아합의 왕가)이 절단이 난 상황에서 스스로 권력을 잡지 않으면 자신의 안전도 보장할 길이 없을 것이란 두려움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10. 여호람이나 여호아하스가 악한 왕이 된 것은 자신의 탓도 있지만 아달랴의 잘못이 더 크다. 그러면 아달랴가 심판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왕비로, 대비로, 나중에는 왕이 되는데?

    심판이 잠시 미루어지고 있을 뿐 피할 수 없다: 우리는 당장 내 눈으로 보아야 직성이 풀리지만 하나님의 편에서는 지체되는 것도 아니다. 악한 자의 형통을 불쌍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11. 아달랴의 악행 가운데서 그나마 왕자 하나를 살려낸 여호사브앗은 아달랴와 어떤 관계인가?

    모녀간(친모가 아닐 수도 있기는 하지만): 손자를 죽이는 판에 모녀간이 무슨 소용인가? 이런 용기 덕분에 그의 남편 여호야다는 역사의 중심에 서게 된다. 하나님은 이런 용기 있는 사람을 통해서 다윗에게 하신 언약을 지키어 가신다. 신실했던 여호사밧의 작은 실수로 나라가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기도 하고 용기 있는 한 여인을 통해서 또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좋은 신앙을 지니고도 매사에 신중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12. 아달랴의 왕국 한 모퉁이에서 어린 요아스가 숨어서 자라고 있다. 무슨 느낌이 드는가?

    장차 자라날 하나님 나라의 씨: 이 조그마한 씨가 자라 거대한 나무가 된다.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다윗의 위에 대한 상징이다. 이 아이가 다시 왕이 되어 꺼져가던 여호와 신앙을 되살리게 된다. 모세 시대에도 유아학살 사건이 있었고, 예수님 시대에도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삼키려는 사단의 헛수고일 뿐이다(계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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